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대하였다.
1967년 나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대구 성서 00사단 신병훈련소에 입대하여 대한의 남아가 꼭 받아야 할 군사교육 받으면서 모든 것이 동등한 입장에서 기합도 받아도 함께 휴식도 하면서 우리 사회와 다른 것 모든 것이 같은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훈련 중 와룡산 꼭대기에 총 들고 여러 번 올라갔습니다. 간혹 힘들면 나의 동기도 다들 힘들 것인데 나만 힘든 것 아니까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러던 중 훈련 7일 남겨두고 중대장님 면담이 있는 날 중대장님께서 “강명조 훈병은 사회에 있을 때 무엇하였나”. “애 저는 공장에서 정전이 되면 커다란 발동기를 돌렸습니다”. 중대장님께서 가만히 들으시더니 그러면 00 공병학교 발전기 반으로 보내 줄 테니 그곳에서 더 많은 기술을 배우도록 하여라. 그러하여 나는 성서 00 훈련에서 00 공병학교 가게 되었습니다. 공병학교에서 다른 교육은 없고 밥만 먹으면 발전기 공부밖에는 하지 않고 그곳에서 12주 교육을 받고 의정부 00 신병부대로 가는데 대구역에서 약 5분간 정차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더니 나는 우리 어머님이 못 오시는 줄만 알고 대구역에 도착하여 창밖을 보니 저 멀리서 어머니와 형이 나를 찾으려고 내 쪽으로 오는데. 내가 창문을 열어서 어머니 나 여기 있습니다. 큰소리로 불러서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어디에 가든지 몸조심하라고 하시면서. 어머니 어떻게 밤에 이곳에 왔습니까? 안 오시도 되는데 내가 말하니까. 그래도 너의 얼굴이라 한번 보자고 왔다 하시면 그 당시 5천 환을 주시면서 배고프면은 먹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습니다. 나는 군대에서는 주는 밥 먹으면 된다고 하며 가정에 돈이 없는데 안 받으려고 하니. 어머니는 결국은 나에게 주시고 어머니와 형은 그렇게 이별하고 열차는 전방을 향하여 기적소리 내면서 출발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잘도 자는데 나는 왜 잠이 오지 않는지. 이런 생각 하다가 내가 보직은 발전 병이지만 부대에서 발전 병 자리가 없으면 육군 보병이나 아니면 공병부대로 갈 수도 있다는 공병학교에서 여러분들의 말이라서 혹시 내가 보직이 없으면 말단 부대로 가는 것은 아닌지 내 머리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기차는 대전을 지나 서울로 그리고 북쪽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이때 내 머리에 번쩍 생각이 났습니다. 내 어머니가 주신 5천 환을 가지고 신병부대 인사계 병장을 만나서 돈을 주고. 발전기 보직을 받아보자는 그런 생각 떠올랐습니다. 나는 기차 속에서 잠 한숨 자지 않고 새벽녘에 열차는 의정부역에 도착 트럭에 몸을 싫고 00 신병부대 도착 아침을 먹고 나는 물어서 인사계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경례하고 강명조 신병은 00병장님께 용무가 있어 왔습니다. 신고하니 그래 무엇이냐, 하시길래 병장님 저는 00 공병학교에서 이곳으로 왔습니다. 흑 나의 발전 병 자리로 가고 싶습니다. 하면서 어머니가 주신 돈 5천 환을 병장님 손바닥에 드리니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런 것 안 주어도 자리가 있으면 보내 줄 수 있다면서 돈을 돌려주었다. 나는 병장님 강명조 신병은 군에서 생활하는 데 아무 지장 없으니, 자리만 있으면 부탁드립니다. 단결 경례를 하고 다른 신병들과 7일간 대기하고 더디어 예하 부대로 가는 날이 밝아 있습니다. 그날 오후 3시 30분에 출발한다고 모두 배낭을 깔고 일렬로 앉아 있으면 호명하는 신병부터 트럭에 타고 자기가 근무할 곳으로 갑니다. 다른 신병들은 다 부르는데 5명만 남고는 다 떠나고 맨 마지막에 우리 5명도 트럭에 올랐. 우리가 탄 트럭은 호로(천막) 쳐서 밖을 못 냈나 보도록 하면서 5명 중에서는 내가 공병학교 12주를 군 생활을 더 하였기에 막 훈련소에 오는 신병보다는 내가 고참이라서 하사님께서 절대로 밖을 보면 안 되고 또 다른 생각을 가져도 않은 데다 고 말했다.
우리가 탄 트럭은 북쪽으로, 북으로 눈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사회에서 무엇 했느냐고 물으니. 대학교를 다 나오고 부유 한 집안에 금수저로 자란 친구들이더다.
나는 친구들 집안 이야기를 들으니 나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들면서 고달픈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가 탄 차는 어딘지 모르게 멀리 가서 도착을 하니 깜깜한 밤중이고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고 찬 바람이 그날따라 더욱더 세차게 불었다. 우리 5명은 눈 위에 배낭을 메고 일렬로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눈 속에서 사병 한 사람 오더니 배 고프지? 먼저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한다. 하면서 불이 커진 식당 건물에 가니 콩나물국에 도루묵 넣은 국과 찬기만 있는 밥이 있다. 사병은 너희들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여기서 기다리면 내가 다시 오겠다 하고 사병은 가버렸습니다. 우리는 천국과 찬밥을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나니 추위서 모두 덜덜 떨고 있는데 마침 사병이 와서 내무반에 가니 다른 전우들은 벌써 취침 중이고 따뜻한 배치가(난로) 옆은 우리 신병들이 자라고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곳에 있는 불침번이(야간순찰) 너희들은 내일 아침에 점호(인원 확인) 없다면서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지 말고 잠을 많이 잘 것을 우리에게 전하였다. 우리는 얼마 안 돼서 고참들이 일어나서 점호 하려고 간다면 떠드는데 어떻게 우리 신병들이 잠이 오겠는가? 우리는 발딱 일어나서 이부자를 정리하니. 고참병들은 너희들은 자도 된다고 하지마는 군인 정신이 들은 신병들인데. 우리는 고참 들이 점호 갔다 오는 동안 내무반 청소를 하고 다시 어제저녁 찬밥 먹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신고식 준비를 하여 내가 5명 중에 고참이니 신고식 내가 하기로 하였다.
이곳에 계신 고참이 이곳은 00사령부라한다. 복장 단정히 하고 이곳 본부중대 대장님께 전입 신고하고 나는 본부중대 발전기 반으로 다른 친구는 의무병 한 사람은 작전과 또 한 병원 군수처 마지막 한 명은 보급 수령 보직을 받아서 각자 자기 부서로 가면서 우리는 영원한 동기생이다. 다음에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기로 하고 나는 나의 근무처 본건 대(중대 본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니 하사님 한 분이 계시면 그분과 함께 발전기 근무하게 되었다. 이곳은 00사령부라서 만약에 정전이 되면 자동으로 350hp 발전기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나와 함께 근무하는 하사님은 영외거주를 하시면 오후 6시에 퇴근하고 나만 발전기실에 남아 닦고 기름치고 발전기는 거울보다 더 깨끗하게 관리하던 중에. 어느 날 근무 중 본건 대장님이 지나가시다가 나을 보고 강 일병 지금 무엇을 하는가. 하기에 차렷 자세로 나는 발전기 반에서 나의 근무에 충실히 근무하고 있다고 경례하고 부동자세로 서 있으니 본 건대장님께서 이곳에서도 근무하고 00 단장실 기름보일러를 같이 관리하도록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유리알 같은 바닥 군단장실 저 안쪽에 그 당시 오늘의 기름보일러가 설치돼있어 단장실은 실내 온도 22도23도 유지하도록 명 받아서 보일러 기름은 수송부에서 전화하면 언제던지 가득 채워준다..그리고 00 단장님. 보일러 실로 갈려면 본건 대장님 사무실을 거쳐서 가하기 때문에 꼭 본 건대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가던 중 한번은 본 건 대장님 입은 옷이 내 눈에는 조금 날아 보여서. 군수처에 있는 동기에게 나의 본건 대장님이 옷을 새것으로 주어야 된다고 하고 받아서 군복을 사내 수선하는 곳에 수선하여 본건 대장님 몸에 딱 맞도록 하여 본 건대장님께 드리니 좋아하시면서 강 상병 이번 토요일 외출증 만들어서 우리 집에 나무 정리 하여주면 좋겠다는 말씀에 나는 아주 좋아서 큰소리로 네 하고 집 위치를 확실히 물어서 내일 가기로 했다.
나는 본 중대에서 내일 외출증을 만들어서 다음 날 본건 대장님 집 근처까지는 부대 차 타고 조금 걸어서 가니 본건 대장님 사모님이 얼마나 반갑게 맞이하는지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도끼 내가 돌에 갈아서 해드렸다. 나무도 정리하고 집 안 청소도 깨끗이 하면 사모님 마을에 확 들게 하였고 나는 매주 외출하여 본건 대장님 집에 나무 정리 집 안 정리 내 일 같이하였다. 그렇게 근무하던 중 모두 너도나도 월남파병 하러 간다 야단들니다. 누구는 가내 하면서 그곳에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단다 하면서 들떠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나는 본건 대장님 없을 때 사모님한테 사모님 저는 사회에 있을 때 직업도 없고 돈도 없어 제대하면 장가도 가야 하는 데 돈이 필요하니 저를 월남 파병 가도록 대장님께 말씀쯤 들려주세요. 하고 간곡히 부탁드리고 난 후 어느 날 본건 대장님 나를불렀다. 경례를 하고. 야 월남은 전쟁터야 전쟁터 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월남을 갈려고 하느냐?
본건 대장님 저는 직업도 없고 돈도 없어 제대하면 장가도 가야 하는데 장가도 못 갈 형편입니다. 대장님께 간곡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건 대장님은 한참 먼 산을 보시더니 너희 보직은 파월 병과에 없고 야전공병으로 전환하여 갈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예 저는 좋습니다..그후 월남을 가게 되였다. 나는 외출하여 사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무어 하나라도 성의껏 정리 정돈 하고 사모님과 눈물의 이별하고 그다음 날 나는 본건 대장님에게 파월 신고식을 하려고 갔습니다. 대장님도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너를 전쟁터로 가게 되어서니 하시면서 편지 하나를 주시면서 이 편지는 보지도 말고 00 파월 훈련소 가서 00대위님에게 먼저 전하도록 하여라 잘 갔다 오너라. 하면서 굳은 악수를 하고. 본건 대장님 건강하게 계십시오.
인사를 드리고 월남 훈련소 화천 00 지역에 있는 곳에 도착 대장님 주신 편지를 그곳에 계신 대위님께 전달하고 그날 오후에 월남 갈 부대를 부르는데, 나는 대민 지원 비둘기부대로 가게 되었다. 화천에 있는 00 훈련을 마치고 저녁에 부대에서 트럭으로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 3부두에 도착 배 하나가 35.00명이나 탈 수 있는 배를 타고 부산 시내 여고생들이 나와서 환영식하고 내가 탄 배는 오후에 오륙도 넘어 월남으로 떠나가고 있다. 조금 가니까 뱃멀미가 나이 시작하는데 우리 육군 아저씨들은 모두가 죽을 맞이도 단 해병대 아저씨들 아주 씩씩하게 생활하면서 기세가 등등한데 멀미로 7일 동안 고생하면서 월남에 도착하였다. 가장 먼저 청룡부대가 내리고 다음 백마부대 우리 비둘기부대는 내려서 수송 비행기를 타고 비둘기부대 근처에 다시 트럭을 타고 도착하였다. 나는 공병부대 건설부대에 명받아서 재건 사업 건축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전기공사부에 소속되어서 전기 일을 하면서 모르면 묻고 하여. 전기공사를 배워가던 중. 우리 비둘기부대 전주역 외선에서 내 선과까지 전부 교체 공사가 있어서 우리 중대장님 나를 추천하여 우리 부대에서 전기 시설부대로 파견근무를 하였습니다. 이곳은 군인 7명과 한국에서 온 외부공사업자와 함께 전주를 세우고 각 내무반까지 전기를 새로 넣어주는 공사를 했다
내가 부대공사를 시작하는지도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내가 있는 곳은 작전과 소속이면 작전과 과장님이 나를 한국에 휴가를 보내줄 테니 휴가 한번 다녀오라는 말씀에 나는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나는 월남 사이공 시내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 과장님이 주신 선물을 사모님께 드리고 다시 열차를 타고 대구로 와서 고향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