가. 개요
1) 겉 사람의 마음을 개간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에게 묻고 또 물어서 옥토로 개간함이다.
2) 애굽 안에서의 믿음은 자기 믿음 안에 갇혀 있는 지옥이므로 이곳에서 해방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곳을 떠나야 한다
나. 본론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약 1:6)” (아이테이토-데 엔 피스테이, 메덴 디아크리노메노스)
‘엔’ 전치사는 ‘안에서’, ‘~속으로 들어가 있다’다. 빵 속으로 들어가면 빵이 되고, 포도주 속으로 들어가면 포도주가 되는 것이 전치사다. 비유(파라볼레)다. ‘믿음(생명의 빛) 안에서 온전히 하나 되어 몸 된 성전이 되는 것’이다.
‘아이테이토’를 ‘구하다’로 번역하였는데 ‘아이테이토’는 구하다가 아니라 ‘묻다’다. 계속해서 내 안에서 하나 되어있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물으라고 한다. 물으려면 내면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해야 한다. 그를 발견하려면 마음 밭을 해체하여 의식으로 드러내서 보석을 캐내야 한다.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개간해야 하는 선 조건이 있다. 번역된 내용은 원 의미에서 벗어나 있어서 모두 자신이 원하는 육신의 요구를 충족하는 표면적인 것이다.
1) 겉 사람의 마음을 개간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에게 묻고 또 물어서 옥토로 개간함이다.
이 말씀의 내용은 의심하지 말고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이 세워지도록 계속해서 하나님에게 물으라(아이테이토)는 것이다. 곧 자신의 마음을 해체하여 개간하는 일이다.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에게 묻고 물어야 옥토로 개간된다. 마음 안을 계속해서 관찰함을 말씀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무더기로 보면 결코 볼 수 없다. 보는 나, 듣는 나, 느끼는 나가 유지되면 육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게 된다. 그러면 예수를 대상으로 아부하고 겉 사람이 생각하는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그 마음을 해체하여 개간하게 되면 보는 나, 듣는 나, 느끼는 나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무더기로 보는 겉 사람이 해체되어야 속사람인 그리스도 예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카르디아)은 끝이 나야 한다.
2) 애굽 안에서의 믿음은 자기 믿음 안에 갇혀 있는 지옥이므로 이곳에서 해방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곳을 떠나야 한다
출애굽하는 것처럼 애굽(카르디아)에서 반드시 떠나야 광야로 들어가게 된다. 애굽 안에서의 믿음은 자기 믿음이다. 자기 믿음은 바로 지옥이다. 그래서 반드시 자기 신념으로 사는 자기 믿음에서 떠나야 한다. 광야는 누스(몸된 성전이 세워지는 터)에 해당한다. 히에론 성전(건물 성전, 애굽에서 재앙이 내릴 때부터) 안으로 들어와야 누스가 등장하여 그 안에 나오스(내면에 있는 성전) 성전이 있다. 누스 안으로 들어오면 카르디아(마음)가 끝나고 속사람이 보이게 된다. 그러면 보이는 나, 듣는 나, 느끼는 나가 사라진다.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닌 것이 드러나야 한다. 몸과 마음에 속아 산 것이 드러나는 믿음의 선 조건이 된다. 믿음(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가지고 온 믿음)은 겉 사람의 앎과 행함이 아니며 겉 사람의 의지가 아니다. 속사람 즉 무아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