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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박영실(7대, 도미니카) |
편집인 : 서용원(6대, 가브리엘) |
발행일 : 1994년 1월 31일 |
◐ 삶의 기로에선 그대 젊은 청년들에게.... ◑
이제 시작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버팀목, 그대에게 거는 기대는 실로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중요하겠지만
어디로 가야하는 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삶의 기로에선 그대 젊은 청년들이여,
버팀목의 청년들이여,
이제 어디로 가려합니까?
거대한 파도가 거세게 밀려오고
높게만 보이는 산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데
어디에 우리의 희망과
우리의 정열을 걸고 투쟁하여 나가겠습니까?
태양이 떠 오르고 있습니다.
밀려드는 파도 위로, 그리고 높은 산 위로....
그 빛은 우리에게 수천년 동안 한결같이
어둠을 이겨 나갈 힘이 되었고,
다시금 시작하려는 이때에도 그 빛은
한결같이 우리를 따스히,
그리고 밝게 비추일 것입니다.
버팀목이여, 이제 참빛 안에서 밝게 비추이도록 합시다.
우리 또한 한결같이....
[버팀취재] 제 5대 버팀목 회장, 박영실(도미니카)님을 찾아서... 1월 20일 목요일, 기자단은 버팀목의 지주인 회장님을 만나고자 남대문을 사이로 한 회장님의 회사를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어려운 자리를 마련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취재로 들어갔다. 제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제천의 어느 마을이었습니다. 제천 모국교를 다니던 4학년 말에 저는 아빠의 사업관계로 서울로 올라 오게 되었고, 전학을 했지요. 서울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제게 힘겨운 나날이었어요. 별로 경제적 어려움을 몰랐었는데,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 조금은 궁핍한 생활을 했고, 그리고 저의 첫사랑이라 할 수 있는 제천의 '용이'와의 헤어짐으로 나날이 괴로웠습니다. 중학교를 전전하던 제가 운이 좋게 고등학교(경기여고)에 들어 갔고, 학교에서의 가톨릭학생 모임에서 선희와 윤희를 알게 되었고, 둘이 같은 본당에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때 유혹을 당해 문예부와의 인연이 닿았지요. 그리고 '용이'와 비슷한 그 누군가를 발견하고 너무나 좋아 첫날에 바로 문예부와는 죽는 날까지 계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되어 지금의 회장이 된 것 같습니다.(그 누군가에 대해 집요한 질문공세가 있었으나, 무거운 입술이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의 회사생활은 너무도 우연이었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취업을 하러 면접을 보러 간 친구를 따라 갔다가 제가 뽑히게 된 거지요. 아마도 주님의 은혜였던 것 같아요. 직장생활은 앞으로 저의 인생이 바뀔 어떤 일이 있기 전까지 계속할 예정이예요. 여기까지 얘기를 한 후 회장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기자단은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다. 백기자, 조기자, 그리고 덩달아 따라온 김 모양, 모두가 지화를 부르짖으며 이날의 취재를 마쳤다. |
버팀방 목소리 |
안녕하십니까?
'94년도 제 13대 청년연합회장직을 맡게 된 이창룡 베드로입니다.
'93년이 어느 덧 지나고, 94년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모든 청년분들도 빠른 시간 속에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몸 건강하신지요.
글재주가 없는 제가 서면으로 청년분들과 대면하는 것도 크나 큰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미흡하지만 회장이 되고 나서, 주위를 한번 더 살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 몇 자 적어 볼까 합니다.
우리 모두 청년미사에는 꼭 참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청년들이 그 시간에 무엇이 바빠 불참을 하겠습니까? TV 때문입니까? 친구들과의 약속(술, 영화) 때문입니까? 자신의 나태함입니까?
물론 각자 할 말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처럼 아니, 한국교회의 처음 모습처럼은 아니더라도 진정한 크리스챤의 모습을 생각과 행동의 실천으로 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개개인이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의 도구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청년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왜 입니까?
구성원이 싫어서 입니까?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입니까? 시간이 없어서 입니까? 빛은 하나하나 더해 갈수록 더 빛나고, 소금은 한알한알 더 할 때 더 짠 맛을 내듯이, 개개인 모두가 빛과 소금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의 건물을 완성시키려면 수십가지의 공정이 필요하고 수백 가지의 도구가 필요합니다. 나 개인이 하찮은 못일지라도, 모래 한 알의 모습이라도, 하느님의 집을 건설하는데 여러분 개개인의 동참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청년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합시다. 도와 줍시다!
개개인의 이기주의 모습을 버리고, 한우리의 공동체 모습으로 신년 새해 때의 인사하는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두 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94년 새해에는 나 자신도 더욱 더 성숙한 모습으로 여러 청년분들을 위해 열심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새해에는 저도 사랑을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본당 청년연합회 회장 이창룡(베드로)
버팀목, 우리의 '94년 행사계획 |
일정 |
내용 |
회지 | |
1월 |
7(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
2월 |
11(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
3월 |
11(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
4월 |
8(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
5월 |
13(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
6월 |
10(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공동체 2호 |
7월 |
2(토) |
전반기 총회:전반기 활동보고 |
버팀소리, 공동체2호 |
8월 |
13(토)-15(월) |
청년연합 캠프 참여 |
버팀소리 |
9월 |
9(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버팀소리 |
10월 |
|
본당 행사 참여 |
공동체 3호 |
11월 |
5(토) |
하반기 총회 : 임원선출 |
공동체 3호 |
12월 |
9(금)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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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2회 모임(상황에 따라 변경 가능)
- 둘째 주 금요일 : 임원 및 기 대표 모임(저녁 7시, 성당)
- 셋째 주 토요일 : 전회원 정기 모임(저녁 6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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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 마당 |
지금 여행반은 여기에....
대부도를 다녀와서 기자 서동현(요셉)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시계는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으~~아, 늦었다!'
7시 30분에 대림역에서 형들(종성, 원배, 승수)과 누나(미정)를 만나기로 하였는데, 이렇게 늦잠(평소보다 무리를 함)을 잔 것이다.
허겁지겁 세수와 칼질을 하고 옷을 입어 보니까 15분이 지났다. 어머니가 계란 후라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여 후루루 마셔 버렸다.(반숙)
신발을 신고 집을 나와보니 카메라와 지갑을 놓고 왔다. 부랴부랴 소지품을 챙기고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대림역에 도착하니 39분. 계단을 올라가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은 승수 형 뿐.
'아니, 이런, 나 혼자만 난리를 쳤잖아.'
승수형과 같이 형들과 누나를 기다렸다. 약 10분 후 원배형이 청바지를 입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등장. 또 10분 후 종성이 형이 머리가 뜬 채로 등장, 약 20분 후 미정이 누나가 머리가 젖은 채로 왔다. 다들 다른 사람들이 늦게 올 줄 알고 늦장을 부렸다고 한다. 괜실히 택시비만 날렸다. 새해 처음으로 탄 택시였는데....
우리는 전철을 타고 신도림에 내려 수원행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짤짤이를 하였다. 미정이 누나도 합세를 하였다. 갑자기 신도림역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미정이 누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나는 조금 떨어져서 서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약과였다. 짤짤이 도중에 미정이 누나가 한번 몸을 앞으로 하며 웃으면 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 보았고, 나는 한걸음 더 뒤로하고 서 있었다. 아무말 없이 수원까지 도착하였다.
수원이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이야. 수원역을 태어나서 처음 와본 나로서는 놀라왔다. 우리는 지하상가의 김밥과 떡볶이들의 유혹을 마다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터미날에 도착하였다.
터미널에서 서산행 버스를 탔다. 나는 미정이 누나랑 앉고, 종성이 형, 승수형, 원배형은 따로 따로 앉았다. 여자가 앉았으면 하는 형들의 마음이 얼굴에 써 있었다. 형들을 둘러보니, 아니 이럴 수가 원배형은 정 반대였다.
원배형이 여자의 어깨에 기대어서 자고 있었다. 미정이 누나와 나는 웃었다. 역시 차 안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 보았다.
서신에 도착하여 보니 종성이 형 어깨에 '웬 침자국!' 이, 우리는 또한번 웃었다. 닦으라고 했는데 종성이 형이 그냥 그대로 나둬야 한다고 하며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드디어 대부도에 도착했다.
물에 나가니 갯벌만이 눈에 들어왔다. 해안을 따라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경치가 괜찮았다. 떨어질 듯한 암벽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겠다고 종성이 형이 배꼽을 내밀며 올라갔다.
한참 걷다가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다. 우리는 코를 막고 무슨 냄새냐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종성이 형이 미정이 누나를 보며 "미정아, 제발 뒤에서 따라와"라고 말하자, 미정이 누나가 몸을 앞으로 하며 또 웃었다. 웃음소리가 바다에 퍼져 갔다.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었다. 좁은 길에 경운기 자국, 흉가, 살며시 풍기는 미정 누나의 화장냄새, 계속해서 보이는 포도밭 등이 마음을 편하고 시원하게 해 주었다.
식사를 하였다. 칼국수와 산낙지, 그리고 우리의 쇠주, 낙지가 꿈틀거리는 것이 꼭 지렁이 같았다. 초장에 떨어뜨려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알맞게 묻혀져서 먹기가 편했다. 식사를 하고, 반대쪽 해안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룻배가 나왔다. 우리는 거기에서 막간을 이용하여 짤짤이 아니, 동그라미 안에 돈을 넣는 게임(?)을 했다. 원배형이 다 땄다. 프로였다. 원배형은 "내가 예비군 훈련에 나가면 왕이야, 왕!"이라고 말했다.
미정이 누나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며 화장실로 걸어 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형들은 뒤로 달려가서 비료를 주었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나는 사진을 찍었다. 종성이형은 원배형밖에 안찍은 줄 알고 웃었다. 나는 "형, 형도 찍었어. 형은 싸는 거하고, 입는 거 하고 두장이나 돼"라고 하니 종성이형은 멍청한 웃음을 지었다.
누나가 돌아오고 누나와 승수형, 그리고 나는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갈대밭이 나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갖은 폼을 멋지게 잡게 한 장씩 사진을 찍고 돌로 탑을 쌓았다. 내가 제일 높게 쌓았다.
다시 돌아와 보니 배 위에서 원배형과 종성형이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대부도를 나와 서산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침을 흘리었던 그 여학생이 또 버스에 탔다. 종성이형은 다른 어깨마저 침을 흘려 주기를 기대한 듯이 자리에 앉았는데, 그 여학생은 다른 자리에 앉아 버렸다.
수원에서 전철로 구로역에 와 피자를 먹고, 구로시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간단히 오늘 일을 평가했다.
오랜만에 바다의 짠 바람과 시골의 냄새를 맡았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버팀 마당 |
1994년 1월 9일.
나는 버팀목 안에서 크고 있는 편집부에 정식으로 가입했다.
가입은 약 한달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으나, 나의 빽빽한 학원숙제와 공부로 인하여 가입해 놓고 밋밋한 활동으로 하여금 오히려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밋밋한 활동이라도 편집부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고, 또한 편집부 안에서 내가 토해내고 싶은 생각들과 꾸미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 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편집부에게 회원의 도움도 있어야 하겠지만, 내가 원했고 나의 아이디어를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버팀소리를 통해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편집부 현실이나 진행 상황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편집부원들과의 꾸준한 만남과 의견교환으로 나의 가입이 발전적이고 훈훈한 버팀소리의 발간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변준섭, 서용원 선배와 승수, 성덕, 형수, 동현 후배들과 내가 주축이 되겠지만 아무쪼록 버팀목 회원들의 도움과 참여가 자유로워지길 바라고 편집부원들 모두가 버팀소리의 이야기 속에서 수수한 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 노력과 유혹을 서슴치 않겠다.
멀지 않은 미래의 편집부 부장을 노리고 있는
8대 김은실(글라라)
자랑스런 |
열 일곱의 회상, 그리고.............. 내가 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그 어린 날들에는 경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난 알지 못했다. 세상은 온통 핑크빛인 줄만 알았지 회색도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랑은 밝은 빛에 즐거움으로만 배웠다. 어두운 그림자에 슬픔도 있다는 것을 배우진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믿고 아낀다고 생각했지. 서로 속이고 불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눈으로 보기 시작했던 조금은 서러움을 느꼈던 날들에 난 사람들이 얼마나 치사하고 얼마나 많은 슬픔들을 안고 사는지 그리고 세상엔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난 나 만큼은 세상 사람과 다른 줄 알았다. 지금 너무나도 많은 길 위에 서 있는 난 내가 얼마나 보이지 않는 존재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뻤던 내 마음을 잊어 버린 채 사람들을 닮아 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난 절망만을 배우는 나에게 버텨갈 수 있도록 세상이 단 하나 준 선물이라면 모든 절망과 아픔 속에서도 조그마한 희망이 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일 뿐이다. |
까치가 태어났습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그는 축복을 받았으니까요. 까치는 비행을 시작합니다. 그는 행복할 것입니다. 도와주는 부모님이 있으니까요. 까치가 먹이사냥을 합니다. 그러나 안심입니다. 그가 사는 곳은 오염되지 않았으니까요. 까치가 사랑을 합니다. 정말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의 애인이 새치를 뽑아 주니까요. 까치가 집을 짓습니다. 그는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집을 얻었으니까요. 까치가 잠을 잡니다. 아주 편히 잡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 세상의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곁에는 까치가 없습니다. 까치야 까치야 외쳐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눈이 빠지도록 찾아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끝끝내 까치는 우리 곁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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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소식 |
● 2월 1일에 그동안 편집부 기자로서 우리에게 즐겁고 놀라운 소식을 전하여 준 9대 조성덕(요한)형제가 강원도 춘성 102 보충대에 입대를 한다고 합니다. 모두들 그에게 하느님의 보호하심과 은총을 빌어 줍시다.
● 버팀목의 고목이며, 편집부의 영원한 우상인 3대 변준섭(바오로) 형제님이 2월 25일(금)에 모교인 인하대 교정에서 졸업식을 갖는다고 합니다. 또한 5대 김영호, 6대 최응균 형제님도 이에 앞선 2월 18일(금)에 각각의 모교인 한양대와 경기대에서 졸업식을 갖는 답니다. 모두들 축하와 격려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다른 형제 자매들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 새로이 버팀소리와 일을 해 나갈 편집부원들이 늘었습니다.
8대 김은실(글라라)양과, 10대 박형수(스테파노)군, 11대 서동현(요셉)군이 기자로 들어와 94년 편집부의 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의 역량을 발휘하겠다고 합니다. 아무쪼록 변 편집부장과 조기자의 빈 공간을 이들이 잘 메워 주었으면 합니다.
● 4대 황정섭(루피나)자매님이 1월 24일날 구로3본당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예수님 하고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버림소리 11호, 그 다음 이야기들(1993년) |
● 지난 '93년 9월 12일 3대 이현아 자매님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날 성남의 ??에 모여 두 손 모아 축복을 빌었었지요. 축복된 나날이 되기를 모두 기도드려요.
● 10월 10일에는 3대 추성애 자매님께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색시가 되어 신혼살림을 꾸려 나갔지요. 그때 눈물을 머금고 3대 형제분들과 우리들은 낭군님과의 사랑을 기원했죠.
● 선배 언니들의 잇따른 빵빠레에 질세라 4대 배금숙 자매님이 10월 30일 모든 이의 기대속에 시집을 갔더래요. 그리고요 12월 12일에 집들이가 있었는데, 여회원들의 부러움과 남회원들의 안타까움이 어우러진 자리였고, 우리들은 신림동의 모 락까페에서 춤을 추며 놀았지요.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기억되지 않습니다.
● 버팀목 4대 후반기 총회가 11월 27일에 열려, 5대 새 임원진이 새롭게 뽑혔습니다.
회장에 박영실(도미니카) 자매가, 부회장에 배미정(베로니카), 서용원(가브리엘), 총무에 김진호(요한), 서기에 백승수(요한)이 선출되어 새해에 새로운 결심과 각오로 버팀목을 이끌 것을 다짐했다.
이날 버팀목의 위상을 새롭게 하기 위해 본당 내 청년연합회 가입에 대해 토론과 결정르 한 결과, 청년연합회에 가입할 것과 그 안에서의 활동성을 계획했다.
● 계유년의 마지막날 버팀목 회원들은 향원 고기부페에 모여 한해 동안의 아쉬움을 나누며, 망할년회를 가졌다. 이날 모처럼 김희경(스텔라)양과 이주빈양이 참석하여 뜻깊은 자리가 되었고, 둘은 앞으로의 버팀목 활동에 열심할 것을 다짐하였다.
'94년 이렇게 |
● 1월 7일(금)에 첫 정기모임이 본당 지하교실에서 있었다. 이날은 기대표들과 임원들과의 만남으로 1,2,3월 행사계획에 대해 토의가 있었다. 이날 결정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동계 엠티
- 일시 : '94년 2월 19일(토)~20(일)
- 장소 : 샛터 은혜의 집(상봉터미널에서 버스로 샛터 은혜의 집)
- 출발방법 : 선발대 = 대림역에서 오전 9시 집결, 책임자 = 백승수
후발대 = 오후 3시 청량리역 시계탑 앞 집결, 저녁 6시 청량리역 집결(개인적으로)
- 회비 : 15,000원
- 동계 엠티 참석자는 2월 10일까지 기대표에게 회비와 함께 연락하고, 기대표자는 2월 11일 모임때 인원수와 회비를 함께 보고 할 것.
*독서 토론
- 일시 : 3월 19일(토) 저녁 6시
- 장소 : 성당 지하교실
- 도서 : 영원한 제국
= 독서토론에 많은 회원 여러분의 참여를 바라며, 아울러 이날 토론은 본당 내 전 청년들과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 1월 9일에는 여행반 회원들이 대부도로 여행을 다녀왔지요. 겨울바다에 가보고 싶은 충동을 어찌할까요.
● 1월 15일(토) 버팀목 정기모임이 있었고, 이날 3대 이재성 형제님이 참석하셔서 건강한 얼굴을 뵐 수 있어서 모두들 반가워 했다. 그리고 이달 말이 재성 선배의 공주님의 돌이라고 하니 모두들 축복을 기원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정해진 계획들에 대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 1월 20일(목) 편집부 기자단은 5대 회장인 박영실 자매를 찾아 나섰다. 자세한 내용은 버팀탐방과 행사계획을 보시기 바랍니다.
● 1월 22일(토)에 우리의 귀염둥이 조성덕(요한)의 군입대(2월 1일)와 박양희(보나벤뚜라)의 휴가(1월 15일~29일)에 대한 우리들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아쉬움과 함께 모두들 성덕이의 건강을 빌었지롱. 장소는 오두막이었고, 그곳에서 다시 장선의 에어로빅홀로 옮기어 철야로 주님을 보시었다는데.....
<편집 후기>
버팀소리 12호가 늦어졌음에 사과드립니다.
아울러 물심양면 도움주신 변선배와 회장님, 그리고 군에간 성덕이를 비롯한 편집부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5대 버팀목 회장단을 축하하며 기대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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