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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0. 5. 8.(토) 맑음 8~24 ℃
산행기록:육십령(03:02)--할미봉(04:07)--서봉(06:08)--남덕유산(06:51)--삿갓봉(08:41)--무룡산(10:01)--동엽령(11:26)--백암봉 (12:20)--횡경재(13:40)--못봉(14:19)--대봉(15:24)--갈미봉(15:53)--빼봉(16:37)-빼재(17:00)
산행거리 : 도상32.2km 실제 걸은 거리: 42Km이상 소요시간: 14시간
내가 일산하나산악회와 인연을 맺고 첫 대간길을 함께 한 것이 2008년 11월9일 중재-영취산 구간이었는데, 그때 이 대간팀은 이미 육십령에서 빼재구간을 지났기에, 백두대간 종주코스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되는 대로 나 혼자 이 구간을 채워야 했다. 기회를 보던 중 이번 육십령에서 향적봉을 종주하는 산행에 합류하여 백암봉까지 함께 한 후, 백암봉에서 일행과 헤어져 따로 대간길 빼재까지를 걷기로 계획을 잡았다. 전체 도상거리가32.2km이고 실제 거리는 42km가 넘는 것으로 되어있다. 하루 종주코스로는 조금 버거워서 삿갓재나 향적봉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고 종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산행계획을 잡고 삿갓골재대피소와 향적봉 대피소에 예약을 하려 했으나 이미 예약이 다 찼다. 하면, 좀 무리를 해서 종주를 해내야 한다. 그동안 대간길에 단련된 내 몸을 믿어보는 거다.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먼저 이 길을 걸은 산행기를 찾아보니 대략 16시간이 소요되고 무척 힘든 코스였다고 적혀있다. 백두대간 도면을 펴놓고 구간별 소요시간과 거리를 가늠하며 새벽 3시에 출발 최대 19:10에 도착한 후 산악회버스를 타고 오는 것을 포기하고 그곳에서 일박하고 귀가할 계획을 잡았다.
저녁 11시 40분 집에서 나와 한적한 들길을 지나 안성휴게소 주변에 차를 파킹하고 휴게소에 도착하니 12:00, 어버이날이라 하행선구간이 밀린다고 장부장이 전화를 했다. 12:30분 오랜만에 안성휴게소에서 산행버스를 타게 되는데 늘 익숙했던 대간지기들은 없고 육십령에서 향적봉을 경유하여 삼공리로 하산하는 낮선 등산객들이 13명, 28석 차량의 반은 빈 좌석이다. 긴 산행을 대비하여 바로 의자에 길게 누워 눈을 붙인다.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 수 있는 것. 이것도 복인기라.
03:02. 2008년 11월23일 일산하나산악회 대간팀과 두번 째 대간길에 영취산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하산했던 곳이다. 육십령 기념석 사진을 찍고 바로 등산화를 조여 매고 능선 들머리로 올라선다. 다행히 우리 대간팀의 최도사님이 나와 동행하여 빼재까지 가겠다고 한다. 마음이 든든한 한편 그는 당일에 지리산을 종주해낸 준족이라 보조를 맞추기 힘들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건 나중 얘기고 우선 내딛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니까.
일행이 14명이다. 내 앞으로 4~5명이 앞서 올라간듯 하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헤드랜턴에 비친 어느 나무 밑둥이 꼭 힘찬 남성의 발기된 심벌같아서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사진에 담는다. 그저 개눈에는 똥 보살에게는 진리가 눈에 드는 기라. 30여분 산을 올랐을까, 작은 고개를 올라 선 곳에서 길을 잘못들어 10분여 알바를 하게 되었다. 분명 이정표가 좌측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음에도 우측으로 난 길이 너무 훤하게 열려있어서 무심하게 그 길로 접어든 것이다. 잠시 후 앞서서 길을 잘못 들어섰던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것을 내가 앞장서서 길을 찾아 내려가 헬기장까지 도착하여 주변을 살피니 안내표시도 없고 아무래도 잘못 들어선 것 같다. 그믐이 가까운 어둠 속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들고 들여다 보니 북으로 가야할 길을 동으로 걷고 있었다. 뒤돌아 서니 북쪽으로 어슴프레 능선길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위치를 가늠하는 동안, 나를 지나쳐 내려간 사람들은 자꾸 능선길이 아닌 마을쪽 하산길로 가고 있다. 최도사와 전화통화로 진로를 다시 학인하고 되돌아서며 앞선 팀에 고함을 질러 돌아오라고 하고는 바삐 길을 되짚어 왔다.
04:07 10여분 그믐 밤의 어둠 속에 알바를 하고도 예정시간보다 늦지 않게 할미봉에 도착했다. 나보다 더 깊숙히 길을 잘못 들어섰던 알바팀들의 헤드랜턴 불빛이 저 아래 어둠 속에 들어났다 잠겼다 한다.
할미봉 정상석 위로 그믐달이 떠 있다. 물 한모금 마시고 바로 선두로 나선다. 갈길이 멀다.
어둠 속에서 멀리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이어진다. 어디 올무에도 걸린 짐승의 절규인가? 동행하던 여인네가 무섭다며 랜턴을 끄자고 한다.
서봉을 오르는 사면은 가파르다. 그 중간 어느 암봉에서 희브염하게 밝아오는 동녁능선을 배경으로 함께 동행하던 '윤경'님의 실루엣을 담았다. 앞서 가라고 하니 굳이 내 뒤에서 걷겠단다. '최도사'와 함께 지리산 종주길을 당일에 완주해 낸 억척 여인네다.
새벽내내 걸어온 능선길이다. 살아 꿈틀거리는 듯 내리 뻗은 능선 좌우 산자락에는 아직 잠에거 깨지 않은 삶의 자리들이 안온하게 펼쳐져 있다.
막 능선 위로 올라서려는 아침 해
06:08 서봉(1492)이다. 장수덕유산이라고도 한다. 서쪽으로 장수군 장계면을 거느리고 있어 그리 불려지나 보다. 10여분 알바를 하고도 이곳까지 예상시간보다 1시간정도 빠르게 왔다.
서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할미봉에서 서봉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신비롭게 비춰드는 아침햇살 아래 시원스레 산 아래로 뻗어내려 있다. 신새벽의 어둠을 타고 오른 길이다.
서봉의 정상석은 따로 저만치에 있다. 그리고 그 뒷편으로 남덕유산이 배후에 준봉들을 거느리고 우뚝 서있다.
여기서 남덕유까지 1.2km, 도면에는 1시간이 소요된다고 나와있다. 가파르게 내려서서 다시 가파르게 올라서야 한다. 기껏 힘들게 올라서면 오른 만큼 다시 내려서서 다시 올라야 하는 길이 이어질 때, 그런 능선길은 참 힘도 들거니와 圖上의 거리보다 실제 거리가 훨씬 멀다. 德裕, 이곳의 마루금이 여러 곳에서 그렇게 우리를 단련시키려 준비하고 있다. 이곳을 내려서서 잠시 쉬며 물을 마시고 햇빛이 강해져서 썬크림을 발랐다.
6:51 남덕유 정상이다. 경남 거창군·함양군과 전북 장수군 경계로 덕유산줄기의 서남쪽 에 우뚝 솟아있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남덕유정상에서 바라보는 덕유의 등줄기가 저 멀리 향적봉까지 힘차게 뻗어있다. 장쾌한 절경이다. 여기 남덕유에서 저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북덕유(향적봉)까지 약 20㎞ 구간에는 해발고도 1,300∼1,400m의 소백산맥 주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으면서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나누고, 낙동강 수계의 황강과 남강 금강수계의 발원지로서 물줄기를 나누며 그 너른 품으로 수많은 식생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하여 德이 많고 너그러운 母山 德裕인 것이다. 아직 녹음이 덮이지 않은 맨몸의 근육질 덕유, 저 등줄기를 타고 오늘을 맞이하는 것이다. 힘차게 용틀임하며 뻗어나간 능선길을 바라보며 가슴이 설레인다. 가자!
새벽 어둠을 헤치고 올라선 능선길이 아침해를 받으며 봄을 맞이하기 위해 소생의 기를 쌓고 있는 듯... 아직 덕유는 겨울의 긴 잠에서 깨어나 눈 비비고 있는 중이다.
남덕유산 정상에서 다시 100여m 되내려오며 움트는 나뭇가지 사이로 서봉을 잡아 보았다. 이곳은 이제 막 이른 봄을 맞이하고 있는 느낌.
배가 고프다. 하지만 능선 위의 바람이 세차서 바람을 피하여 아침을 먹을 곳을 찾으며 걷는다. 정상을 내려서서 20여분 걸은 후에야 능선 동편으로 조금 내려선 곳 바람이 비켜가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자리를 하고 아침 요기를 했다.
07:44
삿갓봉까지의 능선길 양편 사면이 가파르다.
삿갓봉을 오르는 길 중간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이곳에서는 일찍 피어난 두견화 옆에 앉아 덕유의 등줄기를 감상한다.
좌로 남덕유산, 우로 서봉, 그리고 이어지는 능선길. 그 능선길 걸을 때마다 뒤돌아보며 내 다리품이 이룬 공간이동의 성과에 대견해 하며 뿌듯해 한다.
왼쪽무릎이 시원찮다. 최도사와 '카멜' '윤경'내외가 100여m 앞서 가고 내가 그 뒤를 쫓고 있다. '윤경'은 새벽내내 내 뒤를 쫓아오며 앞장을 서라고 하여도 굳이 뒤서더니만, 그게 앞에만 서면 그저 뒷사람 생각않고 마구 앞으로 내닫기 때문이었던 게다. 그래도 최도사가 나와의 거리를 조정하며 세 사람의 페이스를 조정하며 가는 듯 하다.
가파르게 올라선 이곳 이정표 앞에서 삿갓봉을 경유하려면 다시 300m를 옆으로 가파른 사면을 올라섰다가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앞서 가던 셋이 뒤돌아 온다. 삿갓봉을 그냥 지나치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 삿갓봉을 경유하기로 했단다. 힘들다. 그냥 지나치기에 속으로 참 잘했다 싶었더니만.... "최도사, 당신 잘 났어 정말..." 그리 중얼거렸다. 산길 300m가 어디 만만한 거리인가 게다가 되돌아 와야하니 600m다. 그가 앞장서니 산사내의 자존심이 있지.... 가파른 사면을 따라 오른다.
삿갓봉(1419) 덕유의 능선길 위에 우뚝 솟은 준봉의 하나. 어찌 그대를 곁에 두고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도사의 선택은 옳았다.
늘 그랬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긍정적인 방향,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로에서는 "Do it!"이 바른 선택이었다. 경험칙이다. 300m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고 힘들게 올라선 삿갓의 이마 위에서 내려다 본 덕유의 조망은 그 수고를 몇 배 보상해주고 남음이 있었다. 정상석 뒷편으로 아득하게 보이는 두 봉우리 마치 젖가슴 갖기도 하고 똥꼬모양 갖기도 한 데, 도면으로 보면 금원산(1352)과 동봉 ? 덕유의 준봉들은 힘들게 오른 만큼 발 아래 탁트인 조망을 허락해 준다.
이곳 삿갓봉에서 바라본 북쪽 능선길. 이어진 능선 저편에 무룡산이 불룩 솟아 있다. 그곳까지 그리 힘겹지 않을 듯 싶은 능선길이 이어져 있다.
09:02 삿갈골재 대피소. 만약에 예약이 되었다면 여기서 하루 숙박을 해야 하는데, 새벽을 뚫고 오른 오늘의 산행일정을 뒤돌아 보니, 예약이 되었더라면 오히려 지금부터 하루를 어찌 지낼 지 어설펐을 것이다. 산장 안내인인듯 한 사람이 50여m 아래에 샘물이 있다고 했지만 지친 몸에 힘도 들고 아직 날씨가 덥지 안하 갈증이 심하지 않아서 굳이 더 보충하지 않아도 될 듯 싶어 잠시 간식을 나누고 걸음을 재촉한다.
덕유의 능선 위에는 봄소식이 아직 가물하지만, 때로 일찍 피어난 진달래꽃잎 색은 진하다. 일찍 피어난 두견화 뒷편으로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산을 오르고 있다.
10:01 덕유 그 넉넉하고 품넓은 능선길 중간 위에 우뚝 서서
걸어 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조금 먼 것을 가늠해 주는 무룡. 잠시 쉬어가며 아름다운 산하를 굽어볼 것을 권하는 무룡.
그 완만한 능선길 위에 두견화는 아직 찬 바람에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로 정강이까지, 허리 높이까지, 때로 겨드랑이까지 자란 조릿대, 그 능선 위를 사뭇 이어지던 호젖한 길, 서걱서걱 몸을 스치는 조릿대 잎을 헤치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내내 혼자 걸었다. 왼쪽 무릎이 통증이 가시자 오른쪽 무릎에 다시 통증이 온다.
무룡산을 지나 백암봉까지는 백암봉 직전의 30여분 가파른 구간을 제외하고는 완만한 고원지대를 걷는 느낌.
조릿대길 지나면 관목 우거진 길 그리고 다시 조릿대길, 다시 진달래 철쭉관목이 늘어서는데, 따사로운 햇빛이 능선 위를 쉬임없이 애무하니 진달래 꽃망울이 내일 아침이라도 툭 터져버릴 듯.
1433봉 이정표
이제는 가야 할 향적봉이 능선길 위로 성큼 가까이 다가서고
지나 온 길이 더 아득하다.
무릎에 통증을 느끼며 걷는 중에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얼핏 마음이 수다를 떤다고 생각될 즈음, 문득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냥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릿대잎이 몸을 스치는 소리외에는 새들의 지저귐도 잠시 멈춘 그 관목과 산죽 늘어서 능선길 위의 寂, 그리 온 생각이 아픈 무릎과 두 다리에만 집중된 채 뚜벅뚜벅 앞으로 내딛으며, 머리는 텅 비어 아무 생각없이 한 동안을 그 능선 위를 걸으면, 그려 덕유산 그 능선 위에 잠시 세속을 떠난 무념무상의 도인이 되는 기라.
왼편으로 가파른 백암봉을 올라선 뒤 오른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신풍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로 가늠을 한다.
12:21 가파른 사면을 오르며 힘이 다할 즈음 백암봉(1503) 정상에 도착,
북으로 중봉(1594)과 향적봉(1610)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서 있다.
여기까지 같이 동행을 했던 '카멜' '윤경' 부부와 헤어져야 한다.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한다. 점심을 먹으며 오늘 산행을 함께한 뒤처진 일행이 향적봉을 거쳐 5시반까지 삼공리 주차장까지 하산하기로 했다며, 여기서 부터 부지런히 걸어 빼재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삼공리로 이동하면 예정된 시간 안에 산악회버스의 출발시간에 닿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굳이 하룻밤 이곳에서 잠을 잘 필요가 없다. 하지만 온 몸이 지친 지금부터 해 낼 수 있을까? 새벽 세시에 출발 이곳에 도착이 12:21, 9시간이 조금 넘었으니 걸어 온 거리와 남은 거리, 소요된 시간을 대충 요량을 하여도 가능할 것 같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쓴 신경숙씨가 어느 인터뷰에서 소설 속에 어떤 성격의 인물을 설정하면 작가의 작의적 의지를 떠나 그가 그 소설 속에서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든가 그 비슷한 말을 한 기억이 난다. 내 의지가 "빼재에 5시까지" 라고 정하면 내 온 몸은 특히 믿음직한 내 두 다리는 충성스럽게 따로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그 힘든 산길을 걸어낼 것이다. 여지껏 그랬다. 내 의지가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 한....
지체할 시간이 없다. 부지런히 배낭을 다시 메고 귀봉을 향한다.
백암봉에서 되돌아 바라본 덕유능선길 맨 뒤로 남덕유와 서봉. 다시 복습하는 발길 닿은 곳 족적을 남긴 곳. 지나온 백두 대간길 어느 곳보다 이번 구간은 전체구간을 산행 내내 시원스레 조망하며 걸을 수 있었다.
귀봉 주변에서 다시 조망해본 능선길
13:40 횡경재에 도착 여기까지는 쉬이 달려왔다. 송계사로 내려가는 길과 못봉으로 향하는 길이 조금 헷갈리게 리본을 달아 놓았다.
'최도사'와 함께가 아니면 조금 당황했을 것 같았다.
못봉으로 향하는 사면길에서 바라본 중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마치 기와집의 용마루같다. 하긴 저 두 봉을 이으면 하늘 아래 덕유의 모든 준령 위의 용마루이기도 하렸다.
14:19 못봉에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후반부가 걱정이 되었지만 여기까지는 무난히 왔다. 이정표에 남은 거리가 6.1km 백암봉에서 12:40에 출발하여 1시간 30분여 도상거리의 반 가까이 왔다. 하지만 험난한 길은 여기서부터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못봉을 지나 얼음재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게 끝없이 이어졌다. 분명 물을 가르는 능선길인데 꼭 계곡을 내려서는 계곡길 같다. 지리하게 낙옆이 수북이 쌓인 길을 40여분을 내려서서 얼음재에 도착해서야 나즈막한 얼음재가 높게 남북으로 이어진 투구봉이 북으로 물길을 연 것과는 다르게 물길을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40여분여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서서 고도를 까먹었으니 다시 눈 앞에 우뚝 선 대봉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오히려 더 많이 지쳤다. 잠시 길섶에 주저앉아 아직 배낭에 남겨 두었던 오이와 음료수로 갈증을 풀고 초코렛을 두 조각 먹어 에너지를 보충하고 대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의 대간길 隊長 '최도사'가 말한다. "우뚝 솟아 앞을 가로 막아선 봉우리도 그저 한 15분 정도 한 발 한 발 쉬임없이 오르면 발 아래 놓이더라구요" 그렇다. 작은 걸음이지만 쉬임없이 내딛는 발걸음에 태산도 하늘 아래 뫼라고 옛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대봉으로 오르는 斜面은 키높이 자란 싸리나무 군락지였다. 평소같으면 몇 번이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을 테지만, 시간 안에 빼재에 닿아야 하고 앞선 걸음의 '최도사'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꾹꾹 한 발자욱씩 땅을 눌러 밟듯 힘겹게 대봉정상을 올랐다.
15:24 대봉91263) 신풍령까지 3.6km . 이젠 다 왔다. 산행기에 마지막구간 수없이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에 지쳤다고 하더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또박또박 거리를 줄이며 예까지 왔으니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냐? 그리 속으로 중얼거렸는데, 역시 그 산행기의 내용은 틀림이 없었다. 여기서부터 남은 구간은 도상거리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지리하게 이어지며 지친 두 다리를 괴롭혔다.
15:53 대봉을 내려서서 그 내려선 만큼 다시 올라서니 갈미봉. 여기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이 또 한 동안 이어진다. 지친 다리에는 가파른 내리막이 더 힘들다. 저 아래 두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으로는 완만하게 둥근 봉이 그 왼편으로는 뫼 산자의 삼각봉이 우뚝 서 있다. 이 가파른 길 내려서서 저 두봉중에 하나가 빼봉일게고 그놈만 넘어서면 빼재려니 쉬이 생각하며 그 가파른 사면을 내려섰다. 오른쪽 무릎이 더 아파온다. 이따금씩 '최도사'님이 멈추어 서서 나와 보조를 맞춰준다.
갈미봉을 내려서서 오른쪽 완만한 봉우리를 넘으니 다시 왼쪽 가파른 삼각봉으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누군가 "산을 타려면 어느 정도 매저키스트(masochist)라야 한다 . 때로 극한의 고통에 쾌감을 느끼는..."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다 어느 정도 그런 성향이 있으렸다. 저 가파른 정상을 향해 탈진한 다리를 한 발자국씩 옮겨 딛으며 그리 쾌감을 느낀다?
16:37 빼봉(1039) 뚜벅뚜벅이다. 누가 정상에 내달았다는 건 없는 표현이다. 아무리 가파르고 힘든 정상도 한 발자국씩 뚜벅뚜벅 내딛는 그 걸음에 의해서만 올라설 수 있는 게다. 인내의 힘겨운 작은 발걸음에 의해서만 발 아래 놓이게 된다. 이곳 빼봉정상을 넘어서고도 작은 마루 서너개는 더 넘어서서야 그 능선길은 빼재, 수령(秀嶺)에 닿아 경남 거창군 고제면과 전북 무주군 무풍면을 나누고 잠시 쉬어 다시 덕산재로 이어지며 힘차게 그 대간의 맥을 이어갔다. 그 힘든 마지막 능선길을 걸으며 구부구부 대간능선길에 대한 윤곽이 내 머리 속에 남겨지고, 우리 사는 세상사 맞닥치는 수많은 어려움이 어찌 한 번에 그침일까를 뇌까리며 인내의 발걸음을 옮겨 딛었다. 또 그리 참고 인내하는 덕목을 익히며 그 길의 마직막 능선길을 걸었다.
17:00 이제 다 왔다. 조금 먼저 내려선 '도사'님이 축하의 박수로 맞이해 준다.
빼어난 그 嶺에 어찌 쉬이 다달을 수 있는가? 땀 흘리고 지친 몸으로 그리 그대 앞에 서는 게지...
빼재(秀嶺) ,신풍령. 경남 거창군 고제면과 무주군 무풍면의 도계.
이곳에서 몇 번의 히치하이크를 시도하였으나 거절당하고, 이곳 재에서 귀가길에 잠시 쉬고 있던 울산에 주소지를 두고 군산에 직장을 가지고 있는 어느 50내 불자의 호의로 무난히 삼공지구 입구에 도착하였다.
새벽 3시에 길을 떠나 오후 5시까지 덕유 마루길에서의 행복한 하루였다.
내 딛지 않으면 그 행복한 길은 내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첫댓글 실감나는 덕유산 산행기... 잼있게 감상하였습니다!... 저도 2년 전, 남덕유산 산행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불초도 5-6년전에 1박 2일 종주한 기억이 새롭군요.
후조님 애쓰셨습니다. 넉넉한 덕에 흔뻑 취하셨으니 을매나 좋으실고..
덕유산이 아름답다 한들 후조님이 이소식을 전해주지 아니 하면 무슨 소용 덕유산 정기를 온몸으로 받아오셨으니 그 덕화가 동이서원 학인들의 마음을 덕으로 물들이시겠지요 ^*^
여명의 시간이 되기까지 산의 근육은 커녕 형세조차 못보신 듯 합니다.
흙의 두께만 동물적인 감각으로 느끼시진 않으셨는지요?
그림으로나마 좋은 산행을 하였습니다. 然華올림
오래전의 일이였습니다. 1987년 여름의 어느하루.경남 하동 근처에 있는 "악양"이라는 곳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시루봉"을 갔던 때의 경험입니다.
아침 9시에 출발하면서 우리가 했던 말 "다녀와서 점심 먹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상 식량은 물 한병이 전부였습니다. 시루봉이 바로 저~기에 보이기에...
후조님은 아시는지요? 환상(環狀)을 ...우리는 시루봉까지는 11시 반경에 도착을 했는데, 그때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서 앞길이 잘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부지런히 하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몇시간을 내려간다고 가서 보면 "시루봉" 정상이였습니다. 그러기를 하루종일...몇번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어느덧
어느덧 해는지고, 배 고프고, 무섭고, 가만히 서 있으면 짐승이 나올 것 같고,내려가기는 해야 하는데, 물론 렌튼도 없고...한참을 걷다보면 또 제자리고....
결국 우리내외가 동네분들을 만난 시간은 밤 10시였습니다. 횟불을 들고 여러분들이 우리를 찾아 나섰더라고요.첫마디 " 물좀 주십시요"아휴....지금도 힘듭니다.
후조님께서 중간에 헛길 걸으신 것을 보니 문뜩 그때 생각이 나네요. 산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더더구나 큰 산은 ....
11시간 동안 식수도 없이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그래서 산 앞에 겸손해야 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너무 준비를 안 하시고 떠난 것이 불찰. 일단 산에 오르려면 특히 여름철에는 충분한 식수를 준비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아무리 무겁더라도... 지리산은 정상 곳곳에 샘이 많아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식수가 위치한 곳을 사전에 파악해면 배낭이 조금 가벼워질 수 있겠죠.
후조님~~~ 읽어주셨네요. 그런데 11시간이 아니고, 13시간이였습니다. 후조님~~~~ 젊을 때 한번이라도 더 많은 경험 쌓으시기를...
좋은 산행기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