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휘깊은아카데미 김정애 대표
‘기록이 쌓여 역사가 된다’ 문화유산으로 미래 인재를 키우는 사람들
불휘깊은아카데미는 인천 검단신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국가유산지킴이 활동부터 IT와 AI를 융합한 문화예술교육, 영상 제작, 책 발간, 다문화가정 한국어교육, 작은도서관 운영까지 다방면에서 활동중이다.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어린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대상층이 폭넓다.
모든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동대장은 김정애 불휘깊은아카데미 대표. “저희는 인천의 뿌리를 찾고 우리 역사를 오감으로 배우는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알아가며 미래의 문화유산 보호 주체로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죠.”
과거 – 현재 - 미래를 잇다
인천의 문화유산을 주제로 한 포럼, 백일장과 UCC 대회,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건 참가자들의 기록화 작업이다.
“기록이 쌓여 역사가 된다는 게 저의 오랜 소신입니다. 청소년들이 배우고 경험한 걸 오래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소환할 수 있도록 그림책, 웹툰,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로 남기고 있습니다.”
불휘깊은아카데미의 기록화 작업은 시대 변화에 맞춰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다. 최근에는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전통적인 아날로그 활동을 디지털 작업과 접목해 참가자들의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글쓰기, 그림, 디자인, 영상 제작, 웹과 앱 개발을 두루 할 줄 아는 멀티플레이어 김정애 대표의 역량과 열정이 자양분이 돼서 불휘깊은아카데미가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리고 공익적인 가치를 꼿꼿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Q. 문화유산지킴이 활동을 이끌고 초중고에서 강좌를 진행하며 작은도서관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바지런하게 활동 분야를 넓혀왔습니다. 불휘깊은아카데미의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저는 인천 토박이인데 나고 자란 동네에 애착이 커요. 검단은 선사시대 유적이 많은 곳이에요. 제 딸과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두 아이를 데리고 검단 일대를 답사했어요. 검단 대곡동 지석묘를 둘러봤으면 집에 돌아와 유래를 찾아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는 식으로 수년 동안 차곡차곡 문화유산 자료를 모았어요. ‘마을의 뿌리’에 대한 탐구였던 셈이죠.
제 활동이 입소문 나면서 참여하고 싶다는 가족들이 생기더군요. 함께 유적지 둘러보다 쓰레기가 있으면 줍고 풀이 무성하면 낫을 가져가 잡풀을 베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문화유산 보존, 활용으로 이어졌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나중에는 교육청에서 저희 활동에 관심을 보였죠. 이 같은 풀뿌리 활동이 불휘깊은아카데미의 출발점이 됐어요.
Q. 2013년, 제1회 불휘깊은문화재포럼을 열어 참여한 청소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고 지역 사회의 주목을 받았죠?
여러 해 동안 활동하며 문화유산에 대한 앎과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온 아이들에게 ‘큰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첫해 포럼 주제는 석조 문화재였어요. 이 일대에는 돌무덤과 종가가 많아요. 성씨에 대해 조사하고 석조 문화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그동안 모니터링하고 토론한 내용, 각자의 견해를 정리해 발표했어요. 제대로 격식을 갖춘 포럼을 진행했고 온라인으로 생중계했어요. 자료집도 따로 발간했지요. 그 후로 인천의 영종진, 조세이 탄광, 생물자원 등 매년 주제를 달리해 포럼을 열었습니다.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행사 당일 상영할 축하 영상도 교육감, 시의원, 시장을 직접 찾아가 취지 설명하고 인터뷰를 촬영하도록 했어요.
직접 경험하고 프리젠터로 무대에 서서 본인의 견해를 밝히며 주변 사람들에게 격려받으면서 아이들은 의젓하게 성장하더군요.
경험에 그쳐서만은 안돼요. 저는 아이들에게 보고 듣고 느낀 걸 ‘단 한 줄’이라도 써보라고 해요. 기록의 형태는 글, 그림, 영상 등 다양합니다. 글과 그림이 결합하면 그림책이 되고 영상 촬영해서 편집하면 영상 다큐가 되죠.
Q. 청소년들과 함께 제작한 조세이 탄광 마지막 생존자 영상 다큐는 귀한 증언 인터뷰라 여러 방송사에서 협조 요청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기록이 역사’라는 걸 아이들이 실제로 겪은 사례군요.
조세이 탄광 사고의 마지막 생존자인 김경봉 옹 인터뷰는 저희에게 의미가 남다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2년 일본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조세이 탄광의 해저 갱도가 붕괴되면서 한국인 노동자 130여 명이 사망했어요. 일본의 축소 은폐로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다가 1990년대에 조선인 희생자 명부가 발견되면서 사고의 실체가 알려지게 됐어요.
저희는 제2의 군함도 사건으로 불리는 조세이 해저 탄광 사고를 깊이 있게 다뤘어요. 탄광 사고를 모티브로 쓴 동화 <검은 바다>의 문영숙 작가를 초대해 만남의 자리도 가졌지요. 사고 생존자인 김경봉 옹과 인연이 닿아 댁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탄광 노동자로서 비참했던 삶과 탄광 사고 당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죠. 김 옹이 돌아가신 뒤로는 저희 영상이 조세이 탄광 사고 최후의 생존자 인터뷰가 됐어요. 영상 저작권이 저희에게 있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탄광 사고 증언 영상 자료가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해와요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클릭)
김정애 대표는 ‘지식 큐레이터’다. 교육학, 국문학, 미술, 상담, 한국어 교육 등을 전공했고 한국어 교원, 평생교육사, 사회복지사, 문화예술교육사 등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IT개발자로 일했기 때문에 웹과 앱 제작에 능하고 영상물과 웹툰, 애니메이션도 제작한다. 등단 시인이며 기자로 활동도 했고 시청자미디어재단 소속 미디어교육 강사로 활동한다. 열정적인 팔방미인의 재주는 불휘깊은아카데미의 여러 활동에 요긴하게 사용된다.
Q. ‘불휘깊은아카데미’ 이름에는 한국인의 뿌리를 잘 알고 각자의 삶에 건강하게 뿌리 내리라는 김정애 대표님의 철학이 담겨있네요. 평생 배움을 실천하고 있는 것도 뿌리 깊은 삶을 위해서인가요?
제가 가장 잘하는 건 공부하고 남을 가르치는 거예요. 중고등 시절에는 학습부장을 도맡았고 대학 때는 야학 교사로 활동했어요. 첫 전공이었던 교육학을 시작으로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대학에 편입해서 여러 전공을 공부하며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학사학위만 4개이죠. ‘능동적인 배움’은 제 어머니의 유산입니다. 자식들에게 모르는 건 아는 사람을 찾아가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걸 실천으로 일깨워 주셨거든요.
불휘깊은아카데미에서는 다채로운 배움의 장이 열려요. 인천을 제대로 알고 가꿔갈 수 있도록 마을학교, 문화유산지킴이 활동을 진행해요. 저희는 2014년부터 줄곧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지킴이활동 우수 사업으로 선정됐어요.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작가와 만남의 자리도 꾸준히 열고 성인 대상으로는 한국을 비롯해 지구촌 전통놀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집니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는 한국어 교육을 해요.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구성합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한 번 배우고 경험한 게 ‘앎’으로 연결되기는 힘들어요. 아이들이 미래의 문화유산의 보호 주체로 성장하려면 꾸준한 활동과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죠. 불휘깊은아카데미가 활동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거죠.
Q. 학교로 찾아가는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인천의 역사, 지역의 국가유산에 관한 교육 콘텐츠를 오랜 시간 쌓아왔고 강사진도 계속 양성했어요. 앱으로 소개하는 우리 마을, 북트레일러 제작하기, 웹툰 그림책 만들기, 샌드아트로 만드는 그림책, 국가유산 소개 영상 제작,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점자 활용 그림책 만들기 등 자체 프로그램이 다양합니다.
제가 IT개발자 출신이라 코딩 같은 IT 기술을 접목해 앱북, 디지털 키링북을 만들 줄 알아요. 가령 인천 대곡동에 500년 된 은행나무를 소재로 웹툰을 그리고 오디오를 넣어 완성한 자그마한 디지털 키링북은 스마트폰과 연동시키면 화면에 스토리북이 재생됩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초중고에서 진행하면 학생들의 호응이 높아요.
코로나를 기점으로 청소년들의 체험 활동이 교내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저희는 학교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 과정에 포함된 ‘마을 알기’를 저희가 담당합니다. 인천의 역사를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재해석’을 강조해요. 마을의 역사, 국가유산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글, 웹툰, 영상 등의 도구로 창의적으로 담아낼 수 있도록 가이드합니다.
올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이 된 해라 인천 출신 교육자로 한글 점자를 만든 박두성 선생에 관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오랫동안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운영 경비는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요? 국가유산청, 경인거점센터에 건의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교육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지자체, 정부 기관과 KT&G 등의 기업체 지원 사업에 매년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으로 저희가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 단체 회원은 약 200명입니다. 회원 연회비가 1만 원이지만 회비를 내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사무실 운영비는 제가 학교와 기관에서 진행하는 강사비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사업 기획, 제안서 작성, 프로그램 홍보와 진행, 회계 처리, 결과 보고서 작성까지 제 책임 비중이 커요. 단체가 지속성을 가지려면 추가 인력에 대한 인건비 지원이 필요합니다.
Q. 김정애 대표가 불휘깊은 아카데미를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우리 역사, 지역의 국가유산을 화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보니 도서관을 열고, 출판사, 영상˙앱 제작사까지 운영하며 일이 확장됐어요. 영상 다큐로 상도 받았고요.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저희 단체를 거쳐갔는데 다들 자신의 활동에 자부심이 컸어요. 성인이 돼서 문화재단 등에서 일하기도 해요. 저의 바람은 이 아이들이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제 몫을 하는 겁니다.
제 인생 모토는 ‘하면 된다’입니다. 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해보면 지금보다는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 긍정의 의미를 담고 있죠. 끊임없이 뭔가를 배우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건 지금까지의 활동을 총망라한 박물관을 여는 거예요. 꿈을 향해 매일 앞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인천 검단구 원당대로 860, 보람프라자 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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