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25일,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서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발굴팀에 의해 무연고 묘지를 발굴하던 중 발견되었다.
이응태 묘 출토 편지(李應台 墓 出土 便紙)
조선시대 선조 19년(1586) 음력 6월 1일 안동에 살던 어느 여인이 남편 이응태(李應台, 1556~1586)가 나이 31살의 나이로 아내와 뱃속 아이를 남겨둔 채 요절하자 남편을 그리며 쓴 간찰이다.
원이 아버님께 올림--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이 편지에 나오는 병술년은 1586년(선조 19년)으로, 임진왜란 6년 전이다.
원문
워늬 아바님ᄭᅴ 샹ᄇᆡᆨ
병슐 뉴월 초ᄒᆞᄅᆞᆫ날 지븨셔
자내 샹해 날ᄃᆞ려 닐오ᄃᆡ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ᄒᆞᆷᄭᅴ 죽쟈 ᄒᆞ시더니 엇디ᄒᆞ야
나ᄅᆞᆯ 두고 자내 몬져 가시ᄂᆞᆫ
날ᄒᆞ고 ᄌᆞ식ᄒᆞ며 뉘긔 걸ᄒᆞ야
엇디ᄒᆞ야 살라 ᄒᆞ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ᄂᆞᆫ고
자내 날 향ᄒᆡ ᄆᆞᄋᆞ믈 엇디 가지며
나ᄂᆞᆫ 자내 향ᄒᆡ ᄆᆞᄋᆞ믈 엇디 가지던고
ᄆᆡ양 자내ᄃᆞ려 내 닐오ᄃᆡ ᄒᆞᆫᄃᆡ 누어셔
이보소 ᄂᆞᆷ도 우리ᄀᆞ티 서ᄅᆞ 에엿ᄲᅵ
녀겨 ᄉᆞ랑ᄒᆞ리 ᄂᆞᆷ도 우리 ᄀᆞᄐᆞᆫ가
ᄒᆞ야 자내ᄃᆞ려 니ᄅᆞ더니 엇디 그런 이ᄅᆞᆯ
ᄉᆡᆼ각디 아녀 나ᄅᆞᆯ ᄇᆞ리고 몬져 가시ᄂᆞᆫ고
자내 여ᄒᆡ고 아ᄆᆞ려 내 살 셰 업ᄉᆞ니
수이 자내 ᄒᆞᆫᄃᆡ 가고져 ᄒᆞ니 날 ᄃᆞ려가소
자내 향ᄒᆡ ᄆᆞᄋᆞ믈 ᄎᆞᄉᆡᆼ 니ᄌᆞᆯ 줄리 업ᄉᆞ니
아ᄆᆞ려 셜운 ᄠᅳ디 ᄀᆞ이 업ᄉᆞ니
이 내 안ᄒᆞᆯ 어ᄃᆡ다가 두고 ᄌᆞ식 ᄃᆞ리고
자내ᄅᆞᆯ 그려 살려뇨 ᄒᆞ노이다
이 내 유무 보시고 내 ᄭᅮ메 ᄌᆞ셰 와 니ᄅᆞ소
내 ᄭᅮ메 이 보신 말 ᄌᆞ셰 듣고져 ᄒᆞ야 이리 서 년뇌
ᄌᆞ셰 보시고 날ᄃᆞ려 니ᄅᆞ소
자내 내 ᄇᆡᆫ ᄌᆞ식 나거든 보고 사롤 일 ᄒᆞ고
그리 가시ᄃᆡ ᄇᆡᆫ ᄌᆞ식 나거든 누ᄅᆞᆯ 아바 ᄒᆞ라 ᄒᆞ시ᄂᆞᆫ고
아ᄆᆞ려 ᄒᆞᆫᄃᆞᆯ 내 안 ᄀᆞᄐᆞᆯ가 이런 텬디 가슨 ᄒᆞᆫ이리
〈윗부분〉
하ᄂᆞᆯ 아래 ᄯᅩ 이실가 자내ᄂᆞᆫ ᄒᆞᆫ갓 그리 가
겨실 ᄲᅮ거니와 아ᄆᆞ려 ᄒᆞᆫᄃᆞᆯ 내 안 ᄀᆞ티 셜울가
그지그지 ᄀᆞ이업서 다 몯 서 대강만 뎍뇌
이 유무 ᄌᆞ셰 보시고 내 ᄭᅮ메 ᄌᆞ셰와 뵈고 ᄌᆞ셰 니르소
나ᄂᆞᆫ ᄭᅮ믈 자내 보려 믿고 인뇌이다 몰래 뵈쇼셔
〈첫부분〉
하 그지그지 업서 이만 젹뇌이다
현대 한국어
원이 아버님께 올림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네 항상 나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나하고 자식하고는 누구에게 구걸하여
어찌하여 살라 하고 다 던지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자네 날 향한 마음을 어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한 마음을 어찌 가졌던가.
매양 자네더러 한데 누워서 내가 이르되
여보,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 남들도 우리 같은가?
하여 자네더러 이르더니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의고 아무래도 나는 살 수가 없으니
얼른 자네한테 가고자 하니 날 데려가소.
자네 향한 마음을 이 생에 잊을 줄이 없으니
어떻게 해도 서러운 뜻이 그지없으니
내 이 마음을 어디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며 살까 하나이다.
내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일러 주소.
내 꿈에 이를 보고 하실 말 자세히 듣고자 하여 이렇게 써넣네.
자세히 보시고 나더러 일러 주소.
자네 내 밴 자식이 나거든 보고 사뢸 것 있다며
그리 가시면 밴 자식이 나거든 누구를 아빠 하라 하시는가.
아무리 한들 내 마음이나 같을까. 이런 천지 같은 한이
〈윗부분〉
하늘 아래 또 있을까. 자네는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
그지그지그지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으니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자세히 와 보이시고 자세히 일러 주소.
나는 꿈에서 자네를 보리라 믿고 있나이다. 몰래 모습을 보이소서.
〈첫부분〉
하도 그지그지없어 이만 적나이다.
편지에서 이응태 부인이 배고 있던 아이의 이름은 성회로 표현되며 둘 사이의 장남이었던 '워늬(원이)'는 아버지의 본가인 안동에서 길러지다 질병으로 요절한다. 고성이씨세보 1권 참판공파 962쪽에 이응태의 무녀독남으로 '이성회(李誠會)'가 등재되어 있는데, 편지 속 이응태 부인이 임신 중이었던 둘째 아들 이성회로 추정된다.
아내가 남편 이응태를 '자내(자네)'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엔 순우리말 '자네'가 상대를 동등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높이는 데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국어에서도 '자네'는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에서 쓰일 수 있지만 더 이상 상대를 높이는 표현은 아니며, 주로 아랫사람에게 쓰인다.
'샹해(항상, 늘)'에서 '샹'은 常이며, 'ᄎᆞᄉᆡᆼ'은 此生, 즉 '이승'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