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왜 그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는가

[김수빈]

  뉴스기사 스크랩을 하면서 여러 무참하고 잔인했던 데이트폭력 사례들을 알아보았다. 경호원, 의대생, 장교 등 번듯한 직장이나 지위를 가진 남성이 여성을 무참히 폭행하는 사건도 있었고,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참혹한 사건 또한 있었다.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한때 사랑했던 여자 친구의 얼굴에 염산을 뿌린 사건, 전화를 불량하게 받았다며 4시간동안 감금한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여자 친구의 갈비뼈가 부러진 사건 등 대부분 데이트폭행의 이유는 허무할 정도로 사소하였다.

   이처럼 스크랩을 하면서 접한 기사들의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는 대부분 비교적 힘이 약한 여성들이었다. 여성우리나라 여성 2명 중 1명은 남자 친구로부터 심리적·정신적 폭력이나 신체적 폭력, 성추행, 성폭행 등 ‘데이트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성의 절반 이상은 연애할 때 여자 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데이트 폭력 실태가 심각하다며, 교제 상대방의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전과정보공개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전국 19세 이상 여성 2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0% 이상이 남자 친구에게 폭력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유형별로 보면 성추행을 당했다고 답한 사람이 7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심리적·정서적 폭력 피해가 703명으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성폭력 피해, 신체적 폭력 피해, 상해 피해 등의 순이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많은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묵살되었으며, 왜 그들의 절규가 묻혔던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데이트폭력 피해자 중 한 여성은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코뼈가 부러졌다. 그 사건을 목격한 여관 주인은 경찰에 신고해 달라는 여성의 말에도 진정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부러진 코뼈의 진단서를 들고 경찰서를 찾았지만 오히려 꽃뱀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며, 피해 당시 녹취록까지 제출했으나, 단지 사귀는 사이였다는 이유로 연인 사이의 사소한 다툼으로 치부해버렸다. 이렇게 주변에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주지 않고, 연인 간의 폭력이 초기 단계에서 제지되지 않게 됨에 따라 피해 여성들이 데이트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독일은 물론 가까운 일본까지,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구애 거절 의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가해자의 집착적 행위를 스토킹이라고 규정하고 중범죄로 인식한다. 동시에, 이를 처리하는 강력한 법안까지 모두 마련되어 있다. 이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연인간의 폭력적인 행동이 결국 강력범죄를 유발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행위들을 여전히 남녀 간에 벌어지는 다소 과격한 구애 행위정도로 생각하는 인식 때문에 데이트폭력을 초기에 막을 수 있는 스토킹 방지법이 첫 발효로부터 벌써 17년째 국회에 잠들어있다. 사랑하니까 때렸다, 사랑해서 죽였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이 폭력의 이유로 가장 많이 내세우는 이유이다. 바로 이 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에 때리는 가해자도,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도 또 이를 지켜보는 주변인들이나 수사진들까지도 사랑과 사랑이라는 얼굴에 감춰진 폭력적인 욕망이라는 경계선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데이트폭력을 오랫동안 연구했던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랑인지 폭력인지 헷갈린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적인 욕망이라고 말이다. 사랑이란, 연인이 NO라고 말할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어떠한 행동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폭력은 폭력일 뿐, 절대 사랑이 될 수 없음을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