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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종묘 답사
날짜: 2017.09.30. 토요일
참석자: 권예진, 길지현, 김민지, 박창우, 우미성, 이미혜, 정혜순, 조성래
올해 세계문화유산 테마의 마지막, 창덕궁과 종묘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이번에 궁을 가게 되면서 생각해보니 서울에 있는 여러 궁들을 제대로 다 다녀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창덕궁 역시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모님께서 어렸을 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셨던 것 같은데 그게 무슨 궁이었는지 기억에 없으니 처음이라고 생각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이런 무지 상태에서 우리 궁을 답사가면서 자연스레 여름 방학 때 다녀온 베르사유 궁전이 떠올랐고 그 둘을 비교하게 되었다. 베르사유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화려하고 참 넓다 였고, 그것을 보면서 우리 궁은 작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창덕궁 후원을 가게 되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궁은 전각에 한정되어 있어 원래의 궁을 다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르사유도 건물만 따지면 그렇게 큰 것이 아니지만 궁전에 딸린 정원이 넓어서 크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아이들이 창덕궁 후원을 돌면서 우리 궁에 대한 편견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창덕궁 후원을 보려면 인터넷 예약이나 현장 예매를 해야 한다. 한번에 100명이 한 가이드를 따라 다니며 감상하고 인터넷 예약 50명, 현장 예매 50명으로 나눠져 있다. 후원은 부용정을 시작으로 애련지, 연경당, 존덕정, 옥류천을 돌아보고 내려오는 코스이다.
★ 아이들도 가이드를 따라 다녀야 하는데 아이들이 듣기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구조임. 아이들이 후원을 다닐 때는 작은 미션 활동들이 필요함.
부용정의 부용은 연꽃을 의미한다. 연꽃은 혼탁한 연못에서 자라나와 꽃을 피우는데 그 모습이 지조있는 모습을 뜻하기 때문에 선비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규장각이 있던 이곳에 부용정을 지어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부용정을 보면 바닥에 다른 곳에 비해 높은 곳이 있는데 이곳은 왕이 앉아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의 연못은 네모나고 연못 안에 섬은 둥근 모양이다. 이는 천원지방 사상에 따른 것인데 네모는 땅을, 원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한다.
★ 부용지에 보면 잉어가 새겨져 있음. 그리고 규장각을 올라가는 어수문에는 용이 그려져 있음. 잉어가 열심히 하여 용문(어수문)을 넘으면 용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잉어와 용을 찾아보게 하는 것도 미션에 넣어보면 좋을 것 같음. 그리고 잉어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물과 잉어의 관계와 같다는 것도 같이 이야기 해주면 좋을 것 같음.
★ 원래 규장각의 위치가 이곳이었고 후에 궐내각사에 규장각이 옮겨져 왔다는 것도 같이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음. 미션지에 규장각 설명 넣어두면 좋을 것 같음.
지금 영화당 앞에는 담이 둘러져 있다. 그 담 너머는 창경궁이다. 원래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나눠져 있지 않았다. 창경궁이 대비마마의 거처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사용되면서 창덕궁과 경계를 지어야 해서 담을 쳤다고 한다. 담이 없었을 때 이 곳은 춘당대라는 넓은 마당이었다.
★ 춘당대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곳에서 장원급제를 한 이몽룡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음.
애련지의 정자 기둥 장식이 있는데 이 안에서 주변 풍경을 보면 액자틀 안에 자연이 그림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차경이라고 해서 바깥 경치를 실내로 빌려오는 식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애련지에서 지금은 공사중이라 보지 못했지만 단청을 칠하지 않은 의두합이라는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효명세자가 공부를 했다고 한다.
★ 애련지를 들어가면서 불로문이 있는데 지나가면 늙지 않는다고 함.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순조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지어준 집이라고 한다. 정사를 신경쓰지 말고 편히 쉬시라고 단청을 칠하지 않고 사대부의 집처럼 지었다고 한다. 연경당을 들어가는 문은 장락문이라고 한다. 달나라에 있는 궁궐의 이름이 장락궁인데, 연경당의 장락문은 그 장락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신선이 되어 편하게 지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 해주는 것이 장락문 앞에 괴석이 있는데 이 괴석의 모서리에 두꺼비들이 조각되어 있다. 두꺼비는 달의 정령을 의미한다. 그리고 옆에 물이 흐르도록 해놨는데 이는 은하수를 의미한다. 또 풍수지리적으로 배산임수를 고려하여 만들어 둔 것이라고 한다.
★ 장락궁 이야기
연경당에 들어가면 장량문과 수인문이 있는데 장량문은 남자들이 드나들던 문이고 수인문은 여자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연경당(사랑채)에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녹색지붕이 있다. 그곳은 서재로 사용하던 공간인데 햇빛이 강하게 들어와 책이 변색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판으로 만들어진 지붕을 덧댄 것이라고 한다. 안쪽에 도르래를 이용하여 차양을 할 문을 내릴 수 있도록 해 둔 것도 신기했다.
☆ 연경당을 보며 하신 조성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의 궁이나 건물들을 볼 때 안쪽을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데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이것을 보면서 외부의 웅장하고 멋있던 느낌이 초라한 느낌으로 변하게 되는 요인이 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의 궁을 가보면 그들이 쳤던 당구대까지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쉬움이 있다. 진품은 아니더라도 그 당시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물건들을 채워두고 그곳만 열어두는 방법이 더 나은 전시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존덕정은 육각으로 지어진 정자이다. 존덕정이 다른 정자에 비해서 공을 많이 들인 정자인 것이, 육으로 만드는 것도 사각의 정자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며 기둥도 육각의 기둥 바깥으로 3개의 기둥이 덧대어져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곳에 정조가 써둔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현판이 있다. 만천명월주인옹자서의 의미는 하나의 달이 만 개의 개울을 비추는 것처럼 한 사람의 제왕으로서 만백성에게 두루 은택(恩澤)을 베풀겠다는 정조의 뜻과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달로 비유했다는 것이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정조의 호 – 만천명월주인옹 설명
이 후에 옥류천을 들렀다가 후원을 돌며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를 지나친다. 이 향나무는 창덕궁이 지어지기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라고 한다. 후원을 돌며 우리의 정조가 진짜 살던 곳은 여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에 있으면서 정조가 마치 수원에 살았던 것만 같은 느낌이었는데 여기가 정조의 집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원을 돌아보고 나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창덕궁으로 들어왔다. 마침 명절과 겹쳐 창덕궁과 종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들락날락 할 수 있었다. 돈화문을 지나 커다란 회화나무 아래에서 조성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이 대장경을 달라고 요구했던 이야기, 신권이 강한 조선에서 원숭이에게 옷도 마음대로 입히지 못했던 세종대왕의 이야기 등을 들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이야기 하던 주례는 두 가지인데 우선 주나라의 예를 정리한 책을 뜻하거나 주자의 주자가례를 의미한다.
덕화문과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보면 틀어져 있다. 경복궁의 경우는 일직선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차이가 있다.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가 바로 이런 것에 있는데 이곳의 지세를 이용하여 우리나라의 방식으로 지어진 궁궐이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하나 더 경복궁과 비교해서 말씀해주셨는데 경복궁은 정도전이 설계하였기 때문에 신하의 입장에서 지어졌다. 전각들의 이름도 근정전(근면하게 정치를 하는 곳), 사정전(깊은 생각을 하여 정치를 해야한다)으로 지었는데 창덕궁에는 인정전(너그러운 마음으로 정치를 하겠다), 선정전(착한 마음으로 정치를 하겠다)으로 이름을 지었다. 경복궁의 경우는 신하가 왕에게 하는 말이라면 창덕궁은 왕이 이렇게 하겠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궁을 누가 설계하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궐내각사를 지나면 금천교가 있다. 금천교는 금천을 기준으로 왕의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이며 이 금천이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기 때문에 신하들도 금천을 넘으면서 마음 속 악한 것을 비우고 들어오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금천교에는 서수 네 마리가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리에 새겨져 있다. 서수의 표정을 보는 것도 금천교를 재미있게 보는 포인트이다.
★ 서수의 표정 따라하기
금천교를 지나면 진선문이 있는데 원래는 진선문의 2층 누각에 신문고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문고가 궁궐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진선문에 설치되어 있었다니, 전시행정이 요즘에만 있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보면 문살이 금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국으로 승격하면서 황제의 색을 사용하면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인정전을 천천히 보다 보면 배꽃문양이 지붕에 떡하니 박혀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일본의 여러 제후국 중 하나로 격하시키기 위해서 달아둔 것이라고 한다. 황제의 색과 배꽃 문양이 공존하는 인정전을 보며 당시 우리의 아픔을 다시한번 느껴보게 되었다. 인정전 앞뿐만 아니라 궁궐의 정전 앞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는데 이것은 국가적 행사를 하기 위해서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나무가 자객들의 은폐물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박석은 자객들이 땅을 파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어할 목적이었으며 박석의 거친면은 난반사를 일으켜 눈이 부시지 않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인정전 안에 있는 일월오봉도는 조선의 왕이 있던 곳에 항상 있던 그림인데 조선시대에만 있던 상징물로 다른 나라에서는 없었던 독특한 문화라고 한다.
인정전 옆에 푸르스름한 청색 기와로 지어진 선정전이 있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이 건물은 왕이 정사를 보던 곳이었는데 동궐도를 보면 청기와로 지어진 건물이 3채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선정전만 청기와로 복원되어 있다. 청자는 일반 기와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야하기 때문에 만들기 어려웠으며 영원불변을 나타내는 옥을 대체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청자를 중국에서 선호했던 이유가 우리의 청자색이 옥색과 더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조전은 큰 것을 이룬다라는 의미로 법통을 이을 세자를 생산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화재로 파손되어 경복궁의 교태전 건물을 떼어와 다시 지었다고 한다. 대조전의 건물을 보면 지붕위에 용마루가 없다. 마치 대머리 같은 느낌이 드는데 새로운 왕(용)이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에 용마루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창덕궁에서 나와 종묘로 향했다. 종묘 옆 탑골공원에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있는데 이 석탑은 3층 석탑과 7층 석탑이 합쳐진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3층과 7층의 양식이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하마비가 있다.
종묘에 들어서 안쪽을 향해 이어진 향신로가 눈에 띈다. 신주는 향신로를 따라 정전을 향해 가고 왕은 재궁에서 제사 준비를 했다. 재궁에 가기 전에 공민왕 신당이 있는데 이것은 조선이 고려를 계승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한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이 공양왕이었는데 공민왕을 모신 이유는 공양왕의 적통이 의심스러운 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정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왕과 세자가 대기하던 장소이다.
- 제사에 사용되는 음식물이 상하였는지 확인하던 장소
종묘의 정전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지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건축물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건물인 것 같다. 건물의 크기와 맞배지붕이 주는 경건함과 웅장함이 숙연한 느낌을 준다.
★ 정조와 세종이 정전에서 몇실인지 찾아보기
정조부터 황제로 추존되어 있는데 이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7대위까지 왕들을 추존했기 때문임.
정전 앞에 공신당과 칠사당이 있는데 공신당은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신주가 모셔진 곳이며 종묘에 모셔진 사람들을 불천위라고 하여 그 사람들의 자손들이 계속해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곳에 모신 사람들을 배향공신이라고 부른다. 칠사당은 사계절과 관계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 영녕전에 모셔진 왕들 확인하기
사도세자(장조) 확인
이번 답사를 하면서 우리 궁궐에 대한 나의 무지나 편견이 많이 깨진 것 같다. 그리고 종묘 정전에서 느낀 우리 건물의 아름다움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가 들었던 이 생각을 중심으로 이번 박물관 놀자의 프로그램을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사전답사를 마무리 한다.
첫댓글 창덕궁과 종묘 다녀오셨군요. 종묘 정전은 보면 볼수록 장엄한 것 같아요. 빈 뜰이 꽉 차 보이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 공민왕 사당이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로 전하지만 종묘에 전 왕조 왕의 사당이 있다는 자체가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