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신영복이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대를 받아 회원들과 함께 서오릉으로 답청을 하게되었다는 것으로 수필은 시작이 된다. 시내버스의 종점에서 내려 걸어서 1시간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는데, 비슷한 속도로 걸으면서 방향이 같은 여섯 명의 꼬마들을 보게된다. 아이들은 행색이 부유한 듯한 구석보다는 춘궁의 느낌을 주는 차림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 날 하루를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나'가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꼬마단체의 이름을 지어 붙이는 것을 제안하고, 씨름을 하는 등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 염소같이 생긴 석물 곁에가서 꼬마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가 싸온 간식과 과일도 나누어 먹게된다. 그리고 나서 진달래 꽃을 받으면서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편지를 받기 전까지 잊고 있었지만 편지를 받고나서 사진을 확인하려 했지만 사진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아이들에게 엽서를 보내게 된다. 그 만남이 이루어진 후로 '나'와 아이들은 정해진 날짜에 만나기로 하였다(토요일). 그 이후 '나'는 수술은 받게되어 소풍이 미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화여대학생과 육군사관생들을 몇명 불러 다 같이 소풍을 가게된다. 그리고 '나'가 지은 청구회 노래의 가사 일부에 의하여 심문을 받게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이 수필을 읽고 나서 나는 그 당시의 탄압은 가히 일제강점기의 탄압과도 견줄 수 있을정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독서모임과 같은 역할을 해주는 작디작은 모임의 짧은 노래의 구절이 한 사람을 빨갱이(사회주의자)로 몰아서 심문할 때에 증거가 될정도라면 한때 일제가 조선인이 여럿이 모이면 사회주의자로 보고 잡아들이려고 하였던 1925년도의 치안유지법에 대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이에 따른 공부의 시각이 생각났다. 학생들은 공부가 자기의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성적이 좋지 않을때가 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몇의 어른들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공부라는 것은 인생의 전체중에서 일부만 담당하신다는 것을 살면서 배우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져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 살고 싶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