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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네 시인선 042_엄계옥 시집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
엄계옥 시집 |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 | 문학(시) | 신국판 | 140쪽 | 2015년 9월 24일 출간
값 9,000원 | ISBN 979-11-5896-003-2 03810 | 바코드 9791158960032
[책 소개]
상처를 어루만지는, 마음의 테라피
〈시인동네 시인선〉 042. 2011년 『유심』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엄계옥 시인의 첫 시집. 엄계옥 시인의 시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와 울음의 언어로 구성된다. 유년기로부터 중년에 이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삶에는 수많은 상처와 울음이 암각처럼 새겨져 있는 듯하다. 시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상처로 인해 ‘울고 있는 아이’가 서성거리는데, 시인은 그 아이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의식보다도 더 깊은 마음의 구석을 말하는 것일 터, 시인의 상처가 그만큼 연원이 깊고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집은 그 아이의 삶을 성찰하기 위한 것이거나, 그 아이를 달래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 아이의 상처를 초극하기 위한 것이다. 하여, 그 시들은 마음의 테라피를 지향한다. 물론 그 아이가 엄계옥 시인의 삶에만 한정되는 존재는 아닐 터, 인간 누구나의 마음 깊은 곳에 기거하는 실존적 존재로 확장해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시편들은 인간 심리의 보편적 상처를 테라피해 주는 범상치 않은 역할도 가능할 것이다.
[책 속으로]
상처의 냄새
목욕탕에서 어머니의
슬픈 연대(年代)와 마주한다
팔순의 몸을 씻기다
오래전 영면한 흉터와의 직면에
못 볼 걸 본 것처럼 쭈뼛 서는 동공
마디마디 어긋난 골격이
돌아앉은 순간에도
듬성한 머리카락이
감추고 있었던 신음 자리
때론 기억이란 무의식이 지어낸
환영(幻影)이라 머뭇대는 사이
손가락 끝이 먼저 당도해버린
움푹 파인 분홍빛 묏자리
통증이 일시에 전신을 습격한다
등덜미 삭아 내린 팔순의 몸
안개에 묻힌 채 속수무책
상처에 가격당한 줄도 모르고
흉터에다 겹겹이 적막을 쌓고 앉았다
맹금(猛禽)이 떠돌던 봉우리
황막한 처소를 헝클어진 머리숱으로 덮는다
까마득한 시간의 사슬에도
상처는 죽지 않고 그날로 산다
철옹성인 몸 안에다 울음보를 장전한 탓에
상처에선 늘 무덤 냄새가 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노래
수목한계선 무릎 끓은 설움
한 줄 선율에 불현듯 울컥, 하고 쏟을 때
쉰 번의 겨울 나이테 제 피륙의 깊이만큼
몸의 현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차곡차곡 안으로 들인 한기
주체할 수 없는 울림으로 번져와
바람의 결기 낱낱이 토해낸다
제 몸 최고봉의 선율을 향한 바람의 담금질
앙상하게 휘어진 등줄기 후려칠 때마다
늑골 뼈마디의 비명 온몸을 휘감는다
층층이 안으로 쟁인 한기가 버팀목인
해발 삼천 미터 생목한계선, 일용직인 그는
로키산맥의 무릎 꿇은 나무가 되어갔다
나목의 우짖음 목울대 공명이 되었다던가
은발에 찬 기운 돋을수록
폐부 깊숙한 멍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생계의 운율
에일 듯 토해내는 굽은 등의 완창,
키 낮은 가계의 계보(系譜)
[시인의 말]
내 무의식 저편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이에게
손 내민다.
그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 내 시(詩)의 전언이다.
이미 늙어버린 아이인 내가,
지나온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시(詩)라는 첫발자국을 내딛는다.
과거는 이미 전생이 되었다.
진정한 화해는 무의식과 하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시집을 열자 시인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내 무의식 저편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아이에게/손 내민다/그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 내 시(詩)의 전언이다.”(「시인의 말」) 그렇다면 이 시집을 읽는 일은 “그 아이”가 누구인지 밝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서다. 그 “아이”는 분명 시인이 시를 통해서 말을 건네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무의식의 저편”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현실의 존재는 아닌 듯하다. 시인은 이어서 말한다. “이미 늙어버린 아이인 내가,/지나온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 시(詩)라는 첫발자국을 내딛는다./과거는 이미 전생이 되었다./진정한 화해는 무의식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아이”의 정체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 “아이”는 현재는 “늙어버린 아이”인 “나”의 유년기 혹은 “전생”의 모습인 셈이다. 문제는 그 “아이”는 애초부터 “울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아이”가 시인의 유년기라면 시인은 어린 시절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과거의 그런 “나”와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밝힌 셈이다.
시가 유년기의 고통스런 기억(시인은 그 기억의 깊이를 강조하기 위해 “무의식”이라고 표현했다)과 “화해”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테라피(therapy) 기능을 간직한 것이 된다. 시의 테라피 기능에 관해서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카타르시스라는 말로 표현을 했다. 희랍시대 사람들은 당시 유행했던 비극을 보면서 마음을 정화(淨化)했다. 만일에 당시 비극 작품들이 없었다면 고대 희랍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타락하고 삭막한 곳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사회에서 비극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하는 역할을 했던 셈이다. 엄계옥 시인의 시는 일종의 자기 테라피 기능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시에 등장하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 그것은 시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그 아픔은 무의식의 차원으로까지 심화된 상태다. 엄계옥 시인은 유년기로부터 현재의 삶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온 깊은 상처를 테라피하기 위해 시를 쓴다.
따라서 이 시집을 온전히 읽기 위한 첫걸음은 시인의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의 목록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시집의 적지 않은 시편들이 그 상처의 아픔과 의미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랭보가 노래했듯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마는, 문제는 한 시인으로서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 엄계옥 시인은 이렇게 받아들인다. “지난 내 흉허물들을 하루에도 수없이 되살며/고통과 장탄식이 내 몸에 기거하도록 내버려둔 채/생의 부박함과 죽음의 일상화에 대해 온몸 묶인 채 긍정하고 있다”(「프로메테우스의 독백」). “죽음의 일상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지난 내 흉허물”로 인해 시인은 상처와 함께 살아온 것이다. 그 상처의 기원은 슬픈 어머니의 생애와 유년기에 체험했던 가난으로부터 출발한다. 늙어가는 부모를 보는 회한이나 엄계옥 시인의 세대에서 유년기의 가난은 사실 일반적인 일이었을 터, 시인이 그런 데에서 유난하게 상처를 받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한 깊은 인식과 예민한 감각이 남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인의 성향은 시인에게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와 상상을 하게 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상처는 개인적 경험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비정함에서도 기원한다. 이를테면 노래방 도우미의 비루한 삶도 시인의 무의식에 상처를 남긴다. 시인은 “눈물이 가장 많이 든 것이 밥알이라는 것을/그 큰 입에 비해 턱없이 비좁은 목구멍을/내장 가득 찬 허기를”(「아귀」) 공감한다. 나아가 시인은 가난으로 인한 영아 유기의 현실과 그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자신을 문제 삼는다. 또 하나, 인간의 문명 역시 시인이 상처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원인이다. 문명은 모더니즘 시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현대 시인들에게 대표적인 비판의 대상이다. 문명이라는 것의 속악함이라든가 천박함, 혹은 비정함 등은 진실을 추구하는 시인에게 부정적 대상이다. 엄계옥의 시에서 문명 비판의 시는 생태의식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문명 고발과 함께 인간 성찰을 동시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상처로 얼룩진 생애, 그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상처를 망각하여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일, 상처에 저항하면서 부정하는 일, 상처의 생애를 성찰하면서 승화시키는 일 등이 있을 수 있다. 엄계옥 시인은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 방식은 시 혹은 예술을 통하는 것이다. 상처를 시로써 승화시켜 나가는 일은 상처가 인생의 고통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생은 비록 “속울음 물모래 지던 에움길”(「동행」)일지라도 시를 통해 “오래된 상처가 쏟아내는 물컹한 단내/그는 배꼽이 향낭이다”(「감꼭지」)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시심 혹은 예술혼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현실에서의 외로움이나 스트레스에 얽매이지 않는다. 현실의 부정적인 조건들은 오히려 현실의 삶을 단련시키고 고양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시가 승화나 초월의 형식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한 시이든 음악이든 예술은 인간에게 삶과 현실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제공한다. 인간은 예술 작품이나 예술 행위와 혼연일체를 추구하면서 현실에서의 어리석고 타락한 삶을 구원받고자 한다. 예술 행위는 영혼의 순수한 형식이기 때문에,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만으로도 구원의 문턱에 다가가게 된다. 예술을 통해, 시를 통해 인간이 궁극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궁극적인 원리이다. 그 원리를 깨닫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우주와의 소통을 통해 거시적인 삶의 태도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때는 인간과 우주와 예술의 경계는 사라진다.
마음 깊은 상처와 울음으로 점철된 생애, 그 비극의 클라이맥스는 죽음 체험과 관련된다. 그런데 죽음 체험 역시도 상처와 울음처럼 삶의 깊이를 깨닫는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 「영적 비행」이라는 시에는 시인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다섯 번의 죽음 체험을 고백한다. 첫 번째는 “첫돌 무렵”의 “홍역”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두 살 무렵”의 “물놀이”에서 익사할 뻔한 일이고, 세 번째는 “세 살 무렵”에 “술 취한 사람”의 폭력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네 번째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라고 소개하면서 “술을 출발 신호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아이들 때문에 더는 오를 수 없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삶에 대한 우울증 때문에 찾아온 자살 충동과 관계있는 듯하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급체” 때문에 겪은 것으로 제시된다. 시인은 이러한 죽음 체험을 “영적 비행”이라고 명명하는 것으로 보아 그것이 삶을 정신적으로 고양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엄계옥 시인이 죽음 체험에 대해 공포와 불안보다는 긍정의 진술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상처와 울음의 가치를 재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많은 죽음 체험은 엄계옥 시인을 정신적으로 높고 강인한 사람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시인은 「영적 비행」에서 “남은 비행이 몇 번이나 더 될지 아직 미지수야”, “기어이 한번은 자신과 마주쳐야 빛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한다. 앞으로도 죽음 체험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빛의 마지막 단계”라고 인식하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죽음이 다시 다가오더라도 기꺼이 수용하여 과거의 상처와 울음을 승화시키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비로소 “내 지난 모습과도 화해를 한 후의 일이 될 거”라고 진술한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 이전에 과거의 상처나 울음과 화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듯 엄계옥 시인의 시는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상처와 울음의 언어로 구성된다. 유년기로부터 중년에 이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엄계옥 시인의 삶에는 수많은 상처와 울음이 암각처럼 새겨져 있는 듯하다. 시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상처로 인해 ‘울고 있는 아이’가 서성거리는데, 시인은 그 아이가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무의식이라는 것은 의식보다도 더 깊은 마음의 구석을 말하는 것일 터, 시인의 상처가 그만큼 연원이 깊고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분석학에서도 무의식은 상처, 죄의식, 욕망, 갈등 등 고통스러운 경험과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마음의 곳간이다. 이 시집은 그 아이의 삶을 성찰하기 위한 것이거나, 그 아이를 달래기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 아이의 상처를 초극하기 위한 것이다. 하여, 시는 마음의 테라피를 지향한다. 물론 그 아이가 엄계옥 시인의 삶에만 한정되는 존재는 아닐 터, 인간 누구나의 마음 깊은 곳에 기거하는 실존적 존재로 확장해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시편들은 인간 심리의 보편적 상처를 테라피해 주는 범상치 않은 역할도 가능하지 않을까?
[시인의 산문]
첫, 시집이 하필 가을이라니……
시가 내게로 오던 날 빨간 숟가락 초침이 밤의 걸음을 헤아렸다. 까만 허공
의 노래 불면을 따라 돌았다. 연필과 공책이 머리맡을 지켰다. 생각에게서
풀려날 날이 없었다, 시의 노예가 되길 자처했으므로.
수면에서 깨어난 기억처럼 내 속에 감춰진 아이가 말을 건넨다. 춥다고 했
다. 원래 시는 추운 거라고 답했다. 생각나무 한 그루로 자란 듯 꼬리에 꼬
리를 무는 생각을 날랐다.
내 몸은 시의 집이 되었다.
볼살 내리도록 계절을 앓고 나면, 내 시도 뼈만 남을까?
가을을 벗은 나무처럼.
[저자 소개]
엄계옥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2011년 『유심』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울산광역시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을 수혜하였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장고(長考)/스트라디바리우스의 노래/상처의 냄새/늦단풍/감꼭지/수라(修羅)/비 듣는다/해변의 카프카/반창고/비밀의 눈/개와 늑대의 시간/고래 뱃속 이야기/목욕탕에 핀 장미/골굴사 풍경/저인(邸人)
제2부
거미/프로메테우스의 독백/달빛 소나타/팔순에 젖이 돌다/거울/펄을 깁다/아귀/도플갱어/발견/보리피리/가터뱀의 외출/잠수종/소혹성B 612호/빈집/강을 풀다
제3부
발굴/허기를 현상하다/동산/미장아빔/오진/인편/아귀 2/화양연화(花樣年華)/곱등이/금강해설/꿈/영적 비행/왕의 귀환/천궁도(天宮圖)/동행
제4부
첫/다비장 길/나이테/이성과 망상의 경계/서어나무/동업/귀로/울음의 기원/뼈 맛/잃어버린 고리/간섭/일생/감나무 집/뒷문에 대한 고찰/착란
해설 ‘울고 있는 아이’를 위한 테라피 / 이형권(문학평론가・충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