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흔든
문정왕후의치맛바람
전하의나랏일이
그릇되었고
나라의근본이망했으며
하늘의뜻은떠나버렸고
민심도이미
이반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생각이
깊으시기는하나
한낱궁중의
과부에지나지않고
전하께서는어리시어
다만선왕의
외로운
아드님일뿐이니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1555년11월
남명조식이명종에게
올린상소다
조식은벼슬은
하지않았지만
초야에서
수양에힘쓰며
선비들의
존경을받고있었다
그는당시나라사정을
벌레가갉아먹고
수액이말라버린
나무에
비유하며
폐단을통렬하게
비판했다
이것이그유명한
을묘사직소다
특히임금의어머니인
문정왕후에게
과부'라고지칭하며
책임을물은점이
눈에띈다
명종은
부들부들떨었고
조정에큰파문이일었다
조식은
왜자신의작심발언에
그녀를끌어들였을까
조식이통분을
금치못했던명종시대
명종은1545년
12살의나이로
임금이되었다
대비
문정왕후가
미성년자임금을대신해
수렴청정을했다
그런데이여인
치맛바람이대단했다
조선시대에
수렴청정이야
여러차례있었지만
누구도
그녀만큼
노골적으로권력욕을
드러내진
않았다
오죽하면세간에서
여왕이라불렀을까
문정왕후는원래중종의
세번째
부인이었다.
첫번째부인단경왕후는
연산군의처남
신수근의딸이었는데
중종반정직후
강제이혼당했다
두번째부인장경왕후는
세자인종을낳자마자
산후병으로죽었다
문정왕후는
제자식인경원대군을
왕위에앉히기위해
세자를집요하게괴롭혔다
1543년
세자가기거하는
동궁이
화재로불타버린것도
이듬해
우여곡절끝에
즉위한
그이가 8개월만에
요절한것도
그녀의사주에의한
횡액이라는설이있다
마침내
어린아들이
왕위에오르면서
문정왕후의
권세는하늘을찔렀다
그녀는동생윤원형을
앞세워조정을장악하고
그 첩인
정난정을통해
시전과도결탁했다
오늘날로치면
정계와재계의고삐를
한꺼번에틀어쥔것이다
문정왕후의
권력욕은1553년
수렴청정을
그만둔후에도
사그라지지않았다
성인이된명종은
어머니의치마폭에서
벗어나려고했지만
대비는
막무가내였다
궁녀들을시켜아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가하면
말을
안듣는다고
임금의
뺨을때리기도했다
조식이
임금의어머니를
거론한
이유가여기에있다
당시조선은문정왕후의
치맛바람에
흔들리고있었다
그녀에게맞신하들은
을사사화
양재역벽서사건등으로
대거목숨을잃거나
유배를떠났다
그야말로똥가리가난다
반면탐관오리들은
불의한권력에빌붙어
백성의고혈을
빨아먹었다
가혹한
세금에시달리던
농민들은땅을버리고
유랑길에올랐다
그실태가1557년
단양군수황준량이
조정에올린수습책에
자세히적혀있다
이제집도없이떠도는
백성이
궁벽한골짜기에
이르러
원망에차서울부짖는
자가얼마인지
알수가없습니다
뭇사람들의원망이골수에
사무쳤는데도
위로통할수가없으니
반드시그잘못에대한
책임을묻는
자가있게될것입니다
이경고는
의적임꺽정의등장으로
현실화되었다
1559년먹고살기위해
도적에게의탁하는
백성이
적지않았다
뭉치면도적이고
흩어지면백성이었다
명종시대의
감옥은
정의가강물처럼
흐르지않았다
오히려억울한사람들의
피눈물이흘렀을터
그곳은
문정왕후와
그일가가누린
부귀영화의그림자였다
하루중
가장어두운때는
해가뜨기직전이라고한다
1565년문정왕후가
세상을떠나자
나라를주무르던
외척세력과훈구파도
지는해가되었다
새로이
떠오른사림은
그들을나라에든
큰도둑으로단죄했다
진짜도둑은
임꺽정이나백성이아니라
정치를잘못한
위정자들이라는것이다
그러나
태릉에묻힌문정왕후는
임금의어머니인덕분에
이역사적
심판에서비켜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