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도사는 친구가 천하 제일의 검객이었다. 지금은 그 친구가 아들에게 전수하여 무예에 있어서 입신의 경지에 오른 친구의 아들인 용천검사를 소개하며, 황희로 하여금 인사를 올리도록 한다. 용천검사로부터 용천검사의 유래와 내력에 관해전해 듣는다. 그리고 황주(黃州) 고을에 사는 박천(朴千)이라는 준수한 젊은이가 손각시(처녀귀신)의 귀액(鬼厄)이 끼여 지우도사를 찾아온다. 황희는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세상과 하나 되는 법을 익혀 나가게 된다
이번에는 윤씨 부인이 도사에게 간청하였다.
윤씨 부인 : “도사님, 저는 비록 여자이오나 아직 나이가 젊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특별히 무예를 배웠으면 합니다.
지우도사 : 으음, 안 그래도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여보게 성거사!
정윤식(윤씨 남편) : 녜, 하교해 주십시오.
지우도사 : 그대들 부부는 이제부터 무슬을 배워 부디 옳은 일에 사용하도록 하라. 여기 황공(黃公)은 장차 새 세상이 도래할 때 큰일을 할 것이네. 그때에 은밀히 무예가 필요할 것이니 세 사람은 나를 따르시게. 저 산둥성이를 넘으면 검술의 달인이 숨어지내며 용천검법(龍天劍法)을 완성시키고 전수받을 제자를 구하고 있다네.
황희 : 그분의 내력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지우도사 : 이제 곧 만날 테니 직접 불어보게.
어느새 사람 키의 몇 길이 되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폭포수 절벽까지 닿았다. 이미 늦가을 날씨인데 웃통을 벗은 채 등에 폭포수를 맞으며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사람이 보였다.
지우도사 : 저 아래 있는 분이 무예의 달인일세. 그대들은 저 동굴 입구 쪽 바위에 앉았다가 오시거든 예의를 갖추어 맞으시게.
지우도사가 무어라고 중얼거리자 타고 있던 검은 소가 크게 세 번 울었다. 그러자 불상처럼 앉아 있던 사람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한쪽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던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는 순식간에 폭포수 위쪽으로 비조(飛鳥)처럼 날아올랐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는 곧 지우도사 앞에 날렵하게 날아내린 후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그렇잖아도 돌아가신 아버님 기일이 되었기에 오실 것으로 짐작은 했습니다.
지우도사 : 여보게들, 어서 이 용천검사에게 인사 올리게. 이분은 천하 제일의 검객이었던 내 친구의 아들로서 무예에 있어서 입신의 경지에 올랐네. 황희와 성윤식 부부는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곁들여 인사를 했다.
용천검사 : 아하, 산중에 숨어서 지내는 사람에게 모처럼 귀한 손님이 왔으니 참으로 반갑소이다. 별로 대접할 것은 없고 선약(仙藥)으로 달인 차나 끓여 올리도록 하리다. 얼마 후 용천검사는 돌로 만들어진 그릇에다 차를 달여왔다. 차의 성분은 알 수 없었으나 향긋하면서도 쌉쌉하고 뒷맛이 상큼하였다. 아울러 차를 마시자 심신이 한결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용천검사는 50 안팎의 나이로 보이는데 약간 큰 키에 몸매가 깡마른 편이었다. 얼굴은 온통 수염투성이었고 눈빛은 정기가 넘쳤다. 웬만한 사람은 그 눈빛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싹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차를 마신 후 서로간에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끝에 황희가 용천검사에게 물었다.
황희 : 선생님, 외람되오나 용천검의 유래와 내력에 관해 여쭙고 싶은데요?
용천검사는 대답하는 뜻에서 다음과 같은 지난 이야기를 하였다.
요승인 신돈이 한창 세력을 부릴 때이다. 일찍이 최영 장군을 따라서 전쟁터를 누볐고 당대 최고의 검술사로 이름을 떨치던 최도명(崔道命)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존경하는 최영 장군이 신돈에 의해 좌천되는 것을 보고 분함을 못 참고 신돈을 암살코자 했으나 함께 모의하던 자의 밀고로 실패하고 말았다. 최도명은 그를 잡으러 몰려온 수백 명의 군사와 혈투를 벌인 끝에 백여 명의 군사를 혼자서 해치웠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어린 아들과 아내만 겨우 데리고 간신히 사지에서 벗어나 곧바로 가족과 함게 강원도 오대산으로 숨어들어 구사일생으로 오대산 깊은 골짜기까지 피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너무 심한 충격 탓인지 기력이 다하여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최도명은 부인을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은 후 주인 없는 암자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들이 별탈없이 잘 자라서 예닐곱 살이 되자 자신의 용천검법을 가르쳤다.
용천검법은 중국의 모든 검법사는 물론이고, 칼 잘 쓰는 왜구들조차 도저히 상대가되지 않았다. 용천겁법은 천하무적의 무서운 살인검법이자 활인검법이기도 하다. 최도명은 이 변화무쌍한 용천검법을 아들에게 가르치는 한편 더욱더 연마하고 연구하여 입신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충룡(忠龍)아, 너는 항시 검을 의로운 일에만 옳게 사용하여야 한다. 검에는 신령이 통하기에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의 피를 묻히면 크나큰 재앙이 따르는 법이다. 절대 절명의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함부로 칼을 뽑아서는 안된다. 드러난 칼은 무섭지 않다. 숨겨진 칼이 무섭다는 것을 항시 잊지 말아라.”소자, 자나깨나 아버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실행하겠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아들 충룡의 나이도 벌써 스무고개게 접어들었다. 최도명은 이미 70이 넘었다. 충룡도 이젠 무예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날 충룡이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스님의 복장을 한 수상한 자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죄지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다가 최도명을 죽이고자 칼을 휘둘렀다. 최도명은 그들과 대결하였으나 그들의 무예가 뛰어났음에도 최도명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두 놈을 쓰러뜨리자 한 놈은 급히 달아났고, 쓰러진 자의 품을 뒤지니 국가의 기밀이 나왔다.
으흠, 이놈들은 오랑캐의 첩자로구나, 누군가 내통하여 오랑캐를 이끌어들여 정권을 잡으려는 모양인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죽은자의 시체를 옆으로 치우려고 할 때 ‘쉬익’하며 화살 몇 개가 날아오더니 그중의 하나가 최도명의 어깨에 깊숙이 꽂혔다. “저놈 잡아라”는 함성과 함께 군사 수십여 명의 창칼을 들고 달려와 최도명을 에워쌌다. 비록 최도명이 늙고 화살도 맞았으나 달려드는 군사를 상대로 잘 물리쳤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상대의 우두머리가 궁수들에게 일제히 활을 쏘라고 명령을 하였다. 이미 어깨에 박힌 독화살에서 독기운이 몸에 퍼지자 점점 마비되어갔고,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얘들아, 화살을 멈추고 생포하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버님! 아버님!.......최도명은 정신이 흐려지는 가운데서도 분명히 아들 충룡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아들 충룡은 땅을 박차며 비조처럼 뛰어올랐다가 좌충우돌, 번개 같은 솜씨로 생포하려고 달려드는 일당들을 마구 쓰러뜨렸다. 최도명은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조차 잊고 뛰어난 검술 솜씨로 적을 물리치는 아들의 장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흐뭇하기까지 했다.
남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충룡에게 달려들었으나 도저히 충룡을 당해 내지 못했다. 결국 지휘자를 위시한 몇 명의 군사들은 모두 도망갔다. 충룡은 급히 아버지를 들쳐업고 아버지와 기거하는 동굴로 모셨다. 독화살 기운이 퍼져 최도명은 숨이 잦아들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서 고려의 사직이 위태로움을 걱정하며, 용천검법을 더욱 완성키킬 것을 아들 충룡에게 당부하자, 아버님의 평생 소원이신 용천검법을 기필코 완성 시킬 것을 다짐한다. 당시의 제일의 검객으로서 많은 공적을 남겼고, 임금의 총애를 받았건만 불의에 항거하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한스럽게 죽어갔다. 충룡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어머니 무덤 곁에 묻었다. 그리고 나서 그 앞에서 통곡을 하다가 큰절을 올렸다. 병사들이 다시 들이닥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가 없어 서둘러 먼 곳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총룡은 한동안 선량한 자들을 괴롭히는 못된 무리들을 정의의 칼로 수없이 응징하였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의 친구이던 지우도사를 만났다. 지우도사가 충룡에게 말하였다.
지우도사 : 그대의 아버지는 한스럽게 죽어갔다. 아버지가 무엇을 유언하셨더냐..... 그대는 무엇보다도 용천검법을 더욱 완성시켜 후일에 대비하라. 반드시 중히 쓰일 때가 있을 것이다.
충룡 : 깨우쳐주신 뜻, 제가 받들어 이행하겠습니다. 하마터면 아버님의 뜻을 저버리는 불효를 저지를 뻔하였습니다. 충룡은 신선의 경지에 도달한 지우도사에게서 선도술을 배우는 한편 용천검법을 더욱 체계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무적의 용천검법을 전수시킬 제자가 없어 염려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그들이 찾아오자 기꺼이 받아들였다.
황희와 성씨 부부는 그 말을 듣고서 숙연한 기분으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황희 : 선생님, 천하제일의 용천검법이 언젠가는 반드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값지게 쓰여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지우도사 : 아무렴, 그래야지, 황공은 장차 나라를 운영하는 큰 인물이 되고 용천검사와 성공(成公)도 유용한 자리에 천거하게. 이날 이후로 성씨 부부는 용천검사에게서 무술을 배우고 황희는 지우도사에게서 주역, 천문지리, 풍수, 귀신 퇴치법 등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날씨가 잔뜩 흐려지기 시작하고, 까마귀가 몇 번 짓더니 허공을 날아올라 사라졌다.
지우도사가 황희에게 이른다.
지우도사 : 여보게, 저 아래 폭포수 옆의 용바위에 가면 귀신이 씌여 죽어가는 젊은이가 있을 걸세, 어서 가서 이리도 데려오게. 황희가 그곳에 갔더니 과연 준수하게 생긴, 어딘지 음산한 기운이 서린 젊은이가 바위에 앉아 쉬다가 이렇게 물었다.
젊은이 : 이곳에 지우도사님이 계시다기에 만나뵈러 왔습니다. 노형께서 혹 계시는 곳을 아시면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황희 ; 그렇다면 나를 따라오시지요, 그리로 안내하겠습니다.
황의를 따라 지우도사 앞에 온 젊은이는 땅에 넙죽 꿇어 엎드려 절을 올렸다.
젊은이 : “소생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도사님께서는 저를 구해 주소서.”젊은이는 처음부터 눈물만 흘렸다.
지우도사 : 어허! 얼굴도 준수한 젊은이가 손각시(처녀귀신)의 귀액(鬼厄)이 끼이다니....그냥 둔다면 젊은이는 닷새를 넘기기 어렵겠구먼! “선생님, 그저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험지를 찾아 천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왔습니다오.
지우도사는 황희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지우도사 : 마침 잘되었군, 황공에게 좋은 공부가 될 테니까....... 바로 이러한 사람을 행시(行屍: 걸어다니는 시체)라고 할 수 있지. 자, 젊은이, 어쩌다가 귀액을 당했는지 내게 말하오. 그러면 귀신을 물리치는 방법을 쓸 테니까.....
젊은이 : 소생은 황주(黃州) 고을에 사는 박천(朴千)이라 하옵니다. 제가 죽으면 우리집 대가 끊어집니다. 제가 자초지종을 말씀 드릴테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는 다음과 같이 사연을 털어놓았다.
다음에 (9-4)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