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군관 학교와 일송정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마음 깊이세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다.
일송정에 서면 혜란강이 한눈에 들어 온다.
가곡 선구자는
당시 북간도 지역에서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는 독립군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를 지켜보다
너무도 큰 감동을 받고 윤두영씨가 당시 작사하고 조두남씨가 목단강에서 작곡 한 곡이다.
가사에 등장하는 일송정 푸른솔은 당시 500년에 가까운 아름드리 소나무였지만
이 나무가 우리민족의 기상을 상징 한다고 하여 일본군이 사격 연습용 과녘으로 사용 하였으나
나무는 죽지 않았고 일본인들은 다시 나무에 구멍을 뚫어 화약가루를 넣어 고사 시켯다고 한다.
일본군의 이 잔악한 역사의 증언들이 지금도 용정에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지금 저 작은 소나무는 한국의 시민 단체에서 지원받아 1992년 복원 시킨 나무라고 한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 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참 아리다.
여기 북간도 문제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 보고 감상에만 젖을 것인가??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후 청나라와 장물로 체결한 간도 협약은 무효다.
어느 누구 한 사람 나서는 이가 없다.
북간도 만주 문제라면 화들짝 놀라는 우리 정치권이 있다.
일본의 비정규 육사 만주(장춘) 군관학교 출신인 백선엽과 3공화국의 박정희라는 위정자들이 있다.
이들은 북간도 근무 당시 간도 특설대와 일본 관동군 장교로서 칼을 차고
타의든 자의든 독립군을 때려 잡는다는 명분으로
북간도서 많은 조선 백성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우리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이들의 반민족 친일파 집단을 처단하지 못한 채 반민족 특별 위원회가
친일 집단에 의해 해체가 되었고. 오히려 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의 주체가 되어 선량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권력을 독점 하면서부터,우리 사회는 지금가지 많은 혼란이 잉태 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그들이 살아 있고, 또 그 후손들로서는 북간도의 해결점을 찾기가 가 쉽지가 않다.
접근 하는순간 그들의 지난 행적이 다 까발려지고
지금 까지도 알지 못하는 눈 감긴 국민들에게 조차 세세히 다 알려지는 것이 지금도 이들이 가장 두려워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간도(만주))는 일본군이 점령한 2개의 군관 학교가 있었다.
신경(장춘) 군관 학교와 봉천(심양) 군관학교로 일본 폐왕께 충성을 바치는 일본군 고급 장교를 배출하는 곳이었다.
영혼을 잃어버린 소수의 조선 백성들도 이곳에 앞다투어 입학을 했다.
광복 후, 이 곳 군관학교 출신들은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대한민국 국군과 정부 각부처에서 중요한 요직을 차지 한다.
신경(장춘) 군관학교 출신으로
이주일 육군대장 (후일에는 감사원장), 이한림 육군 중장, 김동하 해병대 중장 등이 있었고
박정희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한 번 떨어지고 다음해는 손을 깨물고 혈서로 일본 천왕께 충성을 맹세한 댓가로
입교를 하게되었고
졸업후 관동군에 배치돼 일본군 육군 소위로 근무하다 광복을 맞이 한다.
이후 다시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들어가 복무중 비밀리 남로당에 가입을 하고 군내부 남로당 군핵심 간부로 활동을 한다.
1948년 10월 여수지역 남로당 (빨겡이) 지역 공작 책임원 이재복의 지시로 국방 경비대 14연대내 활동중인던 남로당 군공작책
김지회 중위 홍순석 중위등이 반란을 일으켜 14연대를 이끌고 여수와 순천지역을 한순간에 장악해버린다.
군반란 사건에 놀란 이승만 정권은 육해공군을 동원 반란군을 진압 한후 대대적인 군내부에
침투해 활약중인 공산당과 남로당 빨갱이들의 색출 작업에 들어 간다.
이때 14연대 패잔병들은 지리산과 덕유산으로 숨어 들었고, 이들이 한국 최초의 빨치산과 빨겡이들의 원조가 되었다.
여기서 군내부 남로당 (빨겡이) 고위 간부들이 걸려 들면서 박정희 소령도 체포되어 잡혀 온다
군사 재판서 사형을 언도 받은 박정희는 군내부 남로당 조직원들의 명단을 털어 놓기 시작을 한다.
당시 육군본부 정보 국장이면서 재판관이던 백선엽과 따로 대면 하는 자리서 말이다.
선배님 나를 한번만 살려 주실수 없겠습니까.
백선엽은 무심결에 '도와 드리지요.'라고 1989년 백선엽의 군과 나 회고록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1개월후 남로당(빨겡이) 군 동료들은 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만 박정희만 남로당 동지들을 팔아 먹은 댓가로
사형에서 무기로, 무기수에서 바로 석방으로 이어진다.
민간인으로 돌아간 박정희는 얼마 후 만주군관 학교 출신들로서
당시 군의 실세였던 백선엽, 정일권, 원용덕, 김백일 등의 구명 활동으로 다시 중령을 달고 군으로 원대 복귀 한다.
반민족 행위자들의 선후배는 마지막까지 용감했다.
그리고 10여년후 박정희는 육군 소장으로서 군사 구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청기와 지붕밑에서 자신의 지난날 빨간색 숨기기에 급급한 박정희는..
반공은 국시다.
때려잡자 빨겡이들!!
쳐부수자 공산당!!
숨은 간첩, 자수하여 광명 찾자!!
전임 장면 정부에서 기획해 둔 새마을운동 사업 등을 들고 나와
새벽종이 울린다 새아침이 밝았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여기에 현혹된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고 눈을 가린게 한 후
18년간 한 편의 개그 같은 독재 철권 통치를 이어 갔던 것이다.
만주 봉천 일본 군관 학교 출신으로는
박정희 정권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 김백일 육군 대장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서
박정희를 살려준 백선엽 등이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당연히 테러리스트가 되어야지만 밥이라도 먹고 화장실이라도 갈수가 있다.
이들은 지하에서라도 여기 일송정으로 달려가 혜란강에 코를 쳐박고
지난날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 하던 선구자들게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들의 공통점은 반민족 친일파라는 대한민국 친일 인명 사전에 기록으로 등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코메디가 아니다. 진실만이 기록으로 남는다.
우리들은 지난 현대사를 잊지 않고 기억 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결국 어둠은 빛을 이길수가 없다.
역사를 잃어버린 이곳 만주족은 짧은시간 한족에 동화 되버리고 지금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다.
끔찍스러운 일이다.한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 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참 아리다.
일송정 뒷편으로 혜란강이 흘러가고 있다.
2015. 3월에
둘 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