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처녀 총각이 많은 동네로 소문난 동네입니다. 여자나이 스무살 남자는 스무다섯살 한참 일할 나이인데 갑자기 여자들이 하나 둘씩 시집을 간다고 선보러 다닌다고 야단입니다. 나는 마음이 어수선 했습니다. 나는 시집 갈 생각도 못하고 일만 했습니다. 1,2년 만에 여자친구들은 모두 시집을 가고 남자친구들은 객지로 나갔습니다. 동네 아가씨는 저 혼자 남아서 농촌일 돕는다고 이집 저집 잡일을 아지매들 따라 댕기면서 일을 했습니다. 낯선 동네에서 저에게 맞선 보라고 아버지께 청이 들어와도 아버지께서 아직 시집 못 보낸다고 합니다. 중매쟁이한테 몇 년 더 일을 부려 먹고 보낸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아지매들 따라서 일하는게 재미는 있는데 한편은 속이 상해서 객지 생활 한번 해볼려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배운것도 없고, 인물도 없는데 객지 생활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시골생활 하기로 마음 먹고 동네 아지매들 따라 댕기면서 시키는데로 하니까 마음이 편하고 돈 벌이도 괜찮았습니다. 저는 품으로 돈을 조금씩 모아서 시집갈 준비를 부모님 몰래 조금씩(속옷) 사서 모았습니다. 모으는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중매쟁이가 왔습니다. 중매쟁이가 말도 없이 남자(총각)를 한 명 델고 왔는데 아버지께서 저사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총각이 여기 볼일이 있어서 왔는김에 선을 보고가면 어떨까 하니까 아버지께서 처음은 오해를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허락을 했습니다. 선보고 한달 만에 결혼식을 했습니다. 시집을 가서 보니까 시어머님께서 혼수 작게 했다고 잔소리(구박)을 하시는지 시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하시는데 시어머님, 시아버님 두분 다 연세가 많아서(많이 늙었음) 시집을 가서 보니 문제는 신랑이 문제입니다. 시건(철도) 없고, 결혼식 해놓고 밤마다 동네 놀러가고 일찍 오지도 않고 날이 샐까하면 살랑살랑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밤 되면 놀러가고 시어머님께서 아들을 쳐다보니 속 터진다고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얘야, 자가(아들) 인간이 되겠나 하시면서 아는 사람한테 취직자리 부탁 좀 해봐라.” 저도 아는 사람이야 친정밖에 없으니 친정 삼촌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삼촌이 무슨 일을 해 봤노 하시는데 군생활 한 7년 정도 했다는데 막 노동도 할 수 있겠나 하시길래 신랑한테 물어보니까 한다고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객지생활을 하려고 하니 앞이 캄캄 하더라고요. 신랑은 철도 없지 시어른은 그때 당시 연세가 70세이고 생활을 하는 집도 구해야 되는데 돈이 없으니 신랑은 군생활 하면서 돈 한푼 없이 제대를 해서 시부모님도 철없는 아들 때문에 말씀도 못하고 저는 시골 생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시부모님께 방 한칸만 있는 방을 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근데 막상 객지에 갈려고 방을 사글세로 얻어 놨는데 신랑이 울고 불고 안간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객지에 못 간다고 엄마, 아부지 연세 많고 두분 놔두고 못 간다고 꼴갑을 합니다. 시부모님께서 우리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고 또 달래서 겨우 객지로 나와서 아이스크림 회사에 출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댕겼습니다. 한 달 월급 12만원 한 달 생활비 2만원 10만원씩 적금을 시작했습니다. 야채, 채소 반찬거리 시골에서 많이 갖다 먹고 시부모님께서 항상 아들 걱정뿐입니다.
시부모님께 제가 걱정 말라고 제가 잘 타일러서 살겠다고 말씀 드리고 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저한테 아들한테 잘해주라고 부탁도 합니다. 근데 3개월 댕기더니 못한다고 덜컹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저는 삼촌보기 미안하고 신랑은 말을 안 듣고 할 수 없이 사글세 방을 아주 싼데로 옮겼습니다. 먹고 놀고 있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시골에 더러 갈 수도 없고 방을 싼 곳에 얻었는데 부엌에는 쥐가 왜 그리 많은지 부엌에는 찬장도 없습니다. 반찬해서 덮어 놓아도 쥐가 주둥이로 밀고 반찬을 엉망으로 해놓습니다. 저는 임신 2개월쯤 되는데 제 몸이 말이 아닙니다. 신랑은 그것도 모르고 밖으로만 댕기면서 이사람 저사람 만나서 막걸리 묵고 대화하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대화하다 보니까 상대방에서 멸치장사를 함 해보자고 권했는지 리어카를 끌고 와서 멸치 서너포 실고 멸치 팔고 오겠다고 나갔는데 멸치는 팔지 않고 아가씨들 만나서 실컷 놀다가 집에 오고 멸치는 보이지 않고 돈도 보이지 않고 다음날 또 리어카를 끌고 나가면서 쌀 조금 냄비하나 양념재료 숟가락 갖고 갔습니다. 멸치 파는데 쌀이랑 양념이 무슨 소용 있냐고 하니까 다 쓸데가 있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밖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밤 열시쯤 집에 왔는데 몸 전체가 아프다고(열이 높음) 누워서 방 네구석을 돌면서 꼴갑을 떨더라구요. 미워서 그냥 놔뒀더니 죽겠다고 소리쳐서 밖에서 머 먹었노 하니까 물고기 잡아서 먹었다고 얘기 하길래 생활이 어렵고 저도 모르는 것이 많은데 아참 약국에 가서 한번 물어보자 싶어서 약국가서 얘기하니까 식중독약을 줘서 갖다 먹었는데 금방 조용해 지더라고요 행동 봐서는 그냥 내벼려 두지만 인생이 불쌍해서 참고 지냈는데 그 다음날 밤에 또 아프다고 네 방구석을 헤매는데 또 약국가서 식중독 약을 갖다 주었습니다. 낮에는 괜찮아서 돌아댕기고, 밤 되면 식중독 증세가 발작을 하는데 일주일을 고생하는데 바퀴벌레 같음 발로 콱 밟기라도 할낀데 그짓도 못하고 참고 생활하는데 그지가 따로 없더라고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신랑은 모집 광고 보고 자동차 부속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말썽 없이 잘 댕기고 있는데 하루는 퇴근 시간에 제가 마중 간다고 갔더니 어떤 여자랑 살랑 살랑 오더니 나를 봤는지 살짝 숨길래 모른채 하고 저는 집에 왔습니다. 한참 있으니 집에 왔는데 그여자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른채 해서 그냥 넘어 갔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댕기니까 생활비가 들어오니까 걱정이 없습니다. 신랑이 무슨 짓을 하던지 회사에만 꼬박 꼬박 댕기는게 제 소원이라서 마음을 비우고 생활을 했습니다. 신랑 친구 부부는 손을 꼭 잡고 댕기고 우리는 뚝 떨어져 댕기고 했습니다. 저보고 인물 없다고 신랑이 불만을 했습니다.
하루는 친정 엄마가 주인집으로 전화가 와서 니동생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공부해야 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대구상고 시험 합격) 우짜겠습니까 엄마 방이나 한 칸 얻어서 보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옆에 방 한칸 얻어서 동생 밥해주고 생활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저도 첫 딸을 낳았습니다. 딸 낳았다고 축하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부모님도 딸 낳아서 서운하다고 말씀도 안하시고 저는 딸 낳은 죄로 미역국 제 손으로 끓여서 먹고 지냈습니다.
농사철이 되었는데 시부모님께서 얼라 델고 시골와서 일손 도우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 챙겨서 버스타고 시골에 갔습니다. 정지(부엌)은 불때서 밥하고, 된장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내기 하는데 동네 분들이 품앗이로 모내기를 하니까 새참. 점심때는 밥을 많이 해서 논으로 갖고 가서 동네 분들하고 같이 식사하고, 오후에는 저도 모심기를 했습니다. 동네 분들이 모심기 하는 것을 보고 손이 기계 같다고 말씀을 하시고 칭찬도 많이 하시는데 시어머님께서 좋은 말씀 안하십니다. 친구분 며느리 좋다고 말씀하시고 냉장고 사서 시집왔다고 말씀하시고 저는 아무것도 안했다고 불만이 많으십니다. 아버님께서 말씀이 없으십니다. 아버님께서 연세가 있으시니까 입맛이 없다고 하시길래 동태국을 끓여서 드렸는데 시원하게 잘 끓였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농번기 일을 어느 정도 하고 대구 생활하는 집에 오니까 방이고 부엌이고 쥐 운동장이 되었습니다. 한 일주일 비웠는데 집안이 엉망이라 저도 짜증이 나서 한마디 하니까 신랑이 화를 내면서 밖으로 휭하니 나갔습니다. 저는 동생 눈치도 보면서 생활을 해야만 하니까 나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몇시간 지나니까 집에 와서 하는 말이 직장 다른데로 옮긴다고 하는데 이쁜말은 골라서 합니다. 인제 새끼가 있는데 우째 직장을 자주 옮길려고 하는지 새끼가 있으니 정신 좀 차리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대답합니다. 가내공업에 취직한지 1년도 안되었는데 직장을 옮긴다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몇일 알아 보더니 평화산업 조금 큰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큰 회사라서 마음은 조금 편하게 생각이 듭니다. 새끼도 있고 처남도 옆에서 공부한다 카이 사람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뒷바라지 열심히 해주고 신랑도 열심히 회사에 충실히 댕기고 1년 조금 넘어서 반장으로 선임 되었습니다. 제가 인제 식구가 있으니 마음 단디 먹고 평화산업에 오래 근무 했음 좋겠다고 타일러 봅니다. 신랑도 그래야지 하면서 가정에도 잘 돌봐주고 처남 공부하는데 필요한 것 없냐고 물어보고 좋은 날이 올 것 같았습니다. 저도 시부모님께 더 잘해드리고 안부 자주 드리고 농번기 때 저 혼자가서 일손 도와드리고 시부모님께 신랑이 많이 착해졌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시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행동 얼마나 갈란지 어구 하시면서 혀를 쯧쯧 치셨습니다. 성질을 잘 시니까 저보고 자꾸 타일러서 인간 만들어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는 동생이 학교에서 조금 일찍 왔습니다. 누나 시장에 같이 가자고 합니다. 나물만 먹으니까 영양이 부족해서 넘어질 것 같다고 고기 좀 사서 먹자고 합니다. 시장에 동생이랑 같이 갔더니 동생이 용돈으로 고기사고, 생선도 사서 집에 와서 가족끼리 구워서 먹으면서 자형한테 한마디 하더라고요 동생이 있어 불편한 것 잘 안다고 자형이 이해하고, 나중에 좋은데 취직해서 맛있는 것 대접한다고 덕담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신랑이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와서 딸래미 하고 놀아주고, 처남한테 대화도 잘하고, 열심히 하라고 동생한테 시간 맞춰서 운동도 같이 가고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 술이 문제입니다. 술이 속에 들어가면 나쁜 행동을 하는데 같이 일하는 부서에 여자들도 같이 일을 하니까 여자들이 옆구리 꾹꾹 찌르니까 뿌리치지 못해서..
첫댓글 이두레님
처음은 철없는 신랑 만나서 고생많이 하시고
늦게나마 좋은 남편이 되는 것 갔습니다.
아무튼 젊을때 고생은 돈 주고 싸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행복하잖아요
하나님께서 두레님 한테는 늦은 복을 주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두례 선생님의 지난 했던 시절을 읽으며 애뜻한 마음이 듭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 내놓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니 글을 쓰면서 치유가 되기도 합니다.
멋진 책 한번 만들어봅시다.
이두례선생님 응원합니다.
두레 선생님 글 읽으며 고단했던 지난날을. 씩씩하고 슬기롭게 잘 이끌어
가시는 모습이 감동으로 닥아옵니다.
훌륭한 책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더욱 분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