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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홀로, 그리고 다시 한북 최고봉 국망에 오르다 (11구간)
1. 일자: 2016. 10. 1 (토)
2. 봉우리: 민둥산(1023m), 견치봉(1130m), 국망봉(1167m)
3. 행로/시간
[불땅계곡(08:30) -> (길 찾기 어려움) -> 이정표/593봉(09:31~37, 도성고개 0.6km) -> 도성고개(10:47~10:52) -> 763봉(10:10) -> 민둥산(10:57~11:09) -> 적목리 갈림(11:44) -> 견치봉(12:00) -> 휴양림 하산 갈림(12:20) -> 국망봉(12:43~53) -> 무인대피소(13:18) -> 임도(14:02) -> 국망봉 자연휴양림(12:20))
< 한북정맥 11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11구간을 준비하며 여러 생각이 혼재하는 가운데‘다시 국망봉으로’란 말에 미소 짓는다. 지난 구간에서 국망봉에 올라 감탄할 만큼 확 트인 파노라마를 보며 ‘100대 명산 백운산’에 가려 빛을 못 본 영웅을 안타까워했다. 이번 코스의 주인공은 국망봉이다. 역사는 국망봉을 궁예와 연결 짓는다. 왕건과의 전투에서 패해 달아나고, 바른 소리하던 부인(강씨)을 유배시키고, 결국은 망국의 설움을 달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한국의 산하에 들러 추가 정보를 구한다.‘국망봉은 포천과 가평 접경에 위치한 경기도 제3고봉이다. 암봉이 거의 없는 육산이나 육중한 신세로 고산의 면모를 고루 갖추어 어느 계절에 찾더라도 웅장한 맛이 느껴진다. 특히 겨울에는 많은 적설량과 함께 주 능선 일대의 설화와 상고대가 장관이라 한다. 다만, 부근에서 2번이나 길을 잃고 조난 당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어 겨울산행은 유의해야 한다.’웅장한 맛, 국망봉을 칭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지난 산행 하산 길, 정상 초입 내리막을 힘겹게 내려왔을 때 맞은 무인대피소가 생뚱맞아 보였고, 옥혜님과 민주지산의 4월 폭설과 특전사 대원들의 동사와 그 연유로 생긴 무인대피소 이야길 나누었는데, 이제서야 국망봉 무인대피소 설립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이번 구간 시작은 도성고개에서 하려 한다. 일동터미날에서 구담사 부근에 있는 산행 들머리까지는 8km로 택시로 15분 거리고, 이곳에서 고도 631m 도성고개는 2km 남짓의 거리다. 진작 알았더라면 분명 지난 구간 날머리도 이곳으로 정했을 텐데…. 만시지탄이지만 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다. 도성고개~민둥산 2.5km 80분, 민둥산~견치봉 1.9km 60분, 견치봉~국망봉 1.3km 50분, 국망봉 하산 길 3.5km 90분. 총 11.5km 남짓 6시간의 산행을 예상한다. 도성고개에서 강씨봉은 왕복 3km다. 미리 욕심을 내지는 않으리라. 대세를 따라야 한다.
< 희망사항 >
산에서 길을 잃은 트라우마는 내가 서 있는 곳의 위치와 가야 할 등로를 정확히 알고 대비하면 극복할 수 있다. 연이은 알바에서 무리한 산행의 혹독한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익숙함과 새로움은 양립할 수 있다는 소신도 내려놓지 않는다. 늘 남들이 간 길만 간다면 발전은 기대할 수 업다. 감내할 수 있는 위험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과감히 변화를 추진해 보리라.
1200년 전 궁예가 올라 회한에 잠겼을 국망봉은 한북정맥 최고봉이다. 최고에서 광활함을 다시 맛보고 싶다.
길을 나서기 전 교통편, 들/날머리, 접속 등 아직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언제나처럼 판단은 현장에서 한다. 그 결정이 어쨌건 국망봉으로 오르는 억새와 잡목과 구절초가 뒤엉킨 길에서 가을을 맞아야겠다.
< 도성고개 가는 길에 >
금요일 밤 계획을 바꾼다.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하지 말고 차를 운전하여 홀로 이번 구간을 다녀오는 게 현명해 보인다. 들/날머리를 어디로 정하든 정맥 길보다 더 긴 접속 구간을 오르내리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당초 오늘은288과 청계산~부용산 연계 산행을 함께 하기고 했다가 회사에 일이 생겨 불참을 통보했는데, 저녁에 다시 상황이 변했다. 토요일 아침 들머리 도성고개 밑 펜션을 네비에 입력하고 차를 몰고 나선다. 90km가 넘는 거리다. 도로에서 일출을 보리라 기대했건만 날이 흐리다. 이제는 눈에 익은 진접, 내촌, 운악산 입구 등을 지나 일동으로 들어선다. 한참을 가다 길이 잘못 든 것 같아 확인하니, 틀렸다. 네비를 구담사로 변경하고 차를 돌린다. 우여곡절 끝에 들머리에 서니 8시 30분. 헐, 집에서 2시간이나 걸렀다. 산 길만 못 찾는 게 아니라 이제 보니 도로 길에서도 까막눈이다. ㅋㅋ
< 들머리 불땅계곡 / 도성고개 >
< 불땅계곡에서 도성고개 >
불땅계곡 입구 공터에 차를 세우고 길을 찾는데 여의치 않다. 구담사 부근에서 이정표를 보았고 분명 외길 이었는데 등로 가늠이 쉽지 않다. 우왕좌왕 하다 구세주를 만났다. 인근 오토 캠핑장 주인이 출근하다 날 발견하고 길을 안내한다. 새로 지은 건물 좌측으로 등로가 연결되었다. 초입은 짙은 숲 속에 난 호젓한 임도다. 생각 외로 널찍하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정표가 여럿 나타난다. 도성고개까지의 거리 표시가 들쑥날쑥 이다. 헷갈린다. 본격 오름이 시작된다. 간벌을 했는지 잔가지가 떨어져 어지럽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길의 흔적이 흐릿하다. 등로 분간이 되지 않는다. 가다 보면 나오겠지 하고 오르는데 희미하던 흔적마저 사라진다. 분명 도성고개를 향해 가고는 있는데 미덥지 않다. 지도상으로는 근처에 593봉이 있다. 몹시 가파르고 미끄러운 비탈을 헤치고 오른다. 비탈에 생뚱맞게 이정표가 서 있다. 구담사 2km, 도성고개 0.6km. 맞게 올라왔단 말인데, 그 과정이 워낙 험난해 믿기지 않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온 길이 맞다는 허탈감에 긴장이 풀리니 급 피곤이 몰려온다. 이정표 밑에 털썩 주저앉아 요기를 한다. 추석 송편과 배 등을 허겁지겁 먹는다. 떡과 과일이 이리 궁합이 잘 맞을 줄 몰랐다. 음식을 좀 더 준비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밴드를 확인한다. 국수역에서 일행들이 만나는 상황이 모니터링 된다.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모습이다. 초입부터 한차례 고생을 하고 나니, 여럿이 함께하는 288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초반 도성고개로 향하며 겪은 된비알은 약속을 저버린 벌이라 여기고 달게 받는다. ^^
조금이나마 음식을 먹고 나니 여유가 생긴다. 빈 속으로 산에 나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 없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특히 홀로 나서는 길, 또다시 준비 부족을 실감한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이정표 바로 위가 593봉이다. 정상에는 커다란 군 벙커가 있다. 최근에도 훈련을 했는지 교보재 걸이와 현장감이 살아있는 군사지형지물이 부근에 산재해 있었다. 어제 밤 받은, 내일 나온다던 아들의 휴가 연기가 마음에 걸린다. 그리움이 길에 떨어진다. 자식이 무엇인지 늘 걱정되고 보고 싶다.
593봉에서 참호를 내려서자 길이 몰라보게 편해진다. 봉우리 양 옆이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등로가 넓고 분명하다. 다시 이정표가 나타나고 좌측 계곡 방향으로 무수히 많은 표지기가 붙어 있다. 이정표는 내가 온 길을 안내하고 있으나, 거기에도 누군가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라 표시를 해 두었다. 계곡 길이 내가 올라온 곳보다 훨씬 바른 등로가 확신한다. 관에서 사람 시켜 마지 못해 만든 이정표보다는 산꾼이 발 품 팔아 경험한 판단에 더 신뢰가 가는 건 당연지사다. 곳곳에서 틀린 거리 표시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업체에 용역 주고 담당 공무원은 한 번이라도 등로를 확인했는지 모르겠다.
10:47분 도성고개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넓다. 이곳에도 군 부대 훈련장의 흔적이 감지된다. 지나온 길에 비해서는 고속도로 급이다. 시간이 엄청 걸렸다 싶었는데 식사시간을 고려하면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리에 대한 기대와 현실과의 차이에 조바심이 더해진 까닭이다.
또 배가 고프다. 남은 음식을 아껴 먹는다. 궁핍함이 가져다 준 입맛은 모든 게 천하일미다. 아쉬운 마음으로 강씨봉을 올려다 본다. 초반 체력 소모가 심해서 인지 마음뿐이다. 발 길은 서둘러 민둥산으로 향해진다. 강씨부인은 다음에 기회를 봐야겠다. 길가에 가을 야생화가 지천이다. 구절초, 구슬봉이, 야생부추, 각시투구꽃, 처음 보는 오각형 보랏빛 들꽃 등이 발 길을 붙잡는다. 꽃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 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리워하게 한다. 가을에도 꽃은 존재의 절정이다. 낯선 보랏빛 오각형에서 완벽한 균형과 더불어 생명의 개별성을 확인한다.
< 도성고개에서 국망봉 >
이제부터 정맥을 걷는다. 접속이 의외로 길었지만 제대로 목표에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도성고개를 멀리 하고 작은 봉우리에 올라선다. 강씨봉이 지척이다. 선입견보다는 부드러운 산세다. 지나온 길이 가르마 같은 형상으로 누렇게 구불거린다. 지나칠 땐 아직 푸른 잎이 대세인데, 멀리를 보니 산은 단풍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숲은 결국 개별 나무의 조합이다. 나무의 작은 변화가 쌓은 숲을 이루고 그 숲은 지금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누런 기운이 버짐처럼 산 등성이를 물들이고 있다. 도성고개에서 민둥산까지의 비고는 400미터, 등로가 널찍해서 그런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763봉에 오른다. 도성고개와는 600미터 거리라 한다.
억새가 길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불과 몇 주 전의 푸르름은 흔적을 읽어가고 있다. 선답자가 많았는지 등로의 풀들은 여기저기 스러져있다. 작은 발 걸음들이 갈라놓은 길을 따라 억새를 더 낮게 땅에 눕힌다. 산꾼들 발걸음을 잡아 메었을 잡풀들이 뒤엉켜 등로는 난잡하다. 길 우측 일동 읍내는 흐릿하다. 내려다 보는 풍경을 기대했건만 오늘은 영 틀렸다. 묵묵히 민둥산을 향해 갈뿐이다.
올려다 보는 하늘 밑 뭉뚝한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앞에 놈이 민둥산이리라. 길은 여전히 융단이 깔린 억새가 대세다. 변화 없는 등로에 쉬이 지켜간다. 몸은 지켜 가는데 다리엔 관성이 붙어 좀처럼 멈추려 하지 않는다. 올려다 보는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주었으면 좋겠으나 착 가라앉은 대기는 요동을 하지 않는다.
제법 긴 오름을 치고 오르자 널찍한 헬기장인 민둥산 정상이 나타난다. 쉬어 가야겠디. 땅에 퍼질러 앉는다. 억새 뒤편으로 가야 할 민둥산이 올려다 보인다. 흰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열린다. 국망봉에 서면 좀 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구름 밑 제대로 된 삼각봉의 형상이 멋지다. 자고로 산은 높고 봐야 한다.
오랜만에 홀로 걷는 길, 자유를 만끽한다. 눈치 볼 것 없이 힘들면 쉬고 또 내처 걷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의 나래를 펴고 접고,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도 털어내고, 불쑥 찾아 드는 그리움에 미소 지으며 걷는다. 길을 걷는 다는 건 원초적 본능이리라.
< 민둥산과 견치봉 정상 >
개망초에 벌이 내려앉는다. 작고 연약한 들꽃도 색이 변하고 있다. 작아도 숲을 구성하는 어엿한 식구이며, 그들 역시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자연의 차별 없는 베풂이 감사해진다. 개망초의 꽃잎은 구절초의 그것과 닮았다. 오히려 더 풍성하고 조밀하다. 작은 들꽃에서 자연의 화려한 생명력을 확인한다.
꽤 오래 쉬었다. 고도 1000이 넘었으니 높이에 대한 부담감은 확 줄어든다. 내리막 초입은 잡풀이 뒤엉켜 여간 성가시지 않다. 잠깐 길을 잘못 들어 가시덩굴과 씨름을 한 끝에 겨우 벗어난다. 예까지 오면서 오롯이 혼자였다. 앞으로의 길도 마찬가지 일 게다.
등로가 몰라보게 평탄해 진다. 출발 전 확인한 고도표 그대로다. 조용한 숲에 햇살이 조심스레 내려앉는다. 빛에 따라 숲의 색깔은 시시각각 변한다. 단풍이 물드는 초가을 숲은 한없이 고요하다. 늘 마음으로 그리던 평온이다. 커다란 이정표가 나타난다. 적목리 갈림이다. 가평 땅으로 향하는 갈림이리라. 민둥산 출발 50분 만에 견치봉에 도착했다. 멀리서 볼 때는 암봉이라 여겼는데 그저 평범한 봉우리다. 고도는 1100미터가 넘는다. 거의 국망봉과 동격이다. 정상석 뒤편, 고결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고목이 멋지다.
잡념들이 사라지고 오직 걷는 행위만이 반복될 뿐이다. 숲은 더욱 농밀해진다. 고도가 1100을 넘으니 식생도 변한다. 울긋불긋 나뭇잎의 색이 화려하게 변해간다. 버짐 먹은 것 마냥 단풍나무에 잎이 말라간다. 잎을 떨구어 내기 전 생명 연장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처절하다. 무엇이든 내려 놓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젊음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니. 그래도 이내 세월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버림으로써 내년 봄을 준비할 게다.
< 국망봉 가는 길의 숲 >
국망봉으로 다가갈수록 길은 더 평탄해지고, 명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등로 주변 풍경이 화려해진다. 나무들의 키가 더 커졌고 조릿대가 나타나 푸르름이 더해간다. 국망봉이 가까워 졌음을 직감한다. 자연휴양림 하산 갈림에는 무수히 많은 표지기가 붙어 있다. 이곳으로 하산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당초 오늘 산행은 도성고개~국망봉 왕복으로 잡았으나 아무래도 안되겠다. 힘에 겹고 시간도 많이 지났다. 국망봉에서 휴양림으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국망봉 정상이 보이고 얼핏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 연이어 들리는 목소리들, 산행 후 처음으로 사람 소리를 듣는다. 서둘러 국망봉으로 향한다. 12:43, 견치봉 출발 40여분 만에 한북정맥 최고봉에 닿았다. 맑지 않은 날씨에도 국망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격이 다르다. 거칠 게 없다. 화악산만이 올려다 보일 뿐 나머지는 모두 발 아래다. 신로령 방향으로 단풍이 물드는 북녘 하늘이 끝 간데 없이 너울진다. 지나온 견치봉과 민둥산도 선명하다. 역시 산줄기를 따라 울긋불긋 산이 물들고 있다. 바라보는 눈이 시원하다. 역시 한북정맥 으뜸지는 이름 값을 한다.
경상도에서 온 산꾼들이 민둥산까지의 길을 묻는다. 부모 산꾼은 신로령 방향의 길 사정을 확인하려 든다. 홀로 산행을 한다 하니 날 고수로 여기고 이것저것 묻는다. 경험에 비추어 아는 바를 답해준다. 비록 몇 시간 만이지만 다시 사람들 사이에 섞이며 짧은 고독에서 벗어난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비석 뒤편 글귀를 읽는다.‘철령 높은 곳에 자고 넘는 ~~~’으로 시작되는 이항복의 글이다. 귀양가며 임금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으로 역사 속 국망봉의 전설과는 어울리지 않아 생뚱맞다.
< 국망봉에서 1 >
< 국망봉에서 자연휴양림 >
햇살이 잘 드는 공터에 가을 야생화가 흐드러져 피어 있고, 그 주위를 호랑나비가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근사한 사진 한 장을 얻는다. 호랑나비의 색이 참 화려하다.
다시 견치봉 방향으로 내려가다 휴양림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부부 산꾼이 길이 길고 만만치 않다 하길래 지난번과 같은 하산로로 마음을 굳힌다. 초반 20여분만 고생하면 갈만한 곳이다. 다시 혼자가 된다. 가야 할 등로의 사정을 안다는 건 여간 마음이 놓이는 게 아니다. 거친 돌 길 사이 비탈을 따라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확실히 해발 1000미터를 기점으로 식생이 많이 다르다.
< 국망봉에서 2 >
10여분 내려가다 이 험한 길을 오르는 이들과 만난다. 중년의 한 남자는 거의 초죽음 상태다. 곧 국망봉에 닿는다 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 마음을 나도 잘 아는 지라 안타까웠으나 별 수 없다. 산에서는 모두가 오롯이 혼자인 것 어쩌랴.
색 고운 단풍 앞에서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춘다. 대개가 그렇듯이 바로 앞 보다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단풍이 더 곱다. 햇살이 머물고 간 자리를 붉은 나뭇잎이 대신하다. 오늘도 자연은 위대하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 꽃과 나비 / 붉은 단풍 >
20여분 만에 무인대피소에 내려왔다. 이제 가파름이 덜 하겠지 하는 기대는 좀처럼 실현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머리 속 기억과 실제는 달랐다. 간혹 멋진 소나무 군락이 나오고 황톳길이 있지만 등로는 대세 돌 길이며 급경사다. 비고 1000미터가 낮아지고서야 비로소 임도를 알리는 계단이 나타났다. 동료들과 함께 걷었던 길을 홀로 다시 걸으니 예전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흐리던 날이 맑아지고 가을 햇살이 쏟아진다. 택시를 부른다. 산에선 홀로였지만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과 섞여야겠다. ^^
< 날머리 들꽃 / 푸짐한 해물 짬뽕 >
< 에필로그 >
택시 차장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들녘에는 가을걷이를 하는 손길이 바쁘다. 내일부터 중부지방에 200mm가 넘는 비 예보가 있어 서둘러 추수를 하나 보다. 택시 기사와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고장 토박이인지 지역 사정에 밝다. 제일 맛난 이동갈비 집을 추천해 달라 하니, 비싸 먹겠냐 하며 사실 맛은 모두 그저 그렇단다. 대신 구담사로 가는 길에 있는 중국집 짬뽕 맛이 좋다며 가보라 권한다.
구담사를 지나 차를 세워놓은 불땅계곡 가는 도로는 멀게만 느껴졌다. 차를 회수하며 집으로 향하는 참에 부러 차를 돌려 지역 맛집이라는 중국집에 들러 해물짬뽕 한 그릇을 주문한다. 잠시 후 커다란 그릇에 담겨 나온 놈은 기대 이상이다. 맛도 훌륭하다. 물론 시장기가 더해졌겠지만 ‘해물’이라는 말의 본뜻에 어울릴 만큼 풍성한 비쥬얼과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힘겨운 산행의 보상을 뜻하지 않는 음식에서 받는다. 행복했다.
먹고 나니 몸이 나른해진다.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살핀다. ‘오롯이 홀로, 그리고 다시 한북 최고봉 국망에 오르다.’오늘 산행기의 헤드에 오를 문구다. 정맥 길 3시간에, 접속 3시간. 그래도 국망봉에 다시 오를 수 있어 행복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단풍과 수 많은 들꽃을 보았고, 그 꽃을 희롱하는 호랑나비가 된 듯 가벼운 마음으로 귀경 길에 오른다.
< 11구간 산행 궤적 >
첫댓글 국망봉 구라명동 후후, 진정한 꾼 냄새가 나누만. 오롯이 홀로 잡념이 사라진 명동님. 좋아요.
오랜만.
답글 줘 감사.
조만간 얼굴 한번 봅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