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바리새인들의 율법은 행위고, 예수께서 말씀하는 율례는 그리스도 예수의 그림자다.
나. 세상 물질(돈)에 대하여
다. 물질(돈)은 참 십일조가 되지 못한다.
2. 본론
가. 바리새인들의 율법은 행위고, 예수께서 말씀하는 율례는 그리스도 예수의 그림자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마 5:17).”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구약의 율법과 바리새인들이 해석한 구약의 율법과는 크게 다르다. 바리새인들이 해석한 구약의 율법은 그들의 행위를 지키려 한 것이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약의 모든 율례는 앞으로 나타날 그리스도 예수의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 하나 되기 위한 그림자였다.
구약의 모든 율례는 각자 안에 세워질 근본 하나님께서 거하실 몸 된 성전을 지향하고 있다.
나. 세상 물질(돈)에 대하여
누가 이 세상의 제물을 가지고 가까이 있는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빛이 어찌 그 속에 거할 수 있겠는가! 마음의 바탕은 욕심이 없어야만 새 언약의 씨앗이 새 마음 밭(옥토 밭)에서 자랄 수 있다.
율법(그림자)에 따라서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드리는 것이 아니다. 주위에 어려운 형제가 있으면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이다.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에게는 나의 수중 안에 있는 것은 물질이든 그 무엇이든 다 내 것이라고 하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함을 비사와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다. 세상 것들이 다 내 것이라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으면 아직 애굽 땅(에레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증거다. 애굽 땅이 자신의 의지처가 되어 사는 것은 겉 사람의 행위다.
다. 물질(돈)은 참 십일조가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비움(無我)의 도에 참여한 우리는 빛의 흐름 안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이며,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마 25:41~45).
주는 자나 받는 자가 일반인 것은 하나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의 기본자세다. 물질(돈)은 참 십일조가 되지 못한다. 참 십일조가 된 자는 욕심을 내지 않고 물질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눔을 통해서 하나 된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그냥 성경을 덮고 세상의 길을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서 세상에서도 잘 누리고 천국에도 가고자 하지만, 절대로 두 주인을 섬겨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두 주인 중 한 주인은 우리의 몸 된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며, 다른 한 주인은 불의의 재물로 번역된 ‘맘모나’ 곧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양식으로 삼는 겉 사람이다. 곧 겉 사람은 정과 욕심을 비유한 것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