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의 발견
구조의 반대는 원자다. 구조는 안을 보고 원자는 밖을 본다. 구조는 안에서 결정하고 원자는 밖으로 전달한다. 구조가 소프트웨어라면 원자는 하드웨어다. 구조가 마음이라면 원자는 육체다. 마음과 몸을 합쳐서 존재가 완성되면 비로소 세상의 톱니바퀴가 작동을 시작한다.
구조론은 원자론의 완성이면서 원자론의 발전적 해체다. 원자는 안을 부정한다. 안이 없으면 밖도 없다. 구조가 없으면 원자도 없다. 원자와 구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원자가 있는데 구조가 없다는 말은 숫자는 있는데 셈은 없다는 말과 같다. 언어가 있으면 생각도 있다.
구조라는 말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이 원자와 같은 보편적인 존재의 단위라는 사실을 인류가 몰랐다. 원자는 외부 전달의 단위다. 당연히 내부 결정의 단위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껏 달의 앞면만 보고 살아왔듯이 존재의 절반만 보고 살아왔다면 놀라운 일이다.
###
존재의 절반
구조는 공유된다. 모든 존재는 내부가 같다. 만유는 하나의 원본에서 복제된 존재다. 우주의 내부든, 생물의 내부든, 마음의 내부든, 정치의 내부든, 자본의 내부든 질서가 같다. 프레임이 같고 플랫폼이 같다. 모든 생선이 같은 의사결정의 도마에 올려진다.
원자론은 우주가 성립하려면 모든 존재의 기본요소가 같아야 한다는 아이디어다.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의 의사결정 방법은 같아야 한다. 세상이 원자로 되어 있다면 동시에 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어야 한다. 같은 아기가 태어난다면 같은 자궁이라야 한다.
구조와 원자는 동시에 성립하지만 구조가 먼저다. 안과 밖은 동시에 성립하지만 안이 먼저다. 빛과 어둠은 동시에 성립하지만 빛이 먼저다. 발견이 발명에 앞서고 추상이 구상에 앞선다. 성질이 물질에 앞서고 생각이 언어에 앞선다. 동사가 명사에 앞선다.
안이 먼저다. 안은 그냥 있고 밖은 누가 건드려야 있다. 동사는 그냥 있고 명사는 관측자가 있다. 껍질은 알맹이를 보호한다. 원자는 구조의 껍질이다. 껍질은 환경의 간섭에 따른 이차적 존재다. 원자는 구조의 포장지다. 존재는 동이고 정은 동의 교착이다.
최초의 DNA는 안이다. 세포벽이 생겨야 비로소 독립적인 생물이 된다. 그러나 세포벽 없이도 생명은 존재한다. 바둑판 없이 바둑을 두는 사람도 있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가 없어도 존재한다. 하드웨어가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할 뿐이다.
형태는 관측자 혹은 상호작용 대상에 전달하는 과정에 유도된 것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형태가 없다. 궁극적으로 우주에는 에너지의 방향전환에 따른 방향전환의 결맞음과 결어긋남이 있다. 우리는 결어긋남을 원자로 안다. 그것은 존재의 절반이다.
인류는 밖을 보는 사고에서 안을 보는 사고로 바꾸어야 한다. 존재는 안에서 스스로 움직인다. 바깥의 존재는 매개된 존재다. 매개에 붙잡혀서 왜곡된다. 붙잡힌 가축과 야생동물은 다르다. 에너지를 가지고 내부에서 스스로 방향전환을 하는 점이 다르다.
###
구조와 원자
구조 - 원자
내부 - 외부
공유 - 사유
도마 - 생선
동動 - 정靜
원본 - 복제본
결정자 - 전달자
결맞음 - 결어긋남
소프트웨어 - 하드웨어
동은 자연의 모습이고 정은 관측의 매개에 붙잡혀 왜곡된 거짓이다. 빛은 존재하고 그림자는 관측된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자다. 빛을 본 사람은 없다. 인간의 뇌에 새겨진 상은 뇌가 해석한 2차적 존재다. 우리가 본 것은 뇌 안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동사는 자연의 모습이고 명사는 인간이 명명한 관념이다. 변화는 자연의 진실이고 불변은 인간이 읽어낸 패턴이다. 자연은 변화하는데 사람들은 거기서 규칙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존재라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언가를 봤다면 잘못 본 것이다.
우리는 겉이 움직이고 속은 불변한다고 믿지만 착각이다. 변화는 내부에 숨은 동動을 들키는 것이다. 겉의 육체는 움직이지 않아도 속의 마음은 움직인다. 겉의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아도 속의 심장은 언제나 뛰고 있다. 멈춘 자동차도 시동이 걸려 있다.
선과 악
빛과 어둠
진보와 보수
합리와 실용
동사와 명사
발견과 발명
추상과 구상
체體와 용用
머리와 꼬리
원인과 결과
전체와 부분
엔진과 바퀴
본本과 말末
활과 화살
세상 모든 대칭되는 것이 그러하다. 구조와 원자의 관계는 다른 모든 것에 적용된다. 모든 이항대립된 것은 머리와 꼬리, 전체와 부분, 입력과 출력의 관계다. 둘은 대칭이면서 비대칭이다. 외부 관측자에게는 대칭되면서 내부에서 자체로는 비대칭이다.
물레는 방아를 돌리지만 방아는 물레를 돌릴 수 없다. 에너지는 방향이 있어서 역주행을 못한다. 물레는 수압이 있고 방아는 없다. 선은 사회화의 압력이 있고 악은 없다. 산 것은 호흡이 있고 죽으면 없다. 자발적 에너지의 유무에 따라 차원이 다르다.
###
압박의 법칙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내부구조다. 답은 내부에 있다. 안을 봐야 하는데 인간은 밖을 본다. 관측자가 밖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눈으로 본다면 자연히 외부를 보게 된다. 존재는 안과 밖이 있다. 안은 구조가 있고 밖은 단위가 있다. 인간은 언제나 밖의 단위를 본다. 안에서 결정된 것이 밖으로 전달된다. 내부의 결정자를 보지 못하고 외부의 전달자를 보는 것이 모든 오류의 원인이 된다.
과학은 안을 보는 것이다. 과학자는 물질을 쪼개서 내부를 보지만 역시 밖을 보게 된다. 안을 본 사람은 없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부는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안이 있으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신의 신은 누구냐 하는 질문과 같다. 멈추는 지점을 찾지 못하므로 포기하게 된다. 사물을 쪼개면 멈추지 않아서 곤란하지만 사건을 쪼개면 0차원에서 복제가 멈추고 해결된다.
헤겔의 정반합.. 정과 반의 대칭이 합의 닫힌계 내부를 구성한다.
석가의 연기법.. 세상은 내부에서 서로 의존하며 맞물려 돌아간다.
대승불교의 공즉시색.. 공은 알 수 없는 안이고 색은 눈에 보이는 밖이다.
노자의 이유극강.. 내부의 에너지는 무르고 외부에 드러난 형태는 단단하다.
플라톤의 이데아.. 내부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무언가를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다.
갈릴레이의 관성.. 외부에서 건드리면 내부의 관성이 저항한다. 내부에 무언가 있다.
과학의 에너지.. 안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내부다.
안의 문제를 생각한 사람도 더러 있지만 문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안을 살피지는 못했다. 헤겔의 정반합은 방향이 틀렸다. 정과 반으로 쪼개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합이 정과 반으로 쪼개지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갈등은 있었다. 전쟁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갈등을 드러냈을 뿐이다. 정과 반은 원래부터 합 속에 대칭되어 붙잡혀진 존재의 본질적인 모순이다.
석가의 연기법은 나름 구조적이지만 외부의 관계에서 내부의 구조로 도약하지 못했다. 정과 반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소멸한다. 정과 반을 통일하는 닫힌계 개념이 있어야 존재의 내부로 쳐들어갈 수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제자리를 맴돌며 순환의 오류를 저지른다. 자연의 존재는 언제나 공에서 색으로 화살을 보낸다. 색에서 공으로 거슬러 가는 것은 인간의 인식에 비친 그림자다.
노자의 이유극강에서 유는 안이고 강은 밖이다. 안이 밖을 이긴다. 내부 결정자가 외부 전달자를 이긴다. 더 나아가야 한다. 근원에 는 유가 있을 뿐 강은 없다. 강은 유의 결어긋남이 만든 패턴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먼 곳에서 찾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입구를 찾지 못하고 밖에서 겉돈다. 서구정신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적당히 해먹고 버렸다.
갈릴레이는 안을 봤지만 능동적으로 살펴본 것이 아니라 천동설의 공격을 방어하며 얼떨결에 한 마디를 던졌기 때문에 뉴턴이 해설해줘야 했다. 뉴턴은 관성이 존재의 내부라는 사실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에너지라는 말을 쓴다. 에너지는 안에서 일한다는 뜻인데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에너지는 잘 모르는 내부를 얼버무릴 때 쓰는 말이 되었다. 둘러대는 말이다.
밖은 눈으로 보면 되지만 안은 볼 수 없다. 안에는 압력이 걸려 있다. 껍질을 까면 압력은 사라진다. 과학이 사물을 쪼개서 본다. 쪼개면 압력이 사라진다. 과학은 산 것을 죽여서 보고, 움직이는 것을 세워서 보고, 연결된 것을 단절시켜 본다. 사건의 전모를 보지 못한다. 닫힌계를 열린계로 바꾸면 내부 자체 질서가 사라진다. 내부을 보는 방법은 사물의 쪼개기가 아니라 사건의 복제다.
내부에는 압력이 있다. 자체 질서가 있고 방향과 순서가 있다. 대칭과 축이 있고 방향전환이 있다. 엔진이 있고 동력이 있다. 자발성이 있고 의사결정구조가 있다. 메커니즘이 있고 한 줄에 꿰어져 있다. 구조가 밖으로 나온 것이 관계다. 관계와 구조는 동전의 양면이다. 앞에서 유혹하면 관계다. 뒤에서 등을 떠밀면 구조다. 관계는 우연이고 구조는 필연이다. 우리는 필연을 통제할 수 있다.
###
관성의 법칙
앞에서 당기는 것은 가짜고 뒤에서 미는 것이 진짜다. 이 하나의 규칙만 알아도 멀고 험한 이 세상 길을 헤쳐갈 수 있다. 척력은 진짜고 인력은 인간의 착시다. 비트코인의 본질은 대안화폐의 유혹이 아니라 세금추징의 압박이다. 뭐든 유혹은 시들해지고 압박은 먹힌다.
좌파가 주장하는 최저임금, 기본소득, 탈원전, 품성론, 성찰, 진정성, 채식주의, LGBT, PC정책, 유기농, 신토불이, 생태주의는 유혹이다. 유혹은 관심을 끌 뿐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다. 우파의 중국공포증, 세금공포증, 부동산공포증은 물리적 압박이다. 의외로 쉽게 먹힌다.
면전에서 유혹하고 설득하는 것은 가짜다. 등 뒤에서 쫓아오며 추궁하는 것이 진짜다. 관성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닫힌계에 갇혀 있다. 붙잡혀 있다. 붙잡고 있는 토대를 허물지 않는 이상 방향전환을 못한다. 미는 힘은 기대고 있는 벽을 허물어서 성공한다.
사람은 이득을 바라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피하여 움직인다. 남녀가 좋아서 결혼하는게 아니라 부모에게 신세를 지는 생활이 지겨워서 탈출한다. 당사자에게 질문하면 미래가 좋아서라고 대답하지 현재가 싫어서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부모에게 실례가 되니까.
여럿은 가짜고 하나는 진짜다. 질문하면 희망, 욕망, 의지, 신념, 목적, 동기, 사랑, 행복 따위를 말하지만 여럿은 가짜다. 그것은 추상적 관념이다. 실제로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은 등 뒤에서 미는 스트레스다. 집단 무의식의 압박이다. 24시간 지속되는 물리적인 고통이다.
부족민이 가난한 이유는 압박이 없기 때문이다. 압박할 가족이 없거나 희미하다. 부족사회에 정신적으로 의지하며 부족을 떠나지 못한다. 미국의 흑인이 성공하여 할렘가를 떠나 백인마을로 이주하는 것은 힘든 결정이다. 성공의 유혹은 약하고 부족의 고리는 강하다.
선택되는 것은 가짜고 수렁에 빠지는 것은 진짜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빠져서 수압을 느껴야 한다. 잠수를 먼저 배우고 헤엄을쳐야 한다. 자전거 타기를 배우려면 속도를 높여서 관성의 압박을 느껴야 한다. 자전거를 핸들링하는게 아니라 관성을 핸들링하는 것이다.
영어가 어려운 이유도 압박은 문장에 있는데 단어만 공략하기 때문이다. 압박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하나로 동화되지 못하고 압박을 끊어내지 못하면 거기서 탈출하지 못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보이지 않게 닫힌계가 걸려 있고 압박이 있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전체에는 부분의 합에 없는 것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압력이다. 압박이 걸리면 무게중심을 향해 정렬한다. 관성을 만드는 내부의 질서다. 이기려면 상대방의 관성부터 꺾어야 하고 변하려면 관성의 흐름에 올라타서 압박을 받아들여야 한다.
압박은 방향이 있다. 에너지가 한 지점에 모인다. 에너지의 방향을 알면 직관할 수 있다.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고 사건의 전모를 본다. 하나를 알아서 열을 복제할 수 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이후 순조롭게 된다. 모든 잘못된 것은 압박하지 못하고 나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