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리암 니슨’의 딸이고 두 번째는 ‘원빈’의 옆집 소녀. 잘못 했다가는 ‘나는 가노란 말도 못하고’ 바로 요단강 건너는 수가 있다. 마지막은 초등학생의 체육수업이다. 눈이나 비가 와서 야외 체육활동을 못할 경우 그 진노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는 초등 교사 아내의 생생한 증언이다.
세대에 따라 달라져야 할 교수법
얼굴은 잔뜩 심통 난 표정으로 붉으락푸르락, 호흡도 거칠어져 씩씩거리는 등 거의 핵폭발 직전의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 맘 때의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온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각종 학원과 선행학습으로 에너지를 방출할 공간과 시간이 없으니 학교에서의 공식적인 체육수업은 그야말로 견우가 직녀를 만나는 칠월칠석이요 춘향이 목 빼고 기다리던 이몽룡인 셈이다.
육체로만 한정하면 고령자의 육신은 아이들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설계되었다. 섭생과 의료의 발달로 건강이 증진 되었다지만 신체의 노화는 붙들어 맬 수가 없는 일이다. 박대통령이 얇은 실로 피부를 탱탱하게 당길 수야 있겠지만 가는 세월은 결코 잡아 당겨지지 않는다. 허니 노화에 극렬 저항할 것이 아니라 순응할 일이다.
오늘 단어 하나를 외웠으면 내일은 열 개가 증발해 버리는 요즘. 눈의 노화가 심각히 진행되어 모니터를 오랫동안 바라 볼 수가 없다. 이런 상태이니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 주저주저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학습에 있어서도 아동과 청소년과 고령자에 대한 교수법과 운영방식은 각각 달라야 한다. 여러 세대가 섞여 있을 경우 연령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진행이 된다고 하면 고령자는 이내 포기하면서 죄 없는 자신의 나이에 한숨 흘리기 십상이다.
작년 이맘때 쯤 수원시평생학습관의 시니어플랫폼 《뭐라도학교》를 본지에 소개한 바가 있다. 《뭐라도학교》에는 멤버 스스로 사업 아이템을 제안하고 그 취지와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활동하는 사업단이 있다. 그중에서 <일대일컴퓨터교실>(이하 ‘일대일’)은 이름 그대로 시니어를 대상으로 일대일로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사업단이다. 몇 년 전 일본 미타카시를 방문했을 때 시니어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시키고 있는 사업을 보았는데 유사한 노노케어의 사업이 《뭐라도학교》에서도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을 제안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계신 강병원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강선생님은 공군에서 36년간 사무관으로 근무한 후 지난 2012년 3월에 퇴직을 했는데 그곳에서의 업무가 정밀 측정장비를 다루는 특수 분야였다. 공군으로 치면 비행기에 장착되는 모든 계기류와 통신장비들, 육군으로 얘기하면 모든 포에 장착하는 계측기 등을 정비하는 곳에서 전체적인 총괄 통제기획하는 업무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가 필수. 업무의 알파와 오메가가 컴퓨터였던 것이다. 지금이야 지나가는 개도 스마트 폰을 하는 시대지만 36년 전이라고 하면 컴퓨터의 신석기 시대 아닌가. 8비트 컴퓨터에서 겨우 16비트로 넘어가던 시절이고 접속 한번 하려면 모뎀에서 나오는 ‘삐이익’ 소리가 온 방에 울려 퍼진 시기다.
▲ 강병원 선생님 ⓒ수원시평생학습관
그러면 컴퓨터를 어디서 배우고 익혔을 지가 궁금했다.
“저희 ‘일대일’ 수강생 중에 이런 말을 하신 분이 계세요. ‘선생님은 어떻게 우리가 어려워 할 만 한 것을 딱딱 잘 집어서 그렇게 잘 가르칠 수 있어요?’ 사실 저는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통해 공부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반드시 생깁니다. 책 보고 다 이해되면 강사가 뭐 필요하겠어요. 더더욱 프로그램 짜는 것도 어디 물어볼 데가 마땅치도 않았고요. 그렇게 혼자 하다 보니까 컴퓨터가 잘못돼서 이상하게 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럴 땐 참 미치죠. 그런데 그 고비를 넘기니까 뭐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몸으로 때워가며 익혔으니 잘 잊어먹지도 않죠. 사람이란 다 비슷해서 제가 헷갈리기 쉬운 것은 다른 분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니 그런 부분은 사전에 주의를 주고 반복해서 가르치죠. 그 고비만 넘기면 됩니다.
당시에 제가 한나절 작업하던 것을 싹 날려 먹은 적이 있어요. 복구도 안 되고, 앞이 막막하죠. 아마 머리에 냄비를 올려놓았으면 라면이 끓었을 테고, 뱃속에서 뭐가 올라오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제가 수돗가까지 기어가서 물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했죠.“
강선생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처음부터 ‘일대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필연은 이렇게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우리교회에서 2012년에 있었던 일이에요. 당시 68세 되신 분이 교회 일과 관련해서 보고서를 가져 왔는데 손글씨로 되어 있었지요. 군대에서도 필경 이런 일을 하셨으니 일가견도 있고 자부심도 있는 분이죠. 그래서 그분은 ‘글씨 잘 쓰시네요’ 이런 말을 들을 줄 아셨을 텐데 제가 ‘아니 보고서를 왜 컴퓨터로 작업하지 않으셨어요’ 하니까 굉장히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요. 그래서 대뜸 하는 이야기가 ‘누가 컴퓨터로 하면 좋은지 몰라서 그래? 나도 배우러 몇 군데를 다녔다고. 복지관도 가고 동사무소도 가고 학습관도 가고. 그런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배울 수가 없었어.’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따라갈 수 없느냐 물었더니 ‘거기에는 젊은 사람도 있고 나처럼 나이든 사람도 있는데 처음 시작할 땐 천천히 가르쳐 주는 듯 하다가 어느새 진도 나가기 바쁘니까 도저히 따라갈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느 강좌를 가도 한 2~3회 다니다가 포기하게 되더라구.’ 그런데 그분이 사실 머리가 굉장히 좋으신 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르쳐 드릴 테니까 일주일에 한번 시간 낼 수 있겠습니까’ 물어보니까 ‘가르쳐준다면 좋지 뭐’ 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번 컴퓨터 기초, 인터넷 기초, 한글, 엑셀, 파워 포인트 이렇게 1년 과정으로 오피스까지 끝을 냈어요. 그랬더니 이분이 ‘야 좋다, 일대일로 가르쳐주니까 진짜 좋다. 진작 이렇게 배웠어야 하는데’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그분은 이제 보고서를 한글이 아니라 엑셀로 작성하시게 되었죠. 하하하. 그래서 ‘엑셀은 회계장부를 작성할 때 유용한 것이고 보고서는 한글로 작성하셔야 됩니다’ 그랬더니 ‘나는 엑셀이 더 편해’라고 말씀하세요. 그렇게 해서 이분은 현재 저희 스탭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일대일의 효과를 확실하게 체감한 경험이었네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어요. 그분이 교회에서 보통 분이 아닌데 그 일이 입소문이 나니까 사람들이 배우려고 온 거에요. 갑자기 5~6명, 나중엔 열 명까지 늘어났고. 헌데 저 혼자 그 인원을 가르치려고 하니 못하겠는 거예요. 능률도 안 오르고 효과도 별로 없고 힘은 힘대로 들고. 일반강좌의 강사들은, 물론 수강생들이 제대로 잘 익히면 좋겠지만, 모르면 또 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 시간 채우고 진도 나간 후 강사료 받는 거죠.
그런데 저는 전혀 진도하고도 관계가 없어요. 제가 따로 강사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이분들 가르쳐 주는 게 목적이지 강사료 받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래서 더 힘이 드는 거예요. 왜? 몰라도 진도 나가면 괜찮은데 알게끔 하려고 하니까 훨씬 더 힘이 들죠. 게다가 인원도 많고.”
▲ 시니어일대일교실 수업 장면 ⓒ수원시평생학습관
▲ 시니어일대일교실 멤버 ⓒ수원시평생학습관
박대통령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심령의 언어가 아니라 정책과 시스템으로 말을 해야 하는 자리이다. 그래도 인간사 궁즉통(窮則通)이라, 최선을 다 하다 보면 꽉 막힌 길이 열리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뭐가 좀 보이는 거예요. 수강생 중에도 상대적으로 좀 난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좌석 배치를 달리한 거죠. 좀 잘 아는 사람이 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가 앞에서 강의를 하면 몇 사람이든 이해하는 사람은 있단 말이에요.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그러면 일대일로 앉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제가 천천히 강의를 할 테니 당신이 요 사람 좀 가르쳐줘라’ 이렇게 된 거죠. 이렇게 하면 한 번에 여러 명을 가르쳐줄 수 있겠다, 일 년 정도 이 방식으로 한다면 효과를 좀 낼 수 있겠다. 이 생각을 하고 시도를 했어요.”
그래서 현재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일대일’ 강좌를 열고 있다. 월요일에는 컴퓨터 기초, 목요일에는 인터넷 기초 각각 10주 코스. 현재 3기 교육 중인데 지금까지 총 34명이 거쳐 갔다. 학습관의 <찾아가는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근 노을빛복지관에서도 1년 과정의 교육을 진행 중에 있다. 이 강좌에는 당연히 보조강사가 붙는다. 학습관의 <인생수업>을 수료한 사람 중에서 일정한 교육을 이수한 분이 선발되었다. 그러니까 일반 수강생 중에서 보조강사라는 스탭으로 활동하기도 하는 순환구조를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반 컴퓨터 강좌와 ‘일대일’의 차이점은 어디에서 발생할까.
“아까 교회 신도 분 예를 말씀드렸는데 컴맹인 분들은 일반 컴퓨터 교습소에 가면 기술 습득을 거의 못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스탭으로 오신 분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세요. 저도 다녀봤습니다. 그런데 사실 배우지를 못합니다. 조금 진도를 나가게 되면 잘하는 사람 기준으로 맞춰버리니까.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대일로 가르쳐주는 것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는 거죠.”
‘일대일’ 강좌의 차별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컴퓨터를 배웠다고 해서 일상적으로 쓰지 않으면? 우리는 잘 알지 않는가. 원래 상태로 리셋되기 쉽다는 것을. 요요현상과 유사한 일이다. 그래서 강선생님은 어디든 가서 유용하게 사용하길 권한다. 그리고 가급적 스태프으로 참여해서 활동하기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그래서 ‘일대일’ 기수별로 <인생수업>도 참여하고 ‘스태프로도 활동하기로 하였다.
“그런 분들을 계속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주고 평생학습관에서 동아리 형식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스태프에 대한 특별한 교육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특별히 정해진 교육과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기본소양, 마음가짐에 대한 일상적 교육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멘토링에 대한 개념을 꼭 하라고 합니다. 수강생에 대해 주중에 전화 한번 하시고, 문자 한번 보내시고, 어려운 게 없는지 물어 보시고, 숙제는 제대로 했는지 체크해 보시고, 그 분이 어려운 점이 있다면 체크해서 주강사에게 얘기해 달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 똑같은 강의를 여러 번 합니다만 내일 무슨 강의가 있다고 하면 아무리 쉬운 컴퓨터 기초과정이라도 꼭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 나갑니다. ‘그거 이미 한 건데, 쉬운 건데 그냥 나가서 하면 되지’하면 안 됩니다. 쭉 훑어보고 강의를 합니다. 스태프 선생님들이 그런 마음 자세가 되지 않으면 그분들을 케어한다는 마음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거예요. 수강생들은 스태프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말은 안 해도 훤히 압니다. 이런 마음 교감이 ‘일대일’이 성장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좋은 결과가 나올 거고요. 처음 시작할 때 기초공사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형 사업단이지만 그래도 수익성 측면에서 고민이 많을 텐데요.
“수익성에 대해서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지금 대부분 기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거의 다 무료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초보자들한테 문해교육 차원에서 시키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스태프 참여하시는 분들은 일정 정도 연금을 받고 계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봉사활동 겸 하는 일이라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주강사든 보조강사든 최소한의 강사비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나 컨설팅을 받아보거나 공모사업 등에 참여를 하면서 확인한 정보로는 강사료 받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팀을 이뤄서 분가를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학습관을 주요 활동처로 하는 팀, 다른 곳을 활동처로 하는 팀 등등. 그리고 그 팀들이 서로 상부상조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협력하면 서로의 성장도 촉진되고 경제적 측면에서도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고요. 일단 주강사만이라도 강사료가 좀 더 현실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분들이 꿈을 키울 테니까요.“
다른 계획이 있다면요.
“비영리단체로 등록을 하고 세무서에서 고유번호를 따고요 기업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자원봉사센터에는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 이런 제반 조건을 갖춘 후 우리 일대일 사업단을 필요로 하는 기관, 단체, 지역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 갈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 중입니다. 아까 분가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좀 요원한 일이고 지금 당장은 스태프 중에서 잘하는 사람 10명까지를 확보해서 전문화를 시킨 후 즉각 응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렇게 해서 성과를 보이면 이것 자체가 매우 큰 홍보효과가 아닐까. 그래서 그 다음에 홍보가 많이 되다 보면 수강생이나 스태프 지원자도 늘어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주강사도 쑥쑥 성장하게 될 것이고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제가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꼭 컴퓨터를 배웠기 때문은 아니지만 이런 교육을 받은 후 병원, 복지관 쪽으로 취업한 분들도 있고, 또 완전 컴맹 부부가 컴퓨터를 배운 후 자신감을 키워서 신학대학에 들어 간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강선생님은 인상 깊은 수강생 한분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아무리 고령자의 활동력이 높아졌다고 해도 어휴, 90세 넘으신 분이 오시니까 제가 당황스럽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70대 어르신들이 나름 대접을 받고 있었는데 그분이 오시니까 70대분들은 그날 이후 강제적으로 꽃다운 청춘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놀랜 건 그분이 컴퓨터를 잘 따라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교실 분위기도 적극적으로 변하고 수강생들의 스태프 지원열기도 높아지게 되었다.
▲ 전익념 선생님 ⓒ수원시평생학습관
이런 스토리를 들으면 뭔가 촉이 온다. 당연히 궁금증이 일어 그분, 전익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먼저 정확한 연세를 확인하려 하자 당신의 주민증을 꺼내면서 한 마디 던지신다. “아이구, 이젠 내 나이도 잘 모르겠어요.” 하긴 오십 조금 넘은 나도 이젠 나이 먹는 것에 무감각해져 헷갈릴 때가 있으니 당연한 일일 터. 1924년생으로 올 해 93세. 그러나 지금도 돋보기 없이 신문을 읽고 간단한 바느질도 스스로 할 정도로 건강은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현재 혼자 살고 계신다는 말씀에 좀 충격을 받았다.
“독거노인이지 뭐. 그래도 난 지금이 너무 좋아요. 혼자 사니까 해방되고 자유스럽고 이제 살 것 같아요. 하하”
자제분이 사업 때문에 중국에 터를 잡고 있다는데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요. 이젠 같이 살자고 할까봐 겁난다니까. 하하하”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전선생님의 음성과 표정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이젠 자녀에 기대어 말년을 보내도 될 터인데 당신은 여전히 독립적이고 의욕적이다. 특히 학습은 더더욱 그렇다. 올해 <인생수업> 5기로 참여하셨고 ‘일대일’에서 인터넷 기초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학습관의 ‘공방 오픈데이 프로그램’에도 자주 참여를 하신다.
선생님처럼 고령자분들은 의욕적으로 무엇인가를 새로 배운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러게요. 이 나이 정도 되면 빌빌해야 하는데 하하하. 뭐 즐거운 일이지요. 내가 목공을 배우려고 하는데 아직은 수준이 매우 낮아요. 기계 다루기도 어렵고. 이것저것 직접 하지는 않아도 보고 듣기만 해도 공부가 많이 됩디다. 집에서 뭔가를 직접 하려면 배워야지요.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배우려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의욕이 생기고 참 좋아요. 어떤 것을 배우든 배우는 것은 괜찮은 것 같아요.”
그 배움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 같습니까.
“뭐 힘닿는 데까지 배워야지요. 나는 뭔가를 가르치려 해도 지금 힘이 부치니 잘 할 수 없는데 이렇게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니 와서 배우면 좋은 일이지요. 지금 보니까 내가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러니 더 배워야지요. 그래야 의욕도 더 생기고.”
전익념 선생님은 6‧25 전쟁 당시 원주여고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그때 학생 나이를 어름 계산을 해 보니 85세야. 어휴”
제자가 증손주 볼 나이. 당신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화양연화가 지났다. 그러나 학습에 대한 욕구는 결코 식을 줄 모른다. 예전에 컴퓨터를 배웠는데 일상적으로 사용하질 않으니 자꾸 잊어버리게 되어 또 배우게 되었다고 하신다.
“나이가 드니까 팍팍 돌아가질 않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해야지요”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 2대를 꺼내신다.
“이건 예전부터 사용해 온 017번호, 그리고 이건 010 스마트폰” 그리고 집에 또 있다고 한다. 가끔 아이 패드로 TV를 보기도 하고.”
“요즘은 스마트폰 못하면 움직이질 못하겠더만요. 안할 수가 없어요. 그래 부지런히 배우는 거지요 뭐. 하하하.”
그러면서 학습관에 대한 칭찬도 툭 던지신다.
“이렇게 보니까 학습관 프로그램이 참 좋아요. 진취적이고. 이런 식으로 하면 곧 전국적으로 뜰 거 같애. 하하하”
전익염 성생님에게 배움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나이 많다고 해서 조언하나요. 나도 함께 배우는 처지에요. 나보다 다 나아요. 컴퓨터 같은 것도 젊은 사람한테 배우고 있잖아요. 저는 앞으로도 시간이 없어서 못하면 못했지 계속 배울 거예요. 지금 학습관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 더 있는데 검토 하고 있습니다. 뭔가 배우고 있으면 좋은 생각도 많이 들고요.”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넥타이를 매고 올 것 그랬나?” 하면서 웃으신다. 한번은 전철을 탔는데 빈 자리가 있어 앉으려 하자 젊은 사람이 먼저 자리를 차지해 그게 참 야속했다고 하신다. 헌데 나이가 들어 오랫동안 서 있는 것이 불편하지만 생각해 보니 서서 움직이는 게 건강에 더 유익할 것 같아 이젠 웬만해서는 앉지를 않는다고 하신다.
“노인복지관엘 가면 그래도 제일 나이가 많다보니 대접을 받긴 하는데 저는 젊은이들과 배우는 게 좋더라고요. 손주도 친구처럼 대하고 있어요.”
가끔 전철 안에서 ‘어디 새파랗게 젊은 것이’로 시작되는 훈계를 큰 소리로 외치며 ‘어서 일어나지 못해’로 마무리 짓는 노인을 볼 때가 있다. 임산부나 노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훈훈한 문화이다. 그러나 그것이 윽박으로 나타나면 대립이 되고 자칫 ‘꼰대의 게토화’가 될 수도 있다.
전익념 선생님은 나이 많은 티를 내지도 않고, 나이를 먹었다고 대접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비록 90대의 노쇠한 육신이지만 그렇다고 자녀에게도 의탁할 마음이 없다. 오직 독립되고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끊임없는 학습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스스로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학습의 도상에서 여전히 당당한 청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부디 건강하시길.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첫댓글 와 강선생님 열정과 배려하시는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화이팅 입니다.
선생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