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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디모데후서(The Second Epistle of St. Paul toTimothy)
(1) 제목과 기록목적
디모데후서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 13권의 바울서신 가운데 제 10권에 배치되어 있는 책으로 헬라어 본문에는 "프로스 디모데온 베타"란 표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디모데후서"라는 의미로 이 책의 수신자는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를 위하여 기록한 서신으로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4장 83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AD. 66년경 사도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죽음을 예견하며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the Pastoral Epistles)으로 디모데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공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적서신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1차투옥후 잠시 석방되어 있던 바울은 에베소와 마게도냐, 그레데, 드로아 지역을 방문하며 선교에 적극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바울은 에베소교회와 그레데 교회의 디모데와 디도를 위하여 각각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드로아에서 갑자기 체포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로 두번째 투옥된 바울은 자신이 디모데 후서를 기록할때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직시하였습니다(1:8,16,4:6~8) 전설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 서부의 오스티안 웨이(Ostian Way)에서 참수되었다고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헬라인 부친과 경건한 유대인 모친 유니게 사이에서 출생한 디모데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부터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였습니다(디모데후서1:5,사도행전16:1~3) 바울이 마게도냐에서 디모데전서를 기록할때 그는 니고볼리로 가는 길에 있었으나 디모데는 에베소와 소아시아지역에서 목회를 하기 위해 그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다시 방문하고자 하였으나(3:14,4:13) 그동안 이 서신을 보내어 디모데가 목회의 무거운 책임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를 주제로 말세의 배교(3:1~9), 성경의 영감(3:16), 의의 면류관(4:8)을 설명하며 복음을 성도들에게 맡겨진 위탁물(Trust)로 표현하였습니다(1:14) 바울 자신의 최후를 절감하면서 복음의 남은 고난을 잘 짊어져 줄 것을 당부하는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2) 저자(바울, AD. 66년)
1장1절과 초대 교부들이 바울의 저자설을 인정하였으며 다른 바울 서신과의 동일한 문체와 교리상 유사점과 남다른 바울의 깊은 애정이 바울이 저자임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초대 교부들의 전승과 외적인 증거들, 그리고 바울이 사용하는 특징적 문체와 어휘 등 내적 증거를 고려할때 바울과 디모데전서에 관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바울의 저자설에 대하여 끊임없는 의구심과 반박논리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여전히 바울의 저자설을 확정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석방된 후 전도여행중에 마게도냐로 가면서 디모데로 하여금 에베소 교회를 돌아볼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는 에베소로 귀환하지 못할 것을 짐작하고(3:14~15) 디모데에게 목회서신 형태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에베소교회를 뒤덮고 있는 영지주의와 거짓교리를 배격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자신이 없는 세상과 교회는 여전히 복음에 매진하여야 할 것을 강조함으로서 디모데와 성도들이 바울 자신이 아닌 오직 주님께 의지하며 나아 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목회서신에 기록된 주요사건들은 일곱가지 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자기가 살던 셋집에서 체포상태에서 석방되었습니다 그를 고소한 자들이 로마황제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는 것을 포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후 바울은 에베소를 방문하였고 그 교회를 감독하기 위하여 동역자인 디모데를 그곳의 감독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 북부지역의 마게도냐로 향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디모데전서를 기록하였습니다(디모데전서1:3) 또한 바울은 그레데를 방문하였고 그 교회들을 감독하기 위하여 디도를 역시 남겨 두었습니다 바울은 그레데를 떠나 그리스 남부지역 아가야의 니고볼리로 향하여 갔습니다(디도서3:12) 마게도냐 또는 니고볼리에서 바울은 디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드로아를 방문하고(디모데후서4:13) 그곳에서 갑자기 체포된 후 로마로 이송되어 구금되었다가 디모데후서를 남긴채 참수형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AD. 5년경, 소아시아의 길리기아(터키)의 중심도시 다소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히브리 이름은 사울(שאול)이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히브리명과 그리스명을 동시에 사용한 연유였으며 바울은 사울의 그리스명이었을뿐 회심의 새로운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출생과 동시에 로마시민권을 획득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바울은 고전교육과 유대교적 율법교육을 받았으며,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예언서인 구약성서와 "미드라시"로 불리우는 율법해석, 그리고 수사학을 공부하며 탁월한 신학자적 지위를 획득하였습니다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때 그는 바리새파의 협조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32~33년경,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까지 자신의 신념에 따른 신앙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공부한 대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들과 적대관계를 맺으며 고소와 고발건으로 얼룩진 청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스데반집사의 죽음에 바울이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인생이 확연히 달라진 것은 분명해져 보입니다 바울의 회심후 그는 아나니아로 부터 세례를 받고 바나바의 천거로 제자들에게 신임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후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복음전파를 기울였고 그 결과 안디옥에 교회를 설립하게 되며 바나바와 함께 공동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제1차 전도여행의 동역자로서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청년 마가가 전도여행 중에 힘에 지쳤을까요?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분쟁이 발생하였고 제2차 전도여행부터는 갈라서게 되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강한 성격과 실패와 공포와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바울에게서 마가가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그러한 마가로 하여금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하고 하나님의 경전에 이름을 올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바나바와의 "파록쉬스모스"(παροξυσμὸς paroxusmos), 즉, 돌이킬수 없는 격한 논쟁으로 헤어진 바울이 다시 바나바를 만났다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구브로를 중심으로 아테네,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며 가는 곳과 머무는 곳 마다 교회를 설립하는 위대한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를 만났으며 이들과 함께 천막업을 하며 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주야로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안디옥과 에베소를 주요 근거지로 복음을 상당수준까지 활성화 시켰으며 마게도냐지역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로마제국의 칼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AD. 64년, 로마제국의 새로운 지도자 네로황제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정점을 이루며 극에 달하였고 그 희생양으로 사도바울을 지목하였습니다 로마에 일어난 대형화재의 배후세력으로 기독교인을 지정하고 그 주동자로서 바울을 처형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한 줄기로서 세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소수민족종교인 기독교를 세계보편종교의 최정상위에 세워놓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며 예수님의 12제자를 능가하는 복음의 질과 내용과 양적팽창을 주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초기 사도권을 둘러싸고 다른 사도들과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었습니다 사도(απόστολος',apostle)란 "파송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로 헬라어에서는 어떤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를 앞에 보내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란 의미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기독교 공동체 발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의 지도자의 역할을 부여한 사람으로서 역사적 예수의 행적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자로 한정"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환상중에 예수를 만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로 임명을 받아야만 했으므로 바울을 지지할 경우 또다른 환상을 본 자들이 나타나 사도성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1세기 내내 바울의 사도성에 관한 논란은 지속되었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의 추천을 승인하여 선교사로 그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적 독특성은 예루살렘교회의 유대 기독교인들과도 잦은 충돌을 빚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율법과 할례 등의 유교적 전통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교 전통을 거부한 이방 기독교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미세한 충돌도 이와같은 견해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데반집사를 비롯한 일곱 집사(부제,Diakonos)들 또한 모두 이방 기독교인들이었으므로 이들과 유대기독교인들의 신학적 갈등은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강한 성격으로 인하여 유대 기독교인들을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형제 등으로 비난을 퍼부었고, 이에 대응하는 유대기독교인들 또한 바울을 유대전통을 파괴하는 인물로 규정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러한 논쟁에 대한 결정문이 공고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존중하였으며 교회는 빈곤계층을 위해 단합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분모속에서 협력관계는 유지되도록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교회지도자들과 달리 직업을 가지며 복음을 전하는 특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헬라어로 "스케노포이오스"는 가죽가공업 또는 천막제작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고린도교회의 집사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전업이었습니다 이들 부부와 함께 바울은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독특한 방식의 생계유지형 전도를 이어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복음을 전달받았습니다(에베소서3;3) 베드로도 사도 바울의 기록을 자기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3:15) 사도바울은 그가 전한 서신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자신의 견해를 각각 분리하는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25절과 같이 "주께 받은 명령이 없으나~내 판단을 기록"한다고 언급함으로서 이 내용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로마서1:16,15:9) 성경은 사사로운 책이거나 읽고 해석하는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을 읽고 그대로 믿어 행하는 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3:4) 공동번역과 개역성경에는 교리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교리가 아니라 교훈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와 해석이 성경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기독교의 정통성을 헤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교리는 학문을 연구하는 중요한 핵심이 될 수 있으나 신앙인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학자용이 아니라 믿음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깨닫는자에게는 성경이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만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인간이 개발한 논리, 사상, 철학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고 믿음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해석하였습니다 에베소서에는 교회를 그리스도로,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기초로 하여(에베소서2:20) 민족과 국가의 경계와 구별없이 세계 보편교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유대소수민족의 선민적 사상이 종결되고 새로운 기독교는 세계의 종교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세워진 교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동일한 지혜의 책인 성경을 믿는 보편적 사상을 갖는 것입니다
(3) 주제
"용기와 충성을 다하는 그리스도 군병"(2:2)을 주제로 바울은 죽음의 목전에서 사랑하는 영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자신이 영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가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강하고 담대한 용기로 목회를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할 필요성을 직시한 바울은 거짓사도들의 사상에 휘말리지 말고 진리의 터위에 확고하게 서 있을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소심한 성격과 연약한 육체를 염려하며 "예수님의 좋은 군사"라고 자신있게 불렀습니다(2:3)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누가와 함께 있습니다(1:15,4:10~12) 바울은 고독하였습니다 그는 디모데가 면회를 와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네로 황제의 박해와 훼방으로 인하여 교회의 안녕을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복음을 파수하고 복음을 힘써 전하라고 하였습니다(1:14,3:14,4:2)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이 서신이 에베소 교회에게 공적으로 반포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4) 내용
디모데전서와 함께 디모데후서 또한 그 수신자가 디모데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다", "하나님께 영광을 얻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디모데는 초대교회 설립과 확장에 큰 공헌을 끼친 인물로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인 동시에 바울이 복음으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더베에서 출생하였으며(사도행전16:1) 아버지는 헬라인, 어머니는 유대인 유니게였습니다(사도행전16:3) 그는 외조모 로이스와 모친 유니게가 가지고 있던 경건한 신앙의 교훈으로 양육받으며 자랐습니다(디모데후서1:5) 디모데가 복음의 진리를 듣고 회심을 한 것은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중 더베에 도착하였을때 였습니다(사도행전14:6~7) 또한 그가 바울의 동역자로 전도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은 실라와 함께 간 2차 전도여행부터 였습니다 그때부터 디모데는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서 그를 의지하고 도왔으며, 옥에 갇힌 바울을 대신하여 목회사역을 담당하였습니다(사도행전19:22,데살로니가전서3:1~2) 디모데는 인간성이 충성되고 성실한 반면(고린도전서4:17,빌립보서2:19~23), 소심한 성격에 허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디모데전서5:23)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도미티안 황제(AD.81~96) 또는 네르바 황제(AD.96~97)에게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순교의 시간이 다가옴을 짐작한 바울은 마지막 서신을 통하여 에베소에서 힘겨운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를 위로하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고자 하였습니다 영적 아들과 같았던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 있었던 디모데후서는 디모데의 소심한 성격과 연약한 육체를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인내로서 잘 감당해 낼 것이라고 확신하며 "예수님의 좋은 군사"(2:3)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목회라는 것이 영적 전투의 현장이며 그 전투에서 매번 승리해야 하는 것이 성도들을 위하여 목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바울은 전하며, 그러나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이어온 신앙의 사람 디모데에 대하여 감사를 써 내려간 바울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복음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가르쳐 그들의 삶 가운데 복음의 실천적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바울은 군사와 경기하는자와 농부의 비유를 통해 주의 사역자는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해야 하며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청년의 정욕을 피하여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멀리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화평과 의와 사랑을 해치는 것으로 교회공동체의 해악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의 이단과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하여 경고한 바울은 성도들에게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진리안에 굳게 서서 잘못된 교리와 도덕적 타락에 맞서야 한다고 전하였습니다(3:1~14) 또한, 성경말씀의 영감성과 구원의 효용성을 밝힘으로서 성도들이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3:15~17)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복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것을 부탁하며(4:1~5) 바울의 펜은 내려놓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Ⅰ . 자녀교육의 중요성
① 자녀들과 충돌하는 9가지 내외적 구조
㉮ 빈번한 공간이동으로 인한 안정감 결여, ㉯ 기술발전으로 인한 비인간화,
㉰ 마약과 술, 성적 타락, ㉱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 이혼, 별거, 불화등의 가정파괴와 핵가족화,
㉳ 인간에 대한 신뢰결핍, ㉴ 상호헌신의 결핍, ㉵ 반권위주의적 경향, ㉶ 자아도취
② 자녀교육과 가정의 역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유지 발전시키는 일차적인 기관으로서의 가정은 교회의 원형(Prototype)입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책임이 가정에 있으며, 교회교육과 학교와 세속 사회속의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참된 기반이 가정에서 이루어 집니다 자녀를 신앙인으로 세우고 바르게 교육하며 복음전파 사역의 유업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은 부모의 선한 영향력입니다(신명기6:4~9)
③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태도
㉮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로 자신의 혈통적인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소중하게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바람직한 자녀교육은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 욕구등을 자녀를 통하여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신의 자녀를 그리스도의 진리와 인격에 겸손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 부모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전격적인 책임자로 나설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녀 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카테고리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요한복음1:35~37,3:30)
㉱ 부모는 무엇보다도 언행일치의 삶과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생활가운데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디모데후서3:10~12)
㉲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은 강제나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요한복음6:60~71)
Ⅱ. 성경 영감론
① 영감에 대한 성경의 언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으므로 비로소 믿음과 행위의 표준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디모데후서3:16)이며, 성령이 가르치신 것(고린도전서2:13)이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 것(고린도후서13:3)이며, 하나님의 말씀(데살로니가전서2:13)입니다(이사야30:1,예레미야36:27,에스겔21:8,호세아2:21,아모스6:8) 성경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출애굽기17:14,민수기33:2,이사야30:8,예레미야30:2,에스겔24:2) 이것은 절대 신빙성이 있고, 인간의 임의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베드로후서1:20~21)
② 영감의 성질
㉮ 기계적 영감설 : 정신활동이 중단된 성경의 기자가 성령이 불러주시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받아 썼다는 주장입니다 성경 가운데는 기자들에 따라 독특한 문체, 개인적 경험등이 나타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적인 자료수집이 이루어졌으므로(열왕기상11:41,14:29,역대상29:29,누가복음1:1~4) 이 주장은 근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 동력적 영감설 : 하나님께서 성경기자에 대하여 영감하셨으나 그것은 심적, 영적 활동에 대한 고무에 불과한 간접행위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성경 오류 발생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특별영감의 영역이 없어지므로 허구입니다
㉰ 유기적 영감설 : 성경기자는 성령의 유기적 영감으로 각 개인의 성격, 교육, 문체의 손상없이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기록 당시 성령께서는 항상 기자를 감동시켜서 그들의 능력이 죄의 영향에 의해 손상되거나 훼손됨이 없도록 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자의 개인적 특성과 시대적 특성을 포함하지만 오류는 없었습니다
③ 영감의 범위
㉮ 사상영감설 : 사상은 영감되었으나 언어는 기자의 선택에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언어는 사상과 독립되어 있지 않고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따로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부분영감설 : 성경 가운데 교리적 문서, 도덕적 문서, 신약성경은 영감된 반면 역사적, 과학적, 연대적부분과 구약성경은 영감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부분영감설은 성경영감설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 완전영감설 : 성경 전체가 영감되었다는 주장은 바울의 주장(디모데후서3:16)에 의해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성경용어, 문체, 표현에 대하여도 영감하셨으므로(축자영감설) 성경 각 부분들과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23:43~45,요한복음10:35,갈라디아서3:16)
(5) 개요
Ⅰ. 인사와 서론(1:1~18) : 그리스도의 군사의 소명(1:8~18)
Ⅱ. 복음, 성도가 맡은 위탁물(2:1~3:17) : 군사의 성품(2:1~16)
Ⅲ. 결론과 작별인사(4:1~22) : 그리스도 군사의 직무(4:1~5), 그리스도 군사의 위로(4: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