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바람 같은 사람, 오숙자 집사님
박은자(예은교회 사모, 동화작가)
온양은 살기가 참 좋은 곳입니다. 우선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온천물이 펑펑 쏟아지고 시내에서 몇 발자국만 벗어나면 황금 들녘과 산과 호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온양시내를 병풍처럼 둘러 싼 남산은 등산하기에 아주 적당합니다. 정상까지 오르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거니와 정상의 능선을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습니다. 가끔 우리 예은교회 오숙자 집사님을 7시에 만나 등산을 합니다. 더러 이병운 성도님과 함께 갈 때도 있습니다. 이병운 성도님은 몇 달 전에 오숙자 집사님이 전도를 해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 분입니다.
오숙자 집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올라가다가 유치원에 다니는 듯한 두 아이와 함께 산을 올라가고 있는 젊은 엄마를 만났습니다. 오숙자 집사님이 두 아이에게 힘들지 않느냐며 말을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엄마에게 묻는 것입니다.
“혹시 교회에 다니시나요?”
그러자 아이들의 젊은 엄마는 친정 어머니는 다니시는데 자신은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오숙자 집사님이 깜짝 놀란 듯 묻습니다.
“어머님이 다니시는데 따님이 안 다니세요? 어머님이 무척 속상하시겠어요.”
그러자 젊은 엄마의 얼굴에 살짝 웃음이 지나갑니다.
“교회에 다니세요. 저는 예은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예은교회는 용화초등학교 정문 앞에 있답니다. 우리 예은교회 참 좋아요.”
오숙자 집사님은 젊은 엄마를 향해 간절히 말합니다.
“우리 예은교회는 개척한지 아직 2년이 안 된 교회에요. 하지만 개척교회라고 할 수가 없어요. 아주 예쁘게 건축을 했고요. 교회에 오면 성도들이 금방 가족처럼 느껴질 거예요. 정말 좋아요.”
오숙자 집사님은 교회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오숙자 집사님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으니 우리 예은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들어도 예은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콧날이 시큰하며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오숙자 집사님을 만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 가운데 정말 큰복입니다. 오숙자 집사님을 생각하면 아주 따뜻한 햇빛이 하늘에 가득한 것 같고, 그 햇빛 속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바람이 가득 실려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오숙자 집사님의 화난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오숙자 집사님은 늘 웃고 있습니다. 오숙자 집사님에게 더러 고약한 일이 생기면 오숙자 집사님은 그저 고요히 생각에 잠깁니다. 마치 심성이 고운 수녀처럼‧‧‧.
오숙자 집사님, 그리고 부군되시는 이충복 집사님은 역사가 오래 된 큰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예은교회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인사를 오지 못했다고 어느 주일 날 교회에 오셨습니다. 아마 창립하고 세 번째 주일예배를 드리던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교인이 없어서 작은 예배당이 운동장처럼 넓어 보일 때였지요. 오숙자 집사님 내외분이 그저 인사를 하러 오셨건만 두 분으로 인해 갑자기 예배당 안이 꽉 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주일이 흘러가고 토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청소할 것도 없었건만 그래도 부지런히 예배당 안을 쓸고 닦고 있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오숙자 집사님이었습니다.
“우리 내일 예은교회에서 예배드릴 거여요.”
뜻밖의 전화에 수화기를 든 채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수원이 아빠가 먼저 결정을 했어요. 우리 식구 예은교회로 옮기기로‧‧‧.”
“정말요?”
저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가슴이 와락와락 뛰어서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숙자 집사님과 이충복 집사님이 개척교회로 옮겨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고. 교회를 개척했다고 하니까 두 분은 단순히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앞을 보아도 사람이 없고, 옆을 보아도 사람이 없고, 뒤를 돌아보아도 사람이 없는데 개척교회 목사가 어찌나 안되어 보였는지 그 날 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당신들이라도 옮겨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충복 집사님, 집사님은 지난해에 호서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집사님은 고위공직에 계신 분으로서 그만하면 생활에 안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독려하며 더 큰 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충복 집사님을 존경하고 저 역시 그러합니다. 이충복 집사님을 제가 존경하는 것은 그 분이 고위직 공무원이거나 혹은 박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충복 집사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한없이 좋은 것은 그 분이 갖고 계신 따듯한 마음 때문입니다.
남편이 박사과정을 공부하며 모 교회에서 전도사로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몹시 추운 날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남편은 교회당 문 앞에서 추위에 떨면서 교인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느 여 집사님이 저에게 과부 변돈을 얻어서라도 무스탕을 사 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여 집사의 핀잔(?)이 서글펐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이충복 집사님의 부인이신 오숙자 집사님과 차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스탕은 그만두고 등록금을 낼 걱정, 책값 걱정에서 벗어나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오숙자 집사님이 무스탕을 선물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스탕은 이충복 집사님이 마련해 놓고 단 한 번 입은 옷이었습니다. 어떻게 받느냐고 제가 사양을 하자 이 집사님께서 당신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또 주로 차를 타고 다니니까 전도사에게 주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맘 먹고 무스탕을 구입했을 텐데, 단 한 번 입은 옷을 가난한 전도사가 추위에 떨고 있다고 하니까 선뜻 내 주셨던 것입니다. 무스탕을 입고 교회에 가니까 그 여 집사님이 제게 또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금방 사 줄 수 있는 것을 왜 그동안 떨게 했느냐고. 그런데 너무 비싼 것을 샀다고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충복 집사님이 저의 부부에게 보여주신 사랑만으로도 모든 것이 넉넉했으니까요.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도 우리 부부가 이충복, 오숙자 집사님 내외분에게 받은 사랑이 무척 많습니다만, 우리 예은교회가 반석 위에 서게 되기까지 두 분의 헌신이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전도에 열심인 오숙자 집사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매일매일 행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들이 저희 예은교회에는 참 많습니다. 때때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보내어진 사람도 있고, 위로 받기 위해 온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부부가 꼭 안아주지 않으면 안될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를 위로하고, 저희 부부에게 힘을 주기 위해 보내주신 분들도 있습니다. 이충복, 오숙자 집사님이 그렇습니다.
가끔씩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오숙자 집사님과 사흘쯤 여행하는 꿈이지요. 집사님과 기차를 타고, 막 달려가는 높은 산이나 들판을 보고 싶기도 하고요. 바다도 보고 싶지요. 은어가 돌아온다는 강에도 가고 싶고요. 하나님! 그런 기회를 허락해 주세요.
(크리스챤신문. 2003. 10. 20)
http://www.cwmonitor.com/news/articleView.html?idxno=8139
첫댓글 이 글에 나오는 오숙자 집사님은 2010년 1월 3일 예은교회에서 권사로 임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