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향기
정수남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란 더욱 그랬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하나도 그른 데가 없었다. 특히 남녀의 관계란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일로, 언제 무엇에 어떻게 끌렸는지 예측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또 대부분 은밀히 진행되는 까닭에 좀체 그 꼬리도 잡을 수가 없었다.
208동 306호의 장상걸 씨(65세)의 경우가 그랬다. 그가 언제부터 길 건너 골목에 있는 ‘옛날 식당’이란 이름의 작은 음식점 아줌마와 정분이 났는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일로 말미암아 결국은 아내로부터 이혼 소송을 당하고 적신으로 쫓겨났다는 소식이 단지 안에 퍼졌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부랴부랴 진상 파악에 나서게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장상걸 씨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나 안타까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평소 나이에 걸맞게 행동이 점잖고 고지식했던 그런 사람도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나, 하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단지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오다가다 낯익은 얼굴이라도 만나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일을 꺼내놓고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게 도대체 뭔 일이래?”
“글쎄 말이에요. 말세라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에요. 그렇게 꼬장꼬장하고 점잖은 늙은이까지 그런 짓거리를 했다는 걸 보면…….”
“아, 이 여자야, 사랑에 젊은이 늙은이가 어디 있어?”
“그래도 그렇지요. 아무리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환갑도 지난 사람이 식구들 몰래 그런 짓거리를 했다는 게 말이나 돼요? 자식들 부끄럽게.”
“아, 점잖은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도 못 들었어?”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던 여자들은 너나없이 깔깔거리기 일쑤였다.
장상걸 씨 아내는 참지 않았다. 도도하고 단호한 성품대로 장상걸 씨를 칼같이 잘라냈다. 2단지 부녀회장을 역임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었다. 하긴, 누군들 40여 년 동안 한 이불을 쓰고 살 맞대고 살던 사람한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위인이 있겠는가. 우리가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아내가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좀 똑똑한 년 하고나 붙었다면 내가 말도 하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년이 저보다 나은 데가 어디 있어요? 허리 엉덩이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펑퍼짐한데다가 세수하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은 노상 부스스하고, 날마다 입고 있는 그 뭐냐, 장미꽃 무늬가 있는 낡은 바지에서는 썩은 된장 고추장 냄새나 풍길 것 같고……. 그래서 나는 그 식당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데, 그 작자가 언제 가서 그렇게 붙었는지, 정말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 맞아요.”
머리를 꼿꼿이 세운 그의 아내는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우리의 충고 따위는 귓등으로 흘린 채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날 적마다 기관총처럼 쏟아냈다. 그 여자와 식당에 관한 험담으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막말은 결국 자신과의 비교를 넘어 남편인 장상걸 씨를 악담하는 것으로 귀결되곤 하였다. 그녀가 그렇게 입에 게거품까지 물어가며 떠들어댄 이유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는 것과 아울러 장상걸 씨를 개망신 주겠다는 의도가 깔린 게 분명했다.
그녀의 말인즉슨, 그 여자가 먼저 꼬리를 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로변도 아닌, 골목 뒤쪽의 허름한 식당을 홀몸으로 꾸려가려면 월세 내기에도 빠듯할 터이고, 더구나 수더분한 게 그런 일을 벌일 정도로 약삭빠르지도 이악스럽지도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다 조사해 봤어요.”
그녀는 그런데도 두 사람이 떨어지면 죽고 못 살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장상걸 씨의 단독책임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얼굴이 반반해요, 가진 게 있어요, 배운 게 있어요?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는 년인데, 저 작자가 미쳐서 돌아간 걸 보면 그건 순전히 뜨신 밥 먹고 등 따듯하니까 할 일이 없어서 지랄을 떤 게 분명하다니까요. 남자들이란 그저 조금만 방심해도 딴생각하니까 조심하라는 옛 어른들의 말, 이제야 정말 실감했어요.”
그의 아내는 기세등등했다.
우리가 생각해도 그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평교사이긴 하지만 한평생 고등학생을 가르치던 사람이라면 그래도 앞뒤는 분간할 줄 알 터인데, 정년퇴직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사람이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보면 정말 남녀의 사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게 분명했다. 더구나 그의 아내는 단지에서도 알아주는 세련되고 늘씬한 미인 아닌가. 허리도 꼿꼿했고, 엉덩이도 그 여자처럼 쳐지지 않았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도 기름기가 돌지 않는가. 보톡스를 맞았다는 뒷소문이 돌긴 했으나 늘 짙게 화장하고 다니는 얼굴에서는 주름살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곁을 지나칠 적마다 온몸에서 풍기는 고급향수 냄새는 맡을 적마다 콧속을 상큼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러므로 누가 봐도 그녀와 그 여자는 견줄 수가 없는 상대였다.
그녀가 분노하는 것 가운데 또 하나는 자신이 지금까지 겉과 속이 다른 그런 남자와 40년이 넘는 세월을 속아서 살았다는 것이었다.
“헤어지기로 결심하니까 속이 다 시원해요. 왜 그동안 애면글면하면서 그런 작자와 살았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을 정도라니까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보상받을 수 없는 과거지사는 제쳐두고, 이제라도 그런 작자의 검은 속내를 알게 되었다는 걸 감사하며 살아야죠. 안 그래요?”
우리가 그래도 자녀들을 봐서 이번만큼은 야단만 치고 용서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녀는 미련이 없다는 얼굴로 머리를 흔들었다.
“이혼이요? 그게 뭐 흉이 됩니까? 요즘은 두 집 건너 한 집꼴인데……. 그걸 알면서도 저한테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살라고요? 그걸 용서라는 베일로 덮고, 남은 삶을 속 끓이며 사느니,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싹 갈라서서 둘 다 솔직하게 따로따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결단을 내린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그녀가 몽둥이를 들고 그 식당으로 쳐들어가 그 아줌마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곁에 섰던 누군가가 그 말을 꺼내자 그녀는 그것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자식들의 간청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참았다고 했다.
그 바람에 하루아침에 쪽박 신세가 된 사람은 장상걸 씨였다. 빈털터리로 아파트에서 쫓겨난 그는 거지나 다름없었다. 아파트는 물론이고 퇴직금과 그동안 먹을 것도 먹지 않고 애써 모아두었던 비상금까지 몽땅 아내에게 빼앗긴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닌 듯했다. 소문으로는 노후 대책으로 분양받아 월세를 놓았던 길 건너 상가 건물의 소유권도 벌써 아내의 차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장 선생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대?”
“글쎄 말이에요. 하루아침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싸지, 싸. 그러니까 누가 그런 짓을 하래?”
“그래도 불쌍하잖아요.”
“불쌍하긴, 그러니까 누가 뿌리를 함부로 놀리래?”
“뿌리요?”
“그럼 그게 뿌리가 아니고 뭐야? 예부터 사내가 패가망신 당하지 않으려면 뿌리 세 개를 잘 놀리라고 했어. 그게 뭔 줄 몰라? 혀뿌리, 손 뿌리, 거기 뿌리.”
“아, 그거요? 그렇담 이제부터는 두 사람이 터놓고 같이 살면 되겠네요.”
“이 아줌마는 오지랖도 넓어. 아니, 지금 우리가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궁리까지 걱정하게 생겼어? 내 코가 석 자인데…….”
의견은 우리 사이에서도 분분했다. 도덕적 잣대로 성토하는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동정하는 여자들도 있었고, 또 한편에서는 황혼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냐고 오히려 두 사람을 부러워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장상걸 씨는 그래도 편안한 얼굴이었다. 쫓겨난 뒤 공원 옆에 있는 허름한 원룸을 빌려 사는 형편이었으나 그동안 그걸 숨기기 위해 속을 썩여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어 오히려 마음이 시원하다고 토로했다.
“날아갈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럴까.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그의 얼굴은 칠십 가까운 노인네답지 않게 젊어 보였다.
연말 송년회를 한다고 단지의 여자들이 몇 명 모인 자리에 난데없이 나타난 그는 아내였던 그녀가 동네방네 떠벌린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을 일신시켜야겠다는 얼굴로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히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내가 동창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간 어느 날 - 사회 활동 등으로 그의 아내는 그렇지 않아도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 혼자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았던 게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정말 이상한 데서 시작되는가 봐요.”
그날따라 그 식당의 취나물이 그의 입맛에 맞은 모양이었다. 그는 마치 옛날 어머니가 해주던 맛, 그동안 잊고 있던 고향 맛 같은 그것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웠다고 했다. 그렇게 빈 접시가 되기를 몇 번, 그럴 적마다 그 여자는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다시 갖다주곤 하더라고 것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 여자를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러나 그것은 동기였을 뿐, 시작은 아니었다고 했다. 정작 두 사람이 통속소설의 한 장면처럼 남몰래 만나게 된 것은 그다음 다음 날, 저녁 무렵 공원 산책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뒤부터였다고 했다.
“그때 왜, 그 얼굴에서 제 어머니를 떠올렸을까요?”
그는 그 만남을 숙명이라고 주장했다.
남녀의 사랑이란 게 거의 다 그런 식으로 진행되곤 하지만, 인사를 겸해서 말 몇 마디 나누는 동안 그는 그 여자의 순박하고 어눌한 말투가 맘에 들었다고 했다. 마치 그날 먹었던 취나물 같더라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아내와 달라서 되바라진 데도 없었고, 아내처럼 늘 바쁘지도 않았고, 자신을 무시하는 말투도, 눈빛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더구나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뒤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서 그만 아내에게 돌아가라고 손사래를 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 여자한테서는 아내와 같은 향수 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늘 식당에서 일해 그런지는 몰라도 양념장 같은 냄새가 나요. 아내가 소문내고 다니는 것처럼 정말 된장 냄새도 나고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고향 냄새 같아서 좋았어요. 거짓말이 아니라니까요? 그 냄새 속에서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얼굴도 떠올랐고요.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한테는 지금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 여자가.”
그는 허허롭게 웃었다. 그럴 때 그의 시선은 정말 그의 고향을 바라보고 있는 듯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콩깍지가 씌었다는 둥, 제 눈에 안경이라는 둥, 여자들이 마구 지청구를 던졌으나 그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한 귀로 흘려듣는 듯 오히려 당당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그날 부끄러워하거나 계면쩍어하지 않는 그의 얼굴에서 새삼 사랑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지? 나는, 너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분명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자식까지 낳았는데, 사랑 그 자체는 안개 속에 갇힌 듯 가물가물했다. 더구나 사랑의 향기 따위는 잊은 지가 벌써 오래된 것 같았다.
몇 달 후 장상걸 씨는 ‘옛날 식당’을 처분한 그 여자와 함께 영영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식당 자리에는 과일가게가 새로 들어섰다.
------------------
정수남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분실시대』 『타성의 새』 『아주 이상한 가출기』 등. 시집 『병상일기』 등. 산문집 『시 한권의 추억』1,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