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5
아침 식사로 떡국을 끓여 먹고 둘째 날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꽃망울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벚꽃나무 길을 한참을 달리니 호수도 나오고 길이 정말 예뻤다. [개암사]에 들려 친구들은 그 사찰에서 스님이 직접 만드신다는 죽염을 사고, 난 전에부터 갖고 싶었었던 소리가 곱게 나는 부엉이 풍경을 샀다.
[내소사]는 두 번째 가보는데 전나무 숲길을 걷기 전 입구에 700년이 된다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두 그루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 당산재를 지낸다는 안내판이 있고, 나무에는 오색 천들이 휘감겨 있다. 왜 전에 왔을 때, 못 보았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날 뿐인지......
유홍준님의 답사기에서 대웅전의 여러 가지 꽃모양을 조각한 문살이 아름답고 정교하다는 극찬이 생각나서 친구들에게 잠시 가이드가 되어 설명하며 눈여겨보았다. 한 때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한 작가님의 말에 공감이 가서 여행서를 먼저 읽고 나서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무얼 기억하고 한다는 게 다 버겁다. 애써 알려하지 않고, 애써 기억하려 하지도 않는다. 유홍준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나오는 대로 즐겨 읽고 그 길을 따라 몇 곳을 다녔다. 변산반도 이곳도 답사기에서 반해 남편과 왔었다.
점심은 격포항 횟집에서 회를 먹었는데, 메인요리인 생선회가 나오기 전에 앞서 나오는 쯔끼다시가 굉장하다. 조개구이 집보다 더 많은 종류의 조개 요리가 끊임없이 나와서 놀랬다. 구이, 찜, 날것으로 열 가지도 훨씬 넘는 조개 종류에 전복, 게, 게블, 해삼, 낙지. 쭈꾸미등 수도 없는 해산물이 줄지어 나오는데 입이 쩍 벌어졌다. 다른 지역 해변의 횟집하고 상에 계속 나오는 그릇 수가 비교불가였다. 푸짐하게 마음껏 맛있게 먹어서 두고두고 기억나지 싶다.
만조 때는 길이 없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채석강에 마침 물이 나가서 걸었다.
오랜 세월과 바다가 합작하여 만든 해안 절벽과 널찍한 바위들의 위용이 어마어마했지만 바람 없는 따사로운 봄볕이 포근하게 감싸주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친구들은 바위에 붙어있는 고동을 따며 엎드려 기어오고, 난 아픈 허리를 조심하며 걷다 쉬고를 반복하였다. 바위에 앉아 쉬며 눈앞의 기기묘묘한 절경을 감상하곤 하였다. 바위와 절벽의 다채롭고 기이한 형상들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며 그냥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였다. 격포 해수욕장으로 나와서 언덕 위에 있는 [닭이봉]이라는 카페에서 국화차 한 잔씩 마시며 채석강을 마감했다.
전 날 보지 못한 일몰을 보기 위해 새만금 방조제로 갔다.
다행히 구름도 해무도 조금만 있다. 낙조를 제대로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34Km에 이르는 세계 최장이라는 방조제는 내일 군산으로 가며 건너기로 하고, 넘어가는 해를 보기 위해서 가다가 방조제에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의 이름 각 한자와 새롭게 생겨나는 땅을 옥토로 일구겠다는 의미로 이름 부친 새만금 방조제는 경이로웠다. 만든 과정이나 배경을 모르는 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규모가 놀라울 뿐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바다를 막아 팔십 오리 길의 둑을 만들고 여의도 땅의 140배가 되는 땅을 만들었다니 감탄만 하며 바라보았다.
전망대 한 자리에서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길어서 다시 해안도로로 변산을 향해 차로 천천히 움직였다. 서쪽 하늘에서 붉은 해가 서서히 커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글거리며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기 시작하였다. 중천에 있을 때는 그리 빛나지 않았는데 마지막 정열을 태우는가! 눈이 부셔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다가 갈라진다는 [하섬]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각자 일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무언중에 떠들며 볼 수는 없을 것 같아 각자의 자리를 찾고, 두 손을 마주잡고 경건한 모습으로 석양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이글거리던 황금빛 해는 천천히 빛이 옅어지며 연한 검붉은 색으로 바래지고, 크기도 조금씩 작아지며 바다로 떨어졌다. 부산 우리 집에서도 일몰은 흔히 보아왔다. 하지만 해가 한창 붉게 빛나고 커져서 이글거릴 때에 서산마루 뒤로 뚝 사라졌다. 서해안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완연히 달랐다. 천천히 작아지며, 영롱하던 빛도 거무칙칙하게 바래지며 스러져갔다. 작은 원으로 서서히 고요하게 바다로 떨어졌다. 그리고 사방이 어두워지고 적막해졌다. 무언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눈물이 나오려 하였다.
한참을 해 떨어진 빈 하늘을, 붉은 노을이 번진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다 차가 있는 자리로 왔다.
나보다 더 바닷가로 내려가서 보고 오던 친구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오빠 돌아가실 때의 모습하고 똑같아. 오빠도 지금 해 지는 마냥 천천히 사그라지다가 순간에 툭 숨을 놓으셨어. 해지는 모습이 사람 죽는 모습하고 똑 같다니 너무 놀라워. 그리고 아름답다고 하던 낙조가 슬프고 쓸쓸하네. 자꾸 눈물이 나려하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다 거기서 거긴가 보다.
“나도 그러네. 그냥 슬프고 뭉클하네. 사람 죽는 것도 저렇게 사그라지고 쪼그라들어서 맥없이 가는구나 싶고...... ”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해가 마지막 빛을 불태우고 바래지며 스러지는 그런 지점에 서 있는 것 같다. 뚝 떨어지기 직전의 빛을 잃고 작아지던 그 시간대에 우리는 와 있다. 서글프기도 하지만 잠간인 남은여생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진다.
죽음을 등에 지고 사는 나이라 하지만 늘 잊고 산다.
모두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차를 타고 숙소까지 묵묵히 왔다.
그러나 숙소에 들어서자 저녁 식사 준비로 고동을 박박 문질러 씻어대며 가라앉았던 기분도 날려 보내고, 다시 철없는 할매들 자리로 돌아와서 떠들썩하게 늦은 식사를 하였다.
첫댓글 카페지기님께
저 여기 회원방이 편합니다. 따로 방 만들어주시는거 사양하겠습니다. 같이 읽고 보고 떠들어야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천히 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요. 화이팅!!!
지따님께 방을 따로 만들어도 '모두공개'로 하여 글을 올리시면 누구나 보실 수 있습니다. 편리하신대로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