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 신동우 화백
신동우 화백 그림 비밀의 커튼 830324
신동우 화백
비밀의 커튼 830324
신동우 화백을 생각한다.
일찍 세상을 등지신 청소년의 우상
신동우 화백이 너무도 그립다.
1983년 가을, KBS TV <비밀의 커튼>(김동건 진행)에 출연했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에 나와 함께 신동우 화백이 출연하였다.
‘비밀의 커튼’이라는 프로는 진행자가 주제에 다라 여러 가지 관련 이야기를 한 후에
“오늘 바로 그 분을 모셨습니다..”
하고 커튼 뒤에 있던 비밀의 주인공이 나오도록 허는 프로였다. 물론 나는 그 날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커튼 뒤에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커튼을 열고 진행자석으로 형하게 되어 있었다.
진행자는 비밀의 주인공인 나와 관련해서, 우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알 만한 회사의 상호도 지었고, 땅이름을 연구하는 등 활발한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문론, 내 이름은 밝히지 않은 상태로 힌트를 주는 것이다.
“누굴까요?”
방청객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배우리 선생님이십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메스컴을 통해서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의 주인공인 나는 진행자인 김동건 아나운서와 한자리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한글이름, 따잉름에 관한 것이었다.
한 시간쯤 대담을 하고 방송이 끝나 일어서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었다. 얼른 알아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배우리 선생님, 바로 저입니다. 저 신동우입니다.
신동우 선생? 아, 만화가, 홍길동 그림을 많이 그린...
신 화백은 그러더니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내놓는 것이었다. 펼쳐보았다.
(와아~ 이게 웬일?)
나를 그린 그림이었다. 이름을 짓는 모습을 만화풍으로 그린 것이다.
집에서 그려 가지고 나온 줄 알았더니 우리가 방송하는 동안,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장면을 살짝살짝 방송에 띄우고 있었던 것이다.
두루말이 화선지에는 ‘배우리 선생님께’라는 글과 함께 날짜와 사인이 들어 있었다. 고마운 선물이었다. (지금도 이 그림을 보관하고 있다.)
신 화백과는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내가 아이템플 편집장으로 있을 때, <주간소년>이란 청소년 신문을 발행했는데, 신 화백은 내 부탁으로 여기에 만화를 연재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편집실에 들러 인사를 나누곤 해서 잘 아는 사이였다.
신 화백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25년이 됐다.
당시 방송 스튜디오에서 우리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조언을 해 주던 신 화백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신동우 화백, 너무도 그립다. 웃으실 때 눈가 주룸이 특별했던 얼굴이 떠오른다. 벽애 걸안 그림을 본다. 신 화백이 어직도 그 그림 속에 숨어 나를 내려다 보는 것 같다.
#방송3 #배우리 #인물3 #과거3 #_신동우
http://cafe.daum.net/name0900/eJ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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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화백>
출생: 1936년 10월 11일 함경북도 회령
사망: 1994년 11월 17일 (59세) 서울 영등포 (자택)
성별: 남성
데뷔: 1953년 '땃돌이의 모험'
수상: 1991 사단법인 색동회 개인상 외 1건
경력: 서울 미대 출신 화가모임 외 2건
1947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뒤 용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개척자로 유명한 신동헌(申東憲)이 형이다. 6·25전쟁으로 피란을 갔던 부산에서 17세 때인 1953년 생계를 위해 〈땃돌이의 모험〉을 그리면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1955년 4월 24일부터 6월 5일까지 『연합신문』에 어린이 만화 「우주 유격대」를 연재한 후 이어서 「코끼리 둥기군」(세계일보 : 1960.2.∼12.24), 「날쌘돌이」(민국일보 : 1961.1.7∼12.30), 「쾌걸 임꺽정」(신아일보 : 1965.5.19∼1966.5.5) 등의 만화를 그렸다.
1960년대 후반에 4년간 <소년조선일보>에 <풍운아 홍길동>을 연재했다.
1980년에는 만화로 그린 〈한국의 역사〉로 한국만화가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다닐 때는 대학신문에 4컷 만화 〈부엉이〉를 연재하여 그를 모르는 학생이 없을 만큼 유명하였다.
<풍운아 홍길동>은 1965년 6월 25일부터 <소년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해 1969년까지 1200회를 돌파하여 신문연재 아동만화로는 최장수 기록을 남겼고, 1970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꼽은 세계인기만화10선에 선정되었다. 또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형 신동헌이 제작한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을 그려 흥행에 성공하기도했다.
신동헌·신동우 형제는 같은 해 8월에는 「호피와 차돌바위」라는 만화영화를 제작하여 우리나라의 만화영화를 개척했다. 신동우는 단행본으로 『차돌이』·『날쌘돌이』·『삼국지』·『수호지』·『천재학습』(전 24권), 『한국의 역사』(전 10권) 등의 만화를 발표한 뒤에 70년대 중반부터는 만화보다는 풍속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만년에는 〈중국 풍물 그림전〉을 갖기도 했다.
1980년 만화로 꾸민 〈한국의 역사〉로 한국만화가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 〈돌아온 영웅 홍길동〉을 준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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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우 화백의 그림 보기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sm=tab_jum&query=%EC%8B%A0%EB%8F%99%EC%9A%B0+%ED%99%94%EB%B0%B1
1955년 4월 24일부터 6월 5일까지 『연합신문』에 어린이 만화 「우주 유격대」를 연재한 후 이어서 「코끼리 둥기군」(세계일보 : 1960.2.∼12.24), 「날쌘돌이」(민국일보 : 1961.1.7∼12.30), 「쾌걸 임꺽정」(신아일보 : 1965.5.19∼1966.5.5) 등의 만화를 그렸다.
1960년대 후반에 4년간 <소년조선일보>에 <풍운아 홍길동>을 연재했다.
1980년에는 만화로 그린 〈한국의 역사〉로 한국만화가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를 다닐 때는 대학신문에 4컷 만화 〈부엉이〉를 연재하여 그를 모르는 학생이 없을 만큼 유명하였다. 졸업 후 1955년 4월 24일부터 6월 5일까지 〈연합신문〉에 어린이 만화 〈우주 유격대〉를 연재한 후, 이어서 〈세계일보〉에 〈코끼리 둥기군〉, 〈민국일보〉에 〈날쌘돌이〉, 〈신아일보〉에 〈쾌걸 임꺽정〉 등을 연재하였다.
<풍운아 홍길동>은 1965년 6월 25일부터 <소년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해 1969년까지 1200회를 돌파하여 신문연재 아동만화로는 최장수 기록을 남겼고, 1970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꼽은 세계인기만화10선에 선정되었다. 또한 이를 대본으로 하여 형 신동헌이 제작한 한국 최초의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이 흥행에 성공하기도했다.
신동헌·신동우 형제는 같은 해 8월에는 「호피와 차돌바위」라는 만화영화를 제작하여 우리나라의 만화영화를 개척했다. 신동우는 단행본으로 『차돌이』·『날쌘돌이』·『삼국지』·『수호지』·『천재학습』(전 24권), 『한국의 역사』(전 10권) 등의 만화를 발표한 뒤에 70년대 중반부터는 만화보다는 풍속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만년에는 〈중국 풍물 그림전〉을 갖는 등 주로 풍속화를 그렸다.
1994년, 〈돌아온 영웅 홍길동〉을 준비하던 중 사망하였다.
1980년 만화로 꾸민 〈한국의 역사〉로 한국만화가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신동우 화백을 알게 된 것은 1983년 가을 KBS TV <비밀의 커튼>(김동건 진행) 생방송실에서의 만남 후부터였다.
당시 비밀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비밀의 주인인 나와 김동건 아나운서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신 화백은 대담의 내용인 '이름'을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자, 신 화백은 자신이 그림 몇 점 중에서 한 장을 내게 선물했는데, 나는 이 그림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까지 보물처럼 보관해 오고 있다.
신 화백이 세상을 떠난지, 벌써 23년이 됐다.
지금도 당시 방송 스튜디오에서 우리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조언을 해 주던 신 화백의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너무도 그립다.
신동우 화백의 그림 보기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sm=tab_jum&query=%EC%8B%A0%EB%8F%99%EC%9A%B0+%ED%99%94%EB%B0%B1
첫댓글 저도 신동우 화백님 기억을 하고 있읍니다.
온화한 미소와 서글서글한 눈매, 조금 빠른 듯 구수한 입담 까지도요.
돌아가신지가 이렇게나 오래 되신줄은 미처 몰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