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기: 행복 국가의 조건
이 용 기 명예교수
폭염이 한창이던 8월 26일 나는 아내와 함께 스톡홀름행 대한항공 전세기에 올랐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세 나라를 차례로 방문하는 7박 9일 일정의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여행은 처음이었다. 오래전부터 이들 나라를 가보고 싶었던 데는 단순 관광을 넘어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따르면 이 나라들이 항상 세계 최상위 행복 국가 순위를 차지해 왔다. 올해 발표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반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 순위는 147개 조사 대상국 중 67위, OECD 국가 중에서는 사실상 꼴찌다.
이 최상위 행복 국가들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건 우리보다 많이 앞선다. 하지만 지표상으로 나타나는 실제 생활 수준에서 우리가 그들에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 1인당 명목 GDP는 우리보다 많이 높지만, 물가를 고려한 실질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국민이 느끼는 행복도에서는 왜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나는지 의문이 들었다. 최고의 복지국가들이라는 머릿속 이해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국민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증 해소를 위해 직접 가보기로 했다.
1. 스웨덴
열네 시간의 지루한 비행 끝에 오후 늦게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러시아를 통과하던 기존 항로가 러-우 전쟁으로 폐쇄되어 우회로를 이용한 탓에 두 시간이나 더 걸렸다. 서머타임 기간인 그곳은 우리보다 일곱 시간 늦었다. 북위 60도에 위치한 스톡홀름의 한낮 기온은 섭씨 20도 정도였다. 같은 위도에 있는 러시아나 캐나다 지역과 비교해 날씨가 온화한 것은 멕시코 만류 영향이다. 스웨덴의 면적은 우리의 4.5배로 북유럽 국가 중에서 제일 크고, 인구는 우리의 1/5 수준인 1,060만 명이다. 그러니 인구밀도는 우리보다 20배 이상 작아 토지자원이 넉넉한 나라이다.
이튿날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스톡홀름 시내 관광이 시작되었다. 스톡(stock)은 통나무, 홀름(holm)은 섬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스톡홀름을 직역하면 ‘통나무 섬’이 된다. 14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백만의 북유럽 최대 도시이고,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멜라렌 호수와 발트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이 온통 물이었다. 스톡홀름 하면 내게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벨상 외에는 환경이다. 1972년 환경에 관한 최초의 유엔 회의인 ‘스톡홀름 회의’가 열렸던 곳이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설립된 것도 이 회의 결과이다.
가이드는 먼저 스웨덴 국왕과 가족이 산다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으로 안내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젊어 미망인이 된 카를 10세의 왕비 엘레오노라가 착공하여 몇 차례 증개축을 거쳐 1756년 완공되었단다. 궁전 앞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뒤편 잘 꾸며진 넓은 정원을 잠시 거닐며 왕족이 된 기분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는 17세기 초 건조된 왕실의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바사 박물관을 관람했다. 이 거대한 배는 첫 출항 직후 스톡홀름 앞 바다에서 중심을 잃고 침몰했다고 한다. 매우 정교하고 어마어마한 규모에 압도되었다. 바이킹의 후예들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우리는 또 왕실의 각종 전쟁 무기와 전투복, 의상을 전시한 왕실 무기고를 보고 감라스탄이라고 하는 구시가지 거리와 상가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톡홀름 콘서트홀을 찾았다. 건물 앞에는 그리스 신화의 음악과 예술의 신 오르페우스의 커다란 조각상이 서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시상식 후 축하연이 열리는 시청사 내부를 둘러보았다. 1층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2층 ‘황금의 방’이라 불리는 큰 홀에서 연회가 열린다.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여왕 모자이크화가 새겨져 있었다. 스톡홀름을 상징하는 멜라렌 호수의 여왕이란다. 한강 작가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참석했던 연회장이다. 스톡홀름 관광을 마치고 이튿날 오후 우리 버스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남쪽 코펜하겐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잘 정비된 편도 2차선이었다. 차량 통행은 많지 않았다. 목적지까지는 660km, 일곱 시간 정도면 달릴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중간쯤 옌세핑이란 곳에서 숙박을 했다. EU 내에서 대형 버스 운행은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고 인솔자가 말했다. 타코 시스템에 의해 일정 속도 이상은 낼 수 없다. 기사도 장시간 연속 운전은 불가능하고 반드시 일정 간격으로 휴식해야 한다. 차량 운행 상황이 모두 타코 시스템에 자동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운전자의 복지와 승객의 안전,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제도였다. 중간에 숙박을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옌세핑으로 가는 길은 가을걷이가 끝난 드넓은 들판과 숲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경관, 농촌풍경에 매료되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광활한 들판과 숲이 조화를 이루어 끊임없이 펼쳐졌다. 소나무, 자작나무 숲. 들에는 밀, 보리를 주로 심는다고 했다. 온통 비닐하우스 천지에 난개발 현장으로 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농촌풍경이 대비되었다. 부러웠다. 오른쪽으로는 바다 같이 넓고 긴 호수가 계속 이어졌다.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베테른 호수다. 도착한 호텔 주변에는 벌써 낙엽이 제법 쌓여있었다.
이튿날 우리 버스는 일찍 출발하여 코펜하겐을 향해 계속 남쪽으로 달렸다. 어제와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가끔 낮은 구릉지대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숲의 나라답게 평지든 구릉지든 온통 나무다. 이케아 같은 세계적인 가구 기업이 생긴 것도 그런 배경일 것이다. 추수가 거의 끝난 빈 들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고 평화로웠다. 농가들이 가끔 보일 뿐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 드문드문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이 보였다. 남쪽 끝 덴마크 땅이 가까워지면서 풍력발전 시설들이 자주 나타났다. 고위도 지역이라 그런지, 경관과 환경을 고려해서인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 때쯤 우리는 북해와 발트해를 가르는 외레순 다리를 지나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했다.
2. 덴마크
덴마크는 면적이 우리의 절반이 안 되는(43%) 인구 600만의 작은 나라이다. 트럼프가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는 그린란드를 포함하면 훨씬 커지지만 그곳은 자치령이다. 과거에는 같은 바이킹의 후예, 같은 민족으로서 스웨덴과 노르웨이까지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스칸디나비아의 맹주국이었다. 다른 두 나라와 달리 국토 대부분이 평야 지대로 최대 높이가 해발 170m이다. 농경지가 국토의 60%를 차지하여 농업과 축산, 낙농이 발달하고 바람이 많아 풍력발전이 발달한 나라이다. 코펜하겐은 스칸디나비아에서 스톡홀름 다음으로 큰 도시로, 과거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시절부터 상업과 무역이 활발했던 북유럽의 중심 도시다. 가이드는 ‘코펜’이 쇼핑(shopping)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코펜하겐은 ‘쇼핑 항구’, ‘상업(상인) 항구’란 뜻이 되는 셈이다.
코펜하겐에서의 일정은 매우 짧았다. 덴마크 역시 군주국으로 왕궁 관람은 필수 코스인 듯했다. 덴마크 왕실 가족이 살고 있다는 아말리엔보르 궁전을 지나 국회, 최고재판소 등 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으로 갔다. 건물 꼭대기 첨탑 부분에는 왕관이 세 개 조각되어 있었다. 한때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지배했던 패권국의 위용을 자랑하듯 세 나라 모두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건물 안쪽 공터에는 자동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모두 소형차였다. 가이드는 그게 국회의원들 차라고 했다. 신차 구입시 자동차 가액만큼의 엄청난 세금이 붙기 때문에 차량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했다. 환경 문제와 자전거 중심 교통 문화 확산을 위해 자동차에 대해서 살인적인 세금을 부과한다고 했다.
덴마크 하면 동화 작가 안데르센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린이를 위한 대규모 놀이공원이 일찍부터 세워졌던 나라이다. 1843년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티볼리 놀이공원이 그곳에 있었다. 입장료가 꽤 비싸다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티볼리 공원 근처 대로변에 안데르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몇 년 전 한국안데르센상 동시 부문 수상을 한 아내도 앞에 앉아 한 컷. 미래의 꿈나무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공원과 아동문학, 그리고 관련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였다. 레고 산업의 본고장이 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사람들은 오후 4시면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어린이, 어른 모두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덴마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명물 작은 인어상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다. 80cm 크기의 작은 동상 하나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하여 1913년 만들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게피온 분수대와 새로운 항구라는 의미의 뉘하운(Nyhavn)이라는 곳도 들렀다. 뉘하운은 1673년 개통한 인공 운하인데, 양쪽 길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소 쌀쌀한 날씨인데도 수영대회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반나절 짧은 코펜하겐 관광을 서둘러 마치고 우리는 노르웨이로 향했다. 국토의 60%가 농경지라는데 농촌지역을 보지 못하고 덴마크를 떠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바로 옆 항구에서 오슬로행 35,000톤급 크루즈선에 탑승했다. 일행 모두 바다를 볼 수 있는 시사이드 객실을 배정받았다. 저녁과 다음 날 아침 식사는 선내 뷔페로 했다. 배를 전세 낸 듯 식당에는 한국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슬로까지 해상 거리는 약 500km. 오후 4시 반경 출발하여 이튿날 오전 10시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하기까지 18시간 가까운 지루한 항해였다. 오슬로 항구가 가까워지고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 오르자 항만으로 들어가는 바다 양쪽으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3. 노르웨이
이번 여행 7박 9일 일정의 중심은 노르웨이다. 오슬로에 도착하자 20년 이상 그곳에 살고 있다는 한국인 현지 가이드가 동행했다. 노르웨이는 면적이 우리의 4배, 인구는 550만이다. 인구밀도가 우리의 1/40밖에 안 되는 셈이다. 국토가 넓어도 산악지역이 대부분이라 경지면적은 3% 정도다. 이 같은 지리적 환경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깨끗한 환경의 조건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국민의 식량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1970년대 발견된 석유 자원 덕에 1인당 GDP가 10만 달러에 이르지만 석유 수출로 얻은 소득은 미래 세대를 위해 국부펀드에 투자하기 때문에 실제 소비수준은 그에 못 미친다.
노르웨이는 이웃 아이슬란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강한 농업 보호국이다. 산악지역이 대부분인데다 북위 60도 이상의 추운 기후조건으로 식량안보 문제가 중요하고 넓은 국토를 잘 보존하기 위해서다. 노르웨이 하면 또 떠오르는 게 1987년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유엔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주인공이 브룬트란트(G. H. Brundtland) 노르웨이 총리였다는 점이다. 그녀는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이나 덴마크와 달리 EU에 가입하지 않았다. 가이드는 그 이유를 농가와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식량안보와 넓은 국토관리를 위해서는 농·산촌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하도록 강한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EU의 대표적 농업 보호정책인 공동농업정책(CAP)으로는 목적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아이슬란드가 EU 가입 여부 국민투표를 시행한 결과 부결되었다고 가이드가 전했다. 기후조건이 더 안 좋은 아이슬란드도 강한 농업 및 어업보호 필요성이 EU 가입을 원치 않는 이유라고 했다. 그만큼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는 불리한 기후 및 지리적 조건으로 인한 식량문제, 국토보존과 균형발전 문제가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오슬로는 인구 70만의 노르웨이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북위 60도 고위도 지역이라 날씨는 추운 편이고 겨울에는 낮의 길이가 짧아 햇빛 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한낮 기온은 20도 정도.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바로 비겔란 조각공원을 둘러보았다.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의 작품 193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어 점심 식사 후 뭉크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절규(Scream)’로 잘 알려진 화가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전 생애에 걸친 많은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돌아보았다.
3시가 조금 넘어 우리 버스는 다음 일정을 위해 서해안에 위치한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으로 향했다. 7번 국도를 타고 베르겐까지 거리는 약 460km. 남북으로 길게 뻗은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넘어야 한다. 오슬로 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들녘 풍경이 펼쳐졌다. 밀, 보리, 감자를 심는다고 했다. 오르는 길은 평지를 달리는 듯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쯤 지났을까 어른 키보다 긴 막대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도로 양쪽 가에 계속 이어져 꽂혀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겨울철 눈이 너무 많이 쌓이기 때문에 도로 경계를 표시하기 위한 거라고 했다. 중산간 지역은 목초지가 많았다. 사료를 재배하고 소, 양 등 가축을 기른다. 정상부는 보통의 산맥들과 달리 평평하고 넓은 고원지대다. 황량한 벌판에 큰 호수들이 자주 보였다. 4억 년 전 형성되어 빙하가 쌓였다가 녹는 과정에서 오랜 세월 깎이고 침식되면서 정상 부분이 평평한 고원지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곳에 많은 호수가 생겨 깨끗한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송어가 산다고 했다. 툰드라 지대라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순록이 산다고 했지만 보지는 못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큰 하당에비다 국립공원이 거기에 있다. 동쪽과 달리 스칸디나비아 산맥의 서쪽은 경사가 가파른 협곡이 많고 피오르(Fjord) 해안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어디를 가나 울창한 숲과 호수, 맑은 강물(개울물)이 흘렀다. 이렇게 풍부한 수자원 덕에 노르웨이 발전량의 98%가 수력 발전이라고 가이드는 전했다. 98%라니 자못 놀랐지만 노르웨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 의식이 매우 강하고 공기 오염 때문에 화력발전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산되는 석유와 가스는 수출하여 국부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마침 네팔에서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 붕괴와 대홍수로 수천 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다는 소식도 들렸다. 근본 원인은 기후변화였다. 그때 나는 이 기후변화 문제를 가장 앞장서 제기해 왔던 북유럽 국가들을 방문하고 있었다.
베르겐은 14세기 중반 이후 한자동맹의 거점도시로 대규모 무역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말린 대구를 수출했다고 한다. 노르웨이가 수산업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본거지다. 그래서 수도 오슬로보다 베르겐의 소득이 더 높고 부자들도 더 많이 산다고 했다. 그러다가 석유가 발견되면서 중심 산업의 자리를 내주었다. 푸니쿨라(등산 열차)를 타고 플뢰엔 산(320m) 정상에 오르니 베르겐시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려와 한자동맹 당시 베르겐 부두의 목조 건축물을 구경했다. 낡고 오래된 그 당시 건축물들이 전통시장 가게가 되어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부둣가 어시장을 지나 시청사 근처에 있는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의 동상으로 향했다. 오슬로가 뭉크의 도시라면 베르겐은 152cm 단신 그리그의 고향이다. 노르웨이 민족주의 작곡가로서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데 많이 기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솔베이지 노래 같은 민족적 정서가 담긴 민속음악이 많다.
다음 날 송네 피오르(Sognefjord) 관광이 있었다. 구두방겐에서 유람선을 타고 플롬까지 두 시간 피오르 지역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송네 피오르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피오르로 내륙으로 184km나 뻗어있다. 그 절반 구역은 깊이가 1km가 넘는데 가장 깊은 곳은 1.2km이고 가장 넓은 폭은 5km나 된다고 했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가 빙하에 의해 만들어졌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간 긴 구간을 유람하는 동안 오가는 배나 낚시꾼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가끔 가옥들이 나타나곤 했지만 상업용 시설은 아닌 듯했다. 자연과 환경이 온전히 보존된 평화롭고 고요한 피오르였다.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우리 버스는 플롬에서 오슬로를 향해 출발했다. 중간쯤 게일로 지역에서 마지막 1박을 하고, 다음 날 일찍 오슬로에 도착하여 마지막 일정을 보냈다.
노르웨이 체류 중 하랄 국왕 서거 소식이 전해졌다. 도시 곳곳에 조기가 걸렸다. 국민들로부터 신임과 존경을 받는 왕이라고 가이드는 전했다. 우리는 칼 요한슨 거리를 지나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 앞에는 사람들이 갖다 놓은 각종 조화가 수북이 쌓여있고 조문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아케르스후스 요새,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오슬로 시청사와 노벨 평화센터 주변을 둘러보았다. 국왕 서거로 시청사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가이드는 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되기 2년 전인 1903년 세상을 떠난 노벨이 생전에 평화상 시상식은 피지배국에서 열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벨평화센터는 시청사 옆 아담한 건물이었다. 그곳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포함한 노벨상 수상자들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건물 벽면에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킹(M. L. King Jr.) 목사의 연설문 한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We must learn to live together as brothers or we will perish together as fools.” 몇 시간 주어진 자유시간에는 바로 옆 국립 박물관 미술작품을 관람했다. 오후 6시 우리 버스는 귀국길에 올라 공항으로 향했다.
가이드는 여행 기간 버스로 이동하는 중간중간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노르웨이는 공공의료 시스템을 시행하는 나라로 의사를 포함해 모든 의료인이 공무원이란다. 국민 모두 차별 없이 동등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부여된다고 했다. 진료를 받으려면 국왕이나 그 가족도 일반 국민과 똑같이 순서를 기다려야 한단다. 공공 시스템의 단점도 덧붙였다. 중병에 걸렸어도 마냥 순서를 기다려야 하고, 인센티브가 없으니 의료기술 발달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리 목적의 민간의료기관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교육도 공교육으로 대학까지 공짜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는 잘 노는 게 공부란다. 굳이 대학 가기 위해 기를 쓰지 않는단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업하여 잘 사는 데 문제가 없어 실업계 고등학교가 오히려 더 선호된다고 했다. 공공의료, 공공교육, 공공복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북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최상위 행복 국가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중요 요인일 것이다. 국민의 세금 부담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1인당 GDP가 10만 불에 달해도 세금이 많아 손에 쥐는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저축도 신경 쓰지 않는단다. 국가에서 기본적인 것을 다 해 주니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세금이 많다는 것은 내 소득으로 나만 쓰는 게 아니라 함께 쓴다는 얘기가 된다. 공동체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추구하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호텔 욕실에는 1인용 샴푸나 린스도 없었다. 머리와 바디 공용 세제를 큰 통에 담아 연속해서 쓰도록 비치해 놓았다. 비데 장치도 없었다. 식당이나 휴게소의 화장실도 그랬다. 이런 사정은 스웨덴도 마찬가지였다. 낭비를 줄이고 검소하게 합리적 소비생활을 추구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주는 물은 정수하지 않은 수돗물이라고 했다. 그만큼 수질이 좋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버스에서 파는 생수를 자주 사 마셨다. 일반 상점보다 싸다는데 500ml 남짓 크기의 페트병 3개가 5유로(8,000원)였다. 휘발유도 우리보다 두 배 비쌌다. 물가가 우리보다 훨씬 비싸고 석유 수출하여 번 돈은 국부펀드로 저축하다 보니 실제 생활 수준은 사실상 우리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4. 귀국길
국가의 행복지수는 국민 의식 수준과도 관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전부 30명이었다. 나는 이런 해외 단체여행이 처음이었다.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듯했다. 여행 시작부터 끝나는 날까지 같은 대형 버스를 이용했다. 장시간 좁은 공간에서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스톡홀름을 떠나 코펜하겐으로 출발하면서 인솔자는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지정된 좌석이 아니니 서로 바꿔가며 앉으라고 했다. 좌석 알박기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우리의 에티켓 수준은 그와 무관하게 움직였다. 여섯 명이 함께 온 젊고(?) 민첩한 아줌마 부대는 끝나는 날까지 맨 앞 두 줄을 독점했다. 어떤 아줌마 둘은 테이블 쪽 여유 공간이 좀 있는 좌석을 시종 놓치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두 다리는 쭉 뻗은 채로.
인천행 비행기는 밤 10시 45분 출발이었다. 우리 버스는 일찍 오슬로 가르데모엔 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나는 중간쯤에 서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한 아줌마가 큰 가방을 끌고 말도 없이 내 앞으로 끼어들었다.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보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비슷한 행동을 보였던 여섯 명 그룹의 그 여성이었다. 나는 맨 앞쪽을 가리키며 한 마디 건넸다. “저 앞으로 가세요.” 그럴 자신은 없었는지 아니면 무안해서인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탑승 게이트 주변은 온통 한국 사람들로 붐볐다. 무슨 연유인지 손목을 잘라버리겠다며 험악한 고성을 주고받는 소리도 들렸다. 길거리에 가래침을 뱉으며 다니던 일행 중 한 사람은 기내에서 보니 부인과 함께 비즈니스석에 앉아 있었다. 돈은 좀 있구나 싶었다. 행복지수 67위 국가 사람들이 해외에서 보여준 모습들이다. 시차 적응을 못 해 일주일 내내 밤잠을 거의 못 잤다. 이래저래 피곤했다.
인천에서 환승한 대구행 비행기는 예정보다 많이 지연되어 어두워져서야 출발했다. 경기도 상공을 통과할 때쯤 창문 밖으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로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놓은 골프장들만 여기저기 선명하게 보였다. 저 엄청난 전기 소모와 환경 문제 괜찮은 건가? 비행기가 대구 근처 상공에 접근하자 똑같은 광경이 내려다보였다. 밤에도 대낮처럼 밝히고 풍요를 누리며 사는데 행복지수는 왜 OECD 최하위일까? 하루 전까지 둘러보던 북유럽의 행복 국가들이 대비되었다. 빙하 붕괴 대홍수로 수천 명이 희생된 네팔의 참혹한 광경도 스쳤다.
5. 행복 국가의 조건
스칸디나비아 3국은 같은 북게르만 민족으로 바이킹의 후예들이다. 언어도 비슷하여 통역 없이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모두 국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이고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중심 종교는 개신교 교파인 복음주의 루터교인데 종교적 신앙심은 깊지 않다고 한다. 일찍 선진국에 진입하여 명목소득은 높지만, 실제 생활 수준은 우리보다 나아 보이지 않았다. 소박하고 검소했다. 기후조건도 안 좋다. 그런데 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적 풍요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행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소득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이상 인간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적 욕구와 생활 철학, 국민 의식과 문화가 중요한 것 같다. 그들의 생활은 소득 수준에 비해 매우 검소해 보였다. 흔히 말하듯 인간의 물질적 욕망이 무한하다면 그들의 행복지수는 그 정도로 높지 못했을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말해주듯 북유럽 국가들은 대표적인 복지국가이다. 교육, 의료, 육아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needs)를 누구나 공평하게 누리도록 국가가 보장한다. 그러니 더 잘 살기 위해 기를 쓰고 남과 경쟁할 필요가 없다. 남보다 앞선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도 않는단다. 삶의 여유가 있고 상호 배려와 존중 문화 속에 사회적 신뢰도 쌓이게 되니 자연히 행복해지는 것이다. 지리적 공간과 환경 조건도 행복에 중요한 요소다. 인구수에 비해 국토가 충분히 넓어 자원 획득을 위한 치열한 경쟁도 필요 없을 것이다. 여기에 농촌지역을 포함하여 국토를 아름답게 보존하고 가꾸는 높은 환경 의식이다. 전 국토가 커다란 정원 같다. 그런 좋은 자연환경 속에서 여유 있게 삶을 즐기며 사니 행복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일찍이 유럽을 중심으로 농업·농촌의 공공적·공익적 가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브룬트란트가 북유럽 사람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물질적 측면만 보면 북유럽 국가들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행복 순위는 최하위다. 무엇보다 지나친 물질만능주의와 경쟁하는 문화가 문제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어린이들조차 행복하게 살려면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대학의 전공 선택도 돈벌이가 기준이다. 그러나 돈의 가치가 최고로 인식되는 한 그 사회는 행복할 수 없다. 정부는 기후위기 속에서도 성장주의 정책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은 너나없이 주식과 비트코인 투자에 매달린다. 자연, 환경, 생태계가 계속 파괴되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해져 간다. ‘4세 고시’란 말처럼 어려서부터 공부에 찌들고,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이 치열하니 이웃과 친구는 경쟁 상대로 인식될 뿐이다. 좁은 국토에서 5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자원 경쟁하느라 서로 지지고 볶는다. 수도권은 발 디딜 틈도 없고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로 가득하다. 경쟁사회는 언제나 서열이 매겨지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마련이다. 불평등과 양극화, 불신 사회가 되는 건 필연적 귀결이다. 삶이 곧 경쟁인데 마음의 여유, 삶의 여백이 있을 수 없다. 이런 국가의 국민이 어찌 행복지수가 높을 수 있는가? 67위 성적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80년 전 김구 선생은 저서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높은 문화의 힘을 갖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그것이 우리 자신과 남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짧았지만 행복 국가들의 실제 모습을 둘러보면서 좋은 인간 세상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힘은 좀 들었어도 내게는 뜻깊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