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묘에 고하는 글〔告家廟文〕
유세차(維歲次) 기축년(1769, 영조45) 9월 경진삭(庚辰朔) 19일 무술(戊戌)에 효손(孝孫) 원행이 감히 현조고(懸祖考)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춘추관성균관사 동지경연사 세자좌부빈객(禮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同知經筵事世子左副賓客) 증시(贈諡) 문간공(文簡公) 부군, 현조비(顯祖妣) 정부인(貞夫人) 연안 이씨(延安李氏),현고(顯考) 학생(學生) 부군, 현비(顯妣) 유인(孺人) 밀양 박씨(密陽朴氏)께 밝게 아룁니다.
불초한 제가 제사를 받든 지 50여 년이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근년 이후로 노쇠함과 병세가 날로 심해져서 근력이 줄어든 탓에 매양 크고 작은 제사를 만날 때마다 배궤(拜跪)하고 진퇴(進退)하는 의절도 제대로 행하지 못하여 참신(參神)과 사신(辭神)을 행하고 나서는 한결같이 아들에게 맡겨서 일을 끝내게 하고, 또 주부(主婦)도 잃어서 제수(祭需)를 장만하여 올리는 일 역시 며느리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나이가 조금 차지 않아서 노전(老傳)의 명분을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실상은 노전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아들 이안(履安)이 성은(聖恩)을 입고서 영동현(永同縣)에 수령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홀로 사당을 모시면서 제사의 예를 제대로 갖출 수 없으므로, 부득이하게 사판(祠版)을 모시고 가고 아울러 부위(祔位)까지도 따르게 하려고 합니다. 이에 장차 이달 21일에 출발하여 사판을 받들어 수레에 모시려고 합니다.
삼가 술과 과일을 차려 놓고서 경건하게 아룁니다. 삼가 고합니다.
告家廟文
維歲次己丑九月庚辰朔十九日戊戌。孝孫元行敢昭告于顯祖考資憲大夫禮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知春秋館成均館事同知經筵事世子左副賓客贈謚文簡公府君。顯祖妣貞夫人延安李氏。顯考學生府君。顯妣孺人密陽朴氏。不肖奉承祭祀五十餘年。不幸近歲以來。衰病日劇。筋骸廢弛。每當小大祀享。拜跪進退。不能成㨾。自參辭以往。一委兒子卒事。又喪主婦。粢盛供薦。亦付之兒婦。雖年少未滿。未立老傳之名。而其實則便老傳耳。今兒子履安。蒙恩出宰永同縣。獨奉祠廟。無以成祭祀之禮。不得不以祠版奉往。幷以祔位從之。將於今二十一日發程。奉以升轝。謹以酒果。用伸虔告謹告。
[주1] 문간공(文簡公) : 미호의 양조부인 김창협(金昌協, 1651~1708)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동음거사(洞陰居士)ㆍ농벽주인(寒碧主人)ㆍ삼주(三洲)ㆍ농암(農巖), 시호는 문간이다. 송시열(宋時烈)ㆍ이단상(李端相)ㆍ조성기(趙聖期)의 문인이며, 노론(老論) 낙론(洛論)의 종장이다. 이조 참판, 양관(兩館)의 대제학 등을 지냈다. 저서에 《농암집(農巖集)》 등이 있다.
[주2] 연안 이씨(延安李氏) : 김창협(金昌協)의 아내이자 미호의 양조모로, 부친은 이단상(李端相)이다.
[주3] 현고(顯考) 학생(學生) 부군 : 미호의 양부 김숭겸(金崇謙, 1682~1700)으로, 자는 군산(君山), 호는 관복암(觀復庵)이다. 부친은 김창협(金昌協)이다. 김숭겸은 19살의 나이로 후사가 없이 죽었는데, 2년 뒤 종형(從兄) 김제겸(金濟謙)의 셋째 아들인 미호가 태어나자마자 그에게 입양되었다. 저서에 《관복암시고(觀復菴詩稿)》가 있다.
[주4] 밀양 박씨(密陽朴氏) : 김숭겸의 아내이자 미호의 양모로, 판서 박권(朴權)의 장녀이다.
[주5] 참신(參神)과 사신(辭神) : 모두 제사를 지내는 절차로, 참신은 제사 지낼 때 신주(神主)에 절하고 뵙는 것이고, 사신은 종헌(終獻)한 다음 신주를 들이기 전에 신주에게 절하고 작별하는 의식이다.
[주6] 주부(主婦)도 잃어서 : 주부는 미호의 아내인 남양 홍씨(南陽洪氏, 1702~1767)로, 진사 홍귀조(洪龜祚)의 딸이다. 미호와 동갑으로, 1716년(숙종42)에 15세 나이로 미호에게 출가하였고, 1767년(영조43)에 3월 23일에 작고하였다.
[주7] 제가 …… 마찬가지입니다 : 노전(老傳)은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70세가 되면 ‘노(老)’라고 하며 이때에 가사(家事)를 아들에게 전한다.〔七十曰老而傳〕”라고 한 데서 온 말로, 70세가 되어 적자(嫡子)에게 제사를 비롯한 집안일을 물려주는 예를 이른다. 당시 미호가 68세로 70세가 되지 않아 노전을 할 명분을 내세우지는 못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노쇠하고 병든 몸으로 집안일을 행하지 못하여 그 아들로 하여금 대신 행하게 하고 있으므로 노전과 다름없다고 말한 것이다.
[주8] 이안(履安) : 김이안(金履安, 1722~1791)으로 자는 원례(元禮), 호는 삼산재(三山齋),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미호의 첫째 아들이다. 1762년(영조38)에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경연관(經筵官)에 기용되었고, 충주 목사(忠州牧使), 지평(持平), 보덕(輔德), 찬선(贊善), 좨주(祭酒)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삼산재집(三山齋集)》, 《의례경전기의(儀禮經傳記疑)》, 《계몽기의(啓蒙記疑)》이 있다.
[주9] 부위(祔位) : 조고(祖考)의 사당에 함께 모신 무후(無後)한 신위(神位)로, 결혼하기 전에 일찍 죽었거나 무후(無後)한 분을 조고(祖考)를 제사할 때에 함께 모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