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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엄청난 대격변
진리가 정말 믿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보일루(Nicolas Boileaul-
과거에 지구에서 발생된 큰 격변들은 평범하게 일어나는 오늘날의 사건들에 비하면 너무나 이상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본 장에서는 과거에 이러한 엄청난 대격변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인정하게 되었는지, 만약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면 어떻게 해서 그랬는지 그리고 이러한 주요 격변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재인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아울러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대홍수를 포함한 몇 가지 실례를 살펴보려고 한다.
최근에 있었던 격변의 역사
1923년, 자존심이 강한 브레츠(Harlen Bretz)라는 지질학자가 한 특이한 지형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미국 워싱턴 주 남부 지역 약 40,000km²의 지표면에는 과거에 엄청난 물이 흐른 거대한 하도(河)의 흔적이 있는데, 어떤 곳은 강폭이 수 km에 이르고, 그 사이에는 작은 언덕을 이룬 뷰트(butte, 孤山)들이 즐비하게 솟아 있는가 하면, 깊이 패인 가파른 협곡을 이루기도 하고, 또 단단한 화산암들이 보이는 등 지형 자체가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거대한 하도는 일반 하천이 갖고 있는 깊게 패인 V자곡 모습과는 달리, 때로는 하천의 양안이 급경사를 이루지만 바닥은 평평한 모습을 갖고 있다. 더구나 물이 흘러서 쌓인 자갈더미들이 높낮이가 다른 강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또한 과거에 폭포가 흘렀던 흔적이 수백 개나 있는데, 어떤 것은 높이가 무려 100m나 되고 그 밑에는 물에 패인 깊은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는 등 한 마디로 너무나도 특이한 지형이다. 이렇게 이상한 지형이 과연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브레츠는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 후 약 40년 동안 지질학적으로 전개된 뜨거운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와 관련된 첫 논문에서 브레츠는 이러한 지형 형성의 주요 원인이 홍수와 같은 격변)일 것이라는 자신의 심증)을 표현하지는 않고, 다만 이러한 지형이 생기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있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에 출판된 두 번째의 논문에서는 엄청난 대홍수, 그것도 아주 짧은 기간에 갑작스럽게 발생해야만 그와 같은 지형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낱낱이 밝혔다. 이러한 대홍수가 그 지역을 완전히 휩쓸었고, 침식 작용으로 하도가 형성되었으며 자갈로 이루어진 언덕을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하였다. 3)
그 당시만 하더라도 고기후(候)를 논할 때, 격변과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강하게 거부되었으며, 브레츠 또한 이것을 모를 리 없었다. 따라서 모든 지질학적 변화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는 동일과정설(同一過, uniformitarianism)만 오르지 용납되던 때였다. 지질학자들은 화산활동과 지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것들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다른 지질학적 변화들도 아주 서서히 진행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만 하였다. 주로 갑작스런 격변에 의하여 지질학적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격변설(激, catastrophism)은 저주받을 것으로 금기되어 왔다. 현재도 많은 과학 분야에서 창조와 관련된 어떤 사실을 발견하면 그 자체를 금기시하고 전혀 그럴 수 없는 것으로 완전히 무시된다. 지질학계는 학문적으로 노선이 다르고 까다롭게만 보이던 젊은 브레츠의 주장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어야 했는데도 역시 그들의 눈에는 브레츠의 개념도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연관된 이단적인 것으로 비춰겼기 때문에 반대를 당한 것이다." 당시에 지질학계가 브레츠의 이론을 용납한다면, 이것은 격변설로의 복귀와 함께 지질학의 암흑시대'로 후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시카고 대학교 지질학 교수인 브레츠가 연구와 저술활동을 계속함에 따라 일부 지질학자들은 외고집쟁이 동료 교수 브레츠의 주장을 한번 적용시켜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1927년 워싱턴디시 지질학회(Geological Society of Washington, D.C.)에서는 브레츠를 초청하여 그의 견해를 들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홍수가설의 토론을 위한 진지한 모임"이라는 특별한 주제로 특별한 세미나가 이루어졌다." 브레츠의 발표가 끝나자 유명한 미국지질조사회(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의 회원 5명은 그의 주장에 반대를 표명하면서 빙하를 비롯한 느리게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였다." 그들 중 2명은 그 지역을 방문해 본 일조차 없었다.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느라 지쳐 버린 브레츠는 결론적으로 "나의 주장이 지금은 독단적이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점점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브레츠의 주장 중에서 가장 의문이 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렸는데, 그것은 이러한 지형을 만들어 놓은 물이 갑작스럽게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겉보기에 이 모임은 누구에게도 확신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참석자 대부분에게 격변적인 홍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 수년 동안, 지질학계는 브레츠 모델에 대한 대안(代案)을 작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매달렸다. 브레츠 자신의 말처럼 "반론은 온건하게 제기되었지만 단호히 분쇄되었다. "9) 탐사현장의 암석들이 격변론적 해석에 대한 많은 증거를 보이고 있음에도, 두 견해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해서든지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브레츠와 몇몇 학자들은 홍수를 일으킨 물의 근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거에 동쪽으로 뻗어 있던 미졸라(Missoula) 호수가 한때는 2,100km의 물을 저장하고 있었다. 옛날에 빙하 때문에 이렇게 큰 호수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는 몇 가지 증거가 있었다. 갑자기 얼음댐이 파열되면서 호수가 붕괴되고 그 물이 주변의 저지대를 덮치고 갑작스러운 침식을 일으켜 현재의 미국 서부 지형을 형성하게 된 홍수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그 이후의 지질학자들이 미졸라 호수와 서쪽으로 향해 흐르고 있는 하천 주변에서 발견된 거대한 연흔, ripple mark)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사암층의 하상河)에 나란한 줄무늬처럼 패여 있는 연흔 자국을 간혹 보았을 것이다. 대부분은 파장이 수 cm밖에 되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도, 미졸라 호(湖) 바닥과 서쪽으로 돌진한 홍수의 연흔은 그 규모가 너무나 엄청나서 높이만도 15m이고 봉우리에서 봉우리까지의 파장이 150m에 이른다. 이러한 모양의 지형이 만들어지려면 엄청난 물이 갑작스럽게 이동한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근래에는 이에 대하여 더욱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어떤 학자들은 최소한 8번 이상의 홍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7.2km의 물이 시간당 180km의 속도로 돌진하였고, 단 몇 시간 혹은 며칠 사이에 단단한 화산암으로 된 깊은 하천 바닥을 침식했다는 홍수 메커니즘을 제시하였다. 12)10)
지질학계의 많은 학자는 암석 자체를 철저히 연구하여 얻어 낸 브레츠의 독보적인 해석을 결국에는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1965년 국제 제4기 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Quaternary Research)에서는 브레츠가 주장한 지형에 대한 답사 팀을 조직하였다. 그 당시에 브레츠는 형편상 답사 팀에 동행할 수 없었지만, 한 참가자로부터 "우리는 지금 모두가 격변론자들이다."라는 격려와 안부의 전보를 받았다. '3) 또한 1979년 브레츠는 미국의 가장 훌륭한 지질학 공로자에게 수여되는 펜로즈(Penrose) 메달을 수상하였다. 브레츠는 마침내 승리하
였고 또한 격변설을 확립하였다. 그래서 현대판 '노아홍수' 또는 이와 비슷한 원치 않은 홍수가 과거에 있었음이 입증되었다.
격변설과 동일과정설
지구의 과거 지질 역사에 대한 해석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대립사상은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이다. 격변설(說, catastrophism)은 지구상에 일어난 대규모 지질학적 사건들은 단기간의 갑작스러운 격변에 의하여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고, 동일과정설同過, uniformitarianism)은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지표상의 미미한 변화가 과거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일어났으며, 기나긴 세월을 지나면서 이러한 변화들이 누적되어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는 학설이다. 동일과정설은 지구상의 거대한 지층을 설명함에 있어서 지구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성경 기록을 전적으로 부인한다. 하지만 성경의 노아홍수는 아주 갑자기, 빠르게 진행된 격변설에 대한 가장 적절한 보기이다. 동일과정설에서는 현재는 과거를 푸는 열쇠이다.'라는 표현과 같이, 지표면의 변화가 얼마나 서서히 일어났다고 주장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격변설과 동일과정설의 낱말 뜻은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우리가 단순히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냥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일반적인 의미로만 사용하였다. 14)
인류 역사를 통하여 격변설은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왔다. 15) 특히 그리스나 로마의 고전 그리고 아주 오래된 신화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세에는 이러한 사상이 다소 퇴조하였지만, 아라비아 사람들은 격변을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였다. 르네상스는 특히 성경의 노아홍수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갖게 하였다. 학자들은 산에서 발견된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화석을 격변의 결과라고 곧잘 설명하였다. 17, 18세기에는 주로 성경의 천지창조와 홍수 기사를 과학과 조화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지만, 때로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처럼 지구는 뜨거운 상태에서 냉각되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홍수가 어떤 자연 현상으로 발생되었거나 또는 현재의 모든 퇴적암층이 홍수 때 모두 형성된 것은 아닐 것이라는 등 정통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정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는 지구상에는 과거 여러 차례 격변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로모노소프(M.V.Lomonosov, 1711~1765), 영국의 허튼(James Hutton, 1726~1797)과 그의 후원자인 스코틀랜드의 플레이페어(John Playfair, 1748~1819)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동일과정설을 주장하였다. 특
히 허튼과 플레이페어는 동일과정설의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그 당시에 버클런드(William Buckland), 세지웍(Adam Sedgwick), 코니베어(William Conybeare), 머치슨(Roderick Murchison) 등과 같은 영국의 저명한 학자들은 성경의 홍수 기록을 강력하게 지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어떤 책보다도 지질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이 출판되었다.
라이엘(Charles Lyell)은 1830년에 출판된 자신의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에서 동일과정설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 책은 11판이 거듭되면서,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자신이 소개한 것처럼, 16) 지금까지의 격변사상으로부터 동일과정설로 지질학 풍토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또한 지질학계뿐 아니라 과학 분야의 전반에 걸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윈(Charles Darwin)도 비글호의 탐사 항해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소중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세기 중엽까지 동일과정설은 가장 지배적인 학설인 반면에, 격변설은 점점 쇠퇴하기에 이르렀다.
... 라이엘의 책이 성공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한 그의 집요한 노력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스크로프(Poulett Scrope)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러한 면이 잘 나타나 있다. "나는 혹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나 않았는지 걱정된다. 그대가 사람들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현시대의 솔직공정함과 관용정신에 찬사를 보냈더라면 감독이나 성인 군자들 모두가 우리 편에 가담해서 옛날이나 지금의 물리신학자[격변론자]들을 지탄하였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때이다. 정말 그대에게는 계간평론(Quarterly Review)이 있지 않는가! ...만일 출판인 머리(Murray)가 내 책의 출판을 밀어붙이고, 그대가 계간평론'의 지질학 칼럼을 이용한다면 우리는 단시간에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18)
자신이 바라던 대로 라이엘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 설령 일반인들의 견해까지는 바꾸지 못했을지라도 지질학계의 분위기만큼은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후 100년 이상 지질학계는 격변설에 기초한 지질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러한 패러다임이 확립된 경위를 회고하면서 하버드 대학교의 굴드(Stephen J. Gould)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찰스 라이엘은 변호사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책은 사건을 공정하게 보는 시각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색채를 띠고 있다. 라이엘은 격변설이야말로 기적쟁이들이 지구 역사가 단 몇 천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모세의 연대기를 어떻게든 고집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케케묵은 이론이라고 헐뜯었다. 내가 생각해 볼 때, 이름 있는 과학 잡지들이 지금까지 격변설에 관해서는 항상 불공평하고 부정적인 특징들만 부각시키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본다.""19)
20세기 중엽에 와서 일부 과학자들은 엄격한 동일과정설이 암석으로부터 얻어진 자료들과는 모순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앞에서도 브레츠 사건에 대하여 언급했지만, 그는 지각의 변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된 증거들을 발견하였다. 다른 학자들도 하나의 퇴적층에서 얕은 물과 깊은 물에 의해서 형성된 결과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20 점진적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동시에 이러한 두 층이 어떻게 함께 섞여 있을 수 있을까? 해답은 이렇다. 물속에서의 갑작스런 이류), 다시 말해서 연안(沿岸)으로부터 깊은 물속으로 급작스럽게 흘러들어 간 걸쭉한 진흙물의 이동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진흙물의 급격한 흐름을 저탁류濁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흐름은 저탁암(底濁岩, turbidite)이라고 하는 특이한 퇴적층을 형성한다. 놀랍게도 저탁암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21) 이러한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서 학자들 중에는 심지어 고(高)에너지 우주선이 갑자기 지구로 유입되어 대량 멸절을 초래하였고, 22) 극지방의 담수 갑자기 해양으로 유입된 또 다른 격변을 제안하는 학자들까지 생겨나가게 되었다. 23) 이러한 모든 이론들은 동일과정설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동일과정설 설명의 특징은 그것이 암석 자체의 연구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암석 속에 있는 화석들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왜 공룡들이 백악기말에 갑자기 사라졌는가, 또 다른 지층들에서도 왜 대량멸절의 증거가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다. 25) 학자들은 이에 대한 어떤 합리적인 해답을 찾아야만 하였다. 그래서 공룡들이 굶어 죽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독버섯을 먹었다거나 건초열에 걸려서 멸종되었다는 등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공룡의 멸종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만한 결론 없이 미궁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 노벨상 수상자인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앨버레즈(Luis Alvarez)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20) 세계 여러 곳의 상부 백악기층에서 이상하리만큼 많은 이리듐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소행성들이 지구와 충돌한 결과이며 이 충격으로 공룡들이 멸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공룡과 다른 생물이 화석층에서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은 광범위한 화산활동으로 지구 전체가 화염에 쌓였거나, 혹은 소행성이 아닌 혜성과 충돌하였다고 주장하였다. 2) 그 세부 과정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었지만, 격변의 가능성에 대한 빗장은 점점 열리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의 과학 문헌에서는 갑작스런 격변과 관련된 논문들이 광범위하게 발표되고 있다.
좀 더 근래의 격변 사상에서는, 혜성이나 소혹성이 지구와 충돌하면 8km에 이르는 파도를 일으키고, 28) 지표면 수백 km 위까지 안개가 자욱한 물기둥이 튀어오른다고 말한다. 29) 또 다른 사람들은 폭발 시의 충격으로 500℃의 뜨거운 돌풍이 시속 2,500km로 퍼져 나가면서 지구 생명체의 절반을 소멸시키고, 또 지표면이 높이 10m의 파도처럼 진동하는 엄청난 지진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지표면이 갈라져 10~100km의 틈새가 생기고 갑작스럽게 산들이 형성될 것이라는 이론도 포함하고 있다. 30 심지어는 이러한 충돌 때문에 지질시대의 곤드와나 초대륙이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3)
이처럼 빠르게 격변설로 복귀되었지만, 지질학적으로 성경의 노아홍수가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2백년 전의 고전 격변설과는 사뭇 다르게 인식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근래에도 어떤 지질학자들은 지구 대기권 밖에서 발생하는 소행성의 충돌이 창세기 노아홍수의 원인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32 현재 지질학계에서는 갑작스럽게 발생된 주요 격변들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단 1년 동안에 일어난 성경의 노아홍수와는 대조적으로, 과거에 수많은 격변들이 발생하였고, 노아홍수도 그중의 하나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새로운 격변설을 뜻하는 신격변론(neocatastrophism)은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과거의 격변설 혹은 격변론과 구별하기 위한 새로운 용어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홍수 개념의 신흥수론(neodiluvialism)이라는 용어도 격변 기간의 주요 홍수 활동을 표현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33) 어떤 학자들은 격변론적 해석으로의 복귀를 '이념의 대도약'으로까지 표현하였고, 3) '폭풍우가 지질 역사의 주축으로 작용' 하였음이 점점 인식되고 있는 증거라고 평가되었다. 35) 이러한 사고는 홍수기간에 있었던 일련의 폭풍우와 연관시켜 볼 때, 성경의 홍수 모델과도 잘 부합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신격변론은 지질학적으로 의미를 갖고 있는 많은 지형들을 재조명하도록 촉진시켰다. 예를 들어, 종래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서서히 형성되었다고 생각되던 많은 퇴적광상이제는 갑작스런 저탁류(濁)의 결과라고 간주되들이었고, 느린 속도로 서서히 형성된 수많은 산호초 화석들이 쇄설류(流)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재해석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 자체는 성경의 홍수 개념과도 잘 일치하는 것이다. 36)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해석법의 변화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사상가들은 격변설을 계속 인정해 왔지만, 그 후 백여 년 동안에 모든 지질학적 해석에서 격변 사상이 사실상 모조리 지워져 버렸다. 그러나 지금에는 격변설을 다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임의의 선택이나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어떤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지각변동의 보기
정상적인 상태에서 지표면의 변화는 매우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지표면의 변동을 통해서, 주요 변화가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 없다.
침식은 아주 빠르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미국 아이다호 주 동부의 작은 도시에 완공된 지 얼마 안되는 티톤(Teton) 댐에서 물이 조금씩 새기 시작하였다. 물길을 잡지 못하다가 마침내 댐이 갑자기 붕괴되었다. 제방이 무너지고 아래로 돌진하는 물은 불과 한 시간도 못 되어 퇴적층을 100m나 깊게 파헤쳐 놓았다. 37지질학자들은 토질이 단단치 못한 흙으로 댐을 막았기 때문에, 앞에서 브레츠가 말한 하도(河)의 경우처럼 며칠 못 가서 바닥의 현무암층이 드러날 때까지 빠른 속도로 침식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물의 속도가 빨라지면 물의 침식과 운반력은 속도의 3~4제곱배가 빨라진다. 30) 다시 말해서 유속이 10배가 빨라지면 물은 1,000~10,000배의 퇴적물을 파헤쳐 운반하는 힘을 가진다는 뜻이다.
비창조론자들은 때때로 홍수가 일어난 1년 동안에 지층 칼럼이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지층이 두껍다고 들먹거린다. 3)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별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홍수와 관련해서는 지층 칼럼의 맨 밑바닥 부분(선캄브리아대)과 맨 윗부분을 제외시키지만, 지금도 어떤 특별상황에서는 단 몇 주일 내에 지층 칼럼 전체 두께만큼 쌓일 정도로 퇴적속도가 빠른 경우도 있다. 저탁류(濁)는 어떤 한 지역을 불과 몇 분 안에 퇴적물로 덮어 버릴 수 있고, 단 몇 시간에 수천 km²를 뒤덮을 수 있다. 스페인에서 발견된 엄청난 저탁암괴(底濁巖塊)는 부피가 200km나 되는데, 그 두께만도 무려 200m나 된다.) 저탁류 외에도 퇴적물이 신속하게 퇴적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일 1년 동안 계속해서 격렬한 홍수가 일어났다면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퇴적물을 쌓아 놓기에 충분한 것이다.
영국의 해안 도시 도버(Dover)에 있는 백악의 절벽(white cliffs)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작은 미생물들의 화석이 박혀 있는 두꺼운 지층이 쌓이려면 아주 긴 세월이 걸려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지질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퇴적층도 아주 짧은 기간에 충분히 형성될 수 있다. 미국 오리건 주 태평양 연안에 3일 동41)안 극심한 바람과 폭풍우가 불어 닥쳤는데, 해안선을 따라 두께 10~15cm, 길이 32km에 미세한 규조류더미를 쌓아 놓았다. 필자도 캘리포니아의 롬폭(Lompoc) 부근의 아주 두꺼운 규조토에서 상태가 양호하고 아주 잘 보존된 새들과 수많은 물고기 화석을 볼 수 있었다. 이 퇴적물에서 고래도 발견된 적이 있다. 이렇게 화석이 살아 있을 때의 상태로 잘 보존되려면 조직이 분해되기 이전에 빠르게 매몰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미생물들도 급속히 매몰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또 다른 예로는 아이슬란드의 남쪽에서 1963년 발생한 화산 폭발로 갑자기 쉬르체이(Surtsey)라는 화산섬이 생긴 것이다. 이곳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 바다였는데, 불과 5일 동안에 갑자기 지름 600m의 섬이 생기고, 결국에는 지름 2km의 큰 섬이 되어 버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 상당히 오래된 섬처럼 보인 것이다.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근사한 해변가와 절벽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그림 12.1> 참고). 한 탐험가는 "어디를 가나 수천 년 된 것처럼 보이는 경치가 고작 몇 주일 또는 불과 며칠 사이에 만들어지다니! 여기 쉬르체이에 있는 것 모두가 불과 몇 달 동안에 이처럼 아름답고 멋있는 경치를 이루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12)
<그림 12.1> 아이슬란드 남쪽 Surtsey의 새로운 섬. 사람과 비교하여 해안과 절벽들을 비교하여 보라. 바로 5개월 전에 바다 가운데 생겨난 섬이다. 전면 해안가의 하얀 물체는 크림새우들이다. 멀리 보이는 바위 덩어리들은 새로 생긴 이 섬의 것이 아니다(참고문헌 42 참고, Penguin Books Inc의 자회사 Viking Penguin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사용하였다.).
우리는 갑작스럽게' 혹은 '격변'이라는 생각에 매우 어색함을 느낀다. 이것은 '격변'이 간혹 어쩌다가 한 번씩 일어나는데다가, 이러한 말에 신경 쓰기를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지성인의 거부감은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닥쳐올 재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도 이러한 재난에 곧잘 휩싸이게 되는지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할 수 있게 해 준다. 1902년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Martinique) 섬의 북쪽에 있는 플레(Pelee) 산에서 화산이 폭발하였다. 화산 분출물이 흘러서 산 아래 있는 설탕공장을 덮쳤고, 150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냈다. 이러한 화산에 불안감을 느낀 생피에르(St. Pierre) 도시의 주민들 중에는 보다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 정부 관리들은 별로 염려할 정도가 아니라면서, 심지어 섬의 총독 부부는 사람들이 도시에 그냥 남아 있기를 바라는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자신들이 생피에르로 이사하였다. 마침 주변의 다른 섬에서 화산이 폭발하자 사람들은 이제는 화산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플레 산의 화산 폭발 가능성은 아무래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 확실하다고 안심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시 생피에르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플레 산이 굉음을 일으키며 엄청난 폭발을 시작하였다. 화산 폭발로 다량의 용암이 시가지를 매몰시키고 분화작용은 다음 해 말까지 계속되었다. 용암이 흘러 남서쪽 기슭의 도시 생피에르를 휩쓸었고, 700℃나 되는 고열의 화산재와 열운 그리고 수증기가 불어닥치면서 단 2분 동안에 생피에르 주민 약 3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3) 역사 기록에는 단지 2~4명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중 한 사람은 죄수로서, 지하 감방에 갇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또 다른 지질활동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진, 바람 등도 격변의 조건만 주어지면 굉장한 위력으로 삽시간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요 지질학적 변화가 잠깐 사이에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적지 않게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건들이 어쩌다가 한번씩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생각 속에 수용하기가 좀 어려운 것이다.
창세기 홍수
지구의 표면을 온통 물로 뒤덮을 수 있는 홍수는 정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생명체의 갑작스런 멸망을 포함한 격변설에 대한 최근의 지질학적 해석으로는 결코 예외적인 개념이 아니다. 더구나 전 세계적인 대홍수에 대한 개념은 성경에만 나오는 독특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홍수의 설화가 각 민족들의 전설에서
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성경 이야기를 믿지 않고서라도 과거에 실제로 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더구나 고대문서 중에서 성경만큼 홍수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놓은 기록이 없다. 공교롭게도 성경에는 지질학적인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그래도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성경은 홍수 이전의 지구의 형편이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다고 말하고 있다. 비는 없었지만, 6) 강도 흐르고 습기도 많았다." 그 당시의 수문학적(文學) 시스템이 현재와는 매우 달랐음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홍수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지 7일 후에 땅속의 엄청난 지하수가 터져서 분출되고, 이와 동시에 심한 폭우가 최소 40일 동안 계속되었다. 성경의 기록대로 '물이 많아져....., 더 많아지고..... 더욱 창일하매....' 등의 표현을 통해서 보면 홍수의 물은 순식간에 불어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수위가 점차적으로 상승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40일이라는 기간은 뒤이어 설명되는, 물이 줄지 않고 계속 차 있거나 혹은 물이 불어나서 가장 높은 산들이 잠기게 된 상태인, 150일 기간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성경 본문은 150일이 다할 때까지 아직도 하늘의 창들'과 '깊음의 샘들' 이 닫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을 보면 다른 성경 역본에서 가리키는 것처럼 500150일 동안 물은 계속해서 불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 후에 강한 바람이 불어서 물이 감퇴되고, 또 몇 달에 걸쳐서 땅이 건조되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지 꼭 1년 17일째 되는 날, 방주에서 나왔을 때, 그 주변의 높은 지대는 적어도 마른 땅이었을 것이고, 52) 아마 새롭게 돋아난 식물들이 이미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수 세기 혹은 수천 년에 걸쳐서 지각의 안정화 작용이 계속되었는데, 분명히 처음에는 격렬한 지각변동이 있었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약화되었을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노아 방주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떻게 그 많은 짐승이 비좁은 방주 속에 다 들어갈 수 있었을까? 라고 궁금해한다. 창조론자들은 노아홍수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이렇게 많은 종이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종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현재는 홍수 때 방주에서 나온 동물들보다 그 이후의 변이(異)에 의해서 더욱 다양한 종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노아는 오직 육상동물만 방주에 태웠다. 어떤 사람은 해양동물은 독자적으로 홍수에서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저러한 제약 등을 고려하여 노아 방주의 공간을 계산하니까 동물들에게 필요한 최소 공간의 2~3배는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53)
하고 있는데, 동시에 그곳에서 그 동물들의 화석이 나오는 것은 왜 그런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만일 노아 방주가 중동 지역에 머물렀고, 이 동물들이 방주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이들이 다시 호주에까지 이동하여 되돌아갈 수 있었을까? 짐승들이 방주로 모일 때, 이들의 안내를 위해 어떤 특별한 섭리가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생각한다면, 창조과학자들은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살던 지역으로 흩어지는 데도 이와 비슷한 섭리가 작용하였을 것이라 생각해도 별로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현재 보는 바와 같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포유동물, 새, 거북, 물고기 등에서 볼 수 있는 귀소본능은 그들을 본래의 서식지로 되돌아가도록 촉진시킨다. 이러한 귀소본능 문제를 대륙과 대륙 사이로까지 확대·적용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동물화석이 같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을 설명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홍수와 창조주간
56) 창조를 설명함에 있어서 홍수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55) 대부분의 화석 기록이 홍수 때 생기지 않았다고 하면, 모든 것이 6일 동안 창조되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지층 칼럼의 지층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화석을 포함하고 있고, 위아래의 두 지층 사이의 시간 간격이 수백만 년을 •나타낸다면, 이 두 생물은 단 한 번의 6일 창조 기간에 창조되지 않은 것이 확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해면동물이 5억 5천만 년 전에, 공룡이 1억 8천만 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6일 창조 기간 동안 만들지 않은 것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이 창조주간 때부터 있었고, 또 1년 넘게 계속된 세계적인 대홍수 때 지층 칼럼의 서로 다른 지층들에 매몰되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설명이 잘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홍수 기록은 창조주간과 지층 칼럼과의 관계를 잘 조화시켜준다. 우리가 홍수를 빼놓는다면, 엄청나게 두꺼운 퇴적층의 존재와 하나님의 창조가 수십억 년과 같은 까마득한 옛날이 아닌) 최근에 있었다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조화 있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퇴적물의 평균 퇴적속도는 현재 수천 년에 불과 몇 cm정도이다. 퇴적층의 평균 두께는 수백 m에 이르고, 현재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 곳곳의 현생이언의 퇴적층은 그 두께가 무려 수 km나 된다. 이러한 지층들을 급속도로 퇴적시킨 전 세계적인 대홍수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창조가 최근에 있었다는 성경 개념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창세기의 홍수는 단순한 지역적인 사건이었는가?
창세기 홍수를 종종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었던 지역적인 홍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 기록 그리고 퇴적암과 화석들의 세계적인 분포를 고찰해 보면 이러한 생각을 수용할 수 없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58)
1. 창세기에는 전 세계적인 홍수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3)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육지에 있어 코로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 4....""60)
2.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지역적인 홍수는 정말 너무나 흔히 발생하기 때문에,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지역적 홍수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으로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오히려 이 약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약속이며,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는 보증이 되는 것이다.
3. 만일 홍수가 어떤 한 지역에만 국한되었다면 그 많은 종류의 짐승을 태우기 위해서 왜 큰 방주'를 만들라고 노아에게 요구하였을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동물들은 여러 곳에 분포되어 흩어져서 살고 있고, 홍수가 지역적인 사건이었다면 이들이 멸종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4. 성경의 창조 기사는 지역홍수론과는 모순된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 홍수가 아니고서는 모든 대륙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지층 칼럼의 두꺼운 지층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아홍수야말로 하나님의 창조가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는 최근 6일 창조(recent six-day creation) 개념과 지층 칼럼과의 관계를 조화 있게 잘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 지층 칼럼은 육대주)에서 아주 잘 나타나므로 모든 육대주에 적합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인 홍수를 부인하는 것은 또한 전 세계적인 6일 창조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에는 전 세계적인 창조와 전 세계적인 홍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홍수 모델
63) 창조론자들도 홍수에 관해서 여러 가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보며, 모든 모델이 절대적이 아닌 하나의 가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홍수 모델을 종합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다음의 3가지가 있다.
(1) 홍수 때 과거의 대륙과 해양이 서로 뒤바뀌었다는 모델,
(2) 지구가 수축과 팽창을 하였다는 모델,
(3) 홍수 때 대륙이 침강하고 이어서 융기되었다는 모델. 그러나 위의 모델들이 서로 겹치거나 또는 여러 이론들이 추가되어 다른 홍수 모델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홍수 모델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의 형태가 어떠하냐 하는 것이다. 지층을 퇴적 환경에 따라서 크게 나누면 육성층)과 해성층(海成層)으로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륙을 덮고 있는 퇴적층을 보면 그 기원에 있어서 육성층 혹은 해성층, 때로는 이들 두 층이 함께 덮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상식적으로 그 지층이 해성층이냐 육성층이냐 하는 것은 그 퇴적암 속에 들어 있는 생물의 화석을 가지고 구분하게 된다. 지층이 해상생물의 유해를 포함할 때 그 지층을 해성층이라 하고, 육상생물의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퇴적층을 육성층이라 할 수 있고, 생물의 유해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 경우라도 지형의 특성을 살펴서 판명할 수 있다. 현재의 해양 퇴적층은 대륙 퇴적층에 비하면 매우 얇은 것을 알 수 있다(<그림 12.2> 참고). 지각을 구성하는 암석층은 대양저(大洋)와 대륙의 경우가 서로 다르다. 대양저에는 현무암질의 무거운 암석층(시마층)이 깔려 있고, 대륙에는 화강암질의 비교적 가벼운 암석층(시알층)으로 되어 있다. 대륙이 바다보다 높게 솟아 있는 것은 이처럼 무거운 현무암질 암석층 위에 가벼운 암석층이 떠 있는 것처럼 해수면 위에 드러나 있기 때굳이고, 이로 인해서 우리가 살 수 있는 마른 땅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빙산이 바다에 떠 있는 원리와 같다.
홍수 때에 대륙과 해양이 서로 뒤바뀌었다는 모델에서는 현재의 대륙은 홍수이전에 바다였고 현재의 바다는 과거에 대륙이었다는 주장인데, 홍수 기간에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지각평형(地殼에 의한 지형 변화는 물론, 암석 형태와도 관련된 복잡한 지구화학적 과정을 수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현재의 대륙을 생성시켰다는 주장인데, 이 모델에서는 엄청난 홍수 퇴적물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모델의 수정안에서는 홍수 이전의 광대한 대륙의 대수층(帶層)이 붕괴되면서 거대한 함몰지(동굴洞)들이 혹은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해양분지(海洋) 또는 해분 주장한다. 되었다고 이
65)두 번째의 지구팽창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근래의 과학사조로는 별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개념 뒤에는 믿을 만한 증거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창조론자들은 이 이론이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모델이라고 인정하기도 한다. 홍수를 내기 위해서 지구가 수축되고 물이 대륙을 뒤덮었다는 것
<그림 12.2) 개략적인 홍수 모델. 그림은 대륙(왼쪽)과 해양(오른쪽)의 부분적인 단면을 나타낸다. A: 대륙을 떠받고 있는 거대한 화강암집 암반과 수면이 다른 여러 바다를 갖는 홍수 이전의 지구의 상태, B: 대륙의 굴하(ET)와 해양의 융기로 인한 홍수 동안의 고수위 상태(짧은 화살표), 긴 화살표는 여러 종류의 퇴적물이 본래의 위치로부터의 이동을 나타낸다. C: 대륙의 융기와 힘입력의 영향으로 암석 형태가 변형되고, 침식과 재외적을 수반한 홍수 이후의 상태이다. 또 홍수를 끝내기 위해서 대륙은 오늘날처럼 갈라지고 지구가 팽창됨으로써 물은 바다로 물러갔다는 것이다. 한 가지 문제점은 지구가 생각처럼 쉽게 팽창하거나 수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때로 지질학자들은 과거에 중력장의 세기가 변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66)
대륙의 침강과 융기 모델은 홍수 모델 중에서 가장 극적인 성격이 적은 편이다<그림 12.2>. 여기서는 암석권 바로 아래의 약하고 깊은 연약권이 대륙 아래에서 해양 아래로 이동함으로써 홍수가 발생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는 반드시 해양저의 융기와 대륙의 침강을 수반하게 되어(<그림 12.2>의 짧은 화살표 참고), 그 결과로 일부 해저 퇴적물이 대륙 위로 운반되며 대륙의 침수) 현상이 나타난다. 대부분의 지질학자들은 대륙 아래의 부분적으로 용융 상태에 있는 연약권의 이동으로 인하여 그 위에 떠 있는 대륙판들이 상대적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67 창세기 홍수 때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홍수 이전의 퇴적물들을 침식시켰을 것이다.
이때 침식된 선캄브리아대의 퇴적물은 주변의 생물들을 매몰시키고 함께 재퇴적再되면서 후에 생물들의 화석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이렇듯 홍수로 범람하는 물은 당시의 선캄브리아기는 물론 홍수 이전의 퇴적물들을 대부분 침식시켰을 것이라 생각된다. 홍수의 물살이 여러 근원지로부터 퇴적물을 새로운 어떤 퇴적분지로 이동시켰으므로, 융기를 통해서 나중에 육지가 된 이 육성 퇴적물은 홍수 이전에는 바다였던 곳에 침적된 퇴적물인 것이다(<그림 12.2B>의 긴 화살표 참고).
밀도가 작은 화강암질 암석으로 된 대륙들은 홍수 말기에 융기되었을 것이고, 이 때문에 물은 대륙들의 홍수 퇴적물을 침식시키면서 깊은 해양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이 모델에서 하나의 문제점은 대륙 위에 해양 퇴적물이 많이 퇴적되어 있는데, 그 아래층에는 육상화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이러한 구조는 홍수 이전에 이미 바다로 덮여 있던 내륙해 있었는데, 대륙으로 가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해(大海)로부터 이곳으로 이동되어 온 해저 퇴적물이 퇴적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그림 12.2B>의 가장 큰 화살표 참고). 이러한 패턴은 화석 기록의 해석 <그림 10.2>에 있어서 간단한 생태대론(ecological zonation theology)의 해석(<그림 10.2> 참고)을 더욱 복잡하게 해 준다. 어쨌든 홍수가 다루기 쉬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홍수 모델은 단지 서론적인 제안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심도 있는 복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로써는 이 분야의 연구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홍수와 관련된 지질학적 요인들
70)홍수의 물은 대부분 홍수 이전의 지구에 이미 간직되어 있었다. 물의 상당 부분은 홍수 이전의 바다에 있었고, 얼마는 '깊음의 샘들'의 형태로, 68) 아주 일부는 대기 중에 있었다. 지구에는 에베레스트 산을 파묻히게 할 만한 충분한 물이 없는데도 홍수가 나서 지구 전체가 물에 잠겼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지질학자들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창세기의 노아홍수에 대하여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에베레스트 산은 해발 9,000m 가까이 된다. 홍수 이전의 지형은 거의 평평했으므로<그림 12.2B> 그 당시로써는 많은 물이 필요치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창조론자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약 지구가 완전히 둥글고 표면이 매끈하다면 현재의 바닷물은 지구 전체를 평균 2,440m 깊이로 완전히 덮을 수 있다. 창조론자들은 산맥이나 산들은 홍수 이후에 지각이 심하게 융기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과거에 큰 홍수가 있었다고 믿는 홍수지질학자나 홍수가 없었다고 보는 지질학자들 양쪽 모두는 현재의 산악지형은 퇴적층이 쌓인 후에 융기된 지형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지형을 기준으로 삼아 전 세계적인 대홍수에 필요한 물의 양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세계적 홍수라면 어째서 모든 지층을 팥죽처럼 완전히 뒤섞어 놓지 못했느냐고 필자에게 자주 묻는다. 이것을 소형 욕조 모델(smallbathtub model)이라 하는데, 물론 욕조 만한 둥근 통 속에서는 모든 것이 완전히 뒤섞여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충분히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반적으로 퇴적층들은 아주 순서가 명확하고 단조로운 편이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홍수가 모든 것을 팥죽처럼 완전히 뒤섞어 놓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퇴적층의 넓이가 수천 km²나 되고, 때로는 두께만도 수 km나 되는 두꺼운 퇴적층을 무슨 밀가루 반죽처럼 뒤섞어 놓는 일은 지극히 힘들다. 몇 m 두께의 진흙은 쉬울지 모르지만, 이것도 같은 두께로 넓이가 km² 단위로 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층이 쌓이면 본래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홍수는 1년 내내 계속되었고, 어떤 한순간에 모든 퇴적물이 팥죽처럼 뒤섞여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짧은 홍수에도 홍수 퇴적물은 퇴적 순서대로 쌓이기 마련이다. 홍수가 나면 범람하는 순서대로, 밀려 떠 내려온 퇴적물이 쌓이는 순서대로 뚜렷한 층을 남기면서 계속 진행된다. 물은 퇴적물을 같은 크기의 입자끼리 잘 분류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퇴적물을 거의 수면과 나란히 쌓이도록 만든다. 지질학자들은 이것을 퇴적면 수평성 법칙(Law of Original Horizontality)이라 부른다.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물속에 부드러운 저탁류를 흘려보내는 실험을 해 보면, 그 밑의 연한 퇴적층이 교란되지 않으면서도 저탁류의 연한 퇴적층이 빠르게 퇴적될 수 있음이 실제로 확인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퇴적물이 혼합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지역적인 융기에 의하여 지대가 높은 홍수 침적물이나 홍수 이전의 퇴적물이 침식되는 경우도 발생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의해서 화석들과 암석들이 다시 한 번 재퇴적(再堆積)됨으로써 지층 칼럼상으로 보면 본래의 지층보다 높은 상부층에서 이따금씩 발견된다. 그러나 지각 대부분의 퇴적층들을 뒤섞어 놓기 위해서는 엄청난 급작스러운 사건이 있어야만 가능한데, 더구나 이러한 어마어마한 사건이 1년 동안 계속될 만한 시나리오는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질문은 지질 칼럼 중 얼마가 홍수 때문에 생겼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퇴적물과 화석 기록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양하며, 그야말로 무엇이라고 통용되는 대답이 없는 실정이다. 물이 대부분의 퇴적층들을 쌓아 놓았으므로 홍수지층과 그 전후에 쌓여진 층들 사이에 어떤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더구나 지역마다 지층 칼럼상의 똑같은 곳에서 홍수가 시작되어 어느 부분에서 똑같이 마쳐졌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홍수 퇴적물은 캄브리아기에서부터 퇴적되기 시작하여 제3기 상부층에 가서야 끝났다고 생각된다(용어상으로는 <그림 10.1>을 참고 바람.). 어떤 지역에서는 이보다 아래층에서도 홍수가 끝났을 것이다. 홍수는 엄청난 양의 퇴적물을 만들어 냈을 것이고, 또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지구의 크기에 비하면 단지 얇은 베니어판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비례적으로 지구가 지름 30cm의 지구본(本) 정도라면 퇴적층의 평균 두께는 보통 종이의 4분의 1 두께에 해당된다.
전통적인 지질학자들이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대륙이동설 拗과 판구조론을 수용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창조론자도 홍수 때 이러한 주된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 때문에 쉽게 환영하였다. 이제 더 이상 지질학계에서는 지구가 단단하고 딱딱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해석하지 않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창조론자들은 특히 홍수 후반기에 판의 이동이 급속히 일어나서 산들이 융기되고 현재의 대륙이 형성된 것이라고 제안한다.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판이동의 주원인에 대해서는 완전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창조론자들의 해석 자체도 일종의 가설에 불과한 셈이다. 이러한 판구조론과 대륙이동설에 대해서는 권위 있는 과학잡지에서 약간씩 발표되지만 전체 판구조론 개념의 타당성 여부를 의심하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또한 홍수모델에서 판구조론을 적절히 언급하기 이전에 이에 대한 지식과 많은 자료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엄청난 빙하시대가 있으려면 이에 필요되는 수천 년의 기간은 하나님의 창조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은 근래에 있었다는 최근 창조-홍수 모델에는 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명백한 최근의 빙하기 외에 지층 칼럼상의 낮은 층에서도 빙하의 흔적이 있다는 보고가 계속 나돌고 있다. 일반적으로 홍수 모델에서는 홍수의 여파로 최근에 빙하 활동이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들을 갖고 있다. 수백만 년이 아닌 수백 년 동안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생성되고 또 녹을 수 있는 그럴 듯한 조건들이 제기되어 왔다. 72) 대개는 홍수기간의 화산 활동 때문에 햇빛이 차단되고 지구가 냉각되기 시작하였다고 설명한다. 따뜻한 바다로부터 증발된 수증기와 차가운 대기는 홍수 후 단기간에 극심한 빙하를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지층 칼럼의 아래층에서 발견되는 빙하의 흔적에 대해서는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샤프(Robert P. Sharp) 교수도 태고 때의 빙하임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3) 빙하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일부 내용은 빙하가 아닌 다른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과 쉽게 혼동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이에 대하여 다른 전문가들도 많은 연구를 통해서 보면 소위 빙하성층(빙하 퇴적층)이 대개는 거대한 쇄설류(流)이거나 이와 관련된 퇴적물이라고 지적하였다. 빙하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어떤 줄무늬 흔적들이 때로는 단층면을 따라 암석들이 서로 미끄러진 마찰 흔적, 심지어는 벌목 작업 때의 케이블에 의해 긁힌 자국으로 밝혀지기도 하였다.75 태고적의 빙하라고 발표되었던 많은 경우들이 이렇게 재해석되는 결과를 당하였다. 지층 칼럼 하부의 빙하 흔적을 의심해 볼 만한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74)76)
결론
지사(史)에 대한 과학적 해석은 많은 시대를 바꿔 놓았다. 수 세기 동안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주로 대격변설을 받아들였다. 이러던 것이 불과 한 100여 년 동안에 완전히 배척을 당했다. 이제는 과학이 지질 역사에서 격변설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있다. 지질구조에 대한 최근의 재해석 과정에서 부각된 급격한 지각변동이나 지질작용은 성경에서 말하는 전 세계적인 홍수 개념과 아주 잘 일치한다. 홍수 모델과 부합되는 새로운 격변론적 지질 해석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창조론자들은 지질학계에서 이미 수용하고 있는 견해를 재해석할 필요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도 아직도 더 발전시켜야 할 많은 사항이 과제로 남아 있다. 전 세계적인 대홍수는 우리의 일반 상식으로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질작용이 빠르게 발생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뚜렷한 증거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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