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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 5월호, 6월호, 7월호, (8월호 쉼), 9월호, 10월호, 11월 12월호, 2024년 1월호, 2월호, 3월호, 4월호, 5월, (6월호 쉼), 7월호, 8월호, (9월호 쉼), 10월호, (11월 쉼), 이번이 스물 다섯 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선학동 마을과 소설 선학동 나그네
- 이청준 문학관을 위하여(25)-
1, 이청준의 발언
"고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말. 그가 태어난 고향에 대해 감사와 의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말, 그가 태어날 때 지은 약속을 벗어나지 않는 말" - 당시 대덕동국 민학교를 마치고 도시로 나간 이청준에게 광주와 서울의 타향살이는 길고 고단했으리라. 1968년경 혼인을 하였지만, 그 '가족해체, 각자도생'의 고난기에 고향을 자주 찾을 기회는 퍽 어려웠을 것.
2, 이청준 고향에 관한 지리적 지표
'대덕, 회진, 대흥, 장흥, 천관산 남쪽, 장산' 등 지명이 있다. 이청준(1939~2008)은 '대덕 사람'으로 태어났다. 1983년경 대덕에서 회진면이 분면(分面)된 후에, 2008년에 '회진 사람'으로 타계했다. 이청준 소설에서의 고향 명칭은 '장흥, 대덕 진목리, 회진 진목리, 참나무골, 천관산 동백골' 등으로 지칭되었다. 또한 '해중산골'과 '바닷가 사람들'이라는 표현도 있다. 널리 알려진 <눈길, 1977>에서도 '대덕 진목리' 사람의 이야기에 해당한다.
3, 이청준의 고향에 관한 상징적 표현
'남쪽, 남도사람, 서편제, 육자배기, 동백꽃 동백골 등이 있다. <이상한 나팔수, 1969)의 철망 남쪽, <목포행, 1971>의 남쪽 바다. <안질주의보, 1974)의 남쪽 사투리, <잔인한 도시, 1978)의 머나먼 남쪽과 더 불어 '천관산 남쪽 동백골 마을'은 이청준의 고향 그리움에 관한 상징이요 은유이다. '남쪽 참나무골 고향집' 표현도 있다.
4, 이청준의 어린 시절 고향 추억
'해중산골'로 기억되는, 밭농사 이야기와 <바닷가 사람들, 1966> <석화촌, 1968> 이야기도 있다. 6.25 당시 고향마을 인근에서 일어난 '외갓집 참사'가 있으며, '전깃불 체험'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서당 체험'도 있으며, 황해도 옹진사람들이 대거 참여한 간척사업 목격담이 있다. 1948년 대덕동국민학교 입학했으며, 8곳 학교 건물을 전전했다고 했다. 그 부근 바다에 '탱자도'가 있었고, <침몰선, 1968>이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에 가르쳤던 '전정자 선생님'을 회상하였다 1954년에 '숙명의 씨앗자루'로 지칭된, '칠게 자루 사건'을 겪고 광주서중에 진학하면서 '대덕 고향'은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자주 오고 갈 형편이 못되었다. <살아있는 늪, 1979)에 장흥 대덕 고향과 고향 사람들 모습이 등장한다.
5, '산저리 선학동'
1983년경에 대덕에서 회진면이 분리되었다. 회진면 '산저(山底)' 마을은 2008년경에 '선학동' 개명 작업을 시작하였다. <소설 선학동 나그네>에 등장하는 '학산(山) 관음봉'은 '공지산'에 해당한다. 그 중턱엔 명당(明堂) 전설이, '공지산' 산곡으로 가는 길에 풍장(風葬)터'가 있었다. 배들이 드나들던 선(船)자리가 있었던, 돌개 포구(주포, 周浦)는 일제시기 간척사업으로 논이 되었다. '산저리 선학동'은 '현 회진항'의 남쪽 십 리에 위치한다. '산저리 선학동' 마을의 맞은 편에 있던, 옛 조합 가건물에 늦깎이 이청준 소년이 다녔던 대덕동국민학교가 생겼고, 바다 쪽에는 '탱자도'가 있었다. 그 섬의 맞은편 마을에 '강진다' 선생님이 계셨다. '산저리'는 2008년부터 '선학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리산 '청학동 마을'이나 경상도 '의령 부자마을'과는 그 성격이 판이하다. 그 뒷산 학산의 두 날개 아래, '산저리 선학동'에는 유채꽃과 메밀꽃이 봄가을에 맞추어 피어난다. 학산 기슭의 '날근(낡은)터' 지명은 을묘왜변(1555년) 무렵 왜구 침입으로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공지산 양쪽 날개 아래, '산밑마을 산저리'는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 (1979)> 덕분에 그 진정한 이름을 얻게 되거나 또는 되찾게 되었을지 모른다. '산저리 선학동'은 소년 이청준의 추억과 기억의 공간이었다.
6, <소설, 선학동 나그네, 1979>
연작소설 <남도사람 3>에 해당한다.
1) 이청준 소설 공간에서 '공지산'은 '관음봉'으로 등장한다. '법승 관음보살'은 현실구제를 담당한다. 장흥 천관산 줄기가 남긴 마지막 낙점들 하나이다. 지령음(地靈音)이 울리는 명당(明堂) 전설이 있으며, 또한 그 산속 나무꾼 노래쟁이가 부르는 '서편제 육자배기' 공간일 수 있다. 지나간 시절에 아비를 믿고 따르던, 오빠와 누이 등 소리꾼 가족이 소리 여행을 함께 왔던 곳이다. 또한 그 후에 또다시 이제는 눈이 멀어진 누이가 아비 유분(遺墳)을 들고서 찾아왔다는 곳이다. 그 소리꾼들 소리 끌림에 '관음봉 학산'의 산그림자가 학(鶴)처럼 곱게 내려앉았는데, 또다시 찾아온 눈먼 누이의 애끓는 소리에 학(鶴)들이 다시금 내려앉았다고 했다. 가장 마지막에 뒤늦게 찾아온 오빠 사내가 눈먼 누이의 흔적을 애써 찾다가, 마침내 돌개고개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으며, 그 사내가 있던 빈 자리에 백학(白仙) 한 마리가 비상(飛翔)하였다. 과연 그 백학은 누구의 원령(怨靈)과 혼백일 수 있겠는가.
2) 소설 <선학동 나그네>에는 주목할 만한 사정이 있다. 마을 사람들 그 누구도, 마을 주막사내도 다들 친절하고 무디다. 억양과 핏대를 올리지 않는다. 이해와 용서, 화해의 존재적 언어를 쓰며, 나그네 새들을 도와주는 '나무숲' 같은 사람들이다. 이청준이 그려낸 또 하나의 '낙원'이라 할 수 있다. 독행자 이청준의 소망과 조율이 반영된 득음(得音) 방생(放生)의 씻김굿 공간에 해당할 것.
3)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 마을을 상징과 은유로 처 리한 모습은 <인문주의자 무소작씨 종생기, 2000> 에 나오는 '이야기꾼'의 모습에도 겹쳐 등장한다.
4) <영화, 선학동 나그네>의 세트장 건물 부근에는 '일제시기 1923년경에 목포와 장흥 하늘을 처음 날았으나, 그 주변 반대로 제대로 날지 못했던 초창기 비행사 이상태(1904~1985)' 묘소가 있다. 1938년경 돌개포구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순흥농장 부지를 이상태 소유주가 인근 주민들에게 헐값으로 분배한 공적을 기리는 <시혜비>가 있다.
5) 이청준의 '나그네' -이청준은 "집착이 없는 사람, 어디서나 자기 신전(神殿)을 짓지 않는 사람, 언제나 도중(途中)의 사람"을 '나그네'라고 말하셨다.
6) '산저리 선학동'의 현 '학산관' 건물을 마을회당 겸 '작은 도서관 카페'로 전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그리고 '한강'도 물론이지만 장흥 출신이거나 장흥에서 활동하는 여러 문인들 작품집도 함께 비치할 수 있을 것이다.
7, 참고자료
장흥신문, 2018, 10 26 자, 박형상, <선학동, 이청준, 돌개포구, 이상태> / 회진면지(2007)
-문학지리학적 관점에서
1, 들어가는 말
발제자 소개 -<옥색바다, 진달래꽃/이청준 외 2, 2004), 발문 장흥을 아십니까. 2박3일 동행여행/ <신화를 삼킨 섬, 2003> KBS 독서프로그램 참여, 광주일고 후배
2, 이청준 생애(1939~2008)
1) 출생 -1939, '우렁이 막창자끝 오지' 남쪽, 3남 3 녀, *해중산골, 경주李씨
2) 극빈환경 -산밭언덕, 父, 長兄 사망, *서당학습, 48년 초등입학, (8곳 전전)
3) 6·25체험 -좌익기습 + 외숙집 몰살, *외종형실종. *전깃불체험, 좌익시대 혼선
* 막내누이 -33년생/ 초등졸/ 동백꽃 누님, 낙화유 수세상
4) 1954년 4월, 3백리길, 광주서중, *<게(칠게), 숙명의 씨앗자루>, 1960년 상경, 서울대 독문과, 1962년 입대, 1964년 복학, 1965년 등단 <퇴원>, 1966년 졸업, 1968년 혼인
5) 행정구역 변경(1983년 분면) -대덕사람 출생 + 회진사람 타계
3, 장흥땅 역사와 전통
부사 고을, *별호 관산(冠山)
1) 장흥 부사고을 고려의종, 공예태후, 府使고을(1149), 인근지역 관장, 雄府
2) 고려시대, 장흥= 현 장흥+ 현 강진 일부(탐진현)+ 현 보성 일부+ 현 고흥 일부+ 현 완도 일부('고려 때, 강진청자'는 없다. '강진'은 조선 초에 강진현)
3) 조선시대, 장흥= "현 장흥, 부사고을+ 현 보성 웅치면, 회천면+ 완도군 일부"('조선 때, 보성소리' 없다), 1914년에 현 보성으로 '웅치, 회천면 이속')
4) 장흥문인, 학자 백광홍(관서별곡), 백광훈(삼당시인, 옥봉집, 湖海悲歌士), 존재 위백규(실학자, 존재집, 茶山정사), '다수노론', 산문문학 전통
5) 갑오동학혁명 최후 패전(1894) -장흥 석대들 전적, *장흥의 동학소설들
4, 연작 서편제 (남도사람 1, 2, 3, 4, 5)
<소설집, 남도사람, 1978)
1) 5편 연작들의 유기적 이해 필요성 -단권적 이해의 한계 -1.서편제1976/ 2.소리의 빛1978/ 3.선학동 나그네 1979/ 4.새와 나무 1980/ 5.다시 태어 나는 말 1981 *언어사회학 소설 연작 5편(5.다시 태어나는 말, 1981)
* <서편제/ 남도 사람> = 서편제 지역에 사는 남도 사람, 소리쟁이 삶
* '남도사람'의 정체성 나아가 '남도문학'의 정체성
2) *서편제 분류법 -'조선창극사(1940), 정노식 *섬진강 기준설' 및 비판 검토
'학교, 교본, 계파 스승' 없던 시절에 무슨 지역구 분, 음악인의 개별적 선택
* 시기적 변천설 = 舊식, 구파 <中古품 <新품. 신파 = 9京제(舊파)+ 中古제+ 新파(서편제/ 계면조/ 陰> 동편제/ 우조/ 陽)
* (주의)요즘 지역적 中古제 = 충청제론
*이청준의 판소리론(여름의추상, 1982) -육자배기, 단가, 판소리+ 전라도사투리 가락,
**이청준 서편제' 독자성 = 서편제 용어의 재등장 계기 '이청준 문학적 공간/ *예술인 활동, 소리 공간 *육자배기 전통 -김영랑, 서정주, 이청준
**소설 서편제' 시대배경 -연작1, 1956, 7경/ 연작2, 임자년(1972)/ 연작3, 1977경
-70년대 이면의 비정치적 공간 + 70년대 표면의 정치적 공간
3) '장흥소리'의 유래 -부사고을, <장악청중건기, 1832/ 장흥신청 완문> / 장흥神廳 전통 -*최옥산(1905~1956), 김녹주, 김상용, 유영애, 고수 김명환,/ 유래~남도무가기원설, 최길성)/일제기 장흥 -'남도 남부' 중심, 법원, 검찰청 -장기적으로 쇠락화
* 보성소리? 유래 -196,70년대, 보성 회천면 정씨 일문, 서편제 동편제
4) 장흥 산천 -北山, 中野, 南海'의 고장 *남쪽 장흥의 남쪽출신 이청준
(1) 북쪽 유치 산골 -빨치산 근거지/ 돌아온 풍금 소리 1993, 장편 흰옷 1993
* 이청준의 여성상 한 분 - '전정자 선생님', 대덕 동초교 교사
(2) 현 탐진강(식민지시대, 현 명칭) <옛 예양강(조선시대 명칭) *탐진강권 문학
(3) 천관산(큰산) - 잃어버린 절(1989), 잃어버린 종, 잃어버린 산
*南面 천관산' 이청준~ 대덕 천관산
* 뒷산에 가려, '큰 산'을 볼 수 없는 진목리. *큰(한) 절 - 정수사
5, 이청준의 '남쪽, 남도정서, 남도사람'
-남도의식, 고려 '강남도', 江南 공간
1) '남쪽/ 남도사람들' -바닷가 사람들 1966, 굴레 1966, 이상한나팔수 1969, 가학성 훈련 1970, 목포행 1971, 안질주의보 1974, *당신들의 천국 1974, 잔인한 도시 1978, 살아있는 늪1979, 해변아리랑 1985, 키작은 자유인 1989 등 *正南津(鎭) 홍보용 조립어
2) 70년대 시대현실과 이청준 소설의 상관성,
*이른바 정치적 무의식론 *관념적 회의론자 <그러나> -미친사과나무 1971, 목포행 1971, 건방진 신문팔이 1974, 뺑소니 사고 1974, *수상한 해협 1976, *춤추는 사제 1977, 예언자 1977 *표면, 이면 중의성 수상한 해협 1976 <1973 김대중 납치사건, 1974 긴급조치 1호, 1975 유신헌법, 1975 인혁당 8 인사형, 1975. 7월 김대중 사건 내사종결/ 충신 김제상 = 충절의 해협(김대중 사건 = 수상한 해협>
3) 전통적 남도의식 지역정서
- 기봉, 옥봉 형제 - 강남/ 존재선생, 부여회고詩
* 춤추는 사제1977, 백제 유민으로서 호남인의 정치적 좌절감 -
* 그렇다면 '태생적 남도정서와 남도문학'이 과연 따로 있을 수 있는가?
* 또한 장흥출신 소설가 '4인4색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6, 이청준의 '고향 공간' 관련소설
1) '고향, 귀향, 실향, 타향 - *'대덕, 회진', 大興, 장흥, 광 주, 남도, 전라도
- 이청준 발언- "고향을 잃어버리지 않는 말. 그가 태어난 고향에 대해 감사와 의리를 잃어버리지 않는 말, 그가 태어날 때 지은 약속을 벗어나지 않는 말"
- 과녁 1967, 귀향연습 1972, 눈길 1977, 춤추는 사제 1977, 잔인한 도시 1978, 살아있는 늪 1979, 여름의 추상 1982, 해변아리랑 1985, *비화밀교 1985, 흰옷 1993, 동백꽃 누님 2004 등
- 서울타향, 잔인한 감옥, "그 악마구리속 같은 서울살이- 귀향연습 1972"
* 이원적 대비 - "1978년, 잔인한 도시 + 소리의 빛", "1979년, 살아있는 늪 + 선학동나그네"
2) 실제 태어난 현실적 고향
- '대덕, 회진' - 진목리(참나무골/ 긴목, 長項), 해중산골 - 고향의 타향성, 고향에의 애증교차 *나무위에서 잠자기 1968, 귀향연습 1972, 눈길 1977 *살아있는 늪 1979, / *그런데 '눈길'에 나오는 버스 차부 - 대덕면소 장터쪽
3) 소설적, 문학적 고향공간 - 바닷가마을 1966, 침몰선 1968, 석화촌 1968, 살아있는 늪1979, 서편제 연작 + 동백골, 동백꽃 누님, 천관산 동백골 - 장흥都花 동백, 남쪽 상징 *<장흥 귀족호도박물관에 기증된, 이청준 동백분재 진도 동백 <인사동, 옥산 김옥진 화백(2001, 봄), <2024년 현재 보관중>
7, '선학동, 선학동 나그네(남도사람 3)'에 대하여
1) 실제 지리공간적 연관성 - '산저, 선자리, 이회진, 날근테' 마을들
-'산저리 <선학동' 개명, 2008/ 현 회진항의 남쪽 십 리/ 간척지/ 천년학 촬영지 / "공지산, 명당 전설, 선 자리(船所, 船者), 옛포구(周浦= 돌개), 주포 간척지 순흥농장, 풍장터, 가교실 회진어업조합 창고, 대덕동초, 탱자도," - 이청준의 유년추억의 공간
2) '소설 서편제 연작 3, 선학동 나그네' 공간
*'이청준 서편제' 권역 - 보성, 장흥, 강진, 해남 + *육자배기, 진양조*전라도 사투리 가락
**영화 서편제' 영화공간 + 완도 청산도, 영광 염전
*서편제 연작 1, 2, 3편 종착지 - 씻김굿, 방생, 해원 종결공간 선학동 - 서편제 연작1976~1981/ 해변아리랑 1985/ 무소작씨종생기 2000 -용서, 화해의 예술지향성 공간
3) '개인 이청준'과 선학동 공간/ 선학동 나그네
* 독행자, 남겨진 남자 이청준 - '나무숲이 간절한 빗새, 외로움, 허기, 분노'
* 이청준의 내면적 갈등은 어떠했을까? - **밤중 귀향 + 새벽 출향 사례
* 이청준의 선학동-사연과 소리 저장소> '지리산 청학동, 의령 부자마을'
*白鶴 비상(飛翔) 상징 - 망자 영혼의 귀환, 용서와 화해, 빛의 광명, 가족재결합, <주의> 길손(오빠 사내)의 자살說(그와의 한시대, 2003) = "아비 소리꾼(遺紛) + 오빠 북채잡이 + 장님누이 소리꾼 + 주막 주인" = 이청준 分身들 <'나그네' + '사내들' 범칭 + '선학동 둥지 숲'에 공존
* 지금도 '선학동 나그네'는 가능한가? - 신화적 가상 공간 <문학적 현실공간>
*"이청준의 예술가소설, 비의적 자서전이라 말할 수 있다" - 안삼환 교수
4) 소결-'조율적 상징, 소망적 가상공간 -*선학동 예술공간(민간정원)
(1) 소망적 상상공간 개설 공지산 <관음봉, 地靈音 북소리, 明堂, 포구변신, 부친의 유분귀환, 보는 눈, 듣는 귀 있는 사람들, 예술성지향의 존재적 언어/ 觀音구제 눈먼 피해자 치유, 노래쟁이 詩쟁이 낙원,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는 숲 공간 -대비적 공간 <선학동 나그네 1979 對 잔인한 도시 1979)
(2) 白鶴 등장, 선학동 飛翔鶴(비상학) - '초월적 과시의 득세(得勢)' 아닌, '조율적 화음의 득음(得音), 용서와 화해로 다시 태어나는 말 -'백학' 상징성> 창공, 상승, 초월, 감응> 날개의 부활> 학, 빗새, 바닷새, 유골 귀환, 산 그림자 再生, 放生 - '시간의 문' 통과의례, “광장 마을 <선학동 비상학' <'백학 이청준'자신의 귀거래사 소망
*'선학동 일체감(존재적 언어)'과 '비화밀교 일체 감(관계적 언어)' 차이
(3) *유골 유분 귀환 -*소리 무덤 移葬-선학동나그 네1979, 해변아리랑1985
(4) 잃어버린 집, 고향의 代替的 소망공간 - <밀실 기억. 진목리> + <광장공간, 선학동>/ 누구든 백학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나무숲 <금의환향 아니다
5) 이청준의 '나그네(유랑객)'와 '나그네의 집, 나그네 의 삶?
(1) '여름의 추상1982, 나그네' = "집착(執着)이 없 는 사람, 어디서나 자기 신전(神殿)을 짓지 않는 사람, 언제나 도증(途中)의 사람" - 남도 나그네
(2) '소설가 나그네' - 선학동나그네, 비상학 백학/ 해변 아리랑, 바닷새, 李海鳥/ 인문주의자 무소작 종생기, 이야기꾼/ 소설가 나그네의 안식처 공간
6) 기타사항 - 이 글에 원용된 공간 분석틀
(1) '토마스만', 이원적 세계관의 대립구조 - '시민 성(관계적 언어) 對 예술성(존재적 언어) 갈등',
(2) 사회학 용어, 망탈리떼 -집합적 심성과 무의식, 집단적 사고방식 및 생활양식 <선학동 소망 낙원 = 무디고 착하며, 눈과 귀가 있으며, 용서와 화해의 존재적 언어를 쓰며, 나그네 새를 도와 주는 사람들과 주막집 주인이 있는 조율적 가상공간/ 선학동 낙원의 특징
8, 맺음말
소설가 이청준이 곧 선학동 나그네는 아닌가?
화가 김선두에게 '원근법과 소실점을 살려주는 그림'을 주문
천관산 남쪽에 한옥으로 '이청준 남와(南臥)대'를 지으면 질책 토속적 민간신앙 정치적 무의식論 - 목포행/ 수상한 해협
박형상 변호사(前서울중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