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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교수님의 사모님은 명예교수회의 준회원이십니다. 모든 행사나 특강에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면서 느끼시는 소감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 『늘푸른나무』 15호부터는 준회원님들의 목소리도 담아내려고 합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참여한 행사와 남편 교수님께서 원고를 투고하신 경우에만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박종갑 교수님(국어국문학)의 사모님 이신유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이 까다로운 청탁이 ‘표현보다’ 훨씬 부담스러우실텐데, 이에 응해 주신 이신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교수들 사이에서는 잡지 못하는 흐름이 배어 나오는 옥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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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남편 따라 다녀온 가을문화탐방
준회원 이신유1)
2025년 올해 가을에도 어김없이 영남대 명예교수회에서 주최하는 가을 문화행사에 참가하였다. 이번 참석이 나에게는 네 번째이다, 이번 여행의 주요 방문지는 봉화군에 자리한 봉화정자문화생활관, 국립백두대간생태수목원. 안동국학진흥원, 예끼 마을 선성수상길이었다. 이 중 ‘국립백두대간생태수목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첫 방문지라 떠나기 전부터 벌써 이동에 대한 설레임이 시작되었다,
당일 아침 출발 30여분 전에 어린이 세상(어린이 공원이 2023년 6월 ‘어린이 세상’으로 변경됨)에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매번 좀 과하게 ‘일찍일찍’을 주장하는 ‘주소가 같은 그분’에게 보조를 맞추다 보니 늘 앞 순위로 현장에 도착하는 편이다. 조금 후 대형 버스가 도착하고 몇 번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면서 어느 사이에 낯이 익은 사모님들의 얼굴을 뵈니 반가운 마음에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일 년에 두 번씩 봄가을에 행해지는 이 여행을 통해 서로 마음이 연결되어 간다고 믿어지고 사모님들이 친밀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그런데 출발시간이 다 되도록 늘 우리 여행팀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K교수님이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피치 못할 일이 생겨 불참하게 되었다고 했다. 춤추기를 권유하실 때는 K교수님이 조금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못 오신다니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화창한 초가을 날씨까지는 아니어도 날씨부조를 어느 정도는 기대해도 되겠다 싶어 연신 창밖의 시내풍경을 내다보고 있는데 드디어 7시 조금 넘어 버스는 서서히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영대명예교수회에서 문화행사로 국내여행을 기획하면서 결정한 가족동반(부부동반) 아이디어는 우리 가족들(아내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째, 교수님들의 안목으로 반드시 현장 답사 후 장소를 정하는 만큼 여행지의 질을 일단 믿을 수 있고, 둘째, 대한민국에서 학력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의 구성원들인 만큼 오가는 사소한 대화에서도 배울 게 있을 터이고, 셋째, 단 둘만의 여행이 아니고 비록 국내여행이지만 일 년에 두 번의 부부동반 단체여행은 수십 년의 결혼생활을 한 부부사이에도 생활의 윤활유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의 공간이동은 둔탁해진 삶의 감각을 바꾸어 주고 삶의 또 다른 에너지 충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영양찰밥과 과일을 비롯한 사이드 메뉴로 아침식사가 제공되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한 분 한 분에게 정성으로 배달(?)해 주시는 운영위원회 간사이신 오 교수님과 아름다운 여성 교수님들의 봉사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신천 대로를 지나 시내를 벗어나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산과 들은 아직 여름의 풍경이 남아 있으나 군데군데 가을의 정취도 서서히 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편안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익살을 섞어 설명해 주시는 운영위원장님의 오늘 하루 일정안내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졌다.
역시 떠남은 항상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내가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면, 혼자 여행하기를 두려워했다면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서 서로 사진 찍어 주다가 명함까지 주고받으면서 친구가 된(일시적이긴 하나) 이스라엘 여성과 한동안 이메일을 주고받던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안도라에서 우연히 만난 레바논 여성과 이야기(비록 호구조사 수준이긴 하나)를 나눌 수 있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 초반 Roncesvalles에서 키가 2m 넘는 장신의 어떤 스페인 할아버지로부터 길을 안내 받을 수 있었을까? Estella에서 하룻밤을 같은 알베르게에서 보낸 우간다 여성과 코를 고는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그런 후에 우연히 순례길에서 다시 만나 같이 사진 찍고 화해하는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50이 넘은 나이에 떠난 미시간대에서의 어학연수가 가능했을까? Pamplona의 알베르게에서 같이 묵었던 유난히 나에게 친절했던 씩씩한 미국인 할머니, Sarria의 혼성 도미토리 룸에서 하룻밤 같이 보냈던 70대 스위스 할머니, 공주님 같던 80대 캐나다 할머니와, 밤에 시끄럽게 한다며 혼자 고함을 막 지르던 젊은 프랑스 남성(우리 세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분들은 지금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지낼까?
달라지는 바깥 풍경에 취해 이처럼 온갖 지나간 상념에 젖어 갈 무렵 버스는 어느덧 4시간여를 달려 11시경 첫 번째 방문지인 봉화군 봉성면 ‘봉화정자문화생활관’ 주차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2층 높이의 큰 한옥 건물이었다. 이곳이 바로 국내 최초의 한국식 정자와 누각 전시관이다. 이름 모를 온갖 아름다운 꽃의 야생화정원을 가로질러 정자문화생활관으로 들어서려니 우리 팀을 담당할 문화 해설사님께서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건물입구까지 10여분 걸어 들어가니 입구에 주요시설을 안내하는 대형 안내판에 가장 먼저 눈이 갔다. 여러 곳의 전시실과 영상실, 숙박시설인 솔향촌, 특히 ‘솔향촌’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올해가 가기 전에 ‘S라인 자매’(저를 포함한 우리 연년생 자매 셋을 가리키는 말인데, 남편(박종갑)이 지어준 유언비어형 용어입니다.)들과 이 솔향촌에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화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전시관으로 들어서니 안내 데스크와 사랑방처럼 꾸며진 아기자기한 공간도 눈에 들어왔다. 봉화군은 누각과 정자가 약 103동에 이르는 대한민국 누정문화의 보고이며 따라서 전통 누정의 가치를 알리고 보전하기 위해서 약 400억원에 이르는 예산으로 이 누정전시관이 건립되었다는 설명에 전시된 누각과 정자에 애정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좀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와서 누정에서 같이 호흡하고 누정의 개념과 특징들에 대해 이해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다음 전시실로 이동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엄밀히 말하면 누정은 꼭 사적 공간은 아니지만)을 갖기 위해서 이렇게 애쓰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남편이 10여 년 전 나에게는 한마디 의논도 없이 자기만의 공간(지금은 우리 부부의 공용 공간)을 갖기 위해서 적지 않은 경비를 들여서 지금의 ‘상상’이라는 공간을 만든 것도 약간은 변형된 이 누정의 형태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이르렀다. 역시 공간의 이동은 사람을 부드럽게 만든다. 처음 남편이 나에게는 상의 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게 되었을 때는 이해보다는 감정이 앞섰는데 이 자리에 서 보니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된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특색 있는 공간을 꿈꾸고 때로는 용기 있게 비용을 지출해가면서 그 공간을 꾸며 자신의 세계를 확보하려 애쓰는 건 인지상정인가보다. 옛날 선비들 사이에 유행한 구곡문화 즉 정자와 누각도 바로 이런 예가 아닐까? 자신이 머무는 서재와 정자에 이름을 붙이고 현판을 걺으로써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을 의미 있게 상징하는 듯했다. 우리 부부도 ‘상상(음악공연장)’이라는 공간의 네이밍을 위해서 며칠을 고민했었던 일이 생각났다. 전시관 관람 후 미디어 위원장이신 강용호 교수님께서 미리 점찍어 놓으신 누각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친한 지인들과 근일 내에 이곳에 다시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스로 10여분 거리인 점심 식사 장소로 향했다. 그 유명한 ‘봉화 한약우 프라자’, 현지인들도 강력 추천하고 완고한 경상도 집밥 할배들도 반한다는 한약우 식당에서 한우불고기를 먹었다. 우리 부부는 김종근 교수님 부부와 한 테이블에서 정겨운 담소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적당히 배도 고팠고 또한 한우 불고기의 식감이 구수하고 양도 많아서 기대 이상의 탁월한 식사였다.
점심 식사 후 다시 버스로 30여분 달려서 다음 행선지인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도착하였다. 몇 년 전에 우리 부부는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던 터라 가는 길이 또렷이 기억나고 마치 이웃 마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친숙해졌다 할까. 얼마 전 기사에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연간 방문객이 30만명을 넘지 못하고 있고, 이것은 2200억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된 국립기관의 전형적인 경영 실패라는 다소 비판적인 글을 읽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야생식물 종자영구저장시설인 이곳 ‘Seed Vault’(노르웨이 스발바르의 ‘Seed Vault’는 농작물 종자영구보관소)와 ‘호랑이 숲’이라는 자원을 보유하고도 이를 좀 더 창의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운영 미숙의 결과라는 것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단순한 지역관광지를 넘어서 국가 생태, 식물 연구의 허브이자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자연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마케팅, 컨텐츠, 교육전략을 전면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 수목원 방문자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에 들어서니 티켓박스와 GS편의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이디야커피, 기념품샵, 푸드코트도 보였다.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원목으로 장식된 방문자센터는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여러 곳의 포토존도 훌륭하게 꾸며져 있었다. 우리는 티켓팅 후 안내실에서 짧은 영상시청과 함께 해설사로부터 이곳에 관한 안내를 들었다.
해설사가 중간 중간에 한 번씩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Seed Vault’가 소재한 곳이 전 세계 두 곳인데 우리나라 백두대간 수목원 외에 나머지 한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아무도 말하지 않길래 내가 ‘노르웨이 스발바르’라고 했더니 옆에서 남편이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몇 년 전 이곳을 방문할 때 같이 들어놓고도 자신은 기억을 못하고 있다. 나는 약간은 우쭐해졌다. 하긴 나는 특히 외국어로 된 세계의 지명이나 장소, 책 제목 등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잘 각인이 되는 편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꽤 오랜 기간(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4년 정도)을 학교 도서관에서 도서부장이란 직함(?)으로 도서 대출 반환하는 일을 맡아 했었다. 그것도 자진해서 매우 즐겁게 했었다. 그때는 그 일이 신이 났었다. 그 당시 책 제목을 보고 뽑고 꽂는 일을 오랜 기간 동안 반복하면서 가소성이 뛰어나던 그 시절에 상당히 긴 책 제목들도 익숙하고 친밀하게 느껴지면서 자연스레 머릿속 해머에 저장된 게 아닌가 싶다. 그 뒤 접하는 어지간한 책들의 제목은 나에겐 거의 모두 낯이 익었고 읽지도 않았으면서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낯선 도시를 혼자서 여행하는 상상을 꽤 자주 하기도 했었다. 나이 든 지금까지도 낯선 세계 여행이 전혀 두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즐기게 된 것도 그 때의 숱한 경험과 자극 덕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실내에서 안내가 끝난 후 30명이 훌쩍 넘는 우리팀은 2개의 조로 나뉘어 트램을 타고 백두대간 호랑이 숲에 방사되어 있는 호랑이 남매를 보러 출발했다. 트램이 지나가는 길 양쪽으로는 온갖 종류의 야생화와 이름 모를 식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근사한 곳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하긴 주말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지금 서울은 특히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서울 시내 핫한 곳은 인파로 몸살을 앓을 정도라는데, 이곳은 이리도 썰렁하니 말이다. 트램을 타고 10여분 달린 후 호랑이역에서 내려 펼쳐지는 전경을 바라보니 높은 봉우리들의 산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대도시 주변의 산들과는 달리 더욱 진한 초록의 병풍이 이어졌다.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오래도록 쳐다보고 싶어졌다. 9월 하순이라 해도 양산에 손이 먼저 갈 정도로 햇살은 따가웠지만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는 야생화에서 가을 내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호랑이 숲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이번에도 예외 없이 미디어위원장님께서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오시면서 틈틈이 우리들 사진을 찍어 주셨다. 아직도 무더움이 느껴지는 날씨임에도 싫은 내색 전혀 없이 즐겨 하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들 정도다. 드디어 호랑이 숲에 도착하니 그 순간에는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좀 더 높은 곳에 올라가서 기다리니 드디어 먼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났다. 세상을 달관한 듯한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의 그 백두산 호랑이가 드디어 위용을 드러냈다. 또 한참을 가다리니 또 다른 호랑이(이름을 잊었음)가 입으로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침에 출발하는 차 안에서 운영위원장님께서 호랑이의 기를 가능한 많이 받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서 눈을 마주쳐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서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호랑이 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알파인 하우스는 시간상 관람하지 못했다. 만병초가 있다는 알파인 하우스는 지난번 왔을 때도 가보지 못해서 이번에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하행 루트는 도보로 방문자센터를 향해 모두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오랜만에 만난 모 사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하면서 내려오다가 앞서가는 우리조의 해설사가 자신이 안내하는 ‘중앙방송’에 방해된다며 우리가 나누는 ‘지방방송’을 중지해달라고 요청해오기도 했다. 산책하듯이 느릿느릿 내려가다 보니 각종 테마정원들과 암석정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끌리는 시화 앞에서는 일부러 소리 내어 시를 읽기도 했다. 방문자센터에 도착하기 직전 그곳을 배경으로 2개의 조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주변 풍경을 즐기면서 내려오다 보니 40여 분이나 걸렸다. 방문자 센터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2층에 있는 ‘Seed Vault’ 전시실을 구경한 후 3시에 안동 국학진흥원으로 향해 출발했다.
1시간 30여분 달려서 우리 버스는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도착했다. 안동은 흔히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요, 요즘에는 세계가 반한 ‘K한류의 본거지’라고들 한다. 국학진흥원은 민간의 기록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 수집하고 연구하며 전통문화의 계승을 목적으로 1996년에 설립된 기관이다. 영남대학교 출신 연구원이 매우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어 편안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목판과 편액(건물의 높은 곳에 걸기 위해 나무판, 종이, 비단 등에 쓴 액자)들의 전시실을 한참동안 관람했었는데 나는 500여 점이 넘게 보관되어 있다는 편액 Archive실에 왠지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다른 많은 분들도 그러신 것 같았다. 현판의 글씨크기, 색깔, 목판의 크기도 매우 다양했지만 나는 수백 권의 책처럼 생긴 똑같은 크기와 색깔의 검은색 편액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처럼 진열되어 있는 그 많은 검정색 편액들이 모두 디지털화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똑같이 생긴 저 많은 검은색의 편액을 무슨 수로 쉽게 구별할까 싶었다. 그래서 연구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미 모든 편액들이 디지털화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보관만 하는 Storage 개념이 아닌 디지털화된 보관소, Archive라고 하나보다. 연구원의 안내로 유교실을 둘러본 후 다음 여정지로 향하기 위해서 버스로 이동하였다.
그 다음 여정은 국학진흥원에서 20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예끼마을’(예술의 끼가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알록달록 벽화로 꾸며진 골목길, 그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노상 갤러리, 한옥카페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안동댐의 물 위에 데크로드로 만들어진 선성 수상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부력의 힘을 이용하여 총 1km의 부교로 이루어진 데크로드를 만들어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졌다. 10여분 정도 걸으니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진 포토존이 나타났다.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예안초등학고 역사안내판, 모형풍금, 추억의 종 등은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갖기에 충분했다. 모형풍금과 추억의 종을 배경삼아 사모님들끼리 사진도 찍고 물 위에서의 시간을 즐긴 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저녁식사 장소인 ‘민속식당’에 도착하였다. 민속식당 가는 길에 무인 난전에 진열된 흙 묻은 고구마를 보니 사고 싶어졌다. 5kg에 2만원, 좋은 물건은 단번에 알아채는 우리 수십 년 살림지기들의 본능, 그 고구마는 아직 흙이 묻은 상태라 아마도 갓 캐낸 고구마이리라. 그러하니 보관도 오래 가능하겠지...‘저녁식사 마치고 버스에 오르기 전에 사야지’ 생각하면서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5시 40분, 최순돈 교수님 부부와 같은 식탁에서 구수한 청국장과 안동 간고등어구이, 맛깔스런 정갈한 대여섯 가지 밑반찬으로 기대보다 훨씬 맛있는 하이엔드급의 저녁식사를 마치고 근처 한옥카페로 이동하였다.
한옥카페에서는 사모님들끼리 자연스럽게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이어서 전 회장님이신 김봉식 교수님과 사모님, 그리고 오창혁 교수님도 합석하게 되었다. 아침에 버스 안에서 1인 5,000원씩 커피 값으로 받은 돈을 모아 차를 주문하였다. 평소에 드러나지 않게 은근하게 웃음을 선사하시는 오 교수님, 이번에도 역시나 김도 안 나면서 뜨거운 캐릭터 그 자체였다. 차와 술빵을 주문한 후 500원짜리 동전이 두 개 남았는데 이 걸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오교수님께서 가위 바위 보로 이긴 두 사람이 나누어 갖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 7명 모두 박수로 화답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의외로 금방 승부가 가려졌다. 이런 순간순간의 작은 테클 장면에서도 재치 있게 풀어 가시는 오 교수님은 사모님과의 연애도 참 재미있게 하셨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김봉식 전 회장님의 ‘어떤 형태의 강의라도 일단 강의는 무조건 쉬운 말로 풀어내야 제 맛’이라는 따뜻한 조언에 공감하며 오창혁 교수님의 재미있는 입담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 들다보니 어느새 출발시간을 넘긴 8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르고 보니 김종근 교수님과 사모님은 고구마 박스를 들고 타셨다. 나는 그제서야 ‘아차’ 했지만 다시 버스에서 내려서 그 곳까지 고구마를 사러 가는 건 무리였다.
드디어 빡빡한 듯 했지만 여유롭게 시작되고 아쉬움으로 남은 우리들의 2025년 가을 문화탐방의 마무리는 대구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루어졌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멘트와 함께 오 교수님의 제안으로 아내들의 남편 ‘흉 한 가지씩 보기(?)’가 시작되었다. 어찌 흉일 수만 있을까? ‘흉’이란 이름으로 덮여진 따뜻한 사랑의 어루만짐일 수도 있고 평소에 미처 뱉지 못한 고마움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애잔함일 수도 있겠지. 김 모 교수님께서 사탕을 드신 후 껍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바닥에 둔다는 사모님의 말씀에 나는 웃음부터 나왔다. 우리 집과 너무나 유사한 광경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느 가정이나 예외 없이 남자 쪽이 갑인 형태로 살아가고 있고 그 모습은 너무나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버스가 대구로 향하면서 이런 저런 남편 얘기가 나오기 전에, 오창혁 교수님의 흥미 있는 멘트가 있었다. 어떤 사모님 한 분이 자기에게 꼭 마이크를 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흥미진진하게 생각하며 기다렸다. 사모님들은 마이크를 사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마이크를 잡는다 해도 의례적인 인사말을 간단히 하시는 게 보통인데, 무슨 곡진한 사연이 있길래 자청하여 마이크를 잡으시려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모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앞쪽으로 걸어 나와 마이크를 잡으셨다.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를 즐겨 타는 것으로 소문났다는 N교수님 사모님이셨다. 내내 약간 떨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가셨다. 우리는 긴장과 기대, 그리고 흥미로움과 함께 귀를 기울였다. 작년 추석 전날 제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전을 붙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등산 배낭을 메고 나가시더란다. 배낭 부피를 보니 제법 며칠 걸릴 일정 같았다고 했다. 추석이라고 집안일을 도와줄 것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추석 바로 전날 몇 박 일정의 등산을, 그것도 미리 말도 없이 갑자기 떠나시니 기가 찼다고 하셨다.
그런데 N교수님은 그날 밤 어두운 등산길에서 계곡으로 추락하는 대형 사고를 당했고,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이후 7주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지는 안타까운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고 했다. 그동안 사모님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까. 아! 그런데 놀랍게도 N교수님은 또 곧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떠난다고 하니, 사모님의 마음이 어떠하실까. 하소연의 느낌을 떠나 소맷자락을 부여잡고 당기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다 같이 좀 붙잡아 달라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떨면서 말을 이어나가셨다.
사모님의 말씀의 핵심은 이랬다. 아무리 등산이나 트레킹을 평생 좋아해 왔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 취미활동의 형태도 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었을 땐 몰라도 일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 무리한 코스의 등산이나 트레킹을 계속한다는 것은 나이에 맞지 않으니 제발 좀 내 말을 듣고 조심하고 자제해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그런 얘기를 남편에게 한두 번 하셨을까. 사모님은 비록 우리 모두를 향해 애끓는 한탄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그 실질적 수신자는 남편인 N 교수님이었다. 안타까운 표정과 탄식으로 사모님에게 공감의 눈빛을 보내는 응원부대 역할은 우리 몫이었다. 그런데 그런 하소연을 접하고도 점잖게, 미동도, 얼굴 표정의 변화도 없이 조용히 웃고 계시는 N교수님은 득도한 도인 같으셨다. 배낭을 쉽게 벗을 분 같지 않아 보였다. 우리 모두는 N교수님이 좀 더 완화된 형태로 취미활동을 이어나가시어 앞으로는 그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아 사모님의 애끓음이 더이상 없기를 기원했다.
어느덧 대구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이 값진 투어를 위해 시간과 땀을 제공하신 집행부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무엇보다 오늘의 모든 순간순간이 따뜻한 잔상으로 남아서 내 삶의 활력이 되리라는 게 너무 고맙다.
내가 발 딛고 사는 대구 경북이 정말 자랑스럽다. K컬쳐, K한류가 세계 문화의 표준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넷플릭스에서 최근까지도 1위를 한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배경이 꼭 서울만이 아니고 K한류의 본거지인 이 곳 안동 봉화의 문화 유적지가 그 영화의 배경지가 되었더라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매우 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 명동의 공실률이 50%를 넘었다는데 지금은 5%로 줄었다고 한다. ‘케데헌’의 누적 시청자수가 8월말에 벌써 3억회를 훌쩍 넘었다니 만약 안동, 봉화가 그 배경지였다면 그들은 분명 이곳까지 찾아오지 않았을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이곳 사진은 편집자가 카페 게시판에서 선택, 첨부하였음을 밝힙니다.)
각주 1)
저는 박종갑 명예교수의 아내입니다. 제가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회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김정숙 편집위원장님의 강력한 권유 덕분(?)입니다. 저는 영남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쳐 영남대와의 인연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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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신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의 글을 받는 일은 첫 시도인데...... 문을 열어줄 분으로 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정도면 저의 판단도 녹슬지 않는구나라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박 교수님과 선생님 두 분의 글로 명예교수회의 가을문화탐방을 완전히 재현해 놓으셨습니다. 혹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역시 국어국문학과 교수님 사모님이라 다르구나 하시겠고, 혹자는 교수님보다 더 잘 쓰시는 것 아니야라고 하실지도????. 걱정되기도 합니다......ㅎㅎ 부담드려 죄송하지만 옥고를 받아낸 마음이 죄송함을 덮고도 남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신유 선생님 글 속에 표현된 따뜻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여행 사진을 찍는 그 순간순간, 여러분의 밝은 웃음이 오히려 제게 큰 힘이 되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