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얼음 트레킹, 한탄강의 속살을 보다
1. 일자: 2018. 1. 27 (토)
2. 장소: 한탄강 트레킹
3. 행로와 시간
[태봉대교(09:22) -> (송대소) -> 주상절리(09:50~10:00) -> 얼음 축제장(11:10~19) -> 승일교(11:23) -> 고석정(12:02) -> (순성계곡) -> 한탄강 글램핑(12:44) / 7.8km]
혹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역대급 추위다. 살면서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5일이상 이어진 날은 기억에 없다. 아무리 춥다해도 3일 정도 지나면 누그러지게 마련인데, 이번엔 예외다. 그렇다고 지구온난화니 엘리뇨니 라니뇨니하며 호둘갑떨 필요는 없다. 긴
지구의 시간 흐림에서 보면 그저 작은 변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 성원이 되지
않을 듯해 망설이다 마중물이 되고자 과감히 신청을 했다. 추워도 난 강행한다는 각오다. 마음을 정하고 기다리니 금요일 오후부터 신청자가 몰린다. 한탄강과
다시 인연을 맺는다. 한탄강, 강원도 평강 추가령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연천을 거쳐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한자 뜻 풀이를 하면 큰 여울이란 말이다. 발원지에서 임진강 합류점까지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를 관통하기 때문에 곳곳에 수직절벽과 협곡이 형성되어 절경을 이뤄, 국내 어느
강보다도 변화무쌍하고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직탕폭포 가족 여행,
군 시절 보병훈련 시 헬기 타고 강 위를 선회하던 아찔한 기억, 군에 간 아들 면회 가다
흘깃 본 예사롭지 않은 풍경, 잠깐의 인연들은 강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오늘은 충분한 시간 동안 강과 강 주변의 속살을 살펴보리라.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내복까지 껴 입었는데도 하체부터 서늘함이 전해 온다. 대기는 청명하다. 하늘엔 달이 선명하다. 버스가 잠실대교를 지난다. 한강 넘어 일출의 기운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된 아침
풍경이다. 역시 겨울 풍광은 추워야 제대로다.
새로난 남양주~포천 고속도로를
달려 철원 땅에 들어선다. 포천까지는 놀랄만큼 빠르게 이동한다. 새
도로의 힘이다. 다음을 위해 도로를 살핀다. 이 길로 오면
명성산도 지척이겠다. 한탄강 얼음 축제를 알리는 입간판을 따라 가자 강변 주차장에 닿는다. 태봉대교다. 시간은 09:20. 멀리
눈 덮인 금학산~고대산 능선이 지척이다. 들머리를 잃을새라
허겁지겁 일행을 따라 나선다. 이내 얼음 언 강 위를 걷는다. 어릴적
이후 수 십 년만의 경험에 신난다. 투명한 얼음 밑으로 강물의 흐름이 감지된다. 작은 여울을 만난다. 직탕폭포가 이리 작았나 하고 걸음을 이어간다. (돌아와 확인하니 직탕폭포는 강을 거슬러 15분 정도 상류로 더
가야했다. 급한 마음이 또 명소 하나를 지척에 두고 놓쳤다. ㅋㅋ)
발 밑 상황에 조금 익숙해지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강가에 검은 돌들이 유독 많다. 현무암
용암의 잔재다. 물과 세월에 깎아고 다듬어진 예술품들, 들고
갈수만 있다면 최상급의 정원석이다. 널찍한 바위를 지난다. 승소대
인가 보다. 협곡을 따라 주상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암회색
돌기둥이 우람한다. 곳곳에 철분에 영향인 듯한 붉은 기운도 엿보인다.
강폭이 넒어진다. 강 기슭으로 다가가 구슬기둥을 살핀다.
강물과 시간과 바람이 만들어낸 보석 같은 조형물에 넋을 잃는다. 주상절리를 수직으로 가로질러
커다란 물길이 얼어 붙어 빙폭이 된다. 이 역시 거대한 자연의 조각품이다. 초입부터 기대치 않은 풍경의 연속이다. 이 강 트레킹로 끝에 다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경이를 보게 될지 마음이 설렌다.
송대소와 주상절리 지대를 지나자 강폭이 좁아진다. 트레팅로는 강가 돌 위로 이어진다. 거센 물길에 걸음을 멈춘다. 영하 20도가 넘는 날이 오래 지속되었는데도 강물은 얼지 않고 작은
포말을 그리며 흐른다. 물길따라 작은 연무가 솟는다. 눈과
얼음 세상에 은빛 여울이 진다. 이 겨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풍광이다. 눈과 돌, 얼음과 물이 만들어내는 조화에 감동한다. 무어라 한 가지를 딱 집어내지 않더라도 주변 조화가 서로를 보듬어 절경을 만들어낸다.
울퉁불퉁 발 밑 돌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강가를 거닌다. 강 안에 자리잡은 바위에 눈이 내려앉고 돌 모서리에 얼음이 얼어 있다. 거센
물살은 얼음을 돌아든다. 물 길 옆으로 켜켜이 쌓인 얼음이 층 지어 서 있다. 거대한 바다 위를 떠도는 섬들의 축소판이 바로 작은 강 위에 펼쳐진다. 어쩌면
이 거대한 우주의 축소판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강폭이 넓어진다. 언
강 위에서 한무리의 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을 피워 음식을 끊여먹고 있다. 색다르고 부러운 풍경이다.
강가 모래톱 위를 걷는다. 등로
자체가 워낙 다이나믹하여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가를 따라 갈대가 지척인데 그 위에 얼음과 눈이 덕지덕지
붙어 색다른 풍광을 자아낸다. 색의 조화가 아름답다. 멀리, 커다란 얼음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린다. 큰 축제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맞다. 이곳은 한탄강 얼음 축제 메인 행사장이다. 짚으로 높게 쌓아 올린
구조물에 물을 뿌려 얼음 조각상을 만들고, 소나무 가지를 얼려 얼음 터널을 조성했다. 커다란 가마솥이 걸리고 음식을 팔고 나누는 장소도 있다. 흥에 겹다. 강 위가 축제장으로 변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인파에 쌓연 얼음 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고, 모닥불에 곁불을 짼다. 강가
절벽에는 거대한 빙폭이 조성되어 있다. 예기치 않을 풍경들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모든 게 처음 접하는 것들이다. 그야말로 세렌디피티다.
거대한 아치형 다리 밑을 지난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고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다. 승일교다. 북에서
건설을 시작하여 전쟁이 끝나고 남에서 완성한 다리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눈에도 아치형 조형미가 가히
예술작품 수준이다. 주변 바위 형상도 명품이다. 또 풍경에
취한다.
다시 강을 따라 걷는다. 물길을
가로질러 돌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위에 서서 이 엄동설한에도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강을 바라본다. 바닥까지 드러나는 맑은 물줄기다. 얼고 눈에 덮혀도 바다를 향한
마음은 변하지 않나 보다.
곳곳에 얼음 축제를 알리는 입간판이 붙어 있다. 이 외진 고장의 명소를 아무 조건없이 알리고자 하는 지자체의 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강폭은 넓어졌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한다. 한동안 강의 중심을 따라
걷는다. 물길이 좁아진다. 멀리 잘 지은 건물이 올려다 보인다. 부근이 고석정인가 보다. 산악회에서 알려 준 날머리다. 시간은 아직 12시도 안 되었다.
이렇게 멋진 트레킹을 벌써 끝내서는 안된다. 아쉽다.
고석정 밑 여름에는 길게 형성된 모래톱이 있을 장소 건너편에 거대한 빙폭이
만들어져 있다. 그 거대한 크기에 놀란다. 주변으로 다가가
살핀다. 여기저기 위험을 알리는 표식이 있다. 발 밑 얼음이
금이 간 곳이 여러 있다. 두려움이 멋짐을 구경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먼저 움직인다.
길이 나뉜다. 올라 가면 고석정, 강가를 따라 걸어가면 순성계곡이 이어진단다. 망설임 없이 강가로
방향을 튼다.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고석정 주변 풍경은 그 자체가 한 폭의 산수화다. 소나무와 바위, 강이 어우러진 모습은 바라보는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순성계곡으로 내려선다. 날머리에서
멀어진다 해도 돌아오면 된다. 시간은 아주 많이 남아 있다.
긴 부교 위를 걷는다. 계곡의 물살이 거세다. 빠른 물살이 만들어 놓았을 고운 모래 위를 걷는다. 중무장을 한
사진 작가가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걸쳐 놓고 무언가를 기다린다. 예술 작품을 찍고 있나 보다. 그 모습이 사못 진지하다. 그의 긴 기다림을 응원한다. 거대한 화강암 암괴가 길을 막는다. 거북 등처럼 갈라진 표면에 갖가지
문양이 그려진다. 이 역시 바람과 물이 다듬어 놓은 조각품이다. 강가
위로 인공구조물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화려한 순성계곡이 끝나가나 보다. 커다란 광장이 나타난다. 안내판이 보인다. B코스 종점. 나의 화려한 한탄강 트레킹은 여기에서 깃을 접는다.
< 에필로그 >
예정보다 2km를 더 걸어도 시간은 오후 1시가 되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응달에서 버스를 기다리자니 잊었던
추위가 몰려온다. 새삼 햇살의 위력을 확인한다. 우여골절
끝에 고석정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 사진을 확인한다.
한겨울 오전 3시간 20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은 화면으로 봐도 풍경은 환상적이다. 만족이란
기대와 실제와의 함수다. 오늘 한탄강에서는 모든 게 기대이상이었다. 날씨도
강도 얼음도 풍경도 환상적이었다. 용암이 형성한 협곡에 물과 시간이 만들어 놓은 걸작들을 원없이 구경했다.
겨울 강을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자고 한 이의 혜안에 감사한다. 지금 이 계절이 아니면 어찌 강 한가운데 서서 송대소의 주상절리를
만져볼 수 있을 것이며, 바람과 눈이 만들어낸 바위 섬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단 말인가. 얼어붙은 물 속 투명하게 흐르는 강의 움직임을 바로 위에서 어찌 살필 수 있겠는가? 추위와 가지 말자는 숱한 마음의 유혹을 이겨낸 보상은 감동적이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고
혹시나 하고 카페에 들어가 본다. 어느 분이 벌써 사진을 올렸다. 그
속에는 직탕폭포의 위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가 나의 성급함을 나무란다. 놓친 고기라 더 커보인다. 덕분에 내년에도 한탄강을 찾을 명분을
찾아낸다. 놓친 직탕폭포가 다음을 위한 기억의 징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 한탄강 트레킹 궤적 >
< 찾지 못한 직탕폭포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