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육영수 여사님 서거 50주기를 추모하며
강 동 구
1974년 8월 15일 오전 장충동 국립극장에서는 제29주년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사를 낭독하시던 중 갑자기 객석에서 뛰쳐나온 괴한이 대통령을 향하여 권총을 발사하였는데 어이없게도 총알은 박 대통령 옆에 앉아 계시던 육영수 여사 머리를 관통하였다.
장내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술렁였지만, 박 대통령은 분위기를 수습하고 기념사 낭독을 계속하였다. 총알이 자신을 향하여 날아왔음이 자명하지만, 박 대통령은 의연히 모든 행사를 마치고 서울대 부속 병원으로 육영수 여사를 찾았다. 이날은 지하철 1호선 개통식이 예정돼 있었으나 취소되고 말았다.
저격범은 즉시 체포되었고 육영수 여사님은 저녁 7시경 서울대 부속 병원에서 안타깝게 서거하시고 말았다. 범인은 재일교포 2세 문세광으로 밝혀졌다. 문세광의 배후는 일본 경찰이 수개월 수사하여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한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당시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한국이 일본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하여, 한일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던 시기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정부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외교적으로 수세적 딜라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도 고 육영수 여사님을 잊을 수 없겠지만 나 또한 여사님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나는 용산 미8군에서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정오쯤 미군 동료 한 사람이 내게 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다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가르키며 프레지던트 박 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유 크레이지(너 미쳤어)? 하며 정색하니 미군 동료는 리얼리!(정말이야) 하고 정색하자 라디오를 얼른 켜보니 아나운서가 숨 가쁘게 전하는 뉴스는 국립극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괴한의 총을 맞아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급보를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두 귀로 뉴스를 분명히 들었지만 믿어 지지가 않았다.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여사님이 서거하신 것은 분명한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날 오후 대한민국 최초로 지하철 1호선 개통식이 예정돼 있어 전철을 타보려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런 비보를 접할 줄 상상이나 했으랴?
고 육영수 여사님은 신사임당과 함께 우리나라 여성상의 표상이라 하여도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 같다. 여사님은 우리나라를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경제개발을 통하여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을 조용히 내조하시며 어려움에 부닥친 서민들을 남몰래 보살피며 대통령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곳을 찾아다니시면서 국모의 역할을 감당하셨다.
최근에는 1971년부터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으로 육영수 여사를 보좌한 김두영 비서관이 당시에 기록한 특별활동비 지출 내역을 상세히 기록한 장부를 중앙일보를 통하여 공개하므로 세간의 이목을 받은 바 있다.
매월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특활비를 박 대통령으로부터 월 20만 원씩 받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어려운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주고 사적인 용도로는 단 일원도 쓰지 않으시고 대통령 가족의 생활비는 대통령에게 지급되는 월급으로만 생활해 오셨다.
한번은 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여사님과 동행하지 않으시고 맏딸 근혜양과 동행하게 되었다. 어떤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데 근혜양이 한복을 입어야 할 행사이기에 육 여사는 새로 만들어 입히지 않고 자신이 입던 한복을 고쳐서 입혀 보냈다는 일화도 있다.
작금에 회자되고 있는 영부인들의 처신을 보면 실망감을 넘어 절망스럽다. 영부인의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여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해외 관광을 다녀오고 고가의 명품 옷으로 치장하고 국가 예산으로 전용 코디네이터까지 두었다니 실로 어이가 없다.
최근 어느 영부인은 명품 가방을 수수하여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고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대통령을 곤궁에 빠뜨리는가 하면 어느 도지사 부인은 공무원을 개인비서로 활용하면서 법인 카드를 불법으로 사용하여 재판을 받고 있으니 개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
어떤 유명 여배우가 청와대 행사에 초청받아 갔다가 여사님과 잠시 사적으로 만나는 기회가 있었다. 여사님은 마침 내실에서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고 계셨다. 여배우는 여사님께 와이셔츠가 누구의 것이냐고 여쭈니 여사님은 우리 애들 아버지 것이라고 말씀하여 여배우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여사님이 직접 다림질하시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 대통령을 호칭할 때 각하나 대통령님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애들 아버지라 하시니 순간 정신이 멍했다고 한다.
대부분 자기 남편이 조그만 지위에 있어도 우리 시장님이요 우리 지사님이요 라고 호칭하는 분별없는 부인이 있는가 하면 남편의 알량한 지위를 이용하여 호가호위하는 부인들이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스갯소리로 남편이 별이 하나면 부인은 별이 두 개라고 하니 이런 말이 생길 만도 하다.
여사님은 진영과 이념을 초월하고 여와 야를 막론하여 온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으시고 퍼스트레이디의 품격을 지키시며 대통령에게는 직언을 마다하지 않으셔서 청와대의 야당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 어느 나라에 이처럼 온 국민의 추앙을 받는 훌륭하신 퍼스트레이디가 또 계실까? 여사님은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자애로우신 정신적인 어머님이시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하여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였다. 일종의 담보적 성격이 강한 인력 진출이었다. 후진국에 선 듯 돈을 빌려줄 나라가 어디 있을까? 서독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어렵사리 차관을 들여왔다.
박 대통령은 독일 뤼프케 대통령 초청으로 여사님과 함께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박 대통령은 타고 갈 비행기가 없어 서독에서 보내준 비행기를 얻어타고 서독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우리나라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에서 광부들과 간호사들을 만나 그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 나는 왜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냐고 하시면서 통곡을 하고 말았다.
장내는 대통령과 영부인 광부와 간호사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바다가 되었는데 이 광경을 지켜본 서독의 뤼프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박 대통령을 위로하고 우리나라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서독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국가 경제가 발전하려면 고속도로 철강 자동차가 기본이라고 조언하면서 경제정책 고문단을 다섯 명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현대 자동차가 세워지는 근간이 되었다.
대통령 내외가 서독을 떠날 때 광부와 간호사들이 공항에 나와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앞에서 어머니 어머니하고 목놓아 우니, 여사님은 비행기에 오르지도 못하고 함께 우셨다고 한다. 이 눈물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이 되었다.
여사님의 내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나라는 이처럼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024년 올해는 여사님이 서거하신 지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작금에 우리나라 영부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여사님이 더욱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첫댓글 감동입니다. 정치적인 색채가 독자들에게 어떤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지만 육영수는 만인의 어머니였지요
선 듯- 선뜻으로 고치시길 ㅎ 잘 읽었습니다. 이제 문단을 나누시어 훨씬 읽기가 편하네요. 맨 앞줄에 맞추는 것만 단락으로 고치시길 ㅎ
예 나는 학생이다.
그리고 엄마는 주부이다.
희망사항, 나는 학생이다. 그리고 엄마는 주부이다.
물론 출판사에 보내면 자동적으로 단락이 만들어 지지만, ㅎㅎ 콧등이 시큰거리네요.ㅎ
회장님이 자상하게 지도해 주셔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진영과 이념을 떠나 육영수 여사님은 만 백성의 어머니 이시죠
8 15가 다가오니 여사님이 문득 떠올라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