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가룟 유다에 대한 모든 기록은 잘못 번역되어 왜곡되었다.
2) 유다의 기록은 구약에서부터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3) 겉 사람 안에서 기능하는 모든 죄는 속사람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사해진다.
4) 생명의 회복은 인생들의 마음으로 행하는 어떠한 노력과 종교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5) 하나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죄를 반드시 팔아 넘겨야하는 한다.
나. 본론
1) 가룟 유다에 대한 모든 기록이 잘못 번역되어 왜곡된 구절이다.
“가나안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자라(마 10:4)”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자라(막 3:19)”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눅 22:3)”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요 13:27)”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라(요 13:30).”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은 지라(마 27:5)”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코리온)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스프랑크나)가 다 흘러나온지라(행 1:18)”
번역된 한글 성경기록으로 읽어보는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판 사단의 종이며, 악마로 등장한다. 성경 말씀은 모두 히다와 마샬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내면의 일로서 나의 관한 기록이다. 그래서 기록들을 자세하게 천천히 보고 또 보아야 한다.
2) 유다의 기록은 구약에서부터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예수를 팔아버린 유다의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는 구약에서부터 이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보라 세상(코스모스 : 몸과 마음) 죄(하마르티아)를 지고 가는 그 하나님(관사 있음)의 그 어린 양(관사 있음)이로다(요 1:29).”
3) 겉 사람 안에서 기능하는 모든 죄는 속사람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사해진다.
겉 사람 안에서 기능하는 죄는 모두 속사람인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만 사해질 수 있다. ‘나’라고 하는(보는 나, 듣는 나, 느끼고 생각하는 나, 먹고 마시는 나라고 여기는 것), 나와 일치시키는 겉 사람의 죄(하마르티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반드시 내면에서 발견해야 한다.
4) 생명의 회복은 인생들의 마음으로 행하는 어떠한 노력과 종교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생들의 마음으로부터 행해지는 어떠한 노력과 종교행위로는 불가능하다. 오해하면 평생을 통해서 죄를 지고 가야 하는 이 어린양을 내면에서 찾지 못하고 끝나게 된다. 겉 사람(코스모스)의 모든 죄는 반드시 빠짐없이 속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를 각자 안에서 발견하고 그에게 팔아넘겨야 한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팔아 넘겨야 하는 그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종교인들에 의해 이를 무시하고 종교행위로 대신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깨어나지 못한 종교인들이 성경말씀을 왜곡하여 번역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순수하게 말씀을 배우려 하는 눈 먼 어린양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에 이러한 악행이 이천년간 이어져 온 것이다.
5) 하나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죄를 반드시 팔아 넘겨야하는 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내면에 와 있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그 죄를 반드시 팔아 넘겨야 하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일은 지혜를 통해 각자가 당연히 행하여야 할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종교행위가 아니라 바로 이 일(죄를 팔아넘기는 일)을 해야 한다.
생명의 그 빛과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