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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구의 短想
<여자들만의 여행>
민기네 3대가 태국 치앙마이로 6일간 여행을 떠났다. 어미의 근무 일정 때문에 따라가지 못한 채연이가 심통이 났다. 갑자기 아빠 오빠가 보고 싶다 울며 때 쓰다가
“남자들만 여행가고 엄마, 여자들도 가요.”
하고 보채는 바람에 어미가 금요일 저녁 앞산으로 여자들끼리 여행 가기로 약속했다면서 외할머니도 함께 가자고 야단이다.
“내가 가면 외할아버지가 혼자 계셔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그럼, 외할아버지도 함께 가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2박 3일 변산반도 대명리조트로 어머니를 모시고 떠났던 핏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옷 갈아입을 틈도 없이 여행 보따리는 거실 구석에 밀쳐 두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태권도 학원버스에서 내리는 채연이 데리고 은이 차에 오른다. 40분을 달려 입구를 지나가는 바람에 한차례 유턴을 한 끝에 겨우 앞산 자락에 자리한 달서 별빛 캠프장에 도착했다.
숲속 캠프장, 데크 캠프장과 오토 캠프 장을 지나 제일 위쪽에 8대의 캠핑카가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선 카라반 캠프장에 도착해 가장 안쪽 캠핑카에 짐을 풀었다. 2층 침대 2개와 2인용 침대 한 개, 더운물이 나오는 샤워실에 딸린 화장실 과 조리대 그리고 소파와 텔레비전까지 완벽하게 갖춘 6인용 캠핑카에 침구까지도 깨끗하게 준비 되어있었다.
준비해 온 각종 식재료로 야외 조리대에서 저녁을 지은 은이가 정성껏 손질해 건네주는 구운 새우와 초밥으로 저녁을 든든하고 맛있게 먹고 채연이 와 손잡고 시내 야경 모습을 보러 나선다.
이리 고불 저리 고불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가다 캠프장 둔덕에서 내려다본 시가지는 까만 하늘에 점점이 박힌 희미한 별빛을 배경으로 현란하다. 전기 문명의 조명을 받아 울긋불긋 서로 다투고 뽐내가며, 어울리듯 색다른 야경을 연출하려 펼치는 필사적인 경쟁으로 시가지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으로 변신했다. 250만이 사는 거대도시 속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긍정적인 추억이 많은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풍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채연이도 즐거웠던 이 순간들을 기억의 바다 저편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먼 훗날 세상 살 이가 힘에 부치면 건져 올려 그때마다 추억의 활력소로 새로운 힘을 얻으며 살아갔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올라오는 길에 혁이와 예림을 만나 함께 올라와 언니와 함께 2층 침대를 오르내리면서 신나고 재밌게 놀았는데 갑자기 엄말 찾으며 울음보가 터져서 울어대는 바람에 함께 자려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혁이 부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는다. 깔깔거리던 채연이도 풀이 죽어 2층 침대로 올라가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눕는다. 나도 채연이 건너편 침대 에 자릴 잡는다.
“채연아, 여자들만의 여행 어때?”
“…… ”
한참 만에
“재밌어요. 예림이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좋아요.”
“그래, 나도 재밌어.”
하면서 심란한 마음에 책받침 크기만 한 창 커튼을 열어젖혔더니 앙증맞은 창을 통해 아직도 녹색의 티를 다 벗지 못한 나뭇잎들이 웃는 얼굴로 한달 음에 달려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들도 사람이 무척이나 그리웠었던가 보다. 연신 팔랑 거리며 애교떠는 나뭇잎 사이로 귀뚜리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벌써 가을인가보다. 까만 하늘이 저만큼 높다.
< 자 이야기>
자는 우리들의 생활 편의를 위해 길이, 두께, 너비, 깊이 등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 둔 도구다. 그러한 도구가 측정하는 사람이나 장소에 따라 그 측정값이 달라진다면 측정 도구로서의 의미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일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서로의 약속으로 측정의 기준점을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생각의 자와 마음의 자는 그와는 다르다.
누구나 생각의 자와 마음의 자를 각각 한 개씩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데 각자 가진 자는 타고난 인자와 살아온 환경에 따라 마음이나 생각의 모양들이 다르듯이 사람들의 얼굴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고 다르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고 같지도 않다. 같은 문제를 앞에 두고도 생각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자로 인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개인 간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엔 무시무시한 전쟁이 일어나 피땀 흘려 애써 이룩해 놓은 시설들과 소중한 문화재들이 한순간 잿더미가 되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도 하고 수많은 이재민을 발생시켜 삶을 힘들게 하는 무서운 전쟁이 이 순간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나라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적인 규율인 법을 만들어 두고 지키게 하고 어기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공평해야 할 법은 언제부터인가 가진 자의 편이 되고 힘 있는 자의 편이 되고 법을 아는 자의 편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국제법이란 것을 만들어 두고 지키게 하고 있으나, 이 또한 이솝우화 ‘사자의 몫’처럼 힘센 나라가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어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 이런 모든 문제는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 내가 되고 내 주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는 사람의 자와는 사뭇 다르다.
기준이 내가 아닌 네가 되고 땅이 아닌 하늘이 되고 세상이 된다. 따라서 여러 방향으로 따져보고 헤아려 보고 판단을 내리신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참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위가 될 수도 있다. 하늘에서부터 측정하시는 우리들의 키처럼 하나님의 기준은 이렇게 다르다.
포도원에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의 임금을 똑같이 주고, 한 여인이 수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300데나리온이 넘는 비싼 옥함을 깨뜨려 그 향유를 예수의 발에 발랐을 때도, 가장 적은 동전 두 렙돈을 헌금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가장 많이 했다. 하고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가 더 소중하다고도 하십니다.
또한 성과급이란 이름으로 누가 얼마나 실적을 많이 올렸는가 수치로 계산하고 빈틈없이 촘촘하게 따져 자신이 노력한 성과와 일한 시간만큼 보상받아야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자로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는 말도 안 되는 하나님만의 셈법이고 엉성한 하나님만의 자다.
그러나 잠시 여유를 가지고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보인다. 함께라는 하나님의 기준이 보인다. 섬기는 것과 주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자가 보인다.
<난 늘 한 박자 늦다>
이곳저곳 흩어져 살던 竹馬故友들이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57년 만에 다시 뭉쳐 5일간 중국 황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배낭끈을 풀었다가 묶기를 반복하며 서성거리다 아내의 핀잔을 듣곤 아침상을 물리기 바쁘게 또 안절부절 시계만 들여다보는 나를 아내는 참 한심하단 표정으로
“나 빼고 가는 여행이 그렇게 신나고 좋아요? 그러지 말고 시간도 충분한데 그만 버스 타고 가세요.”
”아니, 택시 부를 건데”
“나 같으면 기다리는 시간에 버스 타고 가겠다.”는 아내의 잔소리에 등 떼밀리듯 집을 나서는데 아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719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등 뒤로 따라온다.
등에는 게딱지만 한 등산용 배낭을 둘러메고 한 손으로 여행 가방을 끌고 들뜬 마음에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아파트 후문을 나서는데 ‘719’번 버스가 ‘휭’ 하고 지나더니 정류장에 멈춰 서서 누굴 기다리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는가?’ 순간 나도 모르게 달려 버스에 오르며 들고 있던 손전화기를 요금 정산기에 가져다 댔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빈자리를 찾아 여행용 가방을 의자 앞에 세워두고 다시 한번 가져다 대어도 반응이 없어 잠시 자리에 앉아 어디가 잘못되었지? 생각하며 손전화기를 옷에 문질러 깨끗이 닦아도 보면서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뒤 다시 한번 요금 정산기에 갖다 대었으나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 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날아든다.
‘이런 난감할 데가 어떻게 하지?’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언뜻 해결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임 끝에 주머니 속에서 택시비로 준비해 두었던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조심스레 기사 앞으로 내밀었더니 참 한심하단 표정으로 퉁명스레 ‘거스름돈 없어요.’ 하는 말과 함께 네가 알아서 하란 표정으로 하던 일만 계속한다.
순간 그만 머쓱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선 어깨너머로 ‘이 카드 쓰세요.’ 하는 목소리에 뒤돌아보았더니, 희끗희끗한 생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주름진 얼굴에 하얀 틀니가 드러나게 엷은 미소를 가득 머금은 할머니가 분홍색의 작은 꽃 그림이 그려진 헝겊으로 된 손때 묻은 자그마한 손지갑을 내민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고, 할머니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하고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전했으나, 할머니는 요지부동 자신이 한 말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다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괜찮아요. 돈 많이 들어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하며 함박웃음과 함께 꽃무늬 작은 지갑을 흔들어 댄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등장으로 운전기사와 나 사이 둘만의 문제가 이제 버스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이 관심의 대상이 되어 지켜보고 있어 등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난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허리를 깊이 숙이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할머니로부터 지갑을 건네받아 얼른 버스요금을 지불하고 다시 한번 고맙다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지갑을 돌려드리곤 생각에 잠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다시 아기가 되어 자기 수중에 들어온 것은 더욱 움켜쥐게 되어 한층 나누고 베풀기 힘들어진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선 듯 자신의 몫을 내어놓을 수 있었을까? 평생을 이처럼 세상 거울이 되어 살아오셨을까? 이런 사람들이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난데없이 나타난 할머니가 그동안 잠들었던 나를 깨운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라도 드리려 뒤돌아보았을 땐 이미 그 자리엔 다른 사람이 앉아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할머니 몰래 지갑 속에 10,000원짜리 한 장이라도 접어서 넣어 드렸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텐데 ……
난 늘 이렇게 한 박자가 늦다.
<분재>
내 책상 위엔 그루터기로 만든 분재 한 점이 놓여있다. 십수 년 전 지인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아랫도리는 개고사리 덩굴로 감아올리고 좌우 봉우리엔 각각 풍란을 들이고 아래론 키 작은 제비꽃과 드문드문 이끼를 박은 소박한 분재다. 내게 온 후론 책상 한편을 차지하고 앉았다가 억세게 운이 좋은 볕 좋은 날 어쩌다 한 차례 베란다로 외출하는 일을 제외하곤 붙박이처럼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그러나, 해마다 피우던 꽃을 몇 해 전부턴 해거리로 피우는 풍란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탐욕이 이들의 삶을 무지 어렵고 힘들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천근같이 무겁다.
올해는 유난히 덥다. 연일 치솟는 수은주를 보는 것만도 더운 일인데 방송에선 100년 만이니 110년 만에 최고 더위라 호들갑을 떨고 있어 체감온도는 실제보다 더 높게 느껴진다. 비라도 내리면 더위에 지쳐있을 얘네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연의 감로수를 맘껏 마시게 해줘야지. 그리고 또 높은 하늘과 반짝이는 별들도 함께 보여줘야지 생각했는데, 드디어 오늘 소나기가 올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방송을 타고 흘러나온다.
분재를 내려다보면서 이제 더위도 한풀 꺾이고 내 원도 풀 수 있으려나 잔뜩 기대했는데 저녁때가 다 되도록 기다리는 비 소식은 없다. 저녁 운동을 하고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막 들여놓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반가운 마음에 그동안 더위에 지쳐있을 분재를 베란다 밖 에어컨 실외기 위에라도 올려두고 하늘이 내려주는 시원한 생수를 맘껏 먹게 해 야지하고 생각하며, 한달음에 달려와 현관문을 지문으로 긁었으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여러 차례 더 긁었더니, 문은 열리지 않고 3분을 기다린 후에 하라는 멘트가 흘러나와 맘이 바쁜 나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아내는 매번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지만 나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손이 더러워서인가? 내리는 소나기가 언제 멈춰버릴지 모를 조바심에 마음이 더욱 급해진다.
엘리베이터는 20층에 멈춰있다. 차분히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어 계단을 뛰어 내려가 손을 깨끗이 씻고 바지에 문질러 닦다가 입으로 후후 불어도 보다가 콘크리트 벽을 짚어가며 손끝에 묻은 물기를 말린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노력한 끝에 겨우 문이 열린다. 분재를 들고 나가 에어컨 실외기 위에 올려놓는다.
십수 년을 약품 냄새가 나는 역겨운 수돗물을 먹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그게 모두 인양 알고 지내다가 갑자기 ‘후두둑 쏴아’ 하는 자연의 소리와 함께 몸속으로 달려 들어오는 향긋하고 상큼한 바람과 더불어 하늘에서 보내주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그동안 죽은 듯 잠들어 있던 개고사리와 풍란의 DNA를 깨운다. 이게 얼마 만인가? 이곳으로 오기 전 매일 같이 보던 하늘이 아니었던가? 별빛이 아니던가? 잊고 지냈던 수십 년의 시간 들이 베일을 벗는다.
몰아치던 태풍 앞에 어쩔 줄 몰라 소나무 등결에 기대어 간신히 위기를 벗어났던 일 등산화 뒤축에 밟혀 허리가 동강 난 아픔을 참아가며 힘겹게 살았던 일 바위 끝에 붙어 하늘을 마주하며 살던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의 바위 치기로 형제를 잃는 힘든 아픔을 겪으며 간신히 살아남았던 지난 일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빗물과 바람을 통해 자연을 가슴 가득 품은 개고사리와 풍란이 반짝반짝 녹색의 빛을 띠고 활짝 웃고 섰다.
<팔공산이 준 교훈>
나는 산을 좋아합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무지 좋아합니다. 여유시간이 생기는 날이면 반쪽과 함께 명산이건 야산이건 가리지 않고 산을 찾아 오릅니다. 산을 오르며 듣는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 모습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꾸밈없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모습에 마음을 내어주고 걷다 보면 어느 사이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배낭을 벗고 숨긴 가슴을 풀어헤친 채 능선을 타고 오르는 산뜻하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을 가슴 깊이 맞아들입니다.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오르던 그동안의 고생은 간곳없고, 정상에 선 자만이 볼 수 있는 산 너머가 보입니다. 발아래 이어지는 먼 산은 크고 작은 파도가 되어 쉼 없이 밀려오고, 산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켜켜이 쌓였던 온갖 나쁜 기억 들을 깨끗하게 정화합니다. 대자연을 발아래 두고 호령하는 가슴 벅찬 기쁨은 장상에 오른 사람의 전유물이 됩니다. 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기에 난 산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어느 해 가을로 기억됩니다.
친구 세 가족이 팔공산 동봉 등산을 마치고 염불암 쪽으로 하산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커다란 활엽수 나무 아래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툭하는 소리가 들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 보니, 등 뒤 숲속에 커다란 솔방울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솔방울이 있을까 하고 주워 들고 살피니 솔방울이 아니라 잣송이였습니다.
원뿔처럼 생긴 잣송이 속에 보석처럼 촘촘히 숨어 앉아 은은한 솔향을 내뿜는 귀티 나게 생긴 잣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침샘에선 침이 솟아납니다, 정말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워 보입니다. 위를 쳐다보니 커다란 잣나무 한 그루가 하늘 높이 치솟았는데 검은 꼬리털이 듬성듬성한 청설모 두 마리가 부지런히 나무 등을 타고 오르내리다가 가지를 뛰어넘으면서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타닥타닥 이번엔 두 개의 잣송이가 떨어졌습니다. 얼른 주워서 우리 앞에 가져다 두고 큰 횡재나 한 것처럼 즐거워하는데 청설모 한 마리가 쏜살같이 내려와 꼬리를 치켜세운 채 잣나무 아래를 빙글빙글 돌고 풀숲을 헤집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나 싶더니 나무 위로 기어오릅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이번엔 두 마리가 내려와 술래잡기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풀숲을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노는가 싶더니 잠시 뒤 나무 위로 올라 이 나무 저 나무를 건너뛰면서 금세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이상 잣송이는 떨어지지 않았고 나무가 높아 오를 수도 없었습니다. 서둘러 점심을 끝내고 잣송이를 사이좋게 한 개씩 나누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지고 온 잣송이는 물로 깨끗하게 씻은 뒤 소쿠리에 담아 아파트 베란다에 내어두고 물기를 말린 다음 유리로 된 투명한 표본 병에 넣고 술을 가득 채운 후 뚜껑을 덮고 비닐로 꽁꽁 둘러싸 맨 다음 거실 진열장 속에 넣어두고 손님들이 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얘기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해 겨울엔 눈이 유독 많이 내렸습니다.
저녁상을 마주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는데, 텔레비전에서는 눈 내리는 팔공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펄펄 휘날리며 내리는 눈과 함께 내려 쌓인 무거운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가 부러진 채 신음하는 나무들의 모습과 눈꽃이 만발한 팔공산의 아름다운 설경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밥 한술을 뜨다 말고 나도 모르게 눈은 술에 잣을 넣어 둔 진열장 속 표본 병에 꽂혔습니다. 그리곤 깜짝 놀랐습니다. 표본 병 속에 있어야 할 잣송이는 보이지 않고 청설모가 보입니다.
‘그날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놀던 청설모 두 마리는 부부가 아니었을까? 청설모 부부는 나뭇가지를 타고 놀며 즐긴 것이 아니라 힘들게 가족들의 겨울 양식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인간의 자그마한 욕심이 청설모 가족의 겨울 양식을 빼앗은 것입니다. 집에 있는 어린 새끼들을 생각하며 털이 듬성듬성했던 그 작은 체구로 나뭇가지에 찔리고 긁히면서도 온몸에 난 생채기와 아픔을 참아가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장만했던 겨울 양식을 욕심 많은 인간에게 다 내어준 청설모 부부는 얼마나 분하고 허탈했을까요? 때늦은 후회를 해 봅니다. 50년을 넘게 살았어도 탐욕 앞에선 네 것도 내 것이 되는 아기가 되나 봅니다.
올겨울 서릿발 같은 눈밭 속에서 청설모 가족은 살아남았을까? 청설모를 배려하지 못했던 내 욕심이 발자국만 남기고 추억만 가져가라던 팔공산의 표어가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힙니다.
<천사가 들려준 이야기>
며칠 전 생활체육을 하러 남편을 출근시키고 칠곡으로 가는 특2번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내 뒤를 따라서 하얀 모시 적삼을 곱게 차려입은 할아버지 한분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가 출발하는가 싶더니 다시 차를 세운 기사가
“할아버지 차비 내세요.”
“오늘은 꼭 받아야겠습니다.”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않고 경로석에 앉아 두 팔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은 체 꼿꼿하게 앉아계셨습니다. 버스 안에는 천사와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학생 한 명과 할머니 세 분 할아버지 한 분이 더 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큰 소리로 말합니다.
“정말 쉽다"
“차를 탔으면 차비를 내야지.”
“차비 낼 돈이 없으면 걸어 다니던지 집에 들어앉아 있지 차는 왜 탔노.”
“차는 물로 다니는가. 저러니까 늙은이가 대접을 못 받는다니까.”
“대접받으려면 제 할 일을 다해야지. 차림새를 보아하니 그 돈이 없진 않은 것 같은데”
하고 모두 한마디씩 합니다. 차 안의 분위기에 고무된 운전기사는 더욱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윽박지릅니다.
“할아버지 돈을 내시든가 그렇잖으면 내리세요.”
그래도 할아버지는 처음 올라탈 때의 모습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버팀에 운전기사가 지쳤는지 차를 몰면서
“차비 안 내고 차 타는 사람이 어딨어요? 할아버지 상습적이지요?”
하면서 계속 궁 시렁 거립니다. 버스 안의 공기가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천사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 할아버지 귀가 어두우신가? 벙어리신가?’ 할아버지의 차비를 대신 내어 드리기 엔 시간이 너무 지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와 운전기사의 입장을 살릴 수 있을까? 천사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천사는 만 원짜리 한 장을 끄집어내어 손가락만 한 크기로 접었습니다. 그리곤 내릴 준비를 하는 옆에 앉은 학생에게 “학생 내릴 때 이것 저 할아버지께 좀 전해 줄래.” 하며 만원을 내밉니다.
“아주머니께서 직접 드리세요.”
“난 아직 한참을 가야 하거든.”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건 네 줍니다. 돈을 받아 든 학생은 말없이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슬그머니 할아버지 손에 만원을 쥐여 드립니다. 놀란 할아버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바라봅니다. 버스 안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그 모습을 보셨나 봅니다.
“손주냐?” 학생은 아무 말 없이 정류장에서 내립니다. 다시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묻습니다.
“방금 내린 학생 손주지요?”
“아니요.”
하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운 것도 벙어리도 아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정말 참한 학생이구나.”
버스 안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분위기가 한순간 사라지고 버스 안이 숙연해 지는가 싶더니 사랑이 넘쳐흐르며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사랑이 묘약이었나 봅니다. 줄기차게 떠들던 기사도 이젠 더 이상 차비 독촉을 않습니다. 천사가 내리면서 본 할아버지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손가락 크기만 한 만 원짜리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토끼의 母情>
우리 학교 뒤뜰엔 아이들의 정서 생활과 학습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멘트 블록을 쌓아 올리고 앞쪽은 철망을 둘러 마감하고 그 사이로 난 문을 통해 들어가면 다시 두 개의 작은 공간으로 나누어지고 나뭇가지를 걸어 둔 한 개의 홰와 군데군데 커다란 돌덩이들을 얼기설기 쌓거나 자연스럽게 늘어놓아 자연을 닮은 토끼의 방과 닭의 방으로 나눈 사육장을 6학년 학생들이 당번을 정해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육장 안에는 토끼 두 마리와 오골계 두 마리가 서로 한 가족이 되어 다툼 없이 오손도손 먹이를 찾아 먹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먹을 만큼 배를 채운 후엔 어김없이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서 욕심 없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에 예뻐 보여 틈만 나면 사육장을 찾아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인간들도 욕심 없이 저렇게만 살아간다면 이웃 간의 사소한 다툼도,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시무시한 전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막 출근해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무실 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한 어린이가 ‘교감 선생님, 큰일 났어요, 사육장 속 오골계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어요. 죽었나 봐요. 꿈적도 하지 않아요.’하고 속사포처럼 내뱉곤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문을 닫습니다.
얘야, 잠깐만 하며, 아이를 따라가 사육장 안을 들여다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오골계가 한 마리는 꽁무니 털이 몽땅 빠지고 항문은 반쯤이나 뜯겨 나간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다른 한 마린 겨우 몇 가닥 남은 털만 매단 채 보기 흉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족제비가 들어뢌었던 모양이구나. 저런 모습으로 살 수 있으려나? 저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나는 족제비에 대한 분노와 오골계에 대한 걱정과 함께 저학년의 어린 학생들이 보고 놀랄까, 먼저 보건실에서 가지고 온 약으로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피를 닦아낸 뒤 피가 멎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약을 뿌리고 바른 후 서둘러 부직포를 둘러치면서 사육장 주변을 샅샅이 살폈으나, 족제비가 드나든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 쉬 그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한참을 사육장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는데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오골계를 그렇게 만든 범인은 족제비가 아니라 바로 함께 살던 토끼였던 것입니다. 토끼가 오골계에게 다가가자,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오골계가 기겁하며 놀라 달아나다가 돌과 돌 사이 틈에 머리를 처박고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토끼는 남은 몇 가닥 안 되는 오골계의 꽁지 털을 뽑아 물고서는 휭하니 사육장 안의 구석 자리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잠시 틈을 준 뒤 나는 자석에 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육장 문을 열고 토끼가 들어간 곳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곳엔 갓 태어난 듯 보이는 다섯 마리의 새끼 토끼가 어미가 깔아 준 닭털 위에 포근하게 누워 평화로운 모습으로 어미의 젖을 빨고 있었습니다.
온순하기만 하던 토끼를 무엇이 저토록 사납게 만들었을까? 어떤 힘이 토끼를 투사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모정이었습니다.
태어날 새끼를 누일 편안한 잠자릴 마련해 줘야겠다는 절박한 모정 앞에서 토끼는 투사가 되어있었습니다.
어려운 경제 앞에 맥없이 허물어져 가는 가정들을 봅니다. 내 몸의 일부를 빌어 태어난 사랑스런 자녀들이 속절없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웃음이 사라진 천사들의 얼굴을 봅니다.
토끼보다 못한 인간의 군상들을 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부모님들 더욱 강인한 모성애와 부성애로 무장해야겠습니다. 토끼보다 더 강인한 인동초 같은 모성으로…….
<中心>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하는 힐난 들을 각오로 이 글을 쓴다. 지금 우리는 떨어지는 한 장의 나뭇잎에도 삶이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思想이나 哲學을 생각의 중심에 두고 주변의 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각종 mass media 들은 정제되지 않은 세상의 수많은 현상을 과학이나 정보라는 이름으로 각색하여 쉴 새 없이 쏟아내며 우리를 유혹하며 흔들어 댄다.
아사이베리가 건강에 좋다면 다음날 시장에서 아사이베리가 동이 나고 노니가 좋다면 노니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어떤 정보가 바른 정보이고 어떤 정보가 거짓 정보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한차례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다. 식생활이 개선되고 과학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보편적 인간 수명이 많이 길어졌는데도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모두가 오래 사는 것에 focus를 맞추고 자신의 영화를 위해 악을 쓰는 속에 몸을 맡기고 휘둘리며 살아가다 보면 내 뜻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휩쓸려 가기 십상이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 시대는 지나갔다.
인간도 자연의 한 조각이다. 따라서 세상은 하늘이 만들어 준 cycle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란 이름으로 신에게 도전한 인간들이 새로운 cycle을 만들어 냄으로써 남·여 성비의 균형이 깨어졌다. 그리고 적정 연령분포가 뒤틀어지면서 부양 인구가 늘어나 젊은이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힘들다 보니 결혼을 기피 한다. 등 떼밀려 결혼을 하더라도 양육 부담으로 출산을 기피 하거나 이혼 등. 세계 문명국들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을 우리나라도 피해 가지 못하고, 따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우리가 앞장서 이끌어 가고 있다. 노령인구가 넘쳐나다 보니 나라의 활력은 떨어지고 국민의 행복 지수가 낮아지는 등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생활이 안정된 공무원들만 두 자녀 이상을 두고 있다는 통계 앞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떼어내고 가져다 붙이고 갈아 넣으므로 한 세기 가까이 살았는데도 젊은이들처럼 씹어 먹을 수 있고 건강 검진이 일상화되어 조기 진단에 따른 처방으로 생각지 못한 사고가 아니고서는 쉬 죽을 수도 없다. 거의 재앙의 수준이다. 인구 절벽이라는 말에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산다’ 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젠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냉정하게 생각하고 중심을 잡고 paradigm을 바꿔야 한다. 주변의 소리에 귀는 기울이 돼 흔들리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중심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삶의 끝은 죽음이 아닌가? 따라서 삶을 위한 모든 노력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인가? 암튼 하루속히 세상을 하늘의 cycle로 돌려놓아야 한다. 동물구조의 원칙처럼 자연의 cycle로 돌아가야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며칠 전 퇴근길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미스코리아, 탤런트, 영화배우 등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꽃보다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생각에 잠깁니다.
자녀 셋을 키우며 여유롭지 못한 환경이지만 봉사활동을 통하여 스스로 위로받으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간다는 젊은 아낙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남편 혼자 벌어 다섯 식구가 살아가는 살림살이라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물질적으론 봉사할 수가 없어 노력으로 봉사하는 길을 수소문하며 찾다가 사는 곳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전신 장애를 입은 노처녀 혼자 어렵게 살아가고 있음을 동사무소를 통해 전해 듣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엔 어김없이 그 집에 들러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심부름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수시로 말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처녀를 보면서 젊은 아낙은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보낸 지 한 해가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서는데 아주머니, 내일 오실 때는 예쁜 여자 양말 한 켤레만 사다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처음엔 작은 것을 요구하다가 점점 더 큰 것을 요구한다던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하는 노력 봉사를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던 젊은 아낙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봉사활동도 이것으로 끝내야 하나 보다. 물질이 뒷받침되지 않는 봉사활동은 불가능한가 봐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임 끝에 젊은 아낙은 마지막으로 양말 한 켤레를 사다 주고 봉사활동을 끝내리라 마음을 먹고 시장가는 길에 빨간 양말 한 켤레를 샀습니다.
다음날도 젊은 아낙은 여느 날과 같이 봉사활동을 끝낸 뒤 사 온 양말을 내밀면서 내일부터는 못 나올 것 같다고 말하며 돌아서는데 노처녀가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주머니 양말 얼마 주셨어요?"
하더니 베개 밑에서 꼬깃꼬깃 접은 삼천 원을 내밀었습니다.
내일이 성탄절이잖아요. 그동안 돌봐 주신 은혜에 보답을 드려야 하는데 제 몸이 이렇다 보니 아주머니께 부탁드린 거예요.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저는 걸을 수가 없잖아요. 이 양말은 아주머니께서 올겨울 동안 따뜻하게 신으세요.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젊은 아낙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생각이 멎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한 부끄러운 생각들 때문에 노처녀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동이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노처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낙은 얼굴을 들 수 없어 뛰쳐나왔습니다. 밖에는 두 사람을 축복이라도 하듯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은혜에 보답하려고 애쓰는 사람, 자그마한 감동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두 사람 모두 분명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들>
며칠 전부터 "제가 모시고 갈 식당이 있으니까 아부지 이번 어버이날에는 어머니랑 제게 꼭 시간을 내어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약속은 잡지 마세요.". 하는 아들의 말에 나는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건성으로 들어 넘기고 잊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막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려 받으니 전화기 너머로 아들 목소리가 들린다. “아부지 오늘 약속 잊지 않으셨지요. 곧바로 퇴근하셔서 어머니랑 함께 외출 준비하고 계세요. 저 곧 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야! 혁아, 관둬라.” 하는데 더 길게 얘기해 봐야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나 하다는 듯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전화를 다시 걸었으나 신호음은 가는데 받질 않는다.
이 약속을 어겼다간 아내 등쌀에 배겨날 수가 없을 것 같아 아내를 설득하기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벌써 외출 준비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 동그마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여보 이 옷 어때요?” “괜찮은데” “그럼 이 옷은?” “그것도 괜찮아.” “그럼 이렇게 맞추어 입으면 어울려요?” 하면서 없는 옷을 가지고 이렇게도 입어보고 저렇게도 입어보면서 드레스 룸에서 법석을 떤다. 나는 시큰둥하여 “여보 꼭 가야 하나?” 하고 말하곤 아내의 표정을 살피는데 순간 아내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더니 귀청을 찢을 것 같은 굉음이 들린다. “뭐라고요? 당신 김 빼는 덴 뭐가 있어요. 오기 싫음 오지마세요. 나 혼자 갈 테니까요. 무드 없는 사람인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분위기 깨는데 뭐가 있어요.”하는데 아들 녀석이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판이 젖은 것으로 보아 아마 학교에서 여기까지 자전거 페달을 쉬지 않고 밟았나 보다. “아부지, 나가시죠.” 난 한 마디도 못하고 “그래 알았다.”하며 따라나서는데 까만 007가방을 들고 나서는 아들을 보고 야, 이 녀석아! 밥 먹으러 가는데 그 무거운 가방은 왜 가져가니? 하고 말했더니 ‘아부지’ 하면서 ‘씨이익’ 웃는다.
가는 차 안에서 아들 녀석이 내게 열심히 설명한다.
“오늘 저녁은 아버지께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더라도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다니는 음식점의 분위기를 한번 느껴 보세요.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들은 밖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또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느껴 보시구요. 음식점이 불고기집만 있는 것 아니거든요.”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놀이 문화를 즐기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아들 녀석에게 내가 며칠 전부터 꼭 사고 싶으면 횟집이나 불고깃집을 가자는 내 말이 귀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오냐, 그래 네 말 맞다. 평생 음식점은 불고기집이나 횟집, 보리밥집 밖에 없는 줄 아는 사람,” 하며 아내가 옆에서 맞장구친다. 늘 익숙한 환경이 좋고 새로운 환경에 부담을 느끼는 나로선 ‘오늘 참 벌 많이 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조명등 아래 젊은 대학생들로만 쌍쌍이 짝을 이루며 앉아 있던 레스토랑에 불청객인 우리 부부가 들어서자, 모든 젊은이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꽂힌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본의 아니게 관심의 대상이 되자 뒤통수가 근질거리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고 우리가 젊은이들 분위기를 깨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이는데 아들 녀석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맞춰 보세요.’ 하면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소중하게 들고 온 007가방을 열더니 카네이션 생화 두 송이를 꺼내 들고 요리조리 살피면서 ‘다행히 부러지지 않았네.’ 하며 활짝 웃더니 “ 아부지, 어무이, 낳아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데이” 하면서 식당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더니 우리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부디 오래오래 사세요. 하는 말과 함께 우리 부부를 차례로 꼭 껴안는다. 쿵쾅거리며 전해져오는 아들의 심장 박동을 온몸으로 느끼며 ‘새로운 문화도 배척 없이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도록 하세요.’ 아들의 말과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진다.
메뉴판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우리에게는 샐러드와 비후스테이크를 시켜주면서 제 것은 시키지 않아 너도 먹고 싶은 것을 시키라 했더니 학교에서 배부르게 먹고 왔다면서 시키지 않고 옆에 붙어 앉아 “아부지, 어무이 이런 음식점에 처음 오셨지요? 기분은 어떠세요? 요즘 젊은이들 이렇게 먹고 놀아요. 한 번쯤 경험해 보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아서요.” 하며 우리가 저녁을 먹는 내내 시중을 들며 저는 리필용 콜라만 부지런히 마시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오늘은 밤새껏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마음껏 드십시오.’ 하며 너스레를 떨고 계산하는데 옆에서 가게 주인이 ‘아들이세요?’ 하고 묻더니, ‘저가 가게를 연지 20년 넘었지만, 부모님 모시고 우리 가게에 온 학생도 처음이고 이렇게 연세 드신 분이 우리 가게에 오신 것도 처음이라며 요즘 세상에 이런 아들이 어디 있느냐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들 녀석을 칭찬하며 부러워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약전골목 한방 축제에 모든 게 공짜라 오늘 밤을 책임지겠다며 큰소리치며 나온 녀석이 롯데리아 가게 앞에서 갑자기 비굴해진다. “아부지 돈 2,000원만 주세요.” 하곤 계면쩍게 웃으며 햄버거를 사 들고 나오더니 게 눈 감추듯 한다. 무지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용돈이 필요치 않냐는 물음엔 자전거 타고 다녀 용돈이 필요 없다면서, 요 며칠 이마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한다더니, 거기서 번 돈으로 카네이션 사고 음식을 추가로 시키면 돈이 부족할 것 같아, 저는 먹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무료 리필 되는 콜라만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것도 모르고, 아비가 되어 맛있다며 추가로 음식을 시켰으니.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며 무지 당황해했을 아들 녀석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이 묻어난다.
혁아 사랑한다. 그리고 고마웠다.
<빈자리>
가슴이 뚫렸다.
구멍이 났다.
매서운 한파가 뚫린 가슴을 할퀴고 지나간다.
생각이 멈췄다.
두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다.
일곱 시에 아침을 먹고
와인 병을 끼고 앉아
구멍 난 가슴을 메운다.
뚫어진 가슴을 꿰맨다.
메우고 꿰맬수록 커져 갈 뿐
메워지지 않는다.
귀하고 소중한 건 항상 곁에 둬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
세시가 넘어서야 점심을 먹는다.
겨우 하루를 보냈는데
일상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흔들리는 마음
나이 들면 자신밖에 모른다는 말에
나는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 항변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 소식이 없다.>
아침은
점심은
그리고 또 저녁은 무엇을 먹었는지
한 번쯤
내 마음을 들여다볼 만도 한데…….
어쩌다 전화가 와도 주변만 맴돈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인데
함께 가는 사람인데
세월이 가면
강철 같았던 마음도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고
관심도 사랑도 변한다는데
그래도 난
받아들이기 싫다.
<아내의 바다>
한 주간의 휴가를 얻어 잠시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상쾌하다. 차창을 열어젖히자, 해방된 기쁨이 상큼한 바람과 함께 까만 하늘을 안고 가슴 가득 들어온다. 들뜬 기분에 볼륨을 한껏 올려두고 흔들흔들 음악 소리에 풍선같이 부푼 내 마음을 맡긴다. 뻔질나게 오가던 길인데도 한결 새롭고 깃털같이 가벼워진 마음은 두둥실 구름 위를 걷는다.
‘한 주간의 휴가, 무얼 하며 지낼까? 멀리 자동차여행이나 떠나볼까? 아니면 푹 쉬며 잠이나 잘까? 컴퓨터 오락에나 풍덩. 아니야, 무조건 쉬어야 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한없이 들떠있는데도 아는지 모르는지 반쪽은 심드렁하다.
돌아온 집, 체 한 시간이 못 되었는데 아내의 바다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무얼 하고 있을까? 저녁밥은 잘 먹었을까? 목욕은 했을까? 잠자리에 들었을까?’ 까? 까? 까? 하며 꼭꼭 숨겨두었던 속내를 털어놓으며 갈 곳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맴돌고 있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섰더니 이내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는다. 영화를 보다가 싫증 나면 게임을 하고 그것으로도 다스려지지 않는지 이번엔 유튜브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또다시 영화에 빠져들면서 밤늦도록 컴퓨터 앞을 떠날 줄모른다.
잠시 운동을 하거나 눈이라도 붙여보라 일러보지만, 손녀들과 나누던 소소한 일상들이 그리움의 파도가 되고, 너울이 되고, 회상의 밀물이 되면서 산맥처럼 밀려왔다간 휑하니 썰물처럼 사라진 뒤의 공허함이 아내 얼굴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있다. 철 지난 바닷가의 수많은 발자국처럼 쓸쓸한 잔상으로 남았다. 무엇으로도 메워지지 않을 깊은 그리움만 묻어난다.
그리움이 찾아오면 허허실실 맞닥뜨려 삭이고, 보고픔이 엄습해 오면 부드럽게 품어 안고 다독이며 살면 될 터인데 아내는 나와 달리 그게 힘든가 보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손주들에 대한 사랑으로 생겨난 사무친 그리움, 이것을 떨쳐내는 일은 어디엔가 몰두해야만 그 깊은 터널을 지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힘겹게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서도 두고 온 손녀들을 그리고 있다.
잔잔하던 아내의 바닷속에 어느 날 갑자기 ‘풍덩’하고 뛰어든 꼬맹이들의 작은 몸짓이 어느 틈에 출렁이는 파도가 되고 그리움의 섬이 되어 이렇게 아내의 바다를 지배하고 있다.
부끄러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아내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싼티아고 순례길을 27일째 걷고 있다. 오늘은 몰리나세카에서 카카벨로스까지 걷는다.
돌로 아름답고 멋스럽게 쌓아 올린 탬플 기사단 성을 지나 어제저녁 내린 가랑비로 촉촉하게 젖어 들면서 멋스러움을 한껏 살려 운치를 더하는 유서 깊은 흙길을 걷는다.
갈림길 길머리 수돗가에 높게 선 활엽 수 아래 순례 꾼들을 위해 마련해 둔 작은 쉼터가 나타났다.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배낭을 벗는데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동양인 할아버지 한 분이 배낭을 벗어 둔 채 흐르는 땀을 훔치며 쉬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며, “한국인이세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일본 사람입니다.”라고 어눌한 우리말로 또박또박 말한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는데, “나는 한국인 ‘윤동주’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떠듬거리며 일어나더니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아득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내려감은 채 윤동주의 ‘서시’를 우리말로 막힘이 없이 감정까지 얹어가며 낭송한다. 그렇게 낭송을 끝내는가 싶더니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하며 배낭을 둘러메더니 가던 길을 간다.
꿈에도 그리던 나라의 독립을 여섯 달 남짓 앞두고 스물여섯 젊은 나이로 그네들의 감옥에서 요절한 우리 독립운동가의 시를 또박또박 외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을 보기 위해 배운 이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시를 그것도 그를 숨지게 한 후손의 입을 통해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쿵쿵, 쾅.’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끝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멍하니 할 말을 잊어버렸다. ‘어찌 이럴 수가? 수십 년간 아이들 앞에서 애국하라 떠들던 내 모습이 파노라마가 되며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부끄러웠던 기억이 없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
이날 있었던 일은 싼티아고 대성당과 묵시아를 지나 유럽의 땅끝 피스테라까지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내 머릿속 한구석을 무겁게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었다.
귀국 며칠 후 그동안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했던 저항시인 이상화 선생과 서상돈 선생의 고택을 찾았다.
도심 속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돌고 돌아 깊숙히 보석처럼 숨어있는 고택을 이모저모 뜯어보며 살피고 섰는데 이제까지완 다르게 몸이 느끼고 가슴이 떨림으로 반응한다.
지금껏 공부하듯 눈으로 읽고 머릿속에 담던 것을 마음으로 읽고 가슴에 담으니, 똑같은 사람인데 담는 그릇만 머리에서 마음과 가슴으로 바뀐 것뿐인데 지식이 감성으로 바뀐 것뿐인데 스쳐 지나던 것을 깊이 들여다 볼 뿐인데 감정이 솟구치고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내 몸을 이성이 아닌 감성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자 새롭게 보인다. 느낌이 새롭다.
고택 안마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 앞에 섰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중략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나라 잃은 설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분을 가슴 가득 안은 채 수성못을 등지고 서서 드넓은 수성 들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빠진 시인의 간절한 모습이 보인다. 간절했던 염원이 들린다. 끝도 없이 깊은 나라 사랑의 마음이 보인다. 나라 잃은 국민을 생각하는 안타까움이 보인다. 독립을 염원하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나라 잃은 설움에 북받쳐 발길 닿는 대로 터벅터벅 논두렁길을 돌아가는 시인의 깊은 고뇌가 보인다.
무거운 마음으로 골목을 돌아 나와 고개를 들자, 그분들이 그토록 그리고 바라던 해방된 조국의 평화로운 하늘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 너머로 손에 잡힐 듯하던 하늘이 가슴 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울컥 뜨거운 감동이 휘몰아치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애국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도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소중한 일이다.
<하늘>
하룻밤 사이에 하늘은 주인이 바뀌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낮게 드리운 먹구름이 내려앉아 앞산에 올라 손만 뻗으면 손끝에 닿을 듯 낯익은 하늘이고 구름이었는데, 무슨 조화인지 하룻밤 사이 맑고 푸르고 깊은 바다 같은 하늘로 변하면서 가을이 들어앉았다. 내가 잠든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매일 오르내리던 산은 입구부터가 어수선하고 낯설다.
어제까지만 해도 훤칠하고 통통하고 노랗게 잘 익어가는 얼굴로 하늘을 향해 꼿꼿하고 도도하게 서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간지리며 장난치던 벼는 고개를 꺾은 체 논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친구들이랑 노닥거리다가 미처 어미를 따라가지 못해 뒤처진 산들바람에 실려 언뜻언뜻 코끝을 스치는 솔향을 가슴 깊숙이 들이키며, 하늘을 찌를 듯 기세 좋고 당당하게 쭉쭉 뻗은 나무들이 늘어선 솔숲으로 들어선다.
사방이 어지럽다. 나무들이 아무런 대비도 없이 격한 전쟁이라도 치른 듯 수많은 솔잎과 솔방울들을 잔가지와 함께 땅바닥에 어지럽게 내동댕이친 채 두리번거리며 서서 다시 불어올 거친 광풍에 대비라도 하려는 듯 잔뜩 겁을 먹은 채 긴장한 모습들로 움츠리고 섰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아기자기하며 아름답던 오솔길은 속살을 감추어 주었던 화장이 모두 지워지면서 울퉁불퉁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굵고 가는 대지의 핏줄들이 이곳저곳 드러나면서, 보물처럼 꼭꼭 숨겨두었던 크고 작은 보석들이 아기자기한 모습을 드러낸 채 긁히고 패여 나가면서 물길이 되어 흘러내린다. 활엽수림 속으로 들어서자, 폭격을 맞은 듯 꺾이고, 찢어지고, 부러지고, 떨어져 나온 나무의 잔해들로 인해 이제껏 보지 못했던 낯선 정경들을 연출해 내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욕심껏 맘대로 웃자라면서까지 힘겹게 달고 섰던 잎과 가지, 그리고 자식 같은 열매들을 눈물을 머금은 채 꺾어내고, 잘라내고, 부러뜨리고, 떨어뜨리고 덜어내면서 욕심 많던 자신을 성찰하고 섰다.
죽는 줄도 모르고 사해처럼 입을 벌리고 앉아 받아먹을 줄만 알던 연못들도 오늘은 갈릴리바다처럼 먹은 만큼 이웃을 위해 나눠주며 살아나고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이 무서운 힘을 가진 자연에 의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지구의 주인은 자연이고 지구인데, 한 치 앞을 모르는 오만한 인간들은 지금껏 자신이 주인인 양 행세하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지구가 멸망하면 사라지는 것 또한 지구가 아니라 이곳에 사는 인간들일 텐데, 마치지구가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착각 속에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늘이 자연이고 우주가 자연이다. 하늘은 오늘도 이렇게 이웃을 돌보고 서로 사랑하며 보듬으면서 분수껏 살라고 자연을 앞세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설>
나라 안에 8만 3,000명이라는 환자와 전 세계에 1억 8백만 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자들로 70 평생 겪어보지 못한 설을 쇤다.
중국을 시발점으로 벌써 일 년이 지나가는데 무시무시한 확산세는 꺾이지 않고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외출 시엔 지정된 마스크를 쓰고 얼굴의 반을 숨겨야 하고, 5명 이상 만나도 안되고, 대화도 맘대로 못하면서, 사람 간의 거리는 2m 이상 두어야 하는 등,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정 나눔과 만남을 통제받고, 대화와 사귐을 통제받고 있어 이제까지 평범했던 일상들이 모두 특별한 일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가슴속 그리움까지도 잃어버리고, 내려놓고 통제받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두렵다.
이렇듯 이번 설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화로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어린이를 포함하여 다섯 명 이상 만남을 못 하게 하고 있어서 작년에 이어 올 설에도 멀리 서울에 계시는 어머니께 가지 못하고, 은이 가족과도 함께 할 수 없어 혁이 집에서 명절 같지 않은 명절을 보낸다.
떡국으로 늦은 아침을 먹고 손전화 화상을 통해 멀리 계신 어머니께 세배를 드린 뒤, 조상 산소라도 찾아가 보자는 아내의 제안에 직장 생활에 지친 예림어밀 힘들게 할 것 같아 반대하였으나, 꺾일 줄 모르는 아내와 아들의 고집에 따라나선다.
점심을 먹으러 군위 휴게소에 들렀으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식당은 모두 문이 굳게 닫혔다. 충무 김밥과 간이 식품을 파는 가게 앞 긴 줄에 끼어들어 김밥과 커피, 그리고 호두과자로 점심을 대신한다. 산소는 누릇누릇한 잔디가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멀리 금성산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상석 앞에 늘어서서 묵도를 드리는데, 림이와 담이는 신이 났다. 숨바꼭질하듯 증조부 묘비석 뒤에 숨어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담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보리수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가 나오며 노래하던 깜찍한 모습의 그레틀을 떠올리게 한다.
상석 위에 배를 깔고 엎드린 체 ‘깔깔’ 거리며 웃다가 언니와 함께 계절 자락을 타고 뒹굴다가 미끄러지며, 자신들의 놀이터인양 신나게 논다. 적막하고 고요했던 산소가 철없는 후손들의 놀이터가 되면서 시끌벅적 떠들썩하다. 후손들의 이런 모습이 조상님들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돌아 오늘 길엔 장인어른 산소에도 들렀다. 산 아래 주차를 해 두고 예림 어미는 담일 품에 안고 오른다. 뒤따르는 예림인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줍거나, 낙엽을 이용하여 길바닥에다 뭔가 열심히 흔적들을 남기느라 따라오는 속도가 느리다.
“예림아, 뭐하니 빨리 오지 않고.”
“할아버지, 내려올 때 길 잃지 않으려고 표시를 하고 있어요.”
“그건 어디서 배웠어”
”엄마가 읽어 준 책에 있었어요,”
“아, 그랬구나, 할아버진 그것도 모르고”
예림인 이렇게 한번 알려준 건 빈틈이 없다.
아내가 말한다.
“예야. 글을 써라. 요즘 세상에 설날 시외조부 조상 산소에 데리고 가는 이런 시어머니도 있다고…….
손녀의 깊은 생각
차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자주 보지 못한 손녀들이 오래간만에 아비와 함께 들어선다.
“웬일이니?”
“아이들이 할머니 보고 싶다고 해서 왔습니다.”
하면서 아비부터 차례로 번갈아 스킨십을 하며 들어선다. 쪼그리고 앉아 손녀들의 콩닥거리는 가슴 뛰는 소릴 들으며 삶의 희열을 느낀다. 반쪽은 무엇이 그리 고마운지 아들을 안으면서도 고맙다. 손녀들을 안으면서도 고맙다, 고마워가 입에 베였다.
참 무지무지 보고 싶고 매일 매일 생각하면서도 말 못 하고 있었는데 …… 하며 반쪽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할머니랑 놀이터에 갈까? 공원에 갈까? 맛있는 것 사 먹으러 갈까? 할머니가 무엇을 해줄까?’ 하며 허둥대는 할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두 녀석 모두 듣는 둥 마는 둥 아무런 반응이 없다.
냉장고와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면서 내가 등산을 가거나 자전거 탈 때 나눠 먹으려고 사둔 사탕과 함께 해외여행에서 사 모아 둔 소품들을 꺼내 와서 거실 바닥에 펼쳤다가 바둑판 위에 진열하는 등 장난에 여념이 없다.
이번엔 다시 이 그릇에 담았다가 저 그릇에 담았다가 몇 개씩 담았다간 또 한가득 담기도 하면서 소꿉놀이에 몰두한다.
“얘들아, 할머니가 무엇을 해줄까?”
“괜찮아요. 할머니”
이렇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예림아, 할아버지 집에서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 가지만 얘 기해 내가 줄게.”
“할아버지 두 가지는 안 되나요?”
“그래. 한 가지만.”
“꼭 들어주셔야 해요.”
“그럼. 너하고 약속인데.”
“음 그럼 할머니 주세요. 할머니 가져갈 거예요.”
할머니가 옆에서 끼어든다.
“할머니가 없으면 할아버지가 혼자 힘드시지 않을까? 그 건 안되겠 는데.”
“할머니, 그래서 두 가지는 안 되냐고 물었잖아요.”
“그랬구나, 예림이한테는 못 당하겠다.”
“다른 것으로 한 가지만 예기해 봐.”
“그럼, 집 주세요.”
“무슨 집?”
내가 살집
“…….”
예림인 이렇게 생각이 깊다.
우리 집을 가져가면 우리 둘은 포함되어 따라가야 하니까. 끝까지 우리 둘을 데려가려는 초등학교 1학년 꼬맹이의 생각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흘렀다.
<은이의 재치>
사람이 살아가면서 매사를 처리하거나 인간관계에 있어 재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은이는 우리 집에만 오면 뭐 새로운 것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피는데 채연이도 제 어미를 닮아 새로운 것이 있으면 예사로 보지 않고 이게 뭐예요? 하고 묻는다. 오늘도 제 엄마 화장대 서랍 속을 살피던 은이가 천으로 만든 자그마한 손지갑을 꺼내 들고 내게 묻는다.
“아빠, 이것 엄마 거예요.”
“모르겠는데”
“엄만 장지갑이 있어 이런 건 쓰지 않을 텐데요.”
하며 거실로 들고 나가더니 제 어미께 묻는다.
“엄마, 이것 안 쓰시죠? 민기 지갑 했으면 좋겠는데”
“그것 이모가 고급 천으로 만들었다면서 아무도 주지 말고 꼭 언니가 쓰고 언니가 쓰지 않을 거면 되돌려 달라고 했어.”
그 말을 들은 은이가 아무 소리 없이 돌아서서 전화기를 들곤 제 이모께 전화를 건다.
“이모, 저가 아무도 예요.”
“그게 무슨 말인데?”
“이모가 만들어 주신 천 지갑을 아무도 주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모, 제가 아무도 예요”
“하하하 아무도 아니지.”
“이모, 그럼 천 지갑 제가 가져도 되는 거죠?”
“그럼. 네가 가져 그리고 엄마 바꿔 봐”
“언니 것은 내가 새로 만들어 줄게 그거 정은이 줘.”
이렇게 정은이는 상대 마음이 상하지 않게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얄미울 정도로
첫댓글 일기를 늘 써 오셔서 그런지 글을 체계적으로 잘 쓰십니다.
가장 무게 있고 두꺼운 자서전으로 탄생하리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