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곡예사가 되는 노력이란.
고통의 감내
2022년. 내가 꿈에만 그리던 고등학생이 되는 날이었다. 구례고 강당에 쭈뼛쭈뼛 들어가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듣던 난 모든 게 새로워 연신 두리번거리기 바빴고 다른 친구들의 경직된 표정을 보며 덩달아 마른침을 삼키고는 했다. 처음에는 무조건 ‘잘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야지.’ 등 큰 포부를 가지며 주먹을 꾹 쥔 채 입시라는 출발선에 당당하게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 결심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고 꿈의 범위도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것 또한 확실하게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남들처럼 잠을 줄여 가면서 공부를 했고 가능한 할 수 있는 교내, 교외 프로그램들을 신청하여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고자 하였다.
물론,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고 기회 또한 평등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결과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이번엔 남들보다 의지가 없었다느니 확실한 꿈이 없었기에 그랬다느니 진부한 변명만 늘어놓으며 어물쩍 넘어갔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어영부영한 사이 벌써 고3이란 마지막 지점에 도달해 있었고 난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 어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 후회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노력에 배신은 없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고장이라도 난 듯이 입만 뻥긋뻥긋 하고는 정말 내가 늦지 않았을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등의 부정적인 의문들만을 주어다가 내 머릿속을 메우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런 의도를 갖고 말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계속해서 부정적인 감정만 쌓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새 난 누군가가 일으켜 세워주지 않으면 그대로 힘없이 축 늘어져 허공만 멍하니 바라보는 그런 한심한 한량이 되어버렸다고.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받던 진로 희망 종이. 그것은 나를 더욱더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끝에는 계열만 간신히 적어서 내는 게 일상이 되었고 종이를 받았던 저녁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만족하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하다 지쳐 잠드는 일 또한 부지기수였다. 우습게도 항상 마지막에는 언젠가... 분명 나에게 맞는 일이 있겠거니 하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편안한 마음을 갖고서 두 발 뻗고 잠들었지만 말이다.
“언제나 현재에 집중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늘 현재에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명언을 보면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나는 이 명언을 보며 각자 단어 선택만 다를 뿐이지 결국에는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말을 늦게라도 믿어 보기로 했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지금은 나 자신을 다독이며 믿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를 제대로 봐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온전히 봐주겠는가. 실투투성이에 고집만 센 나지만 그래도 나를 응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오늘도 난 펜을 들어 불안정한 줄타기에 합류한다.
마치 곡예사가 되는 것처럼 아슬아슬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자세로 임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곡예사도 처음부터 줄타기를 잘하진 않았을 것이다. 태연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고 또 입 밖으론 내뱉지 않은 고통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곡예사는 웃으며 보란 듯이 간당간당한 줄타기를 하며 훌륭한 춤사위를 벌인다. 물론, 내가 태연한 곡예사가 되려면 많은 고통들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앞으로 반년.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난 성인이 되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그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곡예사의 피나는 노력을 본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오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