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탄고도
변상구
울창한 숲이 지구의 허파라면 산은 지구의 심장이라 하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산은 그 자체가 산으로서 아름답다. 그중에 으뜸을 찾으라면 가을을 꼽고 싶다.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미지의 길을 떠나 보고도 싶고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가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꼭 산을 찾지 않더라도 마음속에는 누구나 가을로 붉게 물들고 있다. 계절은 흘러가는 물과 같다. 나뭇가지에 붉게 물들던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곧 겨울이 오겠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그래서 가을은 산속 옹달샘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11월은 그러기에 좋은 계절이다. 외진 산속에 살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가는 세월이 참 빠르구나 하는 생각. 지나가는 바람과 두둥실 떠있는 구름과 계곡에 남아 있는 안개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지나온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높은 하늘의 가을이다.
사전에는 '고프다'는 말이 있다. 부르다의 반대말이다. 좀 더 뜯어보면 뭔가 부족했을 때 쓰이면서 채워야겠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배가 고프다. 마음이 고프다. 전자는 실체가 있으나 후자는 실체가 없다. 배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있으나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무형 속에 유형이라고나 할까. 가을에는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안고 산다.
막내 동생이 여섯 시간 차를 몰고 온 것도 그 때문이다. 태어난 고향이 고팠던 것이다. 형제들은 일찍이 부모 품을 떠나 객지에서 각자 생활했다. 지금 막내 동생도 나이가 오십이 넘었다. 장거리 마라톤을 예로 들면 반환점을 막 지난 것과 같다. 온 길 보다 갈 길이 짧다는 건 달리기를 해 본 사람으로 분명해 보인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서 일수도 있겠으나 그것만은 아니다. 유년을 생각하며 고향땅을 밟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생각에 인생 후반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부산에서 젊음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 세월을 접는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도전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생이 길지만은 않다. 남은 세월을 자연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도시의 남자들이 TV프로에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막상 실천하는 건 어려움이 따른다. 대개가 술 한 잔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게 전부이다. 간혹 나 같은 사람이 있기는 하다. 체험 정도로 시골농가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분들이다.
연장선상에서 군불을 지핀 방에서 하룻밤 잠을 잔 막내가 손을 끄집어 당긴다. 둘이서 각자 한 대씩의 자전거를 끌고 간 곳은 만항재(1330m)이다. 만항재는 태백과 정선과 영월의 접경지이다. 고도가 높아 가을 단풍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야생화로도 유명하다.
이번에 ‘운탄고도’를 가보려고 한다. 운탄고도는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제무시란 화물차가 실어 날랐던 옛길이다. 운탄고도가 개방 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바쁘게 살아가는 분들께는 힐링 장소인 동시에 순례길로 만들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와 비슷하다면 과장된 표현일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중국의 차마고도와 같다고도 하고 구름위에 양탄자를 깔아놓은 평평한 길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옛길에는 자잘한 석탄들이 깔려있어 ‘운탄’이라는 단어가 낯설지가 않다.
이번 코스는 만항재를 시작으로 정선에 있는 예미역까지이다. 산악용자전거로 40.8km의 거리다. 줄곧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원의 숲길을 달릴 수가 있다. 새비재까지는 숲길로만 이어지고 거기서 예미역까지는 포장길도 이어진다.
만항재를 출발하여 하이원CC 갈림길을 만났을 때 첫 경사로가 나왔다. 첫 경사로는 생각보다 심하다. 중간에 끌바와 페달 돌리기를 이어가며 라이딩을 즐긴다. 길은 고도가 높아 태백산맥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보였다. 시원한 조망도 압권이고 상큼한 공기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굽이진 곳에는 쉬어갈 수 있게 벤치와 정자도 있다. 곳곳에 약수터도 있어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고 이정표도 잘 세워져 있다.
얼마쯤 달렸을까 ‘1177갱’이 나왔다. 석탄을 캐냈던 현장이다. 광부들의 노고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의미 있는 장소였다. 달리던 자전거를 세우고 안장에서 내렸다. 입구에는 막장일을 마치고 나온 광부가 빈 도시락을 들고 있다. 몸은 고되지만 무사히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표정이 밝다. 비록 폐쇄된 굴이지만 갱도 레일과 자그마한 광차도 잘 보존되어 있다. 동으로 만들어진 광부도 그 시절을 추억하기에는 충분하다.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의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고 있다. 그렇다. 한 때는 석탄산업이 나라의 기둥이었다. 방구들을 데워주는 보금자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탄광이 있었던 곳은 내가 태어난 마을과 가까운 태백이다.
1970년대 태백은 그야말로 석탄의 도시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에는 광부들이 캐낸 돌덩이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려왔다. 바람에 날린 석탄가루가 공기 중에 섞여 하늘은 거무충충했다. 길에는 석탄가루가 쌓였고 비가 올 때면 장화를 신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때 나온 우스갯소리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했다.
서글픈 일은 꼬마들에게도 있었다. 연중 개울물은 새카맣게 흘렀다. 꼬마들 눈에는 신기할 것도 없이 태어나면서 보고 자란 것이 검은색 물이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개울물을 검은색 크레용 칠했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내려왔고, 내가 본 것도 사실이다.
지금 태백은 '고원의 도시, 산소 도시'로 불리고 있다. 석탄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도시는 깨끗하다. 해발이 높아 여름에 모기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필요 없는 백두대간 중심도시로 우뚝 섰다. 비록 동상으로 만났으나 광부의 얼굴에는 기맥이 느껴졌고 보람찬 하루가 엿보였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도룡이 연못과 화절령과 두위봉 갈림길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가야 새비재가 나온다. 새비재에서 타임캡슐공원을 찾아가 엽기 소나무도 보고 엽기소나무길을 따라 솔향에도 취해보고 싶다.
새비재를 만났을 때 방제리 마을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산중에 잘 만들어진 마을은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마을길을 잘못 들어 허둥대는 시간이 있었으나 곧 타임캡슐공원의 ‘엽기 소나무’를 만났다. 엽기 소나무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 관광지가 되었다.
엽기소나무길을 통해 예미역에 왔을 때는 어둑하게 어둡고 있었다. 시골역은 다 그렇겠지만 예미역도 예외는 아니다. 대합실을 지키는 승객이라야 남자 한 명에서 두어 사람이 더 왔다. 창구는 개점휴업이다. 기차표는 열차 내에서 구입하라는 문구가 유리창에 붙었다. 역 주변은 괘종시계가 ‘딩~ 딩~'하고 울릴 것만 같다. 몇 개 안되는 가게도 예외지만 음식점은 단 한 곳뿐이다. 늦은 점심을 겸해 배고픔을 해결한다.
역 대합실로 돌아왔을 때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이 역사 뒤쪽으로 빠져 나간다. 예전에는 개찰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상시 개방이다. 이 저녁 저 분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나는 또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바퀴를 뺀 자전거를 들고 그 분들 뒤를 따른다. 기차의 불빛이 레일을 비추면서 흐르는 물처럼 들어온다. 기차가 정차 하자 태백으로 가는 열차의 문이 열렸다. 정물처럼 서있던 승객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약력
월간 ≪문학도시≫ 수필 등단(2015). ≪국보문학≫ 시 등단(2018). 수필집 : 『나 홀로 뜀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