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에서 설치한 이정표는 이곳을 고불산이라고 하는데 실제 고불산은 이곳에서 좀 더 가 야 한다.
▲고불산삼각점(수원311/1983복구)
▲광주시 직동과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 웃말을 연결하는 안부이다.
▲무명봉이 나오고...맥길은 우측으로 살짝 꺾어진다.
▲넓은 공터가 보이고...좌측으로 살짝 꺾어졌다가...
▲급경사 야자먀트 내리막을 내려서니...영생관리사업소 내려가는 안부가 나온다.
▲로프 따라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능선 우측에는 송전탑이 보인다.
고불산(古佛山:321m) 돌탑위 이정표 망덕산4.2km 직진 누비길 따라간다. 예전에는 여기에 고불산 표지판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졌고, 삼각점이 있는 곳을 고불산으 로 지도에 맞게 표시하고 있다.
▲고불산(古佛山:321m):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과 광주시 직동, 삼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 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이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영장산 아래에 있는 직동에 조선조 세 종대왕 시절에 청백리의 표상인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1360∼1438)의 묘가 자리잡고 있 는데 맹사성 대감의 호가 ‘古佛’ 이라 이산을 고불산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고불 청백리 맹사성 대감의 일화(逸話): 열아홉에 장원 급제하여 스무 살에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 물었다. 스님! 군수인 제가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면 좋겠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지요.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고작 그것 뿐 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스님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 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스님은 그의 찻잔에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 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 속 차를 따랐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난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워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다가 문틀에 세게 부딪쳤다. 그 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바닥에 야자매트도 깔려 있고 뚜렷한 성남 누비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앙증맞은 돌탑이 있는 넓은 공터도 지난다.
▲여기에도 막걸리 파는 천막이 생겼네
▲로프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갈마치고개 누비길 이정표 누비길안내판 성남 누비길 2구간 시작
▲데크로 된 생태이동통로를 지나고 이런 곳에는 동물이 지나 다닐까!
▲갈마치고개(葛馬峙):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에서 광주시 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389 지방 도가 지나가며 갈현(葛峴)이라고도 불리며 고개 좌측 성남쪽에는 화장장이라 불리는 성남영 생사업소가 있고 동물이동통로가 있어 도로로 내려갈 일이 없어졌다. 갈마치(葛馬峙)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최초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 대 이전부터 갈마치라 부른 것으로 추정되며 갈마(渴馬)란 ‘말(馬)이 갈증(渴症)이 난다’는 뜻으로 예전의 갈마치는 매우 가파른 고갯길이어서 말이 이 고개를 넘으면 목이 말라 헐떡 임으로 꼭 물을 먹이고 쉬었다는 고개로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주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갈마치(葛馬峙) 또는 갈현(葛峴)이라고 했다는데 언제부터인가 지명의 유래가 옛날부터 칡이 많이 나서 갈현(葛峴)이라 불리웠다고 하는데 평택임씨 족보에는 이곳을 갈현이라고 기록하 고 있으며, 갈현동의 지명은 갈마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갈마재. 데크생태통로를 통과하여 이배재로 향한다.
▲데크길을 오르니 우측에 묘지도 보이고
▲검단산길누비길, 이곳부터는 성남누비길 제2구간이 시작되는 검단산 구간이란다.
▲성남누비길등산로종합안내도; 성남시 경계를 한바퀴 도는 둘레길이다.
▲갈마치터널 위 현위치구조목 1km남았다는 이정목을 보며 이배재 방향으로 출발. 이 봉우리 아래로는 성남시 모란에서 경기도 광주, 곤지암으로 연결되는 경충대로 갈마터널 이 있다.