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해서 용감했다. 만신창이가 된
한남정맥 7간 (목감사거리~소사고교 부근)
1. 일자: 2018. 7. 14 (토)
2. 산: 운흥산(204m), 양지산(150m)
3. 행로와 시간
[목감사거리(05:40)
~ 까치고개(05:54) ~ 운흥산(06:33) ~ 고속도로
밑(06:53) ~ (길 없음) ~ 금이사거리(07:36) ~ 군부대(07:45) ~ (길 없음/유격장/고속도로 갓길/길
없음/군부대/봉재산) ~ 이정표(08:46) ~ 정자(08:52) ~ (정비된 등로) ~ 양지산(09:11) ~ 제2 경인고속도로
밑(09:40) ~ (비룡사/도로/길 없음) ~ 소사고 부근(10:56)
/ 15.24km)]
한 달 만에 정맥 길에 다시 나선다. 잠이 깨자마자 오랫동안 쓰지 않던 작은 카메라 하나 들고, 택시를 타고 목감사거리에
도착한다. 어제 맞춰 놓았던 알람이 울린다. 무척 이른 행보다. 목감초교 뒤편으로 난 좁은 등로에 의지해 산에 들어선다. 미리 받아
둔 트렉이 큰 역할을 한다. 외곽순환고속도로에 새로 생긴 휴개소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선다. 좋은사람들 정맥꾼들은 휴게소를 이용해 고속도로를 건너 갔으나, 트렉은
반대 방향이 등로라 말한다. 고민하다 트렉을 따른다. 까치고개로
내려서 주택가를 한참 돌아 굴다리를 지나 운흥산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한다. 휴게소 길이 지름길이었다. 포기한 휴게소에서의 따듯한 아침밥 생각에 허탈했다.
굴다리를 통과해 희미한
등로를 따라 운흥산에 오른다. 물왕저수지 풍광을 기대했으나 숲에 가려 만족한 풍경은 보지 못했다. 정상 인근에서 잠시 정비된 길과 만났으나, 이내 흐릿해진다. 또 고속도로 밑 굴다리를 건넌다. 길 찾기가 여의치 않다. 트렉에 의존해 산으로 들어선다. 길이 끊긴다. 물기가 덜 마른 숲을 이른 아침에 걷는 건 참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 온다. 온
몸이 금새 젖는다. 맨 살이 드러난 무릎 밑은 무방비 상태로 풀에 베인다. 손사래로 제거하면 몇 미터 못가 또 나타나는 거미줄, 총체적 난국이다. 앞서 간 이의 정자 사진만으로 판단하여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을거라 지레짐작한 건 완전 착각이었다. 험로를 지나 어수선한 도로와 만난다. 숲길을 걷기가 두러워 도로
우회로를 택해 걷는다. 한남정맥, 만만치 않다. ㅋㅋ
도로에서도 한참을 헤매다
군부대 옆 풀숲을 헤치고 겨우 정맥길을 찾았다. 군부대 유격장이 나타나더니 길은 금새 끊긴다. 표지가마저 없다. 낭패다. 풀에
베이고, 거미줄에 엉키고, 가시에 찔리며, 희미한 등로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질주한 차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음침한 배수로를 지나 트렉을 따라 풀숲을 가로질러 오르자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나타난다. 자주 차로 달리는 이곳을 내 발로 걸어서 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찌어찌하여
펜스를 넘어 언덕에 올라선다. 펜스를 넘을 때 본 표지기들에 마음에 짠해 진다. 그 누가 이들을 말릴 수 있단 말이다. 이건 누군가가 강요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걷는 행위는 원초적 본능이다.
여전히 길 없는 길에서
군부대 펜스에 의존해 전진한다. 8:46 길을 나선지 2시간
만에 처음으로 이정표와 마주한다. 하도 험로를 오래 걸어서인지 인공의 흔적에 흠짓 놀란다. 완연히 편해진 등로를 따라 오르자 커다란 정자가 나타난다. 무척
공들여 만든 것이나 정작 위에 올라도 풍경은 없다. 그래도 정비된 등산로를 걷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며 곧 모습을 드러낼 양지산으로 향한다. 아침 볕을 받은 숲의 정취에 반한다. 역시 정자가 있는 양지산을 지나 이 길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걷는다. 칡꽃과
이름모를 꽃을 카메라에 담는 여유도 부려본다. 이른 아침의 힘겨움이 기억에서 멀어져 갈 무렵 또 다시
고속도로 밑을 지난다. 안현 JC 인근이다. 고속도로 소음 방지벽에 능소화가 만개해 있다. 그 뒤로 푸른 하늘이
열려 있다. 산행 중 처음으로‘멋지다’란 말이 떠올랐다.
산행 시작 4시간이 지났다. 트렉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다 한다. 작은 고개에 올라서니 부천 외곽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에
내려선다. 갓길에 길게 주차된 버스 뒤편으로 난 희미한 등로를 찾는다.
이 길을 먼저 갔고 내게 트렉을 제공해 준 이의 길 찾기 능력에 감탄한다. 트렉 내내 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고수임에 틀립없다. 수 많은 표지기들이 내가
정맥길을 걷고 있음을 알려준다.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도 잠시, 왼편으로 조잡한 펜스가 보이더니 길이 끊긴다. 힘에
겹다. 이곳만 빠져나가면 바로 남은 길을 포기하고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독하게 집중하여 길의 맥을 찾는다. 어째서인지‘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란 말이 되내어진다. 약 30분 후, 새로
지은 커다란 아파트 앞에 서 있는 날 발견한다. 소사고등학교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어찌 여기까지 왔느냐 물으면,‘나도 몰라요’라 답할 것이다. 카카오로 택시를 부르고는 편의점에서 이온 음료를
사 벌컥벌컥 들이킨다. 편의점 종업원이 내 몰골을 오래 동안 바라본다.
거지도 이런 상거지는 없을 게다.
다행인 건 무릎은 아프지
않다. 아니 아픔을 느낄 틈이 없었다.
존재하고 그 존재함을 느낌에
감사한다.










< 에필로그 >
15km 남짓을 걸으며 산에서는 단 한 사람과도 만나지 않았다. 정맥 길이 이리 많이 끊겼다는 걸 알았다면, 애당초 길을 나서지
않았을 게다. 후회 막급한 산행이었다. 풀이 마르기 전 시간에
시작해 온 몸이 젓었고, 반바지에 무릎 이하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무수히
많이 거미줄에 엉켰고, 차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 갓길을 위험천마하게 걸었고, 군부대 유격장에서 나도 유격훈련을 했고, 무엇보다 길이 끊긴 곳이
잦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몰라서
가능했던 산행이었다. 무식이 용감함을 낳았다. 무사히 길에
돌아옴에 감사한다.
고속도로 밑 터널을 몇
번이나 지났고, 끊긴 정맥에서 길을 찾느라 얼마나 많이 뒤돌아 나왔는지 셀 수도 없다. 그래도, 길을 잃고 헤매일 때마다 나타나는 표지기를 보며, 나만이 이 험로로 가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앞선 간 산꾼들에게서 짙은 동지애를 느꼈다.
집에 왔다. 샤워기에서 찬 물이 쏟아진다. 천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