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나에게 정운이는 절실한 존재였다" 47년 우정 공개
47년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보다 긴 우정이 또 있을까 소년공에서 대통령까지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78년 봄 경기도 성남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 그곳에서 두 소년이 만났다 이재명과 심정훈 심정훈이 기억하는 첫 만남의 이재명은 키가 작고 눈이 초롱초롱한 학원에서 나이가 제일 어린 소년이었다 말수가 적고 묵묵히 공부만 하는 모습이었다 30에서 40명 정도 되는 학원생 중에는 여러 이유로 결석자가 많았는데 이재명만큼은 출석률이 굉장히 높았다 암기력과 이해력이 뛰어나 선생님들의 칭찬을 자주 받았다 놀라운 것은 이재명이 학원에 다닌지 3개월 만에 중절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학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단기 합격이었다 이드메인 1979년 두 사람은 오리엔트라는 시계 제조 회사에 함께 취업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고절 자격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심정훈이 말하길 이재명은 손재주가 뛰어나 일을 빨리 익혔고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어린 나이에도 부서 책임자의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 공정 중에서도 도장 공정은 폐쇄된 공간이어서 고참들이 선호했는데 이재명은 고참이 아닌데도 책임자의 신뢰로 그곳에 배치되어 근무했다 그리고 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부했다 이재명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치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라카칠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라카칠를 하는 공간은 아세톤과 벤졸 성면이 공기처럼 떠다녔다 그 독한 냄새를 매일 들이마셔야 했다 이재명은 심정훈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할 때 내 속마음을 털어 놓을 유일한 대상이라고 표현했다 나에게 정원이는 너무나 절실한 존재였다라는 말도 남겼다 하지만 우정의 길이 항상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이 심정훈의 자취방에 갔을 때 함께 자취하던 친구로부터 심정훈이 담배를 피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이재명의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그건 나의 정운이에 대한 멸시 아니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이재명은 심정훈의 자취방에 가지 않았다 심정우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그 시절 공장에서 일하던 소년들 사이에서는 술 담배가 흔한 일이었다 자신 역시 주변 소년공들과 어울리면서 술 담배를 하게 됐고 학원도 자주 빠지게 됐다.이 사실을 안희재명이 어느 날 집에 찾아와서 그렇게 해서 대학에 어떻게 가려고 하냐며 화를 내고 그냥가 버렸다 한동안은 서먹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심정훈이 퇴근 후 소년공들과 어울리는 것을 자제하고 학원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사이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검정고식뿐 아니라 대입 학력고사 준비도 함께 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서로 문제를 내거나 교과서의 실을 외우곤 했다 자습을 하다 졸릴 때면 화장실에 가서 찬물을 머리에 뒤집었으며 졸름을 쫓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끝에 두 사람 모두 꿈에 그리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1982년 두 사람은 나란이 중앙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재명은 법학과에 심정우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캠퍼스에서 청춘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재명은 학력고사에서 285점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였지만 장학금 때문에 중앙대학교를 선택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을 수 있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에 세배에 달하는 돈이었다 대학 생활은 빈틈을 채우는 과정이었다 초등학교 졸업후 두 번의 검점고시와 한 번의 학력고사로 중 고등학교 과정을 건너뛴 체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기초가 부족했다 법학을 공부하려고 교재를 펼쳐보니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았다 천자문을 읽으며 한자 공부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대학 입학 후 첫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1학기가 끝날 무렵 이재명이 도보 여행을 제안했다 춘천에서 시작해 양구 인재 한계력 양을 거쳐 태배까지 가는 긴 여정이었다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짊어진 채로 길가에서 밥을 해먹고 강가에서는 낚시를 하면서 다시 걷는 고된 여행이었다 물집 잡힌 발을 칼로 터뜨리며 다시 걷기도 했다 양구에서 인재로 가는 비포장길을 걸어 자정 무렵의 광치곡의 정상에 도착했을 때 서로 환호하고 격려했다 심정훈은 그때 쌓은 체력과 의지가 훗날 어려운 일을 버텨내는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1986년 대학을 졸업한 후 두 사람의 길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재명은 같은 해 제28회 사법 시험에 합격해 사법 연수원에 입학했다 사법 연수원에서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들었다 원래는 연수원을 수려한 후 판사나 검사를 생각했지만 노무현의 말에 감명을 받아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1989년 사법 연수원 18기를 수려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인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했다 심정우은 졸업 후 한국 전력에 취업했다 두 사람의 인생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우정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재명이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도 심정은 변함없이 지지했다 심정훈은 변호사 활동과 성남 시민 모임 등에서 쌓은 경험이 행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정훈은 소년공 시절의 이재명과 정치인이 된 이재명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년공 시절에는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됐지만 정치인은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이재명과 같은 리더의 역할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남 시장이 되고 경기도지사가 되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되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 이어졌다 47년이 흐른도 두 사람의 우정은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의 장남동호시 결혼식계는 과거 오리엔트 시계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초대되었다 그 자리에는 심정훈도 있었고 캘리그라퍼로 유명한 강병인 씨도 있었다 강병인 씨는 참미슬 화요 열라면 등의 제품명을 독특한 손글씨로 표현의 대중에게 알려진 분이다 그 역시 어린 시절 성남에서 오리엔트 시계 공장과 검정고시 학원을 이재명과 함께 다닌 동료다 강병인 씨는 저보다 두 살 어렸는데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곧잘 가르쳐 주던 똑똑한 친구였다 고회상했다 현재 심정훈 씨는 62세다 2년 전 한국 전력에서 정년태 인생 이막을 살고 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재명이 소년공 시절 겪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은 대통령으로서 약자에 대한 공감 능력과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47년 그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우정만은 변하지 않았다 성남시 상대원동에서 싹튼 두 사람의 우정 오리엔트 시계 공장에서 시작된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위치한 오리엔트 바이오가 바로 과거 오리엔트식의 공장이 있던 곳이다 공장 건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에는 함께 공부하며 대학 진학의 꿈도 같이 이룬 두 친구 시간이 흘러도 환경이 바뀌어도 한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도 변하지 않는 마음 두 소년이 검정고시 학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누가 이들의 우정이 47년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누가 그중 한 명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일어났다
* https://youtu.be/ow5FIBvMSWA?si=_JB6NLGDzbAVYpIP
행사하는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