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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잘못된 말 한마디가 만드는 파괴력
TV의 한 게임 프로그램 중에 위에서 공들이 굴러 내려오는 데 경사진 판을 달려 올라가는 게임이 있었다. 출연진들은 내려오는 공들을 피해 열심히 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거의 다가서 공 한두 개에 부딪혀 그만 아래로 미끄러져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된다.
기적의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의 말을 많이 해도 한두 번의 잘못된 말이 그 말의 권세를 힘없이 만들어 버린다. 그런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1)불신
성경 누가복음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세례요한을 잉태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그런데 그때 사가랴는 나이가 많아 “내가 이 일을 어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눅1:18)라고 부인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때 하나님은 사가랴의 입을 세례 요한을 낳을 때까지 막아 벙어리가 되게 하신다.
(눅1:20)
왜 하나니은 사가랴를 벙어리로 만들었을까? 사가랴가 더 이상 불신의 말을 내어놓으면 세례 요한을 낳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하루에 한번씩 1주일을 여리고 성을 돌도록 하셨다.
(수6:10)
아무 말도 말고 여리고성을 돌라고 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묵으로 돌도록 하셨을까? 만약 뜨거운 땡볕에 하루종일 여리고성을 돌면 사람들은 무슨 말들을 하게 될까?
“ 참 이렇게 한다고 성이 무너지겠어? 성문이 열리나? 이건 정신 나간 짓이야.”
한두 명이 불평하기 시작하면 모두들 불신의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입을 닫으라고 하신 것이다. 불신의 말 가운데서는 하나님이 일하시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집사님이 이 말의 권세를 듣고 어려운 물질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믿음의 말을 하면서도 함께 불신의 말도 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목사님 저는 안 되네요. 워낙 문제가 크니 쉽지 않겠죠?”
그렇게 말하면 정말 쉽지가 않게 된다. 아무리 믿음의 말을 쏟아내어도 한두 번 불신의 말을 내어놓으면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어떤 주부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저녁만찬으로 김치찌개를 맛있게 끊이던 중 찌개 뚜껑을 열고 맛을 보다가 보니 바퀴벌레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맛있는 김치찌개라도 바퀴벌레가 있으면 그 김치찌개는 버려야 한다. 한두 번의 불신의 말은 열 번의 믿음의 말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2) 원망 불평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하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민14:1~3)하고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민14:11~12, 민14:27)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믿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이라 그들을 쳐서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는 사람은 결코 기적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믿음의 말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원망과 불평도 같이 하고 있다면 믿음의 말은 오염되어 권세를 잃어 버린다. 마치 바닷물을 막아놓은 방조제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다.
우리가 믿음의 말을 쏟아내어도 처음에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점점 더 어려워 질수 도 있다. 그렇더라도 원망 불평이 입 밖에 나오도록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말이 기적을 만들려면 어떤 환경에 대해서도, 어떤 상황 하에서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원망 불평을 쏟아내면 안된다.
내게 영주권을 내어주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그 목사님은 기다리라고만 말할 뿐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였다.
기다리다보니 방문비자 만기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연락이 없었다. 만기가 되면 서류 절차가 복잡해진다.
먼저 비자를 연장해야만 했다. 비자 연장을 대행하는 업체에 알아봤더니 수수료도 비싸고
3개월 한번만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무엇 때문에 연장하는지 확실한 이유를 대야 했고, 그렇게 준비해서 신청한다 해도 비자를 내어준다는 큰 보장도 없는 것이었다. 만약 연장이 안 되면 큰일이었다. 한국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불평이 나오려고 했다.
‘이왕 해줄 것인데 지금 신청해주면 이렇게 번거롭고 복잡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나 그런 불평을 입밖에 내놓기 시작하면 모든게 무너진다. 입을 다물었다.
일단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이민성에 가서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이심전심으로 아내도 하나님이 그런 영감을 주신다고 했다.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감이 따라온다. 그래서 초면이지만 그 목사님을 찾아보고 싶었듯이 이민성에 직접 가보고 싶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이민성을 방문했다.
우리는 은행에서 대기 번호를 뽑고 기다리는 것처럼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여러 영사 중에 손서대로 가서 일을 보는데, 둘러보니 그 중에 2~3명이 동양인이었다.
기다리던 순서가 되어 나가니 동양인 영사에게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 여권을 보더니 한국말로 “한국분이군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나는 “비자를 연장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분이 “통상 3개월만 연장해 주는데 원래 법적으론 1년간 해줄 수 있다며 1년으로 해드릴까요?”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다소 당황하며 “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라고 했다.
“네 1년으로 해드리겠습니다.”
1년 체류 스티커를 붙여주면서 스탬프를 찍어주는 것이 아닌가?
‘오 하나님! 오늘도 물 위를 걷게 해주시는 군요.’
처음 보는 사람이 아무 서류도 준비 없이 그저 상담해 보고자 방문했는데 단번에 그것도 이례적으로 1년으로 연장해준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 아닌가??
답답하고 불평스럽다고 그 말을 입으로 내어놓기 시작하면 그 말은 순식간에 기적을 무너뜨린다.
감사를 찾고 감사를 생각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 목사님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비자를 내주겠다는 것부터 상상할 수도 없는 은혜요, 배려이니까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후 나는 많은 연구와 활동을 하게 되었고 드디어 워킹비자를 얻고 영주권을 취득하는 길이 열렸다.
3. 기적을 만드는 말
1) 어떤 말이 기적을 만들까?
중국 진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장수에게 임금님으로부터 몇 백년간 내려오던 국보만큼 귀한 칼이 하사되었다.
그 칼은 가볍지만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대단한 칼이었다. 웬만한 쇳덩이도 단번에 잘라버릴 수 있고, 칼끼리 부딪치면 칼을 잘라버리고 방패도 단번에 잘라버리는 칼이었다.
그러나 그 칼은 일반적인 칼과는 다른 사용법이 있었다. 그 사용법을 모르면 아무 쓸모 없는 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장수는 그 칼을 가지고 전장에 나갔다. 그는 당대의 가장 강한 장수인 적장을 만났다. 보검을 뽑기 전에 먼저 자신의 왕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게 보검을 보검 되게 하는 첫 사용법 첫 번째요, 그 다음 먼저 적장이 칼을 뽑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뽑는 것이었다. 그 칼의 사용법은 간단했지만 그 위력은 무서웠다. 적장의 칼과 부딪치자 단번에 적장의 칼이 두 동강 나버렸다.
우리 말의 권세를 하나님이 맹세하며 보장하셨고, 그 말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보검이 하사되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 이제 우리는 그 말이 어떤 말인지를 알고 그대로 쓰기만 하면 광풍을 잠재우고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다. 어떤 말이 기적을 만들까?
1)시인하는 말
로마서 10장 10절에서 말했다. 시인할 때에 구원, 즉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성경에서 구원이라 말할 때
①내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했다.
② 위기를 해결 받는 것도 구원이라고 했다. 출애굽기 14장 13절에서 말했다. 애굽 군대와 홍해 앞에서 죽음의 위기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라는 것이다.
③몸의 지병을 고칠 때도 구원이라 했다.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을 고칠 때(눅8:48)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도 입으로 시인할 때 얻는 것이요,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기적도 입으로 시인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기 전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잉태 소식이 전해졌다.
(막1:26, 눅1:30~33)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천사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시인했다.
(눅1:38)
마리아는 처녀였으나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였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고 시인하고 나왔다.
시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할 때 그 말씀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아멘 약
전 연세대 교수 황수관 박사는 시인하는 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가 발견한 만병통치약을 바로 ‘아멘 약’이다.
그냥 웃어ㄴ머길 말이 절대 아니다. “아멘”하면 의술이 해결할 수 없는 병도 낫는다는 것이다.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어느 조용한 시골의 기도원에 갔다가 목사님 한 분을 만났다. 잠깐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 사역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기관의 사역을 소개 했다.
우리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에서는 성경 중심적 영성수련, 가족치유, 내면치유의 비전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영성수련이 어떤 것이냐고 자꾸 물어왔다.
“영성수련이란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움, 시기, 분노, 증오, 음란, 방탕 등 이런 악한 것에 우리 마음이 지배를 당해 거기에 묶일 때도 있고 또 물질, 명예, 욕망 등 세상에 묶이기도 합니다. 또 환경 때문에 염려, 근심, 두려움, 낙심, 절망 등에 마음이 묶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를 얻고, 하나님이 주신 참된 안식을 얻고 참된 가치를 찾고 참된 행복을 찾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햐~ 그거 좋긴 한데 그게 쉽지 않죠. 영성 수련한다고 그게 되겠어요?”
열심히 대답해 드렸건만 뜻밖의 말이 나왔다. 누가 무언가를 말하면 쉽게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부정하는 말을 쉽게 내어놓은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시인해야 한다.
그게 “아멘”이다. 그렇기에 결코 침묵해서도 안 되며, 부인은 더욱 안 된다. 반신반의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삶에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신이 설교를 들을 때, 성경 말씀을 볼 때 아멘을 많이 한다면 틀림없이 많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대신에 말씀을 들으면서 분석하고 평가하고 또는 갸우뚱한다면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을 만들기는 어렵다.
(민14:28)
나는 이 말씀 한마디만 시인 했는데도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어느 목사님(현재 일산에서 훌륭히 목회하고 있다.)의 이야기다.
개척할 당시 교회 전세 보증금이 날아갈 상황이 되었다. 물론 건물주가 부도를 내어 그렇게 된 것이다. 경매가 들어오고 날짜가 다가오는데 갈 곳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 분은 성경 로마서 8장28절을 믿고 시인하며 그 말씀을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짚으며 매일 “아멘”했다는 것이다.
경매로 넘어갈 마지막 순간에도 성도들이 그 일을 알게 되어 “어떻게 해야하지 않느냐,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난리가 났지만 그분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이 말씀을 믿고 손가락으로 짚으며 “아멘”하고 유유히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경매가 무산되고 오히려 건물주가 그 목사님 보고 아주 싼 가격으로 인수하라고 나와서 기적적으로 건물을 인수하여 건물주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그 말씀은 성경 속에 있지 않고 우리 삶의 현실이 된다. 이런 경우는 한번쯤 일어나는 특수한 기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많은 보장으로 되어있다. 이 보장을 아는 사람에게 기적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 보장을 “아멘”하고 시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적을 만들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요,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말씀이다.
▶말씀을 시인할 때 일어난 기적
나는 1988년, 처음 교회를 개척했다. 개척을 하면서 강단 십자가 우편에 성경말씀을 직접 제작해서 붙였다.
(사43:19)
이것은 이사야 43장 19~21절의 핵심 말씀이다.
나는 그 말씀을 날마다 시인하며 말했다.
“하나님! 광야에 길을 내고 새 일을 행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오니 감사합니다.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물이 넘치나이다.
매일 그 말을 시인했다. 나는 과장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건대 당시 우리 교회는 마치 초대교회와 같았다.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간경화가 치료되고, 벙어리가 입을 열고, 그뿐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형식뿐이던 신앙에 생명의 불이 임하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광야에 길이
나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인하라 그러면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한두 번의 시인으로 끝나선 안 된다. 끊임없이 그 말씀을 시인하라. 말씀을 들을 때만 “아멘”하지 말고 그 말씀을 계속 “아멘”하고 시인해라. 그러면 어느덧 바다가 육지가 되고 숲이 되고 과실이 맺힐 것이다.
2)고백하는 말
나는 다윗이 지은 시를 좋아한다.
(시23:1~3)
이 시는 다윗이 왕궁에서 편안히 누워 왕으로 사는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지은 시가 아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쫓겨 다닌 적이 있다. 온 나라에 수배령이 내려졌을 뿐 아니라 군대는 다윗을 잡으러 다녔다. 다윗은 먹을 것도, 숨을 곳도, 잠잘 곳도 없어 여기저기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이 시는 그때 지어졌다. 다윗의 믿음을 고백한 시이다.
다윗은 지금 광야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고백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말씀을 고백할 때 일어난 기적
나는 1997년 호주의 사역을 마무리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주머니엔 단돈 몇 천원이 전부였다. 다시 빈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대전 인근의 시골집에 집을 얻었지만 다시 한국에서의 처음 계획들이 무산되니 먼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다.
나는 아들에게 큰 백지를 주며 “하나님의 축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라고 쓰라고 했다. 그랬더니 교회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내 모습을 그리고 그 위에 이 문구를 썼다.
나는 이것을 벽에 붙였다. 그리고 누워 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이것을 보며 이 말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택시비가 없어 버스를 2번씩 갈아타면서도 길을 갈 때나 집에 머물 때나 “하나님께서 축복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고백했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났다. 아무리 고백해도 암담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바다가 메워지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 달쯤 되었을까? 멀리서 친분 있는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으로 돌아오셨다면서요? 목사님, 이제 뭘 하실계획이세요?”
“아, 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겠지만 현재 기도 중입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한국에서 사역하는데 쓰리고 1천만원을 헌금하겠다고 하셨다. 드디어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고백이란 하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의 표현이다.
다윗은 배고픔에 떨면서도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시므로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을 했다.
지금은 쫓겨다니고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죽을지도 모르는 현실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거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다.
어려움이 있는가? 암담한 현실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가 나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라는 이 성구를 수첩이나 방이나 응접실에 붙여놓고 매일 보물을 보듯이 보면서 고백해보라. 그것을 보고 말하고 고백할 때 어느덧 푸른 초장이 성큼다가올 것이다.
3) 선포하는 말
선포하는 것은 공표하는 것이다. 법을 공표하듯이 혹정된 걱을 알리는 것이다. 성경속에는 이런 선포들로 가득 차 있다.
(행16:31, 마11:28, 눅1:37)
이 모든 것이 선포 아닌가?
▶건축 후의 하나님의 기적
나는 1997년 호주에서 돌아와 교회 개척 13개월개월만에 교회 건축을 하였는데 (엄격히 말하면 교회 건물을 매입, 보수해서 입당함) 만 1년 후 이번엔 땅을 구입하여 교회를 신축하게 되었다. 이러는 과정에서 모든 게 더 크게 되고 부담이 늘었다.
그러다보니 은행 대출이 수억이 되어 한 달에 수백 만원씩의 돈이 필요했다. 나는 응접실에 이렇게 써서 붙였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매일 선포했다.
몇 달씩 은행 이자가 밀리자 독촉이 들어왔다. 가끔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많이 선포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메워야 할 땅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이 흙을 부어야 한다. 이때 주저하고 망설이고 낙심하며 흙을 붓는 것을 멈추면 바닷물이 방조제를 무너뜨리고 미리 부어놓은 흙마저 쓸어내려가 다시 바다로 변하고 만다.
이 바다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나님의 기적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간단하다. 끊임없이 기적을 만드는 말을 내 마음에 쏟아부어서 나의 견고한 믿음이 되게 하면 된다.
다시 건축을 하고 어려움에 처한 어느 날,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자매님이 그의 어머니(집사님)와 같이 교회를 찾아왔다. 그 어머니는 한때 우리 교회에 다니시다가 다른 도시로 이사하는 바람에 지금은 나오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딸과 같이 오신 것이다.
우리 교회에 다녀간 이후 하나님게서는 이 자매의 마음에 불같은 소원을 주셨다. 우리 교회 대출 이자를 매월 부담하고 또 은행 대출금을 모두 갚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리고 매월 고액의 이자를 보내오고 몇 번에 걸쳐 몇천 만원씩 은행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이었다.
이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가 그 일을 하셨는가?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
▶선포하는 말은 나 자신도 변화시킨다.
말은 우리의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변화시킨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우리 입의 말로 우리가 얽히고 잡히게 된다고 했다.
우리의 입에서 말을 내어놓으면 우리는 그 말에 얽히고 그 말에 잡혀 그 말과 같은 사람이 된다.
시인 이해인은 그의 시 ‘나를 키우는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음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는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당신은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지금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하고 계속 선포하라. 그러면 그 말이 어느덧 당신을 적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렇다. 선포하는 말은 모든 환경과 나 자신까지도 변화시기는 기적을 만든다.
선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그 말대로 행하시고 이루어 주시길 기뻐하신다.
4)명령하는 말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다고 했다.
(창1:28)
어떤 복을 주셨는가?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려서 번성해지고 충만해지는 복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하는 복, 즉 권세를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돈을 주시고 칼을 주신 것이 아니라 통치하는 권세를 주셨다. 그래서 아담은 모든 생물을 통치하고 그들에게 하나 하나 이름을 지어주었다.
(창2:20)
호랑디도 독사도 아담 앞에서 이름을 얻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그 권세를 잃어버렸다. 그 권세가 훼손되었다. 그때부터 호랑이도 독사도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다시 권세가 회복되었다.
(요1:12)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눅10:19)
원수에게도 능력이 있다. 우리를 병들게 할 수도, 실패 하게 할 수도, 우리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사단을 이길 권세가 있다.
대통령은 권세가 있으므로 말 한마디에 비행기가 뜨고 미사일이 발사되고 군대가 움직인다.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권세있는 사람은 사정하지 않는 다. 부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군대에 출동해 달라고 사정하는가? 부탁하는가? 출동하라고 명령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에 광풍이 몰아칠 때 사정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우리의 말에 권세가 있는 것을 알고 그 말을 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이 땅에 말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말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2. 명령은 언제 필요할까?
1)사단과의 싸움에서
대통령이라고 항상 명령만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하게 된다. 명령은 특별한 상황에 한다.
예수님께서 명령한 때가 언제였는가?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다.(마4:10) 또 귀신을 쫓아낼 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다.(막1:25)
사단은 불안, 초조,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등 약한 감정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고자 한다.
나는 목회를 처음 시작하고 회중 앞에 설 때마다 불안하고 떨려서 무척 힘들었다.
‘아직 단련이 되지 않아 그렇겠지. 차츰 익숙해지면 좋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2~3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성경을 보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라고 되어있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근신하는 마음을 원어로 찾아보면 ‘소프로니스모스’ 즉 통제력,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느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
그러면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마음은 뭔가? 이것은 사단에게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려움을 이겨낼 것인가? 간단하다. 두려운 마음을 주는 사단을 쫓아내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당할 때 “사단아 물러가라”고 했더니 사단이 물러갔다고 했다(마4:10~11)
그때부터 나는 강단에 오르기 전 두려움이 찾아오면 “내게 두려움을 주는 사단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명령했다.
두 번, 세 번, 명령하면 거짓말 같이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왕자가 궁녀들이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어도 말도 못하고, 먹기 싫어도 그 음식을 꾸역꾸역 먹고 있으면 궁녀들은 모여서 끽끽대며 웃을 것이며 계속 왕자는 그 밥을 먹어야 한다.
왕자는 궁녀들에게 “그런 손으로 반찬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할 때 궁녀들은 두려워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에겐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있다. 권세가 있기에 명령할 수 있다. 권세 앞에 모든 것이 굴복한다. 불안, 초조, 비관, 낙심, 절망, 이런 거들은 모두 사단이 주는 것들이다.
그때 만약 당신이 “주여 내 마음의 불안을 제거해 주옵소서” 사정하는 기도를 한다면 당신은 몇 번이고 사단이 주는 덫에 걸려 흐느적거리게 될 것이다.
대신에 “절망을 주는 사단아, 내게서 물러가라!”고 명령하라.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된다. 단호히 그리고 조용히 계속 명령해 보라. 그때 당신은 불안이 어떻게 사라지며 평안이 어떻게 임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당신은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불안이 사라질 때까지 명령해야 한다.
▶불안증 학생이 명문대 장학생 된 비밀
나는 오래 전에 대전 둔산동에 사는 어느 집사님 댁에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때 마침 집사님의 중학생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집사님은 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평소 딸이 심적으로 불안해하는데 시험 때면 더 불안해서 저를 꼭 옆에 있게 하고 시험공부를 합니다. 목사님 기도 좀 해주세요.”
나는 집사님의 딸을 내 앞에 앉혔다. 그리고 성경 디모데후서 1장 7절을 펼치고 읽어보라고 했다. 십 여년 전에 내가 깨달았던 말씀이다.
“여기 뭐라고 했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 불안, 초조 이런 걸 주시지 않는단다. 그건 사단이 주는 거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주셨어. 두려움, 불안이 찾아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명령하거라. ‘내게 불안을 주는 어둠의 세력아, 내게서 떠나가라!’ 너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명령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단다. 불안이 떠날 때까지 그렇게 명령해라! 그러면 불안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 할 거야.”
그리고나서 나는 기도해 주었다. 물론 기도의 요지는 ‘불안을 주는 사단아 이 딸에게서 떠나가라’였다. 그 딸은 “아멘”하고 그것을 받았다.
몇 개월 후 그 집사님과 전화를 하게 되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딸아이가 그때 목사님께 기도한번 받고 불안이 싹 가셨습니다. 지금껏 아주 평안하답니다.”
그 뒤 1년쯤 지났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목사님 그 때 기도 한 번 받은 이후로 지금까지 전혀 불안이 없습니다. 옆에 딸이 목사님께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 달랍니다.”
내가 기도의 능력이 강해서 그렇게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딸아이는 그 말씀을 들으며 불안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둠의 세력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는 명령을 그대로 받았다. 때문에 불안 대신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찾아온 것이다.
그 뒤 다시 1~2년 후인가 그 집사님을 만났다. 그 집사님은 걱정이 태산이었다.
“딸이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데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있지만 주일엔 종일 교회에서 찬양팀 활동을 하고, 수요일에도 찬양연습하고, 수요 예배도 참석합니다. 저는 입시생이니 주일에만 봉사하고 수요일엔 공부하라고 하는데 말을 안 들으니 걱정이에요. 목사님이 저희 딸과 한 번 상담했으면 합니다.”
그 집사님은 학교에서 저녁에 자습하고 있는 딸을 전화로 불러서 집으로 오게 했다. 나는 딸과 집사님과 마주했다.
딸이 하는 말이 “엄마는 불안증이 있어요. 나는 마음이 너무 평안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왜 엄마는 그렇게 불안해해요?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텐데”
엄마의 마음은 입시생 엄마의 마음인데 그 딸의 마음은 입시생의 마음이 아니었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어야 할 입시생인 딸의 마음엔 불안의 그림자도 없었다. 너무 너무 평온했다.
그 딸은 전혀 학원도 안 다니고 또 이렇게 교회 봉사를 하면서도 계속 3학년 전체 1등을 하고 있었다. 과연 학원도 안 다니는 고교생이 전교 1등이 가능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적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전교 1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마음에 불안이 완전히 걷히고 하나님이 주신 깊은 고요, 깊은 평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럴 때 지혜와 영감이 폭포수 같이 임한다. 머리가 열린다.
바로 그것이었다.
그 딸아이는 수년 전 그때 하나님이 주신 것이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란 걸 깨닫고 “사단아 물러가라”는 명령에 “아멘”하고 그 말씀을 가슴에 품으므로 불안 대신에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안 속에서 머리가 열린 것이다.
그 딸은 2001년 대학 수시모집에서 이화여대 의대 전 학년 장학생, 서울대 사회학부 전 학년 장학생, 순천향대 의과 대학 전 학년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그 중 한 학교를 선택해야 할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이화여대를 권했다. 그녀는 이화여대를 들어갔다.
당신도 그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불안, 두려움, 초조가 찾아올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명령하고 명령해라.
그러면 당신은 깊은 평안이 마음에 채워지는 것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단의 정체
사단은 또 여러 가지 악한 감정을 주어서 우리르 넘어뜨리고자 한다. 우리 마음에 찾아오는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불평, 분노의 악한 감정은 사단이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단이 주는 감정에 노예가 될 때가 많다. 이때 우리는 나를 잃어버리고 사단의 노예로 전락한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이겨 보려고 한다면 결국 실패한다. 사정하는 기도를 해도 대부분 실패한다. 당신에겐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명령하라.
“내게서 분노를 주는 사단아, 내게 불평을 주는 사단아, 내게서 물러가라!”
“염려를 주는 사단아, 내게서 물러가라!”
사단이 물러갈 때까지 명령하라. 미움, 시기, 불평, 분노는 반드시 사라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 물러갈까?’하고 의심하지 않는 이상 당신의 말의 권세를 믿고 물러갈 때까지 명령한다면 당신은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또 사단은 죄악의 마음을 주어서 넘어뜨리고자 한다.
세상은 도처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유혹을 이기려면
어느 분의 솔직한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군에서 제대하고 한창 원기 왕성할 때 여러 곳에서 성적인 유혹을 받으면서 아무리 기도해도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몇 년을 헤맨 적이 있다고 했다.
만약 당신이 순간적으로 그런 유혹을 강하게 받았을 때 그 청년처럼 “하나님, 나를 건져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사단은 당신을 가지고 놀 것이다. 당신은 그 늪에서 쉽게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때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대적하면 된다.
마귀는 능력이 있지만 우리는 그 능력을 꼼짝 못하게 하는 권세가 있다.
“사단아 물러가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명령하라! 그러면 당신의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사단의 정체를 보게 될 것이다.
2)위기 상황에서
예수님은 광풍으로 배가 침몰될 위기에서 파도와 광풍을 향해 명령하셨다.
(막4:39)
당신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 그것은 어떤 것이라도 좋을 것이다.
당신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폭풍에 배가 휩싸이게 되었다. 그때 당신이 예수님처럼 “파도야 고요해라”하고 외친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정신나갔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정신나갔다고 하지 않으신다.
아마 당신 자신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이것 정신 나간 행동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처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느냐”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답게 명령하라! 그러면 당신의 말 앞에 굴복하는 문제를 보게 될 것이다.
▶불길을 잡는 명령
서울에서 목회를 하던 1990년 어느날 화재가 발생해 온동네에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었다. 그 동네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집집마다 가스통을 두고 사용하던 터라 순식간에 가스통이 터져 불바다를 이루었다. 불길이 삼킬 듯이 우리 교회 앞으로 왔다. 나는 그불을 향해 명령했다.
“불길아 멈추어라.”
계속 명령했다. 아내도 마치 장풍이라도 보내는 듯 손으로 불길을 향해 펼치며 “사라져라”하고 있었다.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예수님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여호수아도 아말렉과 싸우면서 “태양아 너는 기브온에서 머무르라” 명령했고 태양은 그의 말대로 정지 했다.(수10:12) 권세를 가진 사람은 이 말을 할 수 있다.
조금 후 우리 교회 앞에서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면서 불길이 뒤로 물러나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그리고 불길이 거기서 멈추고 사그라 들었다. 이것은 분명하다. 물론 이것은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앞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행3:6)
그냥 걸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 이름으로 그것을 확실히 보장해 주고자 하신다.
마치 당신이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집의 주인인 것을 땅 문서가 보장해 주는 것처럼 우리 말의 권세를 예수의 이름으로 분명히 확인 시켜주는 것이요, 우리의 권세를 다시 한번 보증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권세가 있으므로 예수 이름으로 명령할 수 있다.
약한 감정에 사로 잡힐 때, 악한 감정에 묶일 때, 위기가 찾아올 때, 사단이 유혹할 때 그 때 우리에게 준 권세를 보여주자.
명령하라!
당신의 그 말 앞에 모든 것이 무릎 꿇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3. 모든 것이 말에 따라 100% 이루어지는 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을 본다. 그런데 그 명령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본다.
왜 그럴까? 그러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과연 될까? 모르겠다’는 의심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말하고 이런 마음으로 들을 때 그 말은 기적을 만들지 못한다.
둘째, 기적을 만드는 말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바다를 몇 트럭의 흙으로 채울 수 없듯이 몇 번의 말로 되지 않는다. 많은 트럭의 흙이 필요하다. 메울 바다가 크면 클수록 더욱 많은 흙이 필요하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믿음이 약하면 약할수록 더욱 많은 말이 필요하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말을 해도 얼마간은 아무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 싹이 보이지 않아도 땅속에서 자라고 있듯이 그 말은 싹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성급히 말하기를 포기한다.
말을 하다가 중단하면 그 말은 허공중에 흩어지는 소리가 되고 만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 속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오지 선교사 멜델이 선교 간증을 한 책에 이런 글이 있다.
밀림에서 선교를 하는데 그곳에는 비누가 없어서 빨래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옷이 하얗게 변한 것을 생각하며 자기 옷도 그렇게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랬더니 정말 옷이 하얗게 변했다. 그래서 그는 그곳에 있으면서 기도로 계속 빨래도 하지 않고 깨끗한 옷을 입었다고 했다.
그 후에 미국을 가게 되었는데 미국 공항에 내리기 전에 다시 또 기도했다. 이 옷이 깨끗해지게 해 달라고,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옷이 깨끗해지지 않았다.
“하나님 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는 세탁소가 있다. 그러니 세탁소에 그 옷을 맡겨라”
하나님께서는 탐욕을 버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탐욕에 따라 일하지 않는다.
(요15:7)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에 근거하고 말씀 안에서 말할 때 무엇이든 반드시 기적이 나타난다.
만약 권세 있는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돈이 필요하다며 아무에게나 돈을 가져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우리도 무슨 말이든 그 말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한다.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은 구별된다.
(고후8:9)
하나님의 자녀가 부요케 되길 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요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부요해 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부요해 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요삼1:2)
모든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바울은 건강치 못했다. 그래서 특별기도를 세 번 이나 하나님께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하셨다. 바울은 그 질병을 계속 안고 살아야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보편적‧일반적이요, 교과서 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개인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장군으로 만들기보다 사업가로 계획하시는데 내가 매일 “하나님께서 나를 장군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말한다고 해서 절대로 장군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경우,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는 아주 적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또 말의 권세를 믿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났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성령이 금방 깨닫게 하신다. 믿음의 말을 시작한 사람은 마음이 믿음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성령의 내적 음성을 쉽게 듣게 된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라.
‘이게 혹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게 아닌가?’하고 계속 의문을 갖고 입 다무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의심은 사단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집에서 전기를 켤 때마다 ‘위험하지 않을까?’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도 기적의 말을 만드는 법칙에 따라 시인하고 고백하고 선포하고 명령하기를 주저할 필요가 전혀 없다.
말하라. 잘못됐으면 성령이 말씀해 주실 것이다. 사단이 주는 의심에 빠지지 말고 권세있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하라. 그러면 기적이 뭉게구름 피어오르듯 나타날 것이다.
4.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사람이 하는 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 하면 또 말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사람이 하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 일반적으로 주신 교과서 적인 말, 즉 성경이 있다. 그런가 하면 각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
1)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여덟 번 찾아 오셔서 서 말씀하신다. 또한 대제사상 사가랴에게 찾아와서 (천사를 대신 보냄)세례 요한의 잉태를 말씀하셨다.(눅1장) 마리아 에게는 찾아오셔서 잉태를 말씀하셨다.(눅1장).
특별한 때에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말씀하신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서울에서 처음 목회를 할 때 우리 교회 자매님 한 분이 임신을 했는데 아내가 그를 위해서 기도만 하면 “달덩이 같은 아들을 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적으로 계속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매에게 그때마다 말해주며 격려하라고 했다.
임신 9개월 째로 접어든 어느 날 밤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급히 가보니 탯줄이 끊어져서 조산 하게 되었는데 아기는 회생 불가능이라며 의사와 가족이 아기는 다시 또 가지면 되지 않냐고 포기하라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이 사모님을 통해 달덩이 같은 아들을 주신다고 했으니 절대로 문제가 생길 리 없다.”며 당당히 말했다. 그 자매의 표정이 너무 평온했다. 자신 만만했다.
의사마저도 의학적으로 회생 불가능이라고 했으나 결국 아들을 무사히 출산했고 모두 놀랄 만큼 쉽게 건강을 회복했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는 정말 외형적으로도 달덩이같이 둥글둥글 건강하게 자랐다. 그후로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
나는 성경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을 주며 ‘지명’이라고 이름을 주었다.
또 그 당시 우리 교회에 중풍에 걸린 집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아침 기도회 시간에 아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니 침이나 다른 약도 먹지말라” 고 하나님이 내적으로 분명히 말슴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기적을 많이 경험한 터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믿고 그 말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절대 아무 약도 침도 맞지 말라고...
하나님이 고쳐주실 거라고 했다.
때론 약도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렇게 약마저 뿌리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병원도 다니고 침도 맞고 있는데 중단했다가 만약 악화되기라도 하면 큰일 이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믿음을 가졌다.
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교회에서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고쳐지지 않으면 나의 목회는 치명타를 박을 상황에다 그분은 얼마나 낙심하겠는가?
그러나 나는 믿었다. 사가랴처럼 믿지 못하는 자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요, 또 수없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분은 기도를 받ㄱ을 때마다 증거를 체험하며 급속히 회복되어 2주 만에 완치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20년간 기도해 왔던 남편과 아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깊은 신앙생활을 하게되었고 가족 모두 새로운 삶을 출발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불가능을 뚫고 이루어 진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이다.
2)사람이 하는 말
그런가 하면 우리가 하는 말이 있다.
“I can do it! Because God is with me!”
나는 이 말로 교회를 건축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이 아니고 내가 내어놓은 믿음의 고백이다. 이 고백의 말도 하나님이 주신 말처럼 그대로 이뤄지는 권세가 있다.
하나님이 이미(민14:28)에 약속하셨고, 우리의 말에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말에 대해 마음에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 말은 현실이 된다. 우리가 하는 말도 하나님이 주신 말만큼 권세가 나타날 수 있다.
5. 말이 기적이 되는 순서
씨를 심으면 10일 또는 20일 정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비로소 땅을 뚫고 나온 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싹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부터 땅 속에서 씨는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말을 심으면 어느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변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땅 속에서 씨가 자라고 있듯 말도 자라고 있다. 그리고 어느 시간이 되면 그 말이 현실이 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이 축복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을 벽에 붙이고 그 말을 계속 했을 때 내 마음속에 그 말이 자라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당신이 말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마음의 영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기적을 많이 경험할수록 더욱 영적으로 민감해 질 것이다. 그리고 수없이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응접실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라고 써붙여 놓고 매일 말하고 있다. 나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다. 믿음이 무너지는 시대, 믿는 사람들이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인 이 시대 오염된 신앙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심리학적 치유와 영성수련에 하나님을 앞세워 우리의 내면을 타락시키고 신비주의적 귀신론이 진리인 양 주인 노릇하며 교계를 주름잡고, 우리 신앙과 마음을 오염시키고 있다. 나는 성경 중심적 영성수련, 가족 치유, 내면 치유, 이 땅에 꿈꾸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키워야 한다. 마음이 병들었고 신앙이 병들었고 인생이 병든 이 시대를 치유하고 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사람을 권세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사역을 위해 나는 헌신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한 것이다.
6. ‘기적을 만드는 말’을 어떻게 만드는가?
당신은 이제 말이 단순히 말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말을 우리의 운명과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이 뛸 것이다. 그러면 기적을 만드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기적을 만드는 말은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즉 믿음의 말이 되는 4가지 요소 ①시인②고백③선포④명령을 중심을 시작하면 된다.
첫째, 시인이란 하나님의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심, 살아계심, 역사하심 등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축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축복하시는 분이요,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만약 좋은 직장을 구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좋은 직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내가 사용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써도 된다.
당신이 당신의 말로 기적을 만들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아주 적절한 말을 주실 것이며, 실제 어려운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황에 맞게 적절한 말을 정하면 되는 것이다.
둘째, 고백하는 말이 있다.
시인과 다소 유사하지만 시인은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고, 고백은 내 편에서 하나님에 대해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 “I can do it! Because God is with me!”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 I can walk on the water!(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할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을 나타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든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이와 유사한 말들을 할 수도 있다. 그때 그때마다 조용히 묵상하며 성령님의 영감에 귀기울여 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셋, 선포하는 말이란 하나님이 행하실 것에 대한 사전 공표다.
“오늘도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나의 아내는 두 번째 건축으로 인한 대출금이 수억으로 불어난 데 대해 성도들이 걱정하자 기회만 되면 “하나님께서 한순간에 해결하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선포하고 선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정말 감당할 수 없는 대출금을 한순간에 해결해 주셨다. 이것 모두 하나님이 하실 것에 대한 사전공표다. 이것은 또 고백의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꼭 선표냐, 고백이냐를 구분할여고 하지 말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만약 당신이 당뇨병 환자라면 “나의 당뇨는 정상이 되고 있다” 그렇게 선포할 수도 있다.
또 당신이 만약 권세 있는 믿음을 갖길 소원한다면 “나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이다”이렇게 선포할 수 있다. 이 말이 당신의 마음속에 가득 찰 때 하나님은 당신을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또 당신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길 원하면 “나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그렇게 선포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그렇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그렇게 선포하고 계속 선포하면 어느 날 당신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의 말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명령하는 말은 말 그대로 명령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에 세상 모든 것에 명령할 수 있고, 그 명령 앞에 세상의 모든 것이 굴복한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산을 보고 바다로 들어가라고 하고 자기 말의 권세를 믿기만 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 말에 권세가 있다는 것을 예수 이름으로 더욱 확실히 보장해 주셨다.
1)명령이 필요할 때
①건강을 위해 명령할 수 있다.
오래된 질병에 걸렸을 때이다. 그럴 때 “예수이름으로 내 몸은 정상이 될 지어다” 하고 예수님이 사단에게 명령하듯 명령할 수 있다.
당신의 간이 간경변으로 굳어 있더라도 분명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당신 몸의 모든 시스템은 정상적인 간장으로 회복되기 위한 모든 조치가 일어날 것이다.
당신의 몸은 당신의 말에 지배를 받는다. 아울러 그 말을 듣고 그 모든 것을 지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②마음을 다스릴 때
사단이 주는 마음, 즉 약한 감정(불안, 초조, 두려운, 염려, 근심, 낙심)과 악한 감정(미움, 시기, 질투, 증오, 음란, 술수, 거짓)을 다스릴 때 사용해야 한다.
미움의 감정이 밀려올 때 “주여!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말라. 왜 그러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권세를 사용하길 원하신다.
“내게 미움을 주는 사단아, 내게서 떠나가라!”
“내게 음란을 주는 사단아, 예수 이름으로 떠나가라!”
얼마 안 가서 분명히 당신의 마음속에 사단이 주는 부정적 감정, 악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③위기 때
파도가 몰아칠 때 주님께서 “파도야 잠잠하라” 하듯이 위기가 찾아올 때 무엇이든 명령할 수 있다.
우리의 말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④목표를 위해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을 때 그것은 신앙적인 것일 수도 인격적인 것일 수도 있다. 또 이루어야 할 어떤 것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풀어야 할 문제일 수도 있다. 이때 필요에 따라 시인하는 말이든 고백이든 선포든 무엇이든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건데 어렵게 생각하지도 말고 고민할 것도 없다. 당신이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할 때 그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므로 당신의 상황에 맞는 말을 성령님이 주실 것이다.
7. 가족 활용법
당신은 하나님의 기적을 혼자 누리기보다 가족 모두가 누리길 원할 것이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하나님의 기적을 나눌 때, 말할 것도 없이 가족은 신앙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 더더욱 하나님과 가까워 질 것이다.
먼저 가족이 항상 공통으로 추구하는 하나님의 기적, 즉 기적을 만드는 말이 있어야 한다. 이거은 입시를 앞둔 자녀의 목표일 수도, 어떤 가정적 목표일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은 1주일에 한 번씩 주로 주일 밤에 함께 다과를 하며 가족 시간을 가진다. 이때 목표를 함께 나누는데 부모의 목표와 자녀의 목표가 다를 수도 있다.
또 각자의 목표를 정할 수도 있다. 이때 자녀와 직접 관계 없는 가정의 목표를 자녀에게 짐 지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녀나 부모가 어떤 목표를 향해 살고 있는가를 아는 것, 더 나아가서 가족이 목표를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때 가족 사이엔 깊은 이해가 생기고 끈끈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목표를 문구(말)로 만들어 모두 볼 수 있는 응접실에 붙여라. 이것이 기적의 출발이다. 반드시 써서 붙여라. 그리고 가족모임(예배, 식사)등 특별한 때에 함께 소리내어 말해 보아라. 그러나 강요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 모두 같은 목표를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의 후원 속에 당신은 바다에 흙을 붓듯이 계속 말해야 한다.
주님의 약속처럼 가족이 마음을 함께 할 때 아주 신속히 바다가 메워지고 신속히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마18:19)
맺는 말
이제 당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을 가슴 속에만 묻어두지 말라. 당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을 말하고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할 때 당신의 인생에 더 큰 하나님의 기적이 임할 것이고, 또 당신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누리므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지금 당신의 가슴은 뛰는가? 마음이 뜨거워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분명히 당신의 인생에 기적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