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주인공 시점
나에게 묻는다
나에게 직면한 문제의 근원도, 모든 행복의 원천도 결국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서 멈칫거리며 불안해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친다.
저마다 그 길에 들어서면 본인의 선택지가 맞는지 재차 생각해 본다. 모두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갈림길중 매번 최고의
선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누구는 운이 좋아서, 아니면 노력의 결실을 맺어 본인의 목표를 향해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면에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멀리 돌아가거나, 걸어왔던 길을 다시 또 돌아오는 이도 있다. 그런데 지름길을 택하면 어떻고, 멀리 돌아간다면 어떠한가.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무한굴레이다. 지름길을 택했다면 보다 유리한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고, 심취한다면 딱 거기까지이다. 그에 비해 자신에게서 아쉬움을 느끼며 그 점을 고쳐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 끊임없이 도전해 나가는 불굴한 의지를 갖추고 있다면, 모두가 흔히들 말하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그 차이는 비할 바 없이 커진다는 것이다.
나 또한 살아가면서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당시에 조금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이라는 때늦은 후회와 자책을 해보았다. "분명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만으로 허투루 시간을 낭비한 적도 많다. 당연하게도 그런 쓸모없는 후회만으로는 당장의 눈앞에 놓인 현실이 번복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오랜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희열만을 생각하고, 나태함에 찌들어 살아가는 나를 돌이켜 보면 사람은 진화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판타지 소설의 한 글귀처럼만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는 버릇이 고쳐지지 않고 나와 일심동체 상태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십몇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옛 어르신 말씀 중 틀린 말 하나 없다고 했던가. 속담 중에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다. 3살 그 언저리 나이대가 인격 형성이 시작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가 올바른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부모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자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옳고 그름이 확실할지언정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다그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만큼은 누구나 공감할 거라고 자부한다.
이제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나마 기분전환좀 할겸 옥상으로 올라가 어두운 밤하늘에 자리잡고 있는 달을 보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이 깊어져 갈수록 지금까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망나니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비참해보이는 것이 아니겠더냐. 남들이 나중에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는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뭘 해도 잘 먹고 잘 살 자신이 있다." 이것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나 자신을 믿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몇가지의 질문이 나를 향해 꽂힌다. '대학은 어디로 갈거야?', '과는 정했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매번 늘 다르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에 그치지 않나싶다.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공부를 안 한 것이 후회스러운 순간이 없었다. 남들은 대학을 가기 위해, 또는 취업을 하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에 나는 어딜 내놔도 자랑스러운 나의 친구들과 생에 딱 한번뿐인 학창시절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친구가 없다면, 그 누구도 살길 원치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격, 취미, 가치관 등등이 모두 다를 텐데 그걸 어찌 딱 하나의 기준으로만 정해놓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간혹가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작자들이 하나 둘 튀어나온다. 이 자리를 빌려 한마디 전하자면, 그렇게 남 지적할 시간있으면 너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나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을 뿐더러 "다르다와 틀렸다" 이 두가지로 나를 납득시키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일진 몰라도 내 인생을 도화지에 빗대어 보면 나름대로 개성 넘치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가는 중이니까 말이다.
"나에게 직면한 문제의 근원도, 모든 행복의 원천도 결국 나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이 한 문장이 셀 수 없이 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변을 할 시간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가 반박할 수 없는 일종의 공식 같은 개념일 것이다. 물론 나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당장 눈앞에 놓인 것만 볼 수 있는 애송이였다면, 앞으로의 나는 저 멀리 있는 것까지 보기 위해 일취월장해 보다 성장해있는 나 자신을
훓어보며 그 과정들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모른다는 건 계획에 없던 고난과 역경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걸 벌써부터 걱정하기 보다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이겨내는 것과 더불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자기가 한 선택을
애송이마냥 책임전가할 게 아니라,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 거칠고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결코 해냈다는 증명을 보여야지
비로소 성인이 되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 내가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나에게 묻는 마지막 질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선택의 갈림길속에서 줏대있는 선택을 통해 형성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추진력을 얻기 위한 발판이고, 그 발판을 통해 성장해나갈 내 모습을 앞으로 살아갈 삶에 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