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시간을 미리 알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기일을 정하고 깨닫기 위함이다.
(非為預知時至,只為剋期取證)
한 이틀 전, 동학(同學) 한분께서 저에게 소식을 알려주셨습니다. 일부 지방에서, 정공법사께서는 “가는 시간을 미리 아는(預知時至)” 신통력이 있다는 풍문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것은 거짓이고 진실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제가 왕생에 대해 조금 이야기한 것을 그분들이 잘못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은 전해질수록 더욱 와전되는 법입니다.
“총지와 백 천 가지 삼매를 구족하시네(具足總持百千三昧)”를 설명하며 우리들은 이 말을 똑똑하게 밝혔습니다. 지금도 이 세계는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TV를 보기 때문에 아는 것이 저보다 많습니다. 여러분은 신문을 매일매일 보지만, 저는 신문을 보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몇 가지 소식은 모두 몇몇 동학들이 알려주고, 대다수는 인터넷상에 다운로드한 중요한 신문을 통해 저에게 보여줍니다. 저는 비로소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지 알게 됩니다. 남이 저에게 (재난소식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저는 매일 태평한 날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에게 이 세계에 대해 묻습니다. 매우 좋습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매일 천하태평입니다. 우환도 번뇌도 없습니다. 저에게 이런 사정을 알려주시면, 진실로 바르게 수행하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입니다.
불법 안에서 무엇보다 먼저 변견邊見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른바 변견은 바로 대립입니다. 화복禍福은 양변(二邊)입니다. 불법에서 양변은 평등하고 대립이 없습니다. 중생과 부처는 평등하므로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생과 사는 둘이 아니고, 범부와 성인은 둘이 아니며, 길흉화복은 둘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이고 거짓이 아닙니다. 그래서 화인가 복인가는 외부 경계에 있지 않고, 자기의 일념 안에 있습니다. 모두 자기 일념 안에 있습니다. 일념을 깨달으면 복福이고, 일념을 미혹하면 바로 흉凶입니다. 길흉화복이 깨달음과 미혹 위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부처님 공부는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재난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고도의 경각심을 일으켜 참된 부처님 공부를 분별해 내고, 온갖 인연을 내려놓으며, 오롯이 정토를 닦아야 합니다. 재난은 함께 짓는 공업共業에 속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업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합니다. 저는 놀라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명백히 깨어있다면 극락세계에 이르는 것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저에게 “2012년” 이란 (인류 멸망을 소재로 한 재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저는 그냥 지나칩니다. 저도 이전에 몇몇 동학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염불왕생정토” 공부를 붙잡고, 반드시 2012년에 드디어 완성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숫자 안에 공부를 해낸다면 우리들은 왕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방식을 계속해서 사용할까요? 교학教學을 사용하십시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그 당시 세상에 계시며 한평생 가르치셨습니다. 30세에 개오開悟하신 후에 79세에 원적圓寂하실 때까지 가르치셨습니다. 경전에 기록한 대로 49년간 경전을 강설하고, 가르치시는 것을 중단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돕는 것이 교학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발전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교학입니다. 스스로 행하고 타인을 교화하는 이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신분은 직업스승이셨습니다. 우리들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학 이외의 것을 제외하고, 일생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응당 저 어르신(부처님)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코 가는 때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이와 같은 하나의 연분緣分이 있으면 마땅히 이것이 “기일을 정하고 깨닫는 것(剋期取證)”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시기를 우리들은 스스로 고치고, 이러한 시간 내에 우리들의 공부를 잘 해내야 합니다. 진정으로 철저히 내려놓고, 진정으로 일념念을 부처님과 상응시킬 뿐입니다. 이러한 공부는 간단히 말하자면, 마음속에 단지 아미타불만 있고, 아미타불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공부로 염불하면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도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느 때 갈 것인지 생각하면 바로 그 생각한 때에 갑니다. 몇 년 더 머무를까 생각해도 조금도 걸림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 상관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대해 털끝만큼의 미련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 하루를 머물게 되면 중생을 도와야 하고 그들을 위해 하루를 복무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복무가 바로 교학敎學입니다. 교학은 능히 자신을 지켜내므로 타락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자신을 보호하여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하여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으니, 양쪽이 다 좋은 방법입니다.
정토대경해연의淨土大經解演義(제125집)2010/8/27
첫댓글 왕생은 내가 정한 날에 공부가 무르익으면 가는 것 이군요.그날에 여제성중님들이 오시는 것이구요 .즉 공부한 경우는 위와같이 오시고.아픈사람의 경우는 부지부식간에 빨리 오시구요.ㅇ쨋든 안심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