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작가님의 '성난 풀잎'을 접한 후에 문득 어떤 구절이 떠올랐다. "미운 풀이 죽으면 고운 풀도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김을 맬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럼 내가 뽑고 있는 잡초는 미운 풀이고, 키우고 있는 채소는 고운 풀이란 말인가. 곱고 미운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나희덕 작가님의 '반통의 물'이라는 작품의 구절이다. 나는 이 두 작품을 접한 후에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자연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간에, 나는 자연이 '무감각'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굳이 어떤 대상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다른 일에 간섭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일 뿐이고 다른 것에 무감각하다. 자연에서는 이 놈이든 저 놈이든 다를게 없는데, 단지 몹쓸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인간이 '감각적'인 것을 원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특히 시각에 의존하는 생물이다. 오감 모두가 거짓말을 입고 있지만, 눈이 가장 악질이다. 눈이 멋져보이는 옷을 걸치니, 다음으로 코가 좋다고 따라입는다.
혹시 지금 당신 코에는 거름과 꽃의 냄새가 다르게 느껴지는가?
나는 앞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껴봐야지. 거짓이란 옷을 벗긴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지. 타인을 진실하게 느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