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역사를 지닌 유럽 최대의 볼더링 지역 퐁텐블로
프랑스 사람들은 일부러 영어를 안 쓰고 모국어만 쓴다는 편견이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실제 영어를 잘할 줄 모르기 때문에 안 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모든 학생이 영어를 배우지만 우리나라 사람처럼 말을 쉽게 하지 못하는 정도이고, 넘쳐흐르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신감으로 인해 굳이 노력을 안 하는 모습이 그러한 편견을 만들지 않았을까.
볼더링 가이드북에서도 그런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퐁텐블로(Fontainebleau) 같은 세계적인 등반지라면 알기 쉽게 정리된 볼더링 가이드북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비비 꼬아 놓은 철학책 같은 불친절한 가이드북 종류만 열 권이나 있을 뿐이었다.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인터넷 검색을 한참 해본 후에 서로 다른 가이드북 세 권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가이드북을 아니, 퐁텐블로 볼더링을 이해하는 데 일주일은 족히 걸렸다. 책도 책이지만 퐁텐블로 숲이 너무 광범위한 탓이다. 어찌 보면 이 넓은 구역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살펴보니 이곳에 자주 오는 볼더러들도 가이드북 두세 권씩은 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내가 경험해 본 가이드 북 중에 최악이다.
두 번째 산 가이드북은 <7+8>(7A 이상의 문제만 표시한 가이드북)이었다. 같이 온 용택이와 나는 7A 난이도 문제는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구입했지만, 이곳 바위에 적응이 덜 된 상태에서는 무리였다. 세계적인 등반지를 많이 돌아다녀 봤지만 이곳은 또 한 번 독특하다. 볼더는 아주 고운 사포 같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 모양은 매끈한 거북이 등껍질처럼 손가락에 걸리지 않고 밋밋해서 잡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게 갑자기 손이 미끄러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손이 바위에서 “툭”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악” 소리를 내며 사포 같은 표면을 갈면서 내려온다. 여러 번 반복하면 모든 손가락 끝에 조그만 구멍이 나고 핏망울이 ‘퐁 퐁 퐁’ 맺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손끝에서 피가 난다고 그만 둘 수도, 문제가 안 풀린다고 상심할 틈도 없다. 재밌는 동작의 볼더 문제가 눈앞에 널려 있으니까.
넘치는 의욕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볼더링을 할 수 없을 만큼 온 몸이 너덜너덜해졌다면 당장이라도 요정이 튀어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퐁텐블로 숲속을 걸으면 된다. 혹여 비가 와서 볼더가 다 젖었다면 프랑스에서 제일 큰 퐁텐블로 성 안을 왕처럼 거닐다가 맛있는 프랑스 와인을 거나하게 마시고 푹 자고 나면 바위는 다 마를 것이다.
“이 문제가 퐁텐블로 역사상 첫 6A야. 한 번 해봐.”
같이 등반 중인 세바스찬이 ‘Marie-Rose’라고 이름 붙은 문제를 추천한다.
“마리 로즈? 여자 이름 같은데, 무슨 뜻이야?”
“초등했던 사람의 여자 친구 이름이래. 이 문제 때문에 그 다음 초등된 6A는 죄다 자기 여자 친구 이름을 갖다 붙였대.”
“같은 남자가 여자 바뀔 때마다 하나씩 초등한 거 아니야?”
“오~ 그럴지도! 부럽다!”
프랑스의 해외 고산 등반에 퐁텐블로 출신 여럿 참가
부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시도해 보자. 첫 시도에 떨어져 버렸다. 생각보다 뛰어난 밸런스 감각과 손 끝 힘이 필요했다. 볼더링에서 6A(5.11급) 난이도는 지금도 쉽지 않은데 70여 년 전인 1946년에 초등됐다니 놀랍다. 이곳은, 단순히 파리 남부의 한 지역이 아니라 볼더링 역사의 숲이었다. ‘Font-Grade(퐁트 그레이드)’라 불리는 유럽 지역 볼더링 그레이드는 스포츠 클라이밍의 프랑스 난이도(French-grade)와 구별하기 위해 숫자 뒤의 알파벳을 대문자로 표기한다.
퐁텐블로 볼더링은 1800년 후반부터 프랑스산악회(Club Apine Francais : CAF) 파리지부의 공식 훈련 장소였다. 당시에는 높은 산을 가기 위해서 볼더링을 했고, 1936년에는 카라코룸(Karakoram) 원정대에 블로앙(Bleauan : boulderer of Bleau, 퐁텐블로의 볼더러를 일컫는 단어)이 다수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54년에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와 남벽을 초등한 것도 블로앙들이었다. 그들의 등반력과 활동 영역을 짐작케 하는 기록이다.
그렇게 시작된 퐁텐블로의 현재는, 높은 산을 위함이 아니라 볼더링 그 자체로서 역사가 진행 중이다. 세계에서 최고(혹은 최악)의 난이도를 가진 문제가 이곳에 있고, 수만 개의 볼더 문제가 개척되어 있지만 여전히 초크 자국이 묻기를 기다리는 볼더가 사방천지에 널려 있다. 이런 숲을 가지고 있는 이네들이 얄미울 뿐이다.
200년쯤 지나면 볼더링 즐기는 70대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역사 속에서 얼마나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일까. “하~” 하고 이마를 탁 치게 만든 것이 있었으니, 어린이용 작은 볼더였다. 성인이라면 한두 발자국 뒤에서 도움닫기를 한다면 한 번에 오를 만한 바위였지만 작은 아이들 키를 생각해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볼더였다.
이것뿐 아니라, 초창기의 개척자들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볼더링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였다. 하얀색부터 검은색까지 단계별로 난이도를 구별해서 표시해 두었고, 같은 색을 가진 문제를 연결해서 ‘circuit’을 만들었다. 난이도를 살펴볼 필요 없이 나에게 맞는 색의 문제를 따라다니며 풀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많은 나라의 실내 인공암장에서 색깔별로 루트세팅을 해 둔 것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 분명했다.
우리나라에도 인수봉, 선인봉, 울산바위 같은 큰 바위를 오르기 위한 연습 대상으로 볼더링을 했던 역사가 있다. 볼더링보다는 ‘연습 바위’라 불렸다. 지금도 볼더링을 하고 있노라면 등산객들이 “바위 연습하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볼더링 구역이 개척되었고, 페스티벌도 매년 열리고 있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인 것이다. 200년 볼더링 역사의 퐁텐블로 숲 속에서 백발의 노부부가 크래쉬 패드를 깔고 오름 짓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네도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들어 숙성되면, 나지막한 볼더에서 맨틀링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상상이 잘 안 되지만….
퐁텐블로 팁
퐁텐블로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작은 도시이며,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퐁텐블로 숲에 수많은 볼더가 산재해 있다.
볼더는 고운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볼더링 스타일은 큰 힘보다는 수준 높은 테크닉과 미묘한 밸런스를 요구한다.
등반 시기는 1년 내내 가능하며, 봄가을이 최적기이다. 겨울은 기온이 낮은 대신에 홀드의 마찰력이 좋아지므로 어려운 볼더를 하기 좋다. 여름은 기온이 높고 약간 습한 편이지만, 한낮을 제외하고 볼더링이 가능하다.
아래 인터넷 사이트에서 퐁텐블로 볼더링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http://bleau.info/
교통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 및 오를리 공항에서 렌터카를 이용해 퐁텐블로로 바로 이동하거나 파리 리옹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아봉(Avon, 30분마다 운행, 약 50분 소요)역까지 이동한 후 렌터카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렌터카 없이 대중교통으로 볼더링 구역에 갈 수 있지만, 제약이 많으므로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숙식 가장 좋은 방법은 지트(Gite : 집)를 렌트하는 것이다. 취사 및 세탁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으며 가격이 저렴하다. 1주일 이상 렌트할 경우, 3명이 이용할 수 있는 지트는 1일 30유로 정도 한다. 많은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지트도 있다. 아래 사이트에서 검색 및 예약이 가능하다. http://www.gites-de-france.com/?, http://www.tripadvisor.fr/
숲 속에서의 캠핑은 금지되어 있으며, 숲 가까이 두 개의 공식 캠핑장이 존재한다.
La Musardiere +33(0)164989191), Les Pres at Grez +33(0)164457275
퐁텐블로 도시 안에 두 개의 아웃도어 장비 점에서 볼더링 및 클라이밍 장비를 구입할 수 있으며, 도시 안팎에 대형 쇼핑몰과 식품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