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할아버지의 길
1209 서혜윤
어떤 길인지 잘 알지 못하였다. 한 번 이라도 모든 길들의 풍경을, 바람을 자세하게 느껴보지도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유는 길에 대해 깊숙한 생각을 가질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서야 나는 내 생각들과 내면을 바꿀 수 있는 동기를 가질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보이지 않는 한쪽 눈을 부끄러워 하셨다. 그래서 일생의 반을 어두컴컴한 선글라스로 세상을 바라보셨다. 그 눈으로 할아버지께서는 많은 것을 보시려고 노력하였고 손녀딸을 잘 알아보시지 못하는 거에 대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 그런 가슴 아픈 할아버지의 사연과 먼저 가신 할머니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나의 생각들이 곁들여져 할머니의 산소를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느 때보다 쓸쓸해 보이셨고 안아드리고 싶은 형상처럼 보였다. 당연히 쓸쓸하셨을 거다. 만 질수도 볼 수도 있는 할머니가 아니시고 땅에 흙과 어우러진 할머니의 모습뿐만 남은 산소를 가는 것이니깐. 그렇게 차로도 가기 힘든 그 길을 할아버지와 걷게 되었다.
“아이 혜윤아, 할아버지 어렸을 땐 말이여 이런 길은 물론 시방 온통 맨흙바닥이였어.”
시끄럽게 나무에 달라붙어 우는 매미의 소리, 바람이 불어나는 소리, 어딘가를 가시기 위해 경운기에 시동을 거는 소리 평소에는 잘만 들렸을만했던 소리들이 왠지 모를 까닭에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더운 온기와 함께 할아버지의 말씀 소리가 귀 기울여 지면서 이 여름에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의 경험에서 묻어 나오시는 말씀을 듣고 더운 날씨에 아픈 다리 때문에 투덜거리는 나는 잠시 투정을 멈췄다. 머리에 자기들이 나올 시기를 안 듯 너도 나도 올라오는 흰머리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빼곡한 흉터들, 좋지 많은 않는 피부 결에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 세월들이 곧이곧대로 지나간 흔적들이 보였다. 그 까닭에 난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못하였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만약 할아버지가 걸으셨던 그길 그대로 이었더라면 아마 난 투정이 아닌 화를 냈을 것 이다. 그런데도 이 좋은 아슬팔트에 좋은 환경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힘들었을 할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고 있던것이였다.
나는 그런 철부지 소녀이지만 그래도 할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아름다우신 두 눈으로 예쁜 손녀딸로 여기신다. 그렇게 철없던 여름도 어느 샌가 지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기억 속에 추억으로만 남아 그리워하고 있다.
남들보다는 아니지만 내입 장에서 많은 길들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소소하지만 이 모든 길들 중에서는 나에게 의미가 있었던 기억들은 할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길이였다. 나는 두 눈이 멀지도 , 그렇다고 어두컴컴한 눈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동안 보이는 것들에 대해 하잖게 생각 하였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본다고 생각하니깐 올려다보면 파란 풍경으로 나를 반겨주는 모든 것들이 할아버지에게는 얼마나 소중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걷던 길에 이제는 안녕하며 인사를 건네고 싶다. 분명 더운 온도의 날씨 이었지만 따뜻하였다. 아직도 손녀딸을 위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아버지와 걷지 못한 마지막 길, 배웅도 못해드리고 먼 길을 먼저 떠나신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제야 그이별의 길에서 할아버지께선 선글라스를 포함하여 모든 걱정을 내려놓으시고 먼저 가신 할머니와 함께 환한 세상을 보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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