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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본문: 고전10: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
안익태,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태극기를 걸고「올드랭 사인」을 부르는 교포들을 보면서 애국가를 만들 결심을 했습니다. 안익태는 부다페스트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5년 드디어 애국가를 완성했습니다. 훗날 애국가가 불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애국가는 내 작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의 백성들에게 전했을 뿐입니다"
많은 크리스천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특히 찬양 사역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아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역자가 찬양 집회를 인도하고 난 후 눈물을 흘리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찬양 집회를 인도했지만 집회 후 남는 것은 허무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오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내 속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깊은 밤의 어둠처럼 가려왔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까? 입술로는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사역자의 고백처럼 스스로 높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허무뿐입니다. 자신의 자랑과 영광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고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집중하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첫째는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인 주일날,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인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 케이보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 통치하에 있을 때 아주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어릴 때 그는 주일 아침이면 3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갑니다. 교회에 가서 2시간30분 동안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마치면 공원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2시간30분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다시 갑니다. 그리고 3시간 걸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1주일에 예배 한번 드리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입니다. 한 번의 예배를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예배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예배하러 가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길이 내가 잘되고 하나님께 영광 되는 길입니다.
뉴욕에서 버스를 모는 한 흑인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기도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자신의 버스를 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버스를 타는 사람마다 지성소로 초대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했습니다.
그러자 버스를 타는 사람마다 무언가 뭉클한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고단한 몸을 실을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의 밝은 미소와 친절함, 따듯한 말 한마디, 가슴을 울이는 음악 등을 통해 주님의 빛을 경험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평범한 버스를 주님의 향기가 가득한 예배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직장을 하나님의 지성소로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장이라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 교회 뿐 아니라 일터에도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중장부를 만들지 않고 정직하게 사업을 하며 성경적 원리로 경영하는 것을 보여 주어 직원들이 하나님을 의식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정부가 예수 믿고 은혜를 받으면 일하는 집의 침대 속까지 깨끗해지는 법입니다. 일터에서 나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웃에게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는 일상의 영성을 펼칠 수 있어야 진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향기가 번져, 주변에서 존경과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1)
세 번째는 본문의 말씀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부부간에도 싸움하지 말고, 안 믿는 사람과 돈 거래하면 신용 잘 지키고, 뭔가 말 한마디도 안 듣도록 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 죤 번연(John Bunyun)이 신앙 때문에 베드포드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몸이었습니다. 그 때에 죤 번연은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더욱 두려웠던 것은 여러 사람이 자기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복음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될까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될까봐 더욱 걱정스럽고 염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만일 그 사다리를 오를 때 내가 만일 떨고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적들에게 하나님의 길과 그 분의 백성들에 대한 비난의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것 때문에 더욱 걱정스러웠는데 그것은 내가 핼쓱한 얼굴을 지닌 채 무릎을 덜덜 떨며 죽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죤 번연은 "천국이 오든지 지옥이 오든지" 주 예수께서 자기를 붙잡으리라고 하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 앞에서도 위로를 받고 담대한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섯 번째는 선한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 16절)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삶을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을 사람의 제1 목적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추어야 할 것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것은 크고도 장한 일일 수 있으며 작고도 미미해 보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착한 행실이란 최선을 다할 때 생기는 일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진실과 진정’이 있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마지막까지 헌신할 때 생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어떤 정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애였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순간이 왔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로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와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명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다르지링 이라는 곳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테레사야, 너는 5만 명의 거지와 2만 명의 문둥병자가 우굴 거리는 켈커타로 가라. 그들은 길거리에서 태어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는다. 너는 그들이 살았을 때 잠자리를 주고, 죽을 때는 무덤을 만들어 주어라" 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2년 간 준비 끝에 마침내 1948년 8월8일 켈커타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한 권의 성경책과 한 벌의 수녀복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그녀가 드렸던 기도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이 한 벌의 옷이 헤어지면 무슨 옷을 입을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일 아침 어디서 먹을지 나는 모르고 떠납니다. 1946년 9월10일 당신의 부르심 받고 이제 나는 떠납니다. 내 일생을 당신께 부탁합니다"
그 후 30년 동안.. 그녀는 100곳에 고아원을 세우고 가난한 자와 불쌍한 고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평생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생활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캘커타의 빈민촌 사람들이 신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살기 때문에 그녀도 똑같이 맨발로 산 것입니다. 맨발로 호텔도 가고 비행기도 타고 유엔본부에서 연설도 하고 백악관에서 영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맨발의 그녀가 더럽다고 멸시하거나 출입을 거절한 적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녀는 환영 받고, 사랑 받고,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고,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드린 것입니다. 그녀는 전생애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쳤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낼 때 복음은 자연스럽게 믿지 않는 자들의 가슴에 흘러들게 됩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핏소리가 이 땅에 가득차게 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소문이 넘쳐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작은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
여섯 번째는 우리 몸으로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가운데 미 NBC 방송의 한 기자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최선을 다함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그의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었고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늙고 병약하였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공연을 마쳤을 때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그 음악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기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작은 칭찬에도 얼마나 우쭐할 때가 많습니까? 또 기대했던 칭찬이 없을 때 얼마나 자주 실망합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겸손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합니다. 내 몸과 삶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물질의 복을 받았느냐? 물으면 ' 한탕 했다' 그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합니다. 성공하고 승진하게 된 다음에도 '하나님이 나를 시켜주셨다'고 고백해야 됩니다. 미국 대통령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그 말이 잘 안 나옵니까?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밖에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거나,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만들어 섬길 때, 하나님은 불같이 질투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물질, 명예, 자녀 등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잃은 양을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 15: 4∼6).” 잃은 양을 찾는 것은 곧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합시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5: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면 누구에게 영광입니까? 우리가 종말에 실패하고, 패배하면 누구에게 욕이 돌아갑니까? 우리가 성공하고 승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패배하면 하나님께 욕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조성하시고 구속하신 후 성령의 전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방 제국 속에서도 자기의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한국 사회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위상이 드높여져 주의 이름이 영광 받으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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