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임씨 도시조 임팔급의 동상과 농성(農城) 평택 임씨의 시조 충절공 임팔급(林八及)공이 당나라에서 넘어와 처음으로 자리 잡았다는 팽성읍 농성 
전체 모습은 타원형으로 둘레는 약 300m이고 높이는 4m 내·외이며, 동쪽과 서쪽에 문터가 있다. 무너진 곳의 단면을 보면 붉은색의 고운 찰흙을 층층이 다져 쌓은 흔적이 있다.
성을 쌓은 이유는 삼국시대에 도적 때문에 쌓았다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신라 말기 중국에서 건너온 평택임씨의 시조인 임팔 급이 축조하여 생활 근거지로 삼았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서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과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전한다. 성 바로 옆에는 겨울철에는 따뜻한 물이, 여름철에는 찬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성은 평지에 만든 소규모의 성으로 이런 흙으로 쌓은 성곽들은 대부분 초기 국가의 형성단계에서 나타나는 형태인데, 이 지역의 토착 세력 집단들이 그들의 근거지로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의 축성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삼국시대(三國時代)에 도적 때문에 쌓았다는 설, 그리고 신라말기 중국에서 건너온 평택 임(林)씨 시조인 임팔급(林八及)이 축조하여 생활 근거지로 삼았다는 설, 고려(高麗)때 해안(海岸)으로 침입하는 왜구(倭寇) 방어를 위하여, 또는 조선(朝鮮) 중기(中期) 임진왜란(壬辰倭亂 : 1592)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성이 위치한 지세로 볼 때 이런 소규모의 토축(土築) 성곽들은 대부분 초기(初期) 국가(國家)의 형성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되어, 이미 이 지역에 토착 세력 집단들이 그들의 근거지로 축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타圓形)으로 동·서쪽에 문터가 있고 높이는 4m 안팎이며 둘레는 약 300m인데 판축(版築)의 방법으로 축조 되었다.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우뚝 솟은 충절공 임팔급(林八及) 공의 동상이 있다. 
평택임씨 시조 임팔급(林八及) 동상 당나라의 황족이었으나 조카인 황제의 폭정에 항거, 망명해 신라로 들어왔다. 학식이 높고 백성을 근심함이 지극했던 공은 안정리 일원에 농성을 쌓고 자손을 번창케해 팽성임씨(彭城林氏)의 시조가 되었다. (서기 1300년경의 팽성은 지금의 평택) (2004년3,18일 시조 충절공 동상세움)
우리나라 10대 성씨인 林 씨는 시조 임 팔급 후손임을 임씨 중앙회(회장 임 방현)에서 밝혀 내고 시조 동상(추진위원장 임 완수)을 경기도 평택 농성에 세웠다. 충절공 임팔급은 중국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거쳐 예부상서로 지내다가 간신배의 모함을 받아 중국 복건성에서 8학사와 함께 신라때 팽성(평택)에 망명하여 농성(도지정 기념물 74호)을 쌓고 정착 하였다. 
임씨 종친회에서 세운 동상, 건립에 관한 기록 살펴보는 가족들 
공원이 조성 되어 있어 쉼터 정자도 있다. 
성 내부 모습 |
첫댓글 우리 林氏 유적지를 게재 해 주셔 고맙습니다 다만 林八及 公은 平澤 林氏 都始祖 님이 아니라 全國 林氏 24貫 모두의 都始祖 임을 알립니다
전국 임씨 중앙회 족보연구분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