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최규풍(최경수)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로 왔는가? 영혼이 있고 윤회한다면 나의 전생 실체가 자못 궁금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다시 왔을까? 소나 돼지 같은 짐승이었을까? 도깨비나 귀신으로 수라나 아귀계에서 왔을까? 아니면 천당이나 지옥에서 왔을까? 지금 내가 마음으로 먹거나 몸으로 짓는 육근 동작을 보면 하루에도 수시로 천도, 인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을 넘나든다. 인간으로, 중생으로 머물기 때문이다. 삼독심과 오욕의 경계에 해탈하지 못하고, 심신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켜니 익산 미륵산 중턱의 사자암 향봉 스님이 나왔다. 영혼이 없고 윤회도 없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했다. 저분이 고승인가 파계승인가? 영혼이 없으면 영생도 없고 윤회가 없으면 수행할 것도 없지 않은가?
AI에 질문하니 답을 준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 불교는 고정된 ‘나’의 영혼이 없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독립적인 영혼이라는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몸과 마음의 여러 요소가 인연에 따라 잠시 모인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영혼을 인정한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으며 죽은 후에도 영혼이 존재한다고 본다. 힌두교는 아트만을 인정한다. ‘나’의 깊은 본질적 ‘자아’를 인정한다. 힌두교는 영혼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일부 철학은 논쟁 중이고 과학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으로는 의식은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나 영혼의 존재를 확인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내 생각은 얕고 어둡지만, 영혼도 윤회도 그대로 믿고 싶다. 내게 영혼이 없다면 돌덩이에 불과하고 윤회가 없다면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윤회가 없으면 삼생이나 영생이 무슨 헛소린가. 종교나 철학은 과학으로 입증하지 못한다. 정신과 물질은 쌍두마차다. 종교와 과학은 자전거의 앞뒤 바퀴다.
그리고, 설사 영혼이 없고, 불생불멸의 영생이 없고, 윤회가 없다고 해도 한 생을 허투루 사고 싶지 않다. 영혼이 없을지라도 나는 소중하다. 마음과 생각과 정신을 지키고 싶다. 영생이 아닐지라도 죄를 짓고 싶지 않다. 윤회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죽어서 윤회하지 않는다면 살아서라도 윤회하고 싶다. 내 몸이 돼지처럼 축생에 머물러 식탐을 부리면 얼른 알아차리고 절식한다. 내 생각이 어리석음에 허튼짓을 노리면 금세 알아차리고 정신을 차려 놓으면 된다.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나 천사가 따로 없어야 좋다. 내가 그리 되어야 한다. 그게 인도이고 천도다. 죽어서 하려고 말고 살아서 악도를 놓고 선도를 수용해야 한다.
나는 감히 이대로 믿고 싶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리고 불생불멸하고 육도로 윤회한다. 이제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