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품송(正二品松)
입설단비/최길하
정이품 획(劃) 하나를
우지끈 꺾어 든 솔
그날 밤 눈 쌓인 밤
입설단비 ‘一’ 劃에서
문자향 싸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시작노트>
‘혜가’가 ‘달마’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한다. 달마는 방안에서 문도 열어보지 않는다.
밤새 눈이 산처럼 쌓인다. 마당에 선 ‘혜가’의 무릎까지 덮는다. 그래도 달마는 내다보지 않는다. 매정한 중.
‘혜가’ 눈밭에 서서 팔뚝 하나를 뚝 잘라(立雪斷臂) 들었다. ‘一’ 劃이다!
붉은 피가 눈 위에 낭자하다. 마침내 ‘달마’ 문을 열고 "그래, 무엇을 알고자 하는가?"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간 몇 마디 문답. 이름 하여 '安心 문답'이다. "마음이 심히 편치 않습니다." "편치 않다는 그 마음 가져와 보라" "(…) 찾아보니 없습니다" "됐다. 그대 마음은 편안해졌다." ‘달마’→‘혜가’에게 법복을 승계한다.
(이 게 중국 선종불교 1대 달마가 2대 ‘혜가’에게 법을 승계하는 논픽션 장면이다. ‘혜가’가 팔뚝을 잘라 일획을 쓴 것이다. 바로 소림사 마당에서. ‘달마’나 ‘혜가’나 소림사 무술영화처럼 극적인 스님이다. 선종은 경전, 부처를 버리고(?) 바로 마음을 파고드는 종맥이다. )
정이품송이 어느 해 눈밭에 가지 하나를 우지끈 꺾어 보였다. 一劃이 눈밭에 뚝 떨어졌다. 꺾인 상처에서 솔향기가 눈보라처럼 일어났다. ‘文字香’이다.
시도 글씨도 품절도 一劃를 얻는 것이다. 書畵에서 일획만 제대로 칠 줄 알면 일가를 이룬다. 만 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글씨에 향기가 난다.
文字香! 벼락 치듯 일획을 보여주는 저 정이품송. 입설단비로 서있는 정이품송에서 ‘문자향 서권기’를 느낀다. 범종소리다. 금강경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