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이여!
지금 내가 거처하는 공간은 '희어재'라고 이름 붙인 황토방이다.
라떼(?)에는 할머니는 안방이나 건넌방을 차지하시고 할아버지들은 주로 사랑방에 거처하셨다.
내가 지금 거처하는 황토방이 바로 예전에 할아버지들만의 공간인 사랑방과 비슷한 개념의 공간이다. 다만 예전의 사랑채는 안채와 거리는 좀 떨어져 있어도 'ㄷ자'나 'ㅁ자'로 다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의 내 황토방은 안채와 한 4~5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나는 지금 엄밀히 말하면 아내와 별거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십여 년 전 귀농하면서 아내와 나는 집을 최소한으로 소박하게 짓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버켓 리스트 일순위인 나만의 황토방 짓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담한 안채와 황토방을 마련한 나는 기쁜 마음에 각각의 집에 택호를 붙여 주었다. 나우당(娜友堂)과 희어재(戱魚齋). 영어 'NOW & HERE'에서 따왔지만 원래 뜻인 '지금, 여기'와 다르게 내가 멋대로 만든 한자 이름이다.
이 희어재에 요즘 매일 성령이 강림하신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나는 황토방을 지을 때 천장에 구멍을 내서 하늘을 볼 수 있게 천창을 냈다. 천창을 내기 위해 직경 80cm 이상 되는 아름드리 원목을 어렵게 구해서 가운데를 특수 톱으로 직경 30cm, 깊이 60cm로 파내고 뚜껑은 3중 유리로 별도 주문 제작해서 덮었다. 황토방에 누우면 낮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밤에는 별이 반짝이고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이 부분은 내 글 솜씨로는 설명이 불충분하니 사진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3중 유리가 강원도의 혹독한 겨울을 몇 해 지내더니 금이 가면서 유리층 사이가 뿌예져서 더 이상 하늘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당장 유리를 갈아끼우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어느날인가 그 금이 간 유리창의 문양이 신기하게도 비둘기 형상을 닮았다는 걸 불현듯이 발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온몸 스트레칭을 위해 황토방에 요가 매트를 깔고 누우면 그 천창에 비둘기 모양의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시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이.^^ (이 부분도 사진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위 사진을 보고 코웃음 친다면 아래 사진과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내 눈에는 성령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고 있는 것까지 완전 꼭 닮았다.^^
아무튼 나는 희어재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 내가 이 공간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보다 더 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다. 바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다.
요즘엔 이 양반 얼굴을 tv에서 거의 볼 수가 없는데 몇 년 전만 해도 여러 채널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꽤 잘 나가던 대학 교수직을 갑자기 때려치우고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라는 요상한 연구소를 차리는 등 갖가지 기행을 일삼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양반이 쓴 책을 읽다가 참 반가운 대목을 만났다.
그는 행복의 조건으로 '슈필라움'을 소개했는데 이 말은 독일어 놀이(Spiel, 슈필)와 공간(Raum, 라움)의 합성어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이 독일 말에 딱 맞는 우리말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원어로 소개한다면서(참고로 그는 박사를 독일에서 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라고 덧붙인다.
가만 생각해보니까 희어재가 내게 딱 그런 공간이다.
앞에서 나는 '여기'라는 뜻의 영어 'Here'를 황토방 이름으로 갖고오면서 내 마음대로 '희어재'라고 지었다고 소개했다. 희롱할 희(戱), 고기 어(魚), 집 재(齋)를 굳이 해석하자면 '물 만난 물고기가 노니는 사랑방' 정도의 뜻이니 김정운 박사가 얘기하는 '슈필라움'과 딱 떨어지지 않는가.^^
심리 에세이를 많이 쓰는 작가 김형경도 현대의 많은 남자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집에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어 진단한다. 또한 그녀 역시 자기만의 공간이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심리적 공간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데 의견 일치하고 있었다.
현대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만의 심리적, 물리적 자율 공간을 갖고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 남자인가.
게다가 매일 아침 성령님께서 강복까지 주시니 이 또한 얼마나 감읍할 일인가.
희어재 한 쪽 벽에는 천창과 똑같은 통나무 창도 뚫어 달았는데 여기 유리는 온갖 추위와 눈보라에도 멀쩡해서 밖이 시원하게 잘 보인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얼마 전 일이 생각났다. 어느 해 여름인가 열어놓은 문으로 앙증맞은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 십자고상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신기해서 얼른 휴대폰에 담았다.
아마도 그때 이미 성령께서 미리 저 천사를 보내 당신의 강림 전조를 알리신 게 아닌가 싶다.^^
오소서 성령이여
우리 맘에 오소서
위로자신이여
옳은 길로 나아갈
바른 의견 주소서
맘의 위로자여
2023. 5. 28 성령 강림 대축일에
첫댓글 희어재에 들면 기도가 절로 나오겠네요
아침에만 그래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소서, 성령이여! ^^-
이렇게 더위 먹고 치기로 쓴 듯한 글에
신부 님께서 댓글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