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유산답사 300차(25주년) 기념 특강
당신앙과 마을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강정식
1. 당과 마을
당과 마을의 관계는 한결같지 않다. 당은 마을 수호신을 모신 곳이다. 마을마다 당이 있어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들어주는 구실은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마다 당이 일정하게 분포하고 있지는 않다.
당신앙의 관점에서 마을은 행정적인 구획으로 이루어진 마을과는 다른 개념일 수 있다. 당은 한 마을에 여럿 있기도 하고 전혀 없기도 하다. 당과 마을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 간단치 않음을 의미한다.
당신앙은 본향당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 신앙권 단위로 이해할 수 있다. 신앙권은 전통적인 지역공동체의 관계를 보여준다. 신앙권을 기초로 할 때 전통적인 마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 본향당과 마을
본향당은 마을 수호신을 모신 곳이다. 일뤳당이나 개당 등 여타의 당은 마을 수호신을 모신 곳이 아니다. 이들도 흔히 본향이라고 불리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본향당뿐이다. 본향당은 마을 사람들의 호적·장적·생산·물고를 차지한 신, 나무와 물을 차지한 신을 모시는 곳이다. 이러한 당이야말로 본향당의 위상을 차지할 수 있다.
본향당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권이 이루어진다. 본향당은 신앙권에 오로지 하나 존재한다. 반면 일뤳당, 개당 등은 여럿 존재할 수 있다. 당신앙은 본향당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당굿도 본향당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일뤳당, 개당 등은 본향당을 보조하는 구실을 한다. 필요에 따라 본향당과 겹치지 않는 조건이라면 동네마다 존재할 수도 있다.
당신앙을 대표하는 당은 세가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본향당, 일뤳당, 대당 혹은 산신당을 꼽는다. 본향당은 마을 수호, 일뤳당은 산육·치병, 개당 혹은 산신당은 생업 수호라는 기능을 담당한다.
본향당의 기능은 배타적이다. 다른 당과 함께 하거나 나누어 맡기 어려운 일이다. 일뤳당이나 개당 혹은 산신당은 신앙권 안의 동네 혹은 생업공동체 단위의 일을 맡는다.
본향당과 함께 일뤳당은 당신앙에서 필수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본풀이에서는 본향신과 일뤳당신이 흔히 부부 관계로 설정되곤 한다. 대신 둘의 서열을 분명히 해둔다. 서열을 가르는 기준은 돼지고기 금기 여부이다. 본향신은 돼지고기를 금기하고, 일뤳당신은 돼지고기를 먹는다. 돼지고기 금기를 어겨 본향신에게 쫓겨난다고 하는 것이 가장 흔한 당신본풀이의 줄거리이다.
돼지고기 금기를 기준으로 본향신과 일뤳당신의 서열이 정해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본향신이 남성인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본향신이 여신인 경우도 있다. 이때는 남신이 돼지고기 금기를 어겨 별거를 당하고 산신이 되곤 한다.
송당본향당본풀이
(1) 한라산에서 솟아난 소천국과 강남천자국에서 건너온 벡줏도가 만나 혼인한다.
(2) 부부는 자식을 잉태하자 농사를 짓기로 한다.
(3) 소천국이 밭갈던 소를 잡아먹자 벡줏도가 별거를 선택한다.
(4) 어린 문국성은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무쇠상자에 담겨 바다에 벼려진다.
(5) 문국성은 요왕국에 이르러 말잣딸과 혼인한다.
(6) 문국성은 식성이 과다하여 쫓겨난다.
(7) 문국성은 천자국 난리를 평정하는 공을 세우고 귀향한다.
(8) 문국성은 아버지 소천국을 물리치고 형제들을 각처의 당신으로 배치한다.
보편적인 당신본풀이의 줄거리
(1) 남신은 제주에서 솟아나고 여신은 다른 곳에서 제주를 찾아온다.
(2) 제각기 좌정처를 찾아 다니다가 한 곳에서 만나 혼인한다.
(3) 여신이 임신한 상태에서 돼지털을 그을려 냄새를 맡는다.
(4) 남신이 여신을 부정하다고 하며 내쫓는다.
(5) 남신은 바람 위에 좌정하고 여신은 바람 아래 좌정하여 제각기 제향을 받는다.
본향신과 일뤳당신이 돼지고기 금기로 인한 갈등으로 별거를 하지만 둘은 어디까지나 보완적인 관계이다. 둘은 신앙권에서 가장 필수적인 존재들이다. 어느 하나가 배제되는 경우는 없다. 이러한 관계가 본풀이에서 부부 관계로 이어진 셈이다.
서귀본향당본풀이
(1) 바람운은 미모의 처녀에게 반하여 장가든다.
(2) 바람운은 첫날밤 신부가 자신이 바라던 처녀의 언니 고산국임을 안다.
(3) 바람운은 처제인 지산국을 데리고 도망한다.
(4) 고산국은 이 사실을 알고 추격하여 만났으나 결국 살 곳을 가르기로 한다.
(5) 서로 일체의 교류를 금하기로 한다.
(6) 김봉태의 안내를 받아 좌정한다.
본향신과 일뤳당신의 갈등이 끝내 마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서귀본향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람웃도와 고산국은 본래 본향신과 일뤳당신이었는데, 주민들의 갈등이 심해지자 제각기 본향신이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본풀이에서도 돼지고기 금기라는 갈등의 요인이 남녀의 애정 갈등으로 바뀌었다.
3. 당신의 관계를 통해본 마을의 관계
신앙권 안의 마을 혹은 동네도 우열이 있다. 신앙민을 흔히 단골이라고 하는데. 그 우열에 따라 상단골, 중단골, 하단골로 나뉜다. 단골은 성씨 집단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네나 마을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상단골은 어느 동네 어떤 성씨 집단이라고 하여 가문 중심으로 기준이 마련된다. 상단골 집안은 당굿을 할 때 우선권을 가진다. 제물을 먼저 좋은 곳에 차린다. 하단골은 제물을 나중에 남은 자리에 차린다. 당신앙에서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제물도 가장 나중에 차리고 제단의 주변에나 차릴 수 있다. 당굿을 할 때는 단골 집단끼리 모여 앉기 마련이다. 중심 마을 사람들은 당굿에 참여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나 주변 마을 사람들은 당굿에 참여하려면 많은 고생이 따른다.
마을의 독립성이 강화되면서 당신앙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전통적인 신앙권은 행정적인 마을 여럿을 아우르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행정적인 마을 단위로 독립성이 강해지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마을마다 본향신을 두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본향당을 가지고 있는 마을은 문제가 없으나 일뤳당만 두고 있는 마을은 문제가 따랐다. 이러한 경우 대개 두 가지 해결을 시도한다. 본향당을 따로 설립하거나 일뤳당을 본향당으로 삼기 시작하는 것이다.
본향당을 따로 설립할 때는 기존의 본향당을 가지 가르는 방식을 따른다. 이때 기존의 당신앙과 본풀이를 그대로 가지고 간다. 당신은 기존 당신의 동생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본향당을 나누는 일은 쉽지 않다. 메인심방을 따로 두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기본적으로 제일이 같기 때문에 기존 심방 집단과는 다른 심방을 구해야 한다.
본향당을 따로 두기 어려울 때는 일뤳당을 본향당으로 삼는다. 이에 따라 일뤳당신이던 당신은 돼지고기를 금기하는 신이 될 수 밖에 없다. 당신앙과 본풀이가 어긋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일뤳당을 본향당으로 삼는 경우 당굿을 규모 있게 벌이기는 어려운 사례가 많다.
마을마다 본향당을 둔다고 해서 당신앙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향당을 유지하려면 메인심방을 두고 당굿을 정기적으로 벌여야 한다. 마을 규모가 큰 경우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을 규모가 작은 경우 이렇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당신들의 관계는 흔히 가족관계로 설정된다. 부부로 설정되는 경우 한 신앙권에 공존한다. 부모자식으로 설정되는 경우 남신이면 한 신앙권에 공존하지 않고 여신이면 공존하기도 한다. 형제자매로 설정되는 경우는 예외 없이 한 신앙권에 공존하지 않는다. 가족관계라고 해서 구성원의 관계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부부의 경우 상보적인 관계, 부모자식·형제자매의 경우 배타적인 관계를 가진다.
당신들의 관계를 보면 마을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당신의 관계가 부모자식,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마을들은 역사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도 당이 명성만 취한 경우도 있다. 당신앙과 본풀이를 견주어 이러한 경우를 배제한다면, 당신과 마을의 관계를 추정하기 어렵지 않다.
4. 당신앙과 마을의 변화
신앙권은 본향당, 일뤳당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진다고 고쳐 말할 수 있다. 당신앙의 모습을 온전하게 갖춘 경우 어디에서나 본향당과 일뤳당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앙의 모습이 온전치 않은 경우에는 본향당과 일뤳당의 관계가 분명치 않다. 당신앙이 일찍 와해된 곳에서 이러한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서부지역, 제주성과 현청 소재지, 그리고 특별한 사정으로 토박이가 아닌 사람들이 어울려 살던 곳에서는 당신앙이 분명치 않다.
서부지역의 당은 축일당, 술일당 등으로 불린다. 간지를 기준으로 삼는 제일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그 제일에 따라 당명이 결정된다. 당과 당의 관계가 분명치 않다. 제일고 잦게 마련되어 있다. 본향당을 중심으로 하여 신앙권을 이루고 의례를 벌이는 전통이 일찍 가라졌음을 알 수 있다.
제주성과 현청 소재지에는 유력한 당이 있다고 해도 그 성격이 분명치 않다. 당이 여럿이지만 당들의 관계가 모호하다. 하나의 당에 당신을 여럿 함께 모시기도 한다. 신들의 관계 역시 분명치 않다. 4·3 당시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마을에는 당이 여럿이지만 전통적인 신앙권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강정식박사 약력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 졸업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한 대학원 석사/박사(문학박사)
제주대학교 강사
사단법인 제주학연구소장
저서 : 제주굿 이해의 길잡이
공저 : 동벽 정벽춘댁 시왕맞이, 제주도 조상신 본풀이 연구, 제주도 큰심방과 이중춘의 삶과 제주도 큰굿
※ 당일 배부된 특강 자료를 바탕으로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김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