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성경으로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이상한 개똥철학이나 서로 베낀 예화로 어지러운 설교를 하는 분들이 좀 있는데요. 『성경으로 설교하기』(생명의말씀사)를 설교자는 물론이고 평신도도 읽어 놓으면 그런 잘못된 관행과 오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주해(Exegesis)가 무엇인지 아래에서 읽고 알면 좋겠습니다.
주해의 정의
해석 혹은 해석학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기초를 놓기 위한 개념이라면, 주해는 더욱더 실천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개념이다. 주해(Exegesis)란, 본문의 의미를 해석해 내는 작업이다. 주해의 'Exegesis'란, 헬라어 '엑세게시스'(ἐξήγησις)에서 나온 표현으로 '~로부터 이끌어 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주해란 본문이 말하고 있는 의미를 그대로 해석해 내는 작업으로, 본문이 그 의미를 스스로 설명하도록 본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필자는 주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주해: 본문으로부터 의미(meaning)를 도출하는 실천적인 과정 |
주해란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도출하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의미는 본문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원하는 의미를 얻기 위해 본문을 사용하거나, 의미를 본문에 주입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의미는 '저자의 의도'(authorial intention)이며, 그 저자의 의도는 '본문의 의도'(textual intention)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렇기에 주해란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어야지,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의미를 본문으로 증명하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보자. 스가랴 9장 9절은 겸손하여 나귀를 타는 왕에 관한 예언이다.
스가랴 9장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
스가랴 9장 9절은 한 왕이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시온성에 입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본문의 주인공은 '겸손한 왕'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설교자가 본문을 읽고서 주인공인 왕 대신, 왕을 태운 '나귀'에게 집중하기로 했다고 상상해 보자. 만약 그가 나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왕을 모시는 나귀의 겸손함'을 설교 주제로 선정하고, 청중을 향하여 겸손의 미덕을 설교한다면, 그 설교가 바른 설교일까? 그렇지 않다. 본문은 인간의 겸손함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왕의 겸손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 21장 5절은 스가랴 9장 9절을 인용하면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겸손함을 제시한다. 이제 곧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한 왕이심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겸손'과 '왕권'은 언뜻 보면 서로 연결되기 어려운 상호 반대의 두 주제인데,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에게서 겸손과 왕권은 하나로 연결된다. 이러한 내용이 스가랴 9장 9절에 예언되어 있다. 따라서 스가랴 9장 9절로 설교하려 한다면, 청중을 향해 "겸손하라"라고 외치기보다, '겸손하여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신 왕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선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결과적으로 그 말씀을 듣는 청중은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따라 그들 역시 겸손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겸손함'에 대하여 설교하고자 한다면, 스가랴 9장 9절을 본문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인간을 향해 겸손하라고 권면하는 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그 예로 베드로전서 5장 5~6절을 들 수 있다.
베드로전서 5장 5~6절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이 본문은 사람의 겸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물론 이 본문 역시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해야 한다는 성경의 전체적인 메시지에 근거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문에서 사람의 겸손에 대하여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 본문을 가지고 그 설교의 핵심으로 인간의 겸손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가랴 9장 9절을 읽고 나귀에 집중하거나 인간의 겸손에 집중하여 본문의 의미를 드러내려 한다면, 그러한 과정은 '주해'가 아니다. 오히려 해석자가 자기 생각과 의도를, 본문을 빌려 표현하는 인간적 주장에 머물게 된다. 주해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주해를 통해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도출해야 한다.
김희석, 『성경으로 설교하기』(생명의말씀사), pp.28-31.
첫댓글 저자(글) 김희석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B.B.A),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Th.M),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Ph.D)을 졸업하고,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잠언의 해석학으로 박사논문을 썼으며, 시편·이사야·소선지서·언약신학 등을 중심으로 구약 본문을 연구하고 있다. 특별히 신학생들에게 주해 방법론을 강의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주해를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주해를 통해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도출해야 하며, 주해는 설교나 묵상 등 사역과 일상의 현장으로 이어지는 철저히 실천적인 과정이다.
저자는 특히 지난 15년 동안 강의 현장에서 주해 보고서를 꾸준히 작성하게 하며, 본문을 읽고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그의 8단계 구약 주해 방법론은 언약신학의 관점에서 해석자가 본문을 통전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살아 있는 방식으로 청중에게 전달하도록 돕는다.
저서로 『언약신학으로 본 구약의 하나님 나라』, 역서로 『성경신학적 구약개론』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A Critique against God? Reading Psalm 80 in the Context of Vindication” 등이 있다.
공부 많이 한 훌륭한 신학자로 보입니다.
책 속으로
주해란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주해를 통해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도출해야 한다. 주해는 철저하게 현장 중심의 실천적 과정이다. 다시 말해, 주해는 본문을 해석해서 설교하거나 묵상하는 등 우리의 사역과 일상의 현장에 접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주해란 무엇인가? p.31
본문을 정확하고도 적절한 눈높이로 번역하면, 더불어 경험하게 되는 또 다른 유익 한 가지가 있다. 본문이 우리 눈앞에 매우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본문이 내 눈앞에서 춤을 춘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처음에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던 본문이 나를 향해 한걸음 껑충 뛰어 가까이 다가왔기에, 그 본문의 메시지가 나의 머리와 가슴에 들어오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본문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가 이미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단계] 본문 확정과 개인 번역: 원문을 나의 말로 번역하라 p.67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본문을 건강한 범주에서 해석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역사적 정황과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 역사적 정황 연구에서 다루어야 할 두 번째 이슈는 저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즉, 내가 주해하려는 본문의 저자가 누구이며, 저작 시기는 언제인지에 대해 살피고, 그에 대한 주해자의 의견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 저자 및 저작 시기 문제가 본문을 해석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본문이 어디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신명기를 비롯한 오경에 대하여 모세 저작설을 따를 것인지 혹은 비평적 학설을 따를 것인지에 따라서 본문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2단계] 역사적 정황 연구: 본문의 배경을 조사하라 p.79
단어 연구란, 한 단어가 정경 전체의 흐름에서 어떤 큰 그림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연구이다. 그 단어가 성경 전체에서 가지는 의미의 종류를 살펴서 그 단어의 전반적인 활용 양태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후 5단계에서 본문에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잘 살피고, 정경 전체의 큰 그림과 비교해 보게 될 것이다.
[3단계] 단어 연구: 핵심 단어의 활용 양태를 파악하라 p.85
해석이란, 고대의 본문이 당대 청중에게 가졌던 의미가 현대의 독자에게도 적절한 의미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관점에서 장르를 이해하면 본문 주해에 큰 도움이 된다.
이때 그 장르의 문예적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예적 특징이란 그 장르에 속하는 본문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구조·구문·어휘적 특징을 말한다. 장르에 대한 모든 이론적인 기초들을 다 조사하려고 하기보다, 그 장르가 가진 전형적인 문예적 특징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4단계] 장르 연구: 본문이 속한 장르의 전형적 특징을 파악하라 p.105
본문을 둘러싼 앞뒤 텍스트의 흐름 안에서 그 본문을 이해하고 관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개의 구약 본문의 경우, 책 전체의 거시적인 구조로부터 미시적인 구조까지 차례로 살펴보는 줌인(Zoom-In) 방식의 순서를 따라 관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줌인 방식이란 거시 문맥으로부터 미시 문맥으로 주해 본문이 속한 문맥의 흐름을 순서대로 파악해 나가서 마지막에는 본문의 문맥적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방법이다.
[5단계] 문학적 정황 연구: 본문을 그 본문이 속한 책 안에서 설명하라 p.120
우리는 이제 본문이 속한 책 밖으로 나가, 어떻게 발전되고 전개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에서 예수님의 사역 및 신약 교회 사도들의 말씀으로 연결해 보아야 한다. 이 단계가 바로 정경적 정황 연구이다. 조금 더 학술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주해 본문을 ‘구원 계시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풀어서 설명한다.
[6단계] 정경적 정황 연구: 주해 본문을 정경 전체의 흐름에서 설명하라 p.161
조직신학과 연결한 후에는 이제 보편화된 본문의 메시지를 우리 삶의 현장과 연결시켜 보도록 한다. 즉, 우리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는가, 우리 사회의 현안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현장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두 가지 과정, 즉 조직신학의 내용과 실제적으로 연결하는 작업 및 이를 현장에 접목한 메시지로 풀어내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7단계] 신학과 메시지: 본문의 의미를 보편화하라 p.209
본문을 주해하는 것과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설교는 본문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어야 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설교란 본문의 메시지를 그대로 청중에게 연결하여, 본문의 의미를 살아있는 생생한 메시지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작업이다.
설교는 주해 작업 그 자체는 아니다. 설교문은 청중의 수준, 특성 등을 고려하여 본문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새로운 준비 과정을 거쳐서 작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8단계의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8단계] 개요 작성: 본문의 의미를 사역의 현장에 접목하라 p.215
책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좋은 단서가 되겠습니다.
@천이다 공감합니다^^
주해(Exegesis)는 내 생각을 본문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과 저자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이끌어내는 과정입니다.
본문의 원래 정황과 현대의 정황을 연결하는 실천적 해석을 통해 일상과 사역의 현장에 올바르게 접목해야 합니다.
아멘 🙏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사용'했던 적은 없는지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글이네요.
나귀의 겸손이 아닌 왕의 겸손에 집중해야 한다는 예시를 보니, 본문의 진짜 주인공을 놓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주해가 단순히 딱딱한 학술 공부가 아니라 우리 삶과 사역을 잇는 실천적인 과정이라는 점이 참 따뜻하고 도전이 됩니다.
공감합니다~
신학생들에게 주해설교를 훈련시키고 있는 훌륭한 신학자인 것 같습니다.
주해설교에 대해서 잘 배웠고, 꼭 실천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공감합니다.
성경 본문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본문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겸손한 경청의 자세가 인상적입니다.
나의 선입견을 투영하기보다 텍스트 안에 담긴 진의를 정직하게 '이끌어 내는' 과정이야말로 해석의 정석이라 생각합니다.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주해의 실천적 가치가 본문의 생명력을 더욱 살려주는 것 같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